보수주의자들
최종욱 외 지음 / 삼인 / 1997년 12월

 

 

 보수주의자들』중에 강유원이 쓴 「복거일/보수주의 논객으로 자리잡은 ‘희귀한 문학인’」을 읽다. 복거일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읽은 것이 아니라(내가 이런 양반에 대해서 뭘 알고 싶겠나.), 강유원의 글쓰기에 대해 알고 싶어서였다. 복거일은 굳이 강유원이 귀중한 시간을 투자하여 비판할 필요와 가치도 없어 보인다.

강유원을 읽고 싶은데.. 『서양문명의 기원』이 괜찮아 보이는 데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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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5-24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양문명의 기원>괜찮습니다. 책의 재질은 떨어지지만 내용은 만족합니다.강유원의 모든 책은 읽을만합니다.

타지마할 2006-05-24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담뽀뽀님
 
 전출처 : 닉네임을뭐라하지 >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과제 몇 가지

 

 

 

 

 

- 오늘 첫 번째 과제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오는 것이다. 항상 우리는 어떤 탐구에 임하기에 앞서 자신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별 볼일 없는 사람인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이번 기회에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 과제를 낸다. 그리고 이 강의를 다 들은 다음에 다시 한번 같은 주제로 스스로 글을 써보기 바란다. 한 학기 사이에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해보면 좋을 것이다. (64-65p)

  

- 여기서 과제물을 하나 내겠다.

제목은 '자본주의 성립의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되는 자유로운 계약 노동자는 어떻게 등장하였는가'이다. 관련된 책을 읽고 조사하면 된다. 관련 서적으로는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책벌레, 2000)를  추천한다. 2주일 정도면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과제물을 작성하기 위해 특히 신경써서 읽어야 할 부분은 14장 "돈은 어떻게 생겨났나?"이다. (88-89p)

  

- 여기서 기말고사에 나올 문제들을 알려주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5년 5월 12일 한신대학교 개교 65주년 기념 초청 강연에서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강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도 했다.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진출이 더욱 확대되어야 지금 남한의 많은 실업자와 400조 원이 넘는 유휴자금, 한계 상황에 도달한 중소기업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가져올 수 있다."

 이 발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쓰는 것이 문제 중의 하나다. 오늘 강의한 내용에 답이 들어있다. 힌트를 주자면 400조 원이 넘는 유휴자금, 이게 자본 과잉이라는 것이다. 이것과 연결된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자본의 위기극복전략을 설명하고 한계를 지적하라'가 그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한신대 발언과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된다. 돈이 남는다, 이거 이윤을 못 내고 있따, 이게 자본의 위기다. 자본의 위기라고 하면 거창한 거 같지만 돈 놓고 돈 먹기가 안 되고 있다, 이윤이 안 나오고 있다, 이게 자본의 위기라는 말이다. 그걸 극복하려면 돈이 될 만한 곳에 이윤이 최대한 나올 만한 곳에 투자를 해야겠다, 그게 극복전략이다. 자본의 위기극복전략이라고 하면 막연하고 학문적인 것 같지만 별로 대단한 것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2번 문제는 학기 초에 배운 것이다. '역사적 유물론, 유물사관에 대해서 설명하라.' 역사와 사회를 보는 마르크스의 기본 시강에 괗나 것이니까 이쯤은 알고 넘어가야 한다는 뜻에서 이 문제를 낸다. 경제적인 것, 물질적 관계를 중심으로 세상사를 보는 눈이라는 것을 염두해 두면 답안쓰기가 수월할 것이다.

 마지막 문제는 '전인적 인간 이상 실현을 위한 방안을 쓰라'이다. 너무 거창한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앞의 문제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원리와 그것의 적용에 관한 것이다. 그걸 이해했으면 이 사회 속에서 사람이, 그것도 없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궁리해봐야 할 것이다. (132-1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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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라시보 > 출산 준비물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누군가 아기를 키우는 모습을 지켜본적도 또 집안에 아기가 있은지도 한참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도대체 아기들한테 뭐가 필요한지를 모르겠다. 일단 백화점에 가서 출산용품의 견적을 내니 매우 기본적인것만 하면 100만원이라 했다. 난 속으로 그랬다. 이거뜰이 장난하나? 전부 돈빽이래. (안그래도 비싼 조리원에 열받아 있던 터였다.)

백화점만 답이 아니다 싶어서 같은 메이커지만 시장에 있는 지점을 찾았다. 그랬더니 무려 60만원이나 싼 40만원 선에서 해결이 된다고 했다. 물론 다 그 제품만으로 하는건 아니라고 했다. 허나 이건 어디까지나 아기 이불, 침대, 유모차가 빠진 가격이다. 그걸 다 합치면 백화점처럼 돈빽이 나올지도 모른다. 대충 필요한 물건들을 뽑아보니 이렇다. 근데 이게 맞는건지. 다 필요한건지 혹은 모자란건 없는건지 진짜 감이 안잡힌다.

배네 저고리 (2장) -내의는 3개나 있으므로 생략-

턱받이 (1장) - 난 턱받이를 안써도 되었다고 하지만 우리애는 나와 달리 침을 질질 흘리지도 모르므로

손싸개 (1장)

천 기저귀 (20장) - 남들은 니가 똥기저귀를 빨 리가 없다고 말리지만 그래도.

기저귀 카바 (1장)

기저귀 밴드 (1개)

속싸개 (2장)

배개 (1개)

양말 (1개)

우유병 (2개)

우유병 브러쉬 집게 (각 1개)

모유패드 (1개)

칫솔 구강세정제 (1개)

목욕 손타올 (1개)

면봉 (1개) -있는거 쓴다니까 아기껀 작다면서 진짜 가늘고 작은 면봉을 보여줬다.

방수요 카바 (1개)

전자 체온계 (1개)

욕조 (1개)

손톱가위 (1개)

모기장 (1개)

비누 (1장)

그런데 어쩌면 더 필요한게 많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거 외에 안사겠다고 한 품목도 한 절반쯤 된다. 근데 그 품목 중에서 필요한게 있으면 어쩌지? 유축기도 모유 수유를 하려면 사긴 사야 할꺼고 이것저것 정말 고민이 많다.

혹시 아기 낳은지 얼마 안되어 기억이 삼삼하신 분들 계시면 조언 좀 해 주시면 좋겠다. 당췌 감이 안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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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삭발하는 날 / 현진

 

삭발하는 날
현진 지음, 주명덕 사진 / 호미 / 2001년 7월

 

 

5월은 부처님 오신날 특집(?)으로 현진의 <삭발하는 날>로 시작한다.   결제(結制), 해제(解制), 안거(安居) 등 생소한 불교 용어나 스님들의 용맹정진하는 공부나 생활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보살님.

아직도 "가장 사랑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는 수데나의 독백이 귀에서 계속 울려 옵니다. 주는 것이 결코 위선이나 한순간의 충동으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뼈저리게 깨우칩니다. (182쪽)

머리를 깍고 먹물 옷을 입는, 세속으로부터의 출가보다는 욕심과 시비에서 벗어나는, 번뇌로부터의 출가가 더 어렵고 힘든 길임을 거듭거듭 실감한다. 승복을 입은 내 모습이 첫번째 출가였다면, 사랑도 놓고, 미움도 놓고, 욕심까지 벗어 던지는 일은 두번째 출가이다. 그언데 두번째 출가의 길은 내게 아직도 멀고도 험하기만 하다.(199쪽)

이번 부처님 오신날엔 근처의 조그마한 암자에라도 다녀와야겠다. 

42. 내가 본 부처 / 도법

 

내가 본 부처
도법 지음 / 호미 / 2004년 7월

 

 

정말 우연한 기회에 책장 한 귀퉁이에 거의 5년 동안 잠자고 있던 책을 읽었다.  스님들의 글은 참 쉽고 잘 읽힌다.  현진스님도 도법스님도.  근데 돌아서면 잘 모르겠다.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것이 있는 지 없는 지.  나의 공부가 부족해서이겠지.

 43.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 성석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02년 6월

 

 

오가는 전철 속에서 냅다 읽어 버렸다.  다시 볼 필요가 있을까? 모르겠다.

## 나비와 전사 / 고미숙 (2회독)

44~48. 食客 1~5 / 허영만

 

 

 

 

 49.예수는 없다 / 오강남

 

예수는 없다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01년 5월

 

 

 50 ~ 53. 食客 6~9 / 허영만

 

 

 

 

 

54. 강유원의 고전 강의 공산당선언 / 강유원

 

 

 

 

내이름은 김삼순님의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 받은 책이다.  강유원의 오프라인 강의를 듣고 있기 때문인지 한달음에 읽어내리기는 했는데.. 찬찬히 한번 더 읽어야겠다.  강유원 선생이 왜 이 책을 강독의 교재로 삼았는지는 이해가 된다.  영문판과 독어판을 비교해 가며 최소한 1장 브르주와와 프롤레타리아 만이라도 제대로 읽어 보아야겠다.  내공이 쌓이면 진도를 더 나가도 좋고..

 http://marxists.org/deutsch/archiv/marx-engels/1848/manifest/index.htm 에 독어판이 올라와 있고, 영어판은 이 책에 부록으로 박종철 출판사에서 나온 김태호선생의 번역과 더불어 실려있다.  박종철출판사에서는 1991년에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1권에 요즘 정말 잘 나가는 영어 강사 최인호의 번역본이 있는데 왜 김태호 선생이 재 번역을 했을까? 비교해 보니 그리 많이 차이가 나지 않던데. 아무러면 어떠랴.  나는 내가 가진 책으로 보면 된다.

Ein Gespenst geht um in Europa – das Gespenst des Kommunismus.

Die Geschichte aller bisherigen Gesellschaft  ist die Geschichte von Klassenkämpfen.

한때 가장 좋아했던 독일어 단어가 Arbeit와 Kampf였다. 후후.

 55 ~ 57. 食客 10~12 / 허영만

 

 

 

 

 

58.쾌도난마 한국경제 / 장하준 외

 

 

 

 

59. 글쓰기의 즐거움 / 강준만

 

글쓰기의 즐거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4월

 

 

다른 분들의 호평과는 달리 내가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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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5-24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강유원의 강의 듣고 있어요.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나비와 전사 / 고미숙 두권 읽었네요. 예수는 없다는..사놓고 아직 읽지 않았어요..

2006-06-01 1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로쟈 > 남성은 없지 않다!

점심을 먹으러 갈 시간인데, 막간 창고 정리를 한다. 이미 모스크바 통신에 '언어는 무의식적으로 탈구조화되어 있다'란 제목으로 올렸던 글에서 김훈의 <현의 노래>에 관한 대목만을 정리해서 옮겨놓는다. 2004년 7월초에 씌어진 그 글은 '김훈-김규항-고종석의 문체에 대한 생각'(업그레이드 버전은 '양파, 혹은 문체에 대하여')에 대한 보론의 성격을 겸하고 있었다(때문에 이 글을 처음 접하시는 분이라면 먼저 문체에 대한 글을 참조하시는 편이 좋겠다). 나머지는 나의 수다이다.  

 

 

 

 

갑작스레 ‘정치론’을 꺼내들기 전에(*이 '정치론'에 대해서는 나중에 정리하겠다) 내가 몇 마디 거들었던 소설은 김훈의 <현의 노래>였다. 나는 김훈의 문체를 얘기하면서 그의 ‘허무주의’를 지적했고, 보다 구체적으론 그의 허무주의가 ‘가장(家長)의 허무주의’라는 걸 주장했다. 그리고 그 근거로 “이 질퍽거리는 구멍은 대체 무엇인가? 이 빨아당기는 속살이 어째서 왕의 무덤 속에 들어가 쇠와 함께 썩어야 하는가. 야로는 식은 땀을 흘리며 기진맥진하였다.”란 구절을 제시하면서 ‘질퍽거리는 구멍’을 김훈 문학행위의 핵심으로, 라캉의 용어를 쓰자면 ‘아갈마’(=숨겨진 보물)로 규정했다. 지젝을 흉내내어 말하자면, 그의 문학행위는 그 ‘질퍽거리는 구멍’을 중심으로 순회한다.

이에 대해서 ***님은 (어제 읽어보니까) 이 ‘질퍽거리는 구멍’이 ‘여성의 성기’를 가리킬 뿐이라고 반박하는 답글을 달아놓았는데, 좀 의외의 답글이다. 내가 제시한 건 그것의 ‘지시적 의미’가 아니라 ‘해석’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그 ‘질퍽거리는 구멍’의 주인은 “왕의 죽어 썩어가는 육체를 피해 도망친” ‘아라’이다. 나는 인용한 구절에서 “‘야로’는 김훈 자신이며, ‘이 질퍽거리는 구멍’이야말로 그의 ‘허무주의’의 근거이고, 그의 표현을 빌자면, 풍경의 ‘적막’이다.”라고 했다. 즉, ‘야로=김훈’이며, ‘질퍽거리는 구멍=허무주의의 근거’라는 것이 나의 ‘해석’이다.

하면, ‘질퍽거리는 구멍’은 ‘아라의 성기’일 뿐이라는 ***님의 지적은 ‘야로’는 ‘김훈이 아니라 야로일 뿐’이라는 얘기인데, 이게 ‘반박’으로서 성립하는 것인지? 혹은 ***님은 그것이 ‘반박’이라고 정말로 진지하게 믿고 있는 것인지? 이건 메타언어로서의 비평 원론에 관한 것인데, 나는 그냥 농담으로 간주하겠다(혹 진담이라고 밝혀주신다면, 다음 번에 제법 진지하게 ‘반박’하도록 하겠다).



김훈의 에세이들을 얼마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의 ‘형이상학적’ 상상력 혹은 묘사는 음(陰)과 양(陽), 즉 암컷-수컷의 대립과 교접을 근간으로 구축돼 있다(‘여자-남자’라고 말하는 건 김훈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는 ‘암컷-수컷’이라고 말한다). ‘칼의 노래’와 ‘현의 노래’라는 시리즈의 제목 자체가 이미 그러하다. ‘질퍽거리는 구멍’이라는 음(陰)과 암컷(성)이야말로 (야로가 아니라) 작가 김훈이 “식은 땀을 흘리며 기진맥진” 채워 넣어야 할 구멍이고, 먹여 살려야 할 구멍이며, 궁극적인 미스터리이자 ‘적막’이다. 나는 이 또한 김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개진한 것은 그러한 상식을 좀더 보충하는 의미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보충하는 김에 더 확장하자면, ‘질퍽거리는 구멍’ 즉 바기나(vagina)는 ‘주인-기표(Master-signifier)’로서의 팔루스(phallus)에 대응하는 ‘여주인-기표(Mistress-signifier)’라 할 만하다. 라캉에게서 팔루스가 생식기관으로서의 남근, 즉 페니스(penis)와 구별되듯이, 바기나는 생식기관으로서의 음문(陰門), 즉 불바(vulva)와 구별된다. 프로이트에서 라캉으로의 이행, 혹은 정신분석학의 언어학적 전회가 <‘아버지’에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페니스’에서 ‘팔루스’로>란 표어로 정리될 수 있다면(그리고 <‘징후’에서 ‘징환’으로> 또한 주요한 표어이다), 우리는 거기에 <‘불바’에서 ‘바기나’로>를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주인-기표’의 짝으로 ‘여주인-기표’를 덧붙이면서 말이다.


 

 

 

라캉 정신분석은 ‘프로이트+소쉬르/야콥슨’으로 정식화될 수 있는바, “무의식은 언어로 구조화되어 있다”라는 것이 ‘구조주의자’ 라캉의 맥심이다. 실제로, 라캉은 야콥슨과 깊은 교우를 가졌는데, 레비-스트로스의 소개로 그는 미국으로 망명해 있던 러시아의 언어학자 야콥슨을 알게 되며, 야콥슨은 프랑스에 갈 때마다 라캉의 집에 머물곤 했었다(레비 스트로스의 회고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참조). 유의할 것은 여기서의 전회가 이중적이라는 점이다.

즉, 라캉은 정신분석학을 언어학적으로 전회시킴과 동시에, 언어학을 정신분석학으로 전회시킨다. 그 전회는 <‘랑그’에서 ‘랭귀스테리’로>란 표어로 정리될 수 있는바, 알다시피 ‘랭귀스테리’란 ‘랭귀지(언어)+히스테리’이다. 여기서 ‘탈구조주의자’ 라캉의 ‘또 다른’ 맥심이 나올 수 있는바, “언어는 무의식적으로 탈구조화되어 있다”가 그것이다(물론 이건 그가 직접 언명한 것이 아니라 내가 정리한 것이다.)

단순하게 대비시켜 말하자면, <에크리>(1966)의 저자로서 구조주의자 라캉이 ‘무의식의 언어’에 관심을 집중한 데 반해서(그의 주된 관심은 ‘상징계’였다), 흔히 ‘후기 라캉’이라 불리는 탈구조주의자 라캉은 ‘언어의 무의식’에도 관심을 돌린다(그의 주된 관심은 ‘실재’였다). 조이스에 대한 그의 관심은 거기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사실, 이 ‘언어의 무의식’에 관해서라면, 이리가레와 함께 라캉의 ‘나쁜 딸들’의 하나인 크리스테바의 기여를 빼놓을 수 없는바, 그녀의 <시적 언어의 혁명>(1973)은 그 대표적인 저작이다(그녀의 국가박사학위논문이기도 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불가리아 출신의 이 여성 ‘사무라이’가 일약 프랑스 지성계의 히로인으로 떠오르게 되는 건 <바흐친, 말, 대화 그리고 소설>(1967)을 발표함으로써이다(그녀가 26세 때의 일이다). 이 논문은 우리말로 번역돼 있지만, 일부 오역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안 그래도 상당히 난해한 논문이지만). 해서 요컨대, 라캉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야콥슨에 대한 참조는 기본적이며, 크리스테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바흐친에 대한 참조는 필수적이다.

 

 

 



다시 ‘질퍽거리는 구멍’, 즉 바기나. 해부학적으로 ‘팔루스’란 단어는 원래 (남성의) 음경과 (여성의) 음핵, 즉 클리토리스를 가리키지만, 라캉 정신분석학에서는 “결여 혹은 상실의 기표”를 뜻한다(욕망은 언제나 이러한 결여와 관련된다). 그것이 ‘기표’라는 점에서, 음경과 무관하지만 한편으로 ‘결여/상실’의 기표라는 점에서는 음핵과 무관하지 않다.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여성의 음핵은 결여한/상실한 남성적 음경의 흔적이었기 때문이다(해서 팔루스는 페니스, 즉 남근이 아니지만 ‘남근적’이라는 이유에서, 라캉 정신분석학이 페미니스트들로부터 공격 받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반면에 바기나는? 해부학적 기관이 아닌 상징 혹은 기표로서의 그것은 ‘결여의 결여’, ‘상실의 상실’의 기표이며, 미스터리의 기표이고 ‘여주인-기표’이다. 즉, 남성에겐 미스터리가 없다는 의미에서(‘남성’은 다 드러나 있다!), 남성에게는 결여가 결여돼 있으며, 상실이 상실돼 있다. 카트린 브레이야의 표현을 가져오자면, 바기나는 ‘지옥’의 기표이며, 팔루스가 결여/상실하고 있는 것은 그 ‘지옥’이다.

라캉은 욕망을 ‘결여’하고만 관련짓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욕망의 반쪽이다. 나머지 반쪽은 바로 ‘결여의 결여’와 관련된 욕망이다. ‘무엇인가를 갖고 있는 자’는 ‘무엇인가를 안 갖고 있지 않은 자’이며, ‘무엇인가를 안 갖고 있는 자’가 무엇인가를 갖고자 욕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안 갖고 있지 않은 자’는 무엇인가를 안 갖고자 욕망한다(즉 소유에 대한 욕망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소유에 대한 욕망도 있다). 주인-기표가 무엇인가를 갖고 있음으로써, 혹은 갖고 있다고 가정됨으로써 ‘주인’ 행세를 한다면, 여주인-기표는 무엇인가를 안 갖고 있음으로써, 혹은 안 갖고 있다고 가정됨으로써 ‘여주인’ 행세를 한다. 즉 칼이 아니라 칼집이 주인이며, 마개가 아니라 구멍이 주인인 것이다. 즉, 여주인.



다시, 야로의 말, 김훈의 말을 보자. “이 질퍽거리는 구멍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결여/상실이며, 부재이고 적막이다. “이 빨아당기는 속살” 앞에서, “야로는 식은 땀을 흘리며 기진맥진”이다. 속수무책이다. 왜인가? 그는 구멍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그는 결여의 결여이고, 상실의 상실이기 때문이다. 그는 여주인-기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편으로 그는 여주인-기표를 욕망하며, 상실이고자 결여이고자 한다.

나는 게이에의 욕망, 팔루스를 제거함으로써 상상에서건, 실제에서건 ‘여성’(=암컷)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이 구멍(=바기나)에 대한 욕망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들은 ‘주인’이 아니라, ‘주인’을 지배하는 ‘여주인’이고 싶어하는 것이다. 자신의 구멍으로, 부재로, 결여로, 상실로, 적막으로, 미스터리로, 지옥으로 여주인은 주인을 할딱이게 하며 지배한다(천문학에서의 反물질 혹은 ‘암흑물질’은 이 여주인-기표의 천문학 버전이라 할 만하다). 혹 이런 것이 라캉 정신분석학의 페미니즘 버전이 될 수 있을까? 혹은 거울상?


레비-스트로스가 <친족의 기본구조>(그의 국가박사학위논문이다)를 구성하면서 여성을 교환의 대상으로 한 것에 대하여 남성중심적인 시각이 아닌가란 질문을 받자, 그는 그것이 편의적인 것이었을 뿐이라고 답한다(즉, 남성을 교환의 대상으로 한 ‘친족의 체계’도 이론적으론 가능한 것이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보다 많은 건 사실이고 따라서 더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그것이 오른손잡이에 대한 ‘필연성’을 보증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어쩌다 보니 그러기가 쉬웠을 뿐인 것. 라캉의 욕망이론이나 ‘팔루스’론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라는 게 나의 짐작이다.

그렇다면, 유표적 언명으로서 “여성은 없다”란 그의 테제의 거울상 버전은 “남성은 없지 않다”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뒤집어서 얘기하면, 이상한 것은, 즉 유표적인 것은 ‘여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없지 않은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남자가 없지 않다고 상상해봐?”). 오, 없지 않아서 불행한 것들이여! 무덤 속에 들어가 썩을 것들이여!..

06. 0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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