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1' 백지영, 더 뻔뻔해져라
[조은미의 비틀어뷰] 세태 변화로 재기에 성공했다고? 웃기지 마라
텍스트만보기   조은미(cool) 기자   
ⓒ 워너뮤직 코리아
백지영이 6년만에 다시 떴다. 그 유명한 비디오 사건 이후 6년 만이다. '사랑 안 해' 노래가 떴다. 지난 4일 SBS <생방송 인기가요>에서 톱 됐다. 온라인 음악 사이트 벅스에서도 톱 됐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떴지? 사람들 성의식이 변해서? 한 일간지 말마따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래"? 여자 연예인의 몰카 비디오에 이제 우리 사회도 관대해진 방증?

천만에다. 다 웃긴 이야기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무슨 얼어죽을 패러다임이냐? 남자들 성의식이 여자에게 관대해질 때는 같이 자고 싶은 여자를 만났을 때뿐이다. 같이 자려니 여자의 성의식에 관대해야지 별 수 있나?

하지만 그 때뿐이다. 일반 여자 이야기엔 다르다. 얼른 공자 찾고 말세 찾고, 여성의 문란한 성의식을 개탄한다. 한 손으론 '야동'을 내려받고, 다른 손으론 여자들을 손가락질한다. 그게 대한민국 평균 남자다. 그게 아니면? 평균이 아니겠지.

변한 건 남자나 사회적 시각이 아니다. 시간이다. 기억이다. 6년이 흘러서다. 상처를 아물게 하는 시간이, 뇌세포를 죽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흐릿해진다.

백지영의 노래는 좋았다, 그래서 떴다

백지영이 다시 뜬 건? 간단하다. 이번 노래가 좋았기 때문이다. 노래 좋아할 때, 그 노래 부른 가수의 인간성, 노래가 주는 사회적 의미 따진 뒤에 좋아하나? 좋아할지 말지 고민하고 심사숙고 뒤에 좋아하나? 그렇게 노래 듣는 사람 있다면 소개시켜 달라. 음악평론 글 좀 부탁하게.

노래는 노래다. 들어서 좋으면 좋은 거다. 그게 왜 좋냐? 그거야 알 수 없다. "나는 왜 사랑하는가?" 인류 역사가 이걸 파헤치는데 수억년 쏟아부었다. 하지만 아직 답이 없다. 이 '필'이 감성의 문제지 이성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백지영이 그 때 그 뒤로 6년 아니라 60년이 흘렀어봐라. 노래가 꽝이었다면 재기는 없었다. 제기랄만 뇌까리다 갔을 거다. 그런데? 노래가 좋았다. 가수가 가수로 성공하는 데 딴 거 없다. 노래가 좋으면 장땡이다.

"탁월함은 모든 차별을 압도한다." 흑인 여성으로 온갖 차별과 고통을 딛고 성공한 오프라 윈프리가 한 말이다. 이 말을 바꾸면 이렇게 된다. "노래가 좋으면 딴 소릴 압도한다."

"옛날에 지영 언니한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지금 백지영 좋다는 팬들은? 과거 백지영의 섹시함에 눈 벌겋던 아저씨들이 아니다. 대개 10대다. 왜냐? 지금 가요 시장은 10대의 세계다.

백지영이 음악 사이트 벅스에서 정상을 물리쳤다고 하는 가수가 누군가? SG워너비다. 백지영의 '사랑 안 해'가 SBS <생방송 인기가요>에서 톱에 뽑혔을 때, 후보는 SG워너비, 버즈, 토니 안, 신화, 거미였다. 10대 가수다. 10대가 좋아하는 가수다. SG워너비 노래가 뭔지 아는 30대? 별로 없다. 가요 음반 사는 30대? 천연기념물이다. 그래도 샀다면? 조카 선물이다.

백지영 좋다는 팬들만 봐도 그렇다. '백지영' 혹은 '백지영씨'라 부르는 팬? 없다. 대개 '지영 언니' '지영누나'다.

포털 사이트에서 '백지영' 눌러봐도 안다. "옛날에 백지영 무슨 사건이 있었나요?" 이런 거 묻는 애들이 줄을 잇는다. "제가 초등학교 3·4학년 때 언니 좋아했거든요." 이런 말하는 10대들이 지금 백지영 팬이다. 그들이 11살 무렵 일어난 일이다.

그 때 백지영 사건은 '18금' 사건이었다. 미성년자 관심 불가 사건이었다. 관심 있어도 시청이 불가능했다. 인터넷에 널리 퍼진 동영상에 접근이 쉬웠던 초등학생이 얼마나 있었겠나? 이들이 지금 음악을 듣는 세대가 됐다. 소비하는 세대가 됐다.

이제 문제는 노래다. 사건이 아니라 노래다. 더구나 이들은 10대다. 쿨하다는 세대다. 성의식엔 더욱 쿨한 세대다. '노래가 좋으면 됐지, 무슨 상관이삼?' 이러고도 남을 세대다. 원래 늙을수록 과거에 집착한다. 사생활에 집착한다.

노래만이 그녀를 구원할 수 있었다

ⓒ 워너뮤직 코리아
그럼 노래가 좋아서, 10대가 좋아해서, 그게 다인가? 천만에다. 그건 그냥 조건이다. 그 조건을 만든 건 바로 백지영이다. 패가 바뀌었다고 그만두거나 판을 엎지 않고, 계속 노래한 그녀다.

2000년 톱스타이던 그녀는 하루아침에 추락했다. TV에서 퇴출당했다. 사람들은 손가락질했다. 지나가던 미친개에게 물렸는데, 네 탓이란 격이다. 황당했겠다.

그래도 꿋꿋이 2001년 내놓은 3집 앨범? 안 됐다. 2년 만에 다시 만든 2003년 4집 앨범? 역시 안 됐다. 이번 5집 앨범 나오는 데는 3년이 걸렸다. 한 번은 만들다 엎어졌다. 그게 이번 이다. 안 봐도 비디오다. 음반 내는 게 갈수록 어려워졌으리란 거. 이번 음반이 실패했으면? 또 얼마나 긴 시간을 기다렸을까? 안 봐도 비디오다.

어쨌든 백지영은 계속했다. 가수이길 그만두지 않았다. 배우나 마누라나 여하튼 뭔가로 전업하지도 않았다. 잘 했다. 누드도 안 찍었다. 잘 했다. 계속 노래로 도전했다. 미쳤다. 쓰러져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났다. 노래했다. 어떤 욕설에도 굽히지 않았다.

최근 영화 <밴디다스>를 보고 백지영이 그랬단다. "예쁜 여자가 착하다는 편견을 깨주는 영화인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든다" <밴디다스>는 총든 여자들 이야기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만들며 사는 여자들 이야기다.

남 이야기 같지 않겠다. 그녀야말로 사람들의 편견과 온몸으로 싸우고 살아남았으니까. 그녀야말로 온 몸으로 배웠을 거다. 그녀의 일, 그녀의 노래만이 자신을 구할 수 있으리란 걸.

도망치지 않은 백지영, 잘 했다

백지영이 잘한 건 그거다. 추잡한 시선과 싸운 거다. 그녀는 거기에 주저앉지 않았다. 도망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았다.

스캔들만 터지면 여자 연예인들이 외국으로 도피하고 어딘가로 사라져 나오지 않을 때, 백지영은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계속 노래했다. 계속 도전했다. 그게 용기다. 끈기다. 도전 없이는 비전도 없다. 도전 없이는 도약도 없다. 백지영이 알려준 건 그거다. 도전하라.

백지영이 다시 뜬 건, 우연이 아니다. 바뀐 세태에 무임승차한 게 아니다. 그녀가 한 거다. 그녀가 뼈빠지게 일해 얻은 티켓이다. 백지영을 구원한 건 남이 아니다. 남자도 아니다. 자기 자신이다. 일이다. 바로 노래다.

백지영은 말해준다. 뻔뻔해져라. 남의 눈으로 나를 죽이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야망을 가져라. 꿈 앞에 착해지지 마라. 착한 척 하느라, 자신을 포기하지 마라. 실력으로 승부하라. 그리고 그녀는 했다. 잘했다! 백지영. 더 잘해라. 백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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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6-23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 안 해,, 괜찮던걸요.. 한길로 매진, 실력으로 승부.. 담아갑니다.

물만두 2006-06-23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뻔뻔함만이 세상에서 무기가 된다는 게 참... 우리 의식이 덜 성숙했다는 의미같기도 하고 또 나아진 것도 같고 하지만 백지영이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타지마할 2006-06-23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그런가요. 제가 통 가요는 듣지 않으니. 그래도 연예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 보이니까 대충 예상만 했죠.
물만두님/ 저도 백지영이 대단하다는 점에 100% 동의합니다. 결국은 좀 웃기지만 세월이 약인 것이지요. 밑의 관련 기사는 이 글을 보고 백지영 측의 반응에 대한 것입니다. 같이 한 번 보시죠.

로드무비 2006-06-24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사랑 안해' 한 번 들어보고 싶군요. 제목도 좋은데요?^^

물만두 2006-06-24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지마할님 전 그게 기사 원문인줄 알고... 아마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는 거 같아요.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백지영이 상품이길 바라는것 같습니다. 재포장했는데 뭐 그런 느낌이네요. 그쪽 반응은... 하지만 다시 한번 곤두박질치면 재기할 수 없다는 공포가 더 컸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까지 백지영에 대해 말들, 예전일에 대해 말들이 많고 특히 남자들 시선은 아직도 곱지 않더군요. 다른쪽 댓글에도 이상하게 쓴 네티즌도 많구요...
 

월드컵 광풍, 신문과 방송의 동침
'대한민국'보다 중요한 '대~한민국'
[기고] 정희준 교수... 누가 우리에게 응원을 강요하나
텍스트만보기   정희준(naebido) 기자   
▲ 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 부근에 설치된 월드컵 홍보 사진에 반월드컵 스티커가 붙어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신통하다. 거의 '자기검열' 수준으로 월드컵에 대한 비판적 의견은 무시해오던 주요 언론매체들이 지난 월요일(5일)을 기점으로 월드컵을 '다시 생각하자'며 사회적 월드컵 올인 현상을 문제 삼고 나섰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서울 도심의 월드컵 조형물을 스티커로 공격(?)하려 한다는 '반(反)월드컵 게릴라 작전' 관련 기사뿐 아니라, 비이성적 월드컵 광풍을 비판하는 사설까지 등장하니 조금 어리둥절하면서도 반가웠다. 게다가 방송사까지! 그것도 그들의 간판 뉴스에!

그러나 적이 의심스럽다. 혹시 이것마저도 '월드컵'이라면 무엇이든 가져다 진열하려는 저들의 상술은 아닌지. 또 심히 염려스럽다. 어느 기자의 표현대로 "우리는 월드컵 열풍도 전하지만 반대 움직임도 전달했다! 봤지?"하는 식으로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는 아닌지. 그리고 이 비상식적, 몰이성적 월드컵 광풍을 창조한 주인공이 바로 그들, 언론매체라는 부끄러움을 가리려는 것은 또 아닌지.

사실 몇몇 신문의 비판 기사는 그 진정성이 엿보인다. 예를 들어 경향신문은 월드컵 첫 경기인 토고전이 열리는 13일이 4년 전 양주군 효촌리의 두 소녀 미선이, 효순이가 우리를 떠난 날이라고 회고하며 함성을 내지르기 전에 잠시라도 그들을 추모하는 순간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당시 '월드컵 치매'에 걸려 그들을 모른 척(?) 했던 우리의 모습을 나무라면서.

그러나 또 다른 몇몇 신문들은 역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지난 5일은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한·미FTA 협상이 시작된 날이지만 이들은 FTA보다는 가나와의 평가전을 1면에 내걸었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보다 더 중요하다.

신문과 방송의 동침

사실 작금의 월드컵 광풍에서 정말 '오버'하는 매체는 방송 쪽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비판이 지난 몇 달간 있었다. 보스니아전 직후, 평가전에 불과한데도 전체 50분 중 25분, 날씨를 포함해 32꼭지 중 16꼭지를 축구에 쏟아 부은 MBC '축구데스크'를 보라.

그런데 신기하게도 신문사들은 언론의 본분을 내팽개쳐버린 방송사를 비난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나 경영상으로나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이들인데도, 또 신문은 여론을 등에 업을 수 있었는데도 월드컵에 대해서만큼은 이들 신문사는 '자정'했다. 왜? 신문 역시 월드컵에서 따먹을 게 많기 때문에.

그래서 그랬나 보다. 지난 3월, 서울시가 월드컵 기간에 서울광장을 SK텔레콤에게 넘겨 사실상 서울시민을 재벌에게 팔아넘겼다는 비난이 인 적이 있는데, 그 SK텔레콤컨소시엄의 멤버들은 KBS SBS <조선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등의 방송사와 신문사였다. 이들은 연합군이 되어 본선도 아닌 평가전에서부터 시민들을 펜스 안에 몰아넣고 판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서울광장의 이미지를 국민에게 살포하면서 바로 이것이 월드컵의 참맛이고 유일한 애국의 길이라고 가르치며 우리를 부추기고 있다. 동참하지 않으면 '국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자본과 미디어의 야합

▲ 26일 저녁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축구대표팀 평가전에서 붉은악마 응원단이 대형 태극기를 펼쳐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디어가 이렇게 월드컵을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월드컵 기간에 한몫 보려는 상업자본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4년 전 3개 지상파 4개 채널이 안면몰수하고 한국팀의 경기를 동시에 중복 중계하는 식으로 돈을 자루에 쓸어 담고, 직원들에게 1000만원에 이르는 포상금을 지급하게 된 배후에는 자본의 엄청난 광고물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때와 다를 바 없이 자본과 미디어의 동맹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들의 '짝짝꿍'이 일찍 시작되었다. 그 이유는 별다를 것 없다. 사실 한국축구는 해외원정 월드컵에서 이제까지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더구나 이번 월드컵은 독일에서 열리니 스위스와 프랑스에겐 사실상 홈구장이다. 당연히 16강조차 불투명하고 이는 이른바 '월드컵 특수'의 단축을 의미한다. 바로 상업자본이 염려하는 바다.

방송사의 걱정도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토고전이야 밤 10시 시작이니 시청자 붙들기에 어려움이 없지만, 새벽 4시로 예정된 스위스전과 프랑스전은 골칫거리이다(사실 광고 좋아하기는 둘 다 똑같지만 방송이 신문보다 더 오버하는 이유도 이것 아닐까 싶다).

결국 수익 극대화 작업을 가로막는 이러한 요인들을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월드컵 열풍을, 즉 월드컵 특수를 극대화시키는 동시에 하루라도 일찍 일으켜 세워 그 기간을 최대한 늘이는 것이다.

FIFA '요건 몰랐지?'

이제 FIFA의 상업화는 말릴 재간이 없다. 이제 중계권료라는 것은 그냥 집에 있는 TV 수상기를 갖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우리의 거주공간(TV)뿐 아니라 일상공간(멀티미디어 휴대폰), 직업공간(인터넷), 이동공간(DMB), 그리고 거리응원공간(전광판)까지 분할하여 따로 값을 매긴다.

또 실시간 중계뿐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5분, 10분, 40분, 24시간 지연 중계하는 준실시간 중계(near live), 그리고 월드컵 동영상을 따로 가격을 매겨 계약한다. 오직 하나의 콘텐츠를 가지고 우리의 일상을 시와 공으로 분할하여 쪼개 파는 상술의 극치를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기업으로부터 받는 엄청난 스폰서십도 있다. FIFA는 이번 월드컵에 15개 다국적기업을 공식스폰서로 선정하여 각각 추정액 5000만∼7000만 달러를 받았다. 또 2007∼2014년까지의 다년 계약을 별도로 추진하여 현대자동차, 소니, 아디다스, 코카콜라, 비자, 아랍에미리트항공 등 6개사로부터 1억9500만 달러에서 3억500만 달러에 이르는 돈을 받고 이들을 '최고등급파트너'로 삼았다.

이처럼 FIFA가 중계권료와 스폰서십 계약을 독점하다보니 2010년 월드컵 개최지인 남아공은 경제적 수익을 바랄 수 없는 상황에 처했고, 결국 국회 체육위원장이 나서서 FIFA의 수익독점을 비난하기에 이른다.

뻔뻔스런 애국

그러나 국내기업의 상업주의는 FIFA의 뺨을 쳐버렸다. 혹자는 월드컵은 원래 상업적이니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을 거라면 너무 비판하지 말라고 짐짓 점잖게 타이르려 든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의 '월드컵 장사'는 그야말로 독보적, 세계 최고 수준이다. 외국의 기업들도 월드컵 마케팅을 하지만, 이는 선수단 지원과 관객과 참여자에 대한 편의제공 수준이다. 이 땅의 그들처럼 국민을 응원시키겠다고 나서지는 않는다.

이 땅의 상업자본은 응원분위기를 뻥튀기하고 '국민'을 꼬드기기 위해 '국민배우' 안성기, '국민가수' 윤도현, '국민여동생' 문근영을 등장시켰다. 4년 전 SKT는 한석규를 내세워 '대∼한민국' 동작을 외우게 하더니 이번엔 KTF가 문근영을 내보내 응원 전엔 체조도 하셔야 한다며 '국민체조'를 하라고 우리를 들볶는다. 통신사에 이어 월드컵 판에 뛰어들어 눈부신 전쟁(錢爭)을 치르고 있는 업계는 바로 은행업이다. 정리해고의 선두주자인 은행들이 태극기를 치켜들고 (외국인들까지 등장시켜) 애국을 호소하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다.

자본의 응원, 자본의 애국이다. 그러나 태극기와 민족을 들먹이는 이들이 과연 평소 애국애족적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이 응원과 애국의 깃발을 치켜들고 앞장서는 모습을 볼 때면 살짝 열이 오르고 속이 쓰린 것이다.

'꿈은 안 이루어진다'

'꿈은 이루어진다'. 4년 전 붉은악마가 카드섹션으로 선보였는데, 이제는 기업의 광고에 등장한다. 꿈이란 수면 중 일어나는 일련의 시각적 심상이라 한다. 그 특성으로는 꿈꾸는 '나'는 현실의 '나'와는 단절되어 있고, 또 꿈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불합리하고 근거 없는, 괴기한 것이라 한다. 결국 꿈이란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업은 우리에게 '꿈은 이루어진다'며 주문 외우듯 한다. 이는 고단한 현실을 덮어 버리려는 마약에 다름 아니다.

자신들의 꿈을 이미 이룬 자본이 꿈을 이루지 못한 우리에게 곧 이루어질 거라면서 계속 최면을 걸고 있다. 4년 전 이들은 월드컵을 통해 횡재했다. 수십조에 이르는 이른바 경제효과는 이들이 독식했다. 우리에겐 추억뿐, 모든 건더기는 이들이 다 주워 갔다.

월드컵 보러 집 나간 이성을 기다리며

월드컵 상업화의 구조를 들여다보자. 월드컵은 1994년 미국을 찍고 나와 상업화됐다. 본격적 세계화의 시점이다. 포화상태에 이른 미국시장의 대안을 찾던 미국기업은 서구 중심의 '화이트 올림픽'에서 모든 대륙을 열광시키는 월드컵으로 눈을 돌렸다. 미국에서 축구를 싫어하는 것은 매우 지당하고 대단히 미국적인 것이었지만, 이들은 월드컵을 통해 시장개척에 나섰다.

그 효과는 만점짜리다. 그래서 1986, 1990, 1994월드컵을 통틀어 스폰서로 참여한 미국기업은 총 11개 중 단 4개였지만, 이번 월드컵의 공식스폰서 중 미국기업은 전체 15개 중 7개다(그 외 일본 2, 네덜란드 1, 한국 1, 아랍에미리트 1, 주최국 독일 3). 이들은 우리의 일상을 점령하려 하고 있다. 월드컵을 이용해 시장을 확장하려는,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침투하려는 미국 기업들의 장삿속은 그래서 얄밉기만 하다.

그러나 지금의 월드컵광풍은 그런 얄미움보다는 이성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자본과 미디어가 오직 월드컵만 살포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는 '불꺼진 사회(black-out-society)'가 될 위기에 처했다. 영어의 'black out'은 정전, 소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일시적인 의식의 상실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군사적 개념이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는 본격적 미사일 공격에 앞서 먼저 핵공격으로 적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키는 교란 전술이다.

5일 시작된 한미FTA 협상은 초고속으로 진행될 것이다. 월드컵은 한국사회를 '블랙 아웃'시킬 것인가. 월드컵이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의식을 상실하고 방어신경이 무력화된 우리는 과연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월드컵은 자본의 블랙 아웃 선제공격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긴 대추리 사람들의 비극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또 지방선거는 끝났지만 시장, 구청장에서부터 시의회, 구의회까지 한 정당이 싹쓸이 한 우리 동네는 앞으로의 4년을 놓고 걱정도 많고 그들의 취임 전에 할 얘기도 많다. 우리는 지금 할 이야기가 이렇게도 많단 말이다.

 

원문 :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36770&ar_seq=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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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에로이카 > [오마이뉴스] 이해영 교수 인터뷰

"한·미 FTA, 식민지 땅으로 가는 통로"
[인터뷰] 이해영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정책기획연구단장
텍스트만보기   이정훈(typology) 기자   
▲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이해영 교수.
ⓒ 이정훈
"한미 FTA는 한국이 식민지로 가는 통로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 자본이 경쟁하는 땅으로 변해, 한국 사람들에게는 매우 낯선 땅이 될 것이다."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공동대표 오종렬) 정책기획연구단장 이해영 한신대학교 교수의 일성이다.

이 교수는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5일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열린 FTA 협상반대 기자회견 자리에서 "우리 정부는 한미 FTA 협상을 부실하게 준비하고 졸속으로 처리하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낯선 식민지, 한미 FTA>라는 책을 출판한 이 교수는 "FTA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물론 대학생들도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며 "한미 FTA가 타결되면 우리나라에서는 대규모 실업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은 기자회견을 마친 이해영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FTA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가?
"IMF 이후 한미가 추진하고 있던 BIT(투자협정)의 형편없는 내용을 알게 되면서 관심을 가졌다. FTA는 원래 상품에만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FTA는 상품뿐만 아니라 모든 경제 분야에 걸쳐 있다. 한미 FTA는 BIT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미 FTA는 식민지로 가는 통로

- BIT는 또 뭔가?
"BIT는 투자협정이라는 말이다. 투자협정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투자협정 중에서 '이행의무부과금지' 조항이라는 것을 예로 들어 설명하겠다. 이 조항에 따르면 미국의 회사가 한국 영화관을 매입 운영할 때 스크린쿼터에 따른 146일 한국영화 의무상영 기간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한 마디로 이익만 내면 되고 의무 같은 것은 없다.

FTA의 투자조항이 투자협정을 그대로 떠안은 것인데, 서비스와 투자 중심으로 가겠다는 뜻이다. 이것은 미국 자본이 한국 기업을 M&A(인수와 합병) 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외국인 직접 투자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미국 자본이 한국 기업을 인수하게 되면 제일 먼저 기존에 있는 직원들을 정리해고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이익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고용창출효과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고용창출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 정부가 FTA 협상 관련 문건을 전혀 공개하고 있지 않은데.
"그래도 추정은 가능하다. 투자 조항은 이미 나와 있다고 봐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투자협정의 내용들이 그대로 FTA에 들어와 있다. 구체적인 협상안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정부가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 왜 일반 시민들이 FTA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생각하는가?
"몰라서 그런 것 같다. 대다수가 수출 자유화에 왜 반대하느냐고 한다. 본래 의미를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식민지 협정이다. 투자협정이 가져올 피해는 FTA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FTA의 피해는 클 것이다."

- FTA에 대해 경제학자들도 많이 모르는 것 같다.
"특수한 분야이다. 경제학자들이 이미 신자유주의 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FTA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다. 법학, 정치 문제이면서 경제 분야에 총망라되어 있는 고도의 전문적 문제이다."

"대규모 정리해고자 양산할 것"

▲ 이해영 교수는 한미 FTA는 공동체의 삶을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이정훈
- 한미 FTA 저지 교수학술공대책위원회(공동대표 김세균)에는 몇 명의 교수가 참여하고 있는가.
"200명이 넘게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전공분야가 각각 다르다. 또 워낙 특수한 분야이다 보니 새롭게 공부해야 하는데,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 경제 관련 교수들도 20명 정도 있다."

- 경제를 전공한 교수들은 한미 FTA의 심각성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경제학계는 신자유주의가 거의 지배했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일부 단체에 소속돼 있는 학자들만이 한미 FTA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 여러 경제학자들을 만나면 견해가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자신들도 교육자라서 교육은 장사가 아니라 공공 분야임을 누구보다 잘 알 텐데 그것 역시 서로 생각이 많이 다르다."

- 시민사회단체들의 반응도 조금 늦은 게 아닌가.
"경제 이슈는 어려운 과제다. 특히 통상 분야는 더욱 전문적이고 어렵다. 그동안 시민사회단체들도 통상 이슈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가 IMF 이후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현재는 국내 다른 이슈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운동하고 있다."

- 대학 강단에 있는데 경제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
"관심이 많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관심이 많다. 그런데 자기 경제 문제만 관심이 많다. 국민경제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국민경제가 죽는데 자기는 살아남을 것 같은가. 많이 안타깝다. FTA가 체결되고 나면 더 이상의 고용창출은 없을 것이다."

- 한미 FTA가 체결되고 나면 실업률은 어느 정도가 되리라 예상하는가.
"실업률은 예상하기조차 어렵다. M&A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자본이 한국 기업을 인수하면 정리해고부터 할텐데 그것만해도 엄청날 것이다. 현재 IT 산업에 국가가 목을 매고 있는데 고용창출 효과가 낮은 분야이다. 따라서 성장해도 고용 효과는 작을 수밖에 없다."

- 최근 <낯선 식민지, 한미 FTA>라는 책을 냈는데.
"쉽게 쓴다고 했지만 쉽지는 않은 내용이다. 아무리 쉽게 써도 통상, 경제 분야의 책은 어렵다. 기본 지식이 없어서 그렇다. 이번 책은 그 동안 썼던 글을 모은 것이 아닌 새로 쓴 내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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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기독교 인터넷 신문 에큐메니안(http://www.ecumenian.com)에도 올렸습니다.
2006-06-0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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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라주미힌 > [좌담] 무능한 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심판

'무서운 민심' 어디로 흐를 것인가?

 

 

[좌담]"'무능한 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심판"

5.31 지방선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예상된 결과라고는 해도 집권여당에 가해진 혹독한 심판에 누구보다 정치권 스스로가 놀랐다. <프레시안> 은 1일 오전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와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의 긴급대담 자리를 마련해 이번 선거에 나타난 민심의 의미와 여야 정치권에 주는 메시지, 그리고 내년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격변기에 민심의 향배는 어디로 향할지 등을 짚어봤다.
  
  "盧정부 신자유주의가 무서운 민심 불러"…"보수적 중도파가 한나라로 이탈"
  
  손호철 교수는 '무서운 민심'이 80%, '비이성적인 민심'이 20%라고 했다. 80%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증오가 결합된 '심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공천비리와 성추행으로 얼룩진 한나라당에 압승을 선사한 것이 이성적인 선택이냐는 아쉬움이 나머지 20%다.
  
  김호기 교수의 진단도 비슷했다. 김 교수는 이번 선거 결과를 노무현 정부가 지난 3년간 수행해 온 신자유주의 정책기조에 대한 '국민적 심판'의 성격으로 규정하면서도, 한나라당의 공천비리나 성추행 등 추태 사건이 벌어진 미시적 국면에서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이 주도권을 잡지 못한 점에 답답함을 표했다.
  

▲ 손호철 교수.


  양측의 견해는 한나라당에 몰린 민심의 본질적 의미가 신자유주의로의 경도냐는 지점에서부터 엇갈렸다.
  
  손 교수는 이번 지방선거의 함의를 김대중-노무현 정부 8년 집권기에 추진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심판으로 봤다. '좌파 정권'이라는 말까지 들은 두 정부가 정작 내용적으로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채택함으로써 지지기반인 중산층과 서민들의 생활고를 가중시킨 '무능'에 대한 평가라는 것이다. 물론 그 반작용이 보다 親신자유주의적인 한나라당 대한 표 쏠림으로 나타난 것은 비이성적 역설이다.
  
  김 교수는 국민들의 관심이 실질적 민주주의에서 세계화의 충격으로 이동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先성장-後분배로 압축되는 신자유주의 담론에 일정부분 손을 들어준 것으로 진단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의 지지기반 중 보수적 중도세력이 한나라당으로 이탈했다고 분석했다. 세계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양극화 문제 해결에 노무현 정부가 이렇다 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데 대한 항의투표라는 것이다.
  
  공통점을 찾자면 두 교수 모두 노무현 정부의 '무능한 신자유주의'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일치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민심의 흐름은 내년 대선에서 어떤 정치적 선택으로 이어질까?
  
  손 교수는 내년 대선을 자유주의 정권 10년에 대한 심판 쪽에 무게를 실었다. 서민들 다수가 자유주의 세력에 매력을 느끼는 게 사실이어도 신자유주의 정책추진의 책임을 더 비중있게 묻지 않겠냐는 것이다.
  
  표현은 다르지만 김 교수 역시 자유주의 세력이 남은 임기동안 개방과 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비전을 만들어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지지층이 줄어들 것으로 봤다. 현 여권에게는 우울한 전망이다.
  
  이는 보수세력의 정치적 대표체인 한나라당과도 긴밀한 관련을 갖는 문제다. 김 교수는 한나라당 내에 공존하는 구보수와 신보수의 차이에 주목했다. 정확히는 소장파로 대표되는 한나라당 내의 새로운 인적자원에 주목한 것.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으로 이탈한 보수적 중도그룹이 내년 대선에서도 한나라당 내부의 신보수를 향해 표를 던질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손 교수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공학적인 분열의 가능성 외에 한나라당의 구보수와 신보수는 신자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고 단언했다. 손 교수는 그 보다는 여권이 민주당, 고건 전 총리 등을 아울러 민주대연합론 구성하거나, 친노 세력이 이와 다른 방식으로 세력을 형성해 나가는 흐름이 복합적으로 어울려 한국 정치를 구성해 나갈 것으로 봤다.
  
  다음은 1일 오전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진행한 손호철, 김호기 교수 대담 전문.
  
  '5.31 민심'의 의미
  
  프레시안 : 예상된 결과라는 평가 속에 정치적 탄핵이라는 말도 나온다. 지방선거 결과를 접한 전반적인 생각과 이번 선거의 의미와 전망을 먼저 짚어달라.
  
  손호철 : 한나라당의 금품비리, 성추행 등 다양한 악재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압승이 예상되는 여론조사 결과 보면서 개인적으로 한달 전에 무서운 민심이냐 미친 민심이냐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때 썼던 대로 민심이 정말 무서운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낀 게 80%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 어떤 의미에선 증오라고까지 표현될 수 있는 감정이 심하다는 게 충격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갖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생각해 보면 민심의 심판이 단순히 이성적인 판단만은 아닌 것 같다. 80%가 무서운 민심이라면 20%는 여전히 비정상적인 민심이 아닌가 싶다. 열린우리당이 잘못했다고 해도, 그 대안이 이번 같은 한나라당의 압승이어야 했을까, 다른 대안적 선택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김호기 교수.


   김호기 : 이번 선거 결과를 우리가 들여다보기 위해선 세가지 구분이 필요하다. 97년 경제위기와 98년 DJ정부 출범부터 시작된 8년에 걸친 중도개혁세력에 대한 평가라는 긴 시간의 평가가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지난 3년간 노무현 정부의 집권에 대한 평가, 즉 정권심판론이라는 의미가 가능하다. 세 번째는 지난 두 달간 펼쳐진 정치적 국면에서의 흐름도 있는 것 같다. 세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서 이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8년의 평가에서 보자면 우리사회 두개의 정치구도인 민주-반민주, 친신자유주의-반신자유주의 중에서 적어도 유권자들이 보기에 전자의 구도는 의미를 많이 상실하지 않았나 싶다. 따라서 후자가 중요해진 것인데, 국민 다수는 반신자유주의 보다는 친신자유주의에 가까운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대안의 문제에서 중도세력 내지는 진보세력이 국민들의 공감을 아직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측면에서는 정권심판론이 유권자 마음을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지난 3년간 가져 온 정책적 기조에 대한 심판이다. 노 대통령 본인이 말했듯이 '좌파 신자유주의'에 국민들이 혼란을 느꼈고 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신뢰도 떨어졌다. 통치 스타일도 국민들에게 신뢰를 크게 안겨주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것들이 일정하게 유효했다.
  
  개인적으로 답답했던 부분은 세 번째 미시적 흐름이다. 한나라당의 공천과정 비리, 성추행 등 추태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이 미시적 국면에서 헤게모니를 잡지 못한 것 같다. 앞선 두 가지 요소가 너무 커서 이런 미시적인 사건이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못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손호철 : 전반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김 교수가 '민심이 친신자유주의를 선택한 것'이라고 한 점에는 이견이 있다. 이번 지방선거 임하는 정치세력 중에서 반신자유주의를 채택한 정당은 민노당뿐이다. 민노당이 12% 얻고 다른 정당이 88% 얻은 것을 국민 다수가 친신자유주의를 선택한 것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와 집권여당이 참패하고 한나라당이 승리한 원인이 노무현 정부가 반신자유주의 노선을 걸었기 때문에 친신자유주의 노선인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따라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친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IMF 상황과 박정희 모델을 극복해야겠다는 철학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 결과는 두 정부가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 박정희 정부보다도 더 반서민적인 결과를 가져다 줬다. 역대 정권 중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이고, 일각에선 좌파 정권이라는 말까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70년대 후반 이후 측정한 지니계수가 최악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지지기반인 중산층과 서민층에게 무능으로 표현됐다. 무능의 내용은 생활고와 민생의 어려움이다. 그 사람들이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과거사법 국보법 사립학교법이냐는 정서로 간 것이다. 박정희 신드롬이 나타나고 박근혜를 선택한 것은 그 때문이다. 반신자유주의를 내건 민노당이 12%밖에 못 얻어서 국민 다수가 친신자유주의를 선택한 듯이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친신자유주의에 대한 심판이다. 다만 국민들이 오히려 더 친신자유주의적인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준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정권심판론과 관련된 것인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자유주의 정권 10년에 대한 심판이다. 그 내용은 자유주의 정권이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심판이었다. 자유주의 정권이 잘못된 시기에 집권함으로써 한국의 루즈벨트가 아니라 한국의 대처가 된 불행한 비극을 맞게 됐다. 아울러 지적할 것은 노무현 정부 특유의 전투적 리더십이다. 스타일의 급진주의다. 한미 FTA를 추진하는 등 내용은 보수적이면서 불필요하게 스타일만 래디컬해서 모든 사람들을 적대화시키고 불안하게 만드는 독선으로 나타났다.
  
  세 번째 주목할 부분은 2004년 탄핵의 거품으로 의석을 너무 많이 차지한 거품의 붕괴다. 탄핵이 아니었으면 유권자들의 자괴감은 일찍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지방선거는 지난 총선에서 노무현 정부를 구해준 유권자들 스스로의 자괴감이다. 자괴감에 대한 보상이 한나라당에 대한 일방적 지지로 나타났다.
  
  국민 관심은 '신자유주의의 충격'으로 이동
  
   김호기 : 지난 10년간 거시적 측면에서 국민들의 관심이 이동했다. 2002년 대선에선 민주-반민주 구도에서 제기된 과제, 즉 실질적 민주주의 달성이 과제였다. 2002년까지는 그 과제가 더욱 중요해서 국민들은 노무현 정부를 출범시켰다. 2002년 이후 정부와 집권여당은 민주화 과제에 주력한 면도 있다. 참여정부 초기의 탈권위주의, 권력기관 독립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충격이 국민들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다보니 관심이 이동했다. 민주화를 지나 세계화의 충격이 다가온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 국제적 금융자본의 문제, 사회 양극화, 조세, 복지 등의 문제로 관심이 이동한 것이다. 그러면 중도개혁세력인 정부가 이 문제에 응답을 해야 하는데, 이부분에서 일관되고 효과적인 정책 구사와 추진이 미약했고 결과 또한 취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따라서 중도개혁세력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회의와 실망의 의미가 이번 선거에 담겨 있다.
  
  국민의 시선에서 보자면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성장을 먼저 추진해서 분배효과를 모색하자는 신자유주의 담론에 손을 많이 흔들어 준 게 아닌가 싶다.
  
  프레시안 : 신자유주의에에 대한 찬반이 일반 유권자들에게 현실적인 선택의 기준이었느냐는 문제는 조금 모호한 면이 있다. 손 교수 말처럼 신자유주의 반대가 민심이라면 왜 한나라당인가가 설명이 돼야 할 것 같다.
  
   손호철 : 신자유주의냐 아니냐를 국민들에게 물으면 다수는 모를 것이다. 그러나 다수 사람이 느끼는 삶의 질이 내용이다. 국민들 관심이 이동했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고 거기까지는 동의한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자유주의 세력이나 중도개혁세력의 함정이고 존재 붕괴의 이유다. 신자유주의 정책, 즉 경제 정책에선 한나라당과 차별이 없다는 말이다. 자유주의 두 정권이 이제 책임을 질 때가 됐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양면적이다. 시장에 맡기고 경쟁력을 키워야 하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의 문제로 닥치면 반발한다. 피부에 와 닿는 것은 후자다. 국민들이 노무현 정권을 반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판단해서 심판했겠나. 그건 아니다. 노무현 정부는 혁신도시, 자유도시화는 물론이고 비정규직 법안, 한미FTA 등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답습했고, 특히 급진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 왔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노무현 정부가 반시장적이어서, 한나라당이 시장주의 경제정책을 더 잘할 것 같아서 판단했겠느냐에는 회의적이다.
  
  김호기 : 우리 유권자들이 요구하는 바는 무엇일까, 어떤 부분에서 실망했을까는 5가지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성장 동력의 약화, 사회적 양극화, 일자리 창출, 교육, 부동산 이슈다. 이런 이슈에 국민들이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것은 정치적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나름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반신자유주의적 대안세력은 규범적으로는 옳지만 뚜렷한 상이 안 잡힌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이런 이슈들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설득력 면에서 반신자유주의적 세력이 떨어진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규범적으로는 옳지만 국민들의 현실적 문제로 본다면 간단치 않다는 얘기다.
  
  결국 노무현 정부 정책에 대한 항의투표 성격이 짙다. 한나라당이 대안으로서 좋아서가 아니다. 집권에 대한 무한 책임을 갖는 정부와 여당에게 국민들이 항의한 것이다. 이 세력에 계속 맡겨야 하느냐의 문제에서 적어도 중도개혁세력을 지지하는 국민은 그렇지 않다고 봤을 것이다. 이 부분을 눈여겨봐야 한다. 신자유주의와 구체적 정치적 선택이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중간 매개되는 영역이다.
  
  전통적인 중도개혁 지지세력 중에 어느 그룹들이 이탈한 것인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열린우리당으로 대표되는 중도개혁세력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보수적 중도와 정말 가운데 있는 중도, 진보적 중도가 있다. 이 중에서 핵심지지층인 가운데 그룹만 빼고 나머지 양쪽이 다 이탈한 것 같다. 보수적 중도그룹은 한나라당으로 이탈한 반면, 진보적 중도그룹은 민노당을 선택한 게 아니라 정치적 선택을 아예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래서 열린우리당 지지가 줄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본다면 열린우리당이 진보적 개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지기반을 상실했다고만 보기는 힘들다. 중도세력을 지지하는 시민사회 기반은 복합적이다.
  
  손호철 : 성장동력 등이 핵심적 이슈이자 국민들의 관심사라는 데에 동의한다. 성장동력 확충 문제만 보자면 국민들이 한나라당이 이를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양극화, 부동산, 교육 문제에서 한나라당이 더 나았을까? 단순한 심판이라면 몰라도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항의투표라면 성격이 다르다. 더 많은 개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건 의미가 없다. 어떤 개혁이냐가 중요하다. 민주개혁과 신자유주의 개혁은 다른 문제다. 개혁과 진보를 나누지 않고 뭉뚱그려 봐선 안된다. 우리당과 민노당을 묶어 진보개혁으로, 그 반대에 한나라당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무서운 민심의 진로는?
  
  프레시안 : 두 분 말씀의 차이점이라면 김 교수는 한나라당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적응도가 더 높을 것 같아서 기존 세력에 대한 항의 투표적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 같고, 손 교수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민심이 한나라당을 선택한 것은 비이성적이라고 보는 듯하다.
  
  손호철 : 다음 대선에선 양극화 문제가 중요하다. 양극화를 어떤 세력이 해결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서 국민들이 혼란스러울 것 같다. 열린우리당은 복지와 증세를 말한다. 한나라당은 감세를 말한다. 그러면 국민들은 양극화에 초점을 두는 정당을 우리당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양극화 주범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다. 정책적 심판의 의미로 보면 한나라당을 찍어야겠지만 거꾸로 누가 양극화를 해결할 것이냐를 놓고보면 '부자당' 한나라당보다는 우리당이 좀 더 낫지 않겠냐고 생각할 것이다. 양면적이다.
  
  김호기 : 정치적 선택을 촉발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번 선거는 집권여당에 대한 회의와 심판의 성격이 담긴 항의투표다. 그 연장선상에서 중도개혁세력의 대안이라는 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성장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이 있다. 둘째는 성장-분배의 선순환을 말하는 현 집권 세력이다. 세 번째 대안은 분배중심으로 가자는 민노당이다. 항의투표라는 흐름으로 정치적 대안을 연결시켜보자면 국민들 상당수가 첫 번째 대안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를 보는 학자들의 시선과 국민들의 시선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레시안 : 좀 더 논의를 구체적으로 해보자. 노무현 정권 이후 추진된 민주개혁의 문제나 양극화 문제로 논의를 좁혀보자.
  
   손호철 : 우리 국민들이 박정희 전두환식 개발독재 세력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는 경험해보지는 못했다. 당시는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국가주도형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중도개혁세력이 아니라 한나라당 같은 냉전적 보수세력의 신자유주의를 국민들이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노무현 정부 자체의 잘못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할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아니라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이 만약 집권했다면 경제정책은 어땠을 것이고, 그 결과는 어땠을까. 먹고살기 힘든 책임은 지금 아마도 그들에게 갔을 것이다.
  
   김호기 : 최근 1년간 노무현 정부의 지지율이 30~40% 정도에 머물렀다. 이번 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아니라 정권심판 성격의 선거라서 이 부분이 중요하다. 양극화 책임이 노무현 정부에게 있다고 국민들 다수가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국가발전전략도 정부가 원하는 대로 결과를 낳았는지 회의적이고, 전국적인 집값 상승 등 상대적 박탈감을 안겼다. 국정수행에 관한 정책적 심판이다. 통치스타일에 대한 심판도 있다. 정서는 대단히 중요하다. 통치 스타일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있다.
  
   손호철 : 정서라는 것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노 대통령이 최근 해외 순방 중에 선생님들이 개혁에 가장 반대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래서 나는 노 대통령이 교육개혁을 하려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개혁을 의도한 말도 아니었을 뿐더러 교사들 염장만 지른 결과를 낳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면서 쓸데없는 말로 분란을 일으킨다. 절제되고 고민스러워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런 말 한마디 한마디가 표를 잃어버린 것이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으로의 표 쏠림의 원인이 양극화라는 점에는 일치하는 것 같다. 이런 흐름의 민심이 앞으로 어디로 흐를 것 같나.
  
   손호철 : 정치 구도는 크게 보면 단절설과 연속설이 있다. 연속설은 지금까지의 정치패턴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97년 이후 보궐선거,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이긴 적이 한번도 없다. 한나라당이 항상 이겼다. 그러나 대선은 졌다. 그런 면에서 내년 대선은 자유주의 중도세력이 승리할 것이라고 보는 게 연속설이다. 그 논거 중에 인구학적 변화가 있다. 인구 다수가 탈냉전 세력이 됐다는 뜻이다. 지난 대선 때 20~30대와 50~60대를 구분한 것은 대미관계와 대북관계였다. 경제문제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다. 따라서 탈냉전 흐름에서 보자면 냉전적 흐름인 한나라당은 인구 다수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단절설이다. 이는 자유주의 정권 10년에 대한 심판을 뜻한다. 나는 내년 대선은 후자에 의미가 더 실려 있다고 본다. 여기서 관건은 자유주의 세력을 대변하는 차기 대권주자가 누가 됐건, 얼마나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차별화되면서 사회적 양극화의 해결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느냐다. 자유주의 세력은 증세논쟁, 복지프로그램 담론으로 승부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거꾸로 성장이 최고라는 신자유주의적 담론으로 대응할 것이다. 이 구도에서 서민들 다수는 자유주의 세력에게 매력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신자유주의의 책임을 가진 이들이 과연 할 수 있겠느냐는 교차된 감정을 느낄 것이다. 책임론과 대안론이 교차할 텐데 흐름은 아무래도 심판론이 더 강하지 않을까 보여진다.
  
  중요한 것은 정치세력의 전략적 선택에 있다. 정파적 이해의 밑에 깔려 있는 것은 지역구도다. 와해된 지역기반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다. DJP 연합이나 반영남 연합을 복원시킬것이냐 아니면 영남세력이 열린우리당 창당정신을 주장하며 당을 깨고 나갈 것이냐다. 물론 한나라당이 깨질 가능성과도 관련돼 있다. 결국 큰 흐름은 연속성보다는 단절설이 강한 것 같고 그 흐름에서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책임론과 대안론이 교차하는 가운데 국민들의 정파적 선택이 이뤄질 것이다.
  
  자유주의 세력의 몰락은 퇴행적 양당구도 초래
  
  김호기 : 87년 이후 우리나라 정당정치가 제도화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당정치의 제도화 측면에서 보면 이번 선거는 비극이다. 이번 선거가 비극인 이유는 보수세력에 대한 표 쏠림이 너무 두드러져 정치의 본질인 체크와 발란스가 무너진 점에서 그렇다.
  
  우리 앞에 놓인 정당정치의 제도화는 두 가지의 길이 있다. 하나는 보수-진보로 가는 길이고, 보수-중도-진보의 삼각구도로 가는 길이 있다. 두가지 중 실제로 가게 될 길이 무엇인지는 예단이 어렵다. 정당정치의 제도화의 길이 우리가 뜻한 대로 가는 게 아니라 구조적 조건과 정치세력의 전략적 선택의 경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치적 지형은 30%가 보수, 40~45%가 중도, 나머지 30% 내외가 진보다. 최근 흐름에서 주목할 것은 중도 그룹 지지층이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정치적 실망이 크다는 것이다. 이 세력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쪽으로 이동했다.
  
  자유주의 세력이 계속 자신의 지지기반을 유지해 간다면 보수-중도-진보의 3각 구도가 제도화 될 것이고, 이게 안 된다면 빠른 시간 안에 보수-진보 양대 구도로 갈 수도 있다. 내년 대선까지 최대 과제가 이것이다. 자유주의 세력이 남은 임기동안 개방과 복지를 결합시키는 비전을 만들어서 어떻게 국민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지, 그리고 그동안 성과를 낼 수 있을지다. 그렇지 못한다면 자유주의 중도세력 지지는 줄어든다.
  
  중도세력, 자유주의 세력은 개방과 사회복지를 내걸지만, 이 문제는 내적으로 엄청나게 긴장을 부여하는 과제라는 점에서 딜레마가 있다. 이런 곤혹스러움, 어려움이 무의식적으로 나타난 게 노 대통령의 '좌파 신자유주의다.
  
  지역주의 문제도 여전히 중요하다. 향후 우리 정국구도에서 중도세력의 경우 지역주의에 대한 현실론과 이상론이 첨예하게 맞설 것이다. 집권을 위해선 지역구도에 기반해야 한다는 현실론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어서야 한다는 이상론이 팽팽하게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중도 세력이 지역주의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따라서 이것이 보수 세력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손호철 :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까지 우리정치의 사각지대는 사당(私黨)정치였다. 노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것은 정당을 새로 만드는 게 아니었다는 뜻이다. 물론 사당정치를 깨기 위해 열린우리당을 만든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번 선거가 정당정치 제도화의 비극이라는 점에 동의하는 이유는 또다른 정당이 생길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이 풍비박산 나고 또 다른 정당이 생길 것이라는 게 비극이다. 정권만 바뀌면 당이 없어지는 잘못된 관행이 또 반복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졌다.
  
  김 교수가 말한 이념적 구도에서 보자면 퇴행적 양당구도가 우려된다. 냉전세력이 줄어들고 자유주의 세력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가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냉전적 보수세력의 이미지를 벗지 못했음에도 선거에서 승리했고, 자유주의 세력은 참패함으로써 가능해진 시나리오다. 이는 개혁적 자유주의 보수 대 진보의 대결로 나아가는 전형적인 양당구도가 아니라 자유주의 세력이 냉전세력으로 변해서 형성되는 퇴행적 양당구도로의 전환이다. 이미 노무현 대통령이 작년에 한나라당과 우리당은 차이가 없다면서 추진한 대연정에서부터 단초가 엿보였다. 만약 노 대통령이 역사의 순교자가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더욱 위험해진다. 파시즘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중산층이 무너지면 파시즘 지지 현상이 나타난다. 지금의 박정희 신드롬은 파시즘의 전야와 비슷하다. 그래서 걱정이다.
  
  "한나라당 내의 신보수에 주목해야" vs "구보수-신보수 차이 없어"
  
  프레시안 : 중도개혁세력에 초점을 두고 얘기가 길어졌다. 보수진영의 흐름이나 개혁 진영에 대한 전망도 필요할 듯하다.
  
   김호기 : 한나라당 내부의 두 세력, 즉 박정희식의 구보수와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신보수 세력 간의 긴장과 갈등이 커질 것이다. 국민들 시선에서 보면 한나라당은 옛날 한나라당 세력도 있지만 새로운 인적자원도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과거 수구정당, 냉전보수세력으로만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중도개혁세력이나 진보세력이 갖는 한나라당에 대한 인식이 너무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이번의 오세훈 후보를 밀었던 소장파 그룹을 박정희 그룹의 후예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구보수와 신보수 사이의 내적 긴장과 갈등이 내년 대선후보 선택과 맞물릴 것이고, 그 과정에서 한나라당도 내적 분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손호철 : 신보수와 구보수의 갈등은 박정희 노선과 신자유주의 노선의 갈등이 아니다. 박근혜 대표도 신자유주의를 수용했다. 경제정책에선 신보수와 구보수의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냉전의식에서는 일정한 긴장이 있다. 또한 신보수와 구보수의 차이는 부패 여부다. 냉전수구와 부패를 오세훈 후보나 원희룡 의원 등이 내부적으로 깨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지만 주류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이 너무 잘 나가서 분열의 가능성을 말하기도 한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경선에 승리한다면 박근혜 대표가 당에서 할 역할이 있으니까 별 문제 없다. 반면 박 대표가 승리한다면 이 시장은 설자리가 없다. 당이 깨질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는 자유주의 세력의 정치적 선택도 중요하다. 몇가지 선택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민주대연합론, 즉 DJP연합의 복원이다. 반영남 연합인데 이는 민주당과 국민중심당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당에 거부반응이 없는, 그러면서도 호남과 충청에서 인기가 있는 사람이 부상한다. 고건 전 총리다. 만약 우리당이 고 전 총리를 선택한다면 우리당을 만든 당초의 문제의식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된다. 죽지 않기 위해 자살해야 하는 역설이다.
  
  두 번째는 창당정신을 살리자는 영남 프로젝트인데, 이것은 낡은정치 대 새정치, 지역주의 대 탈지역주의 대결구도를 부른다. 그 신호탄은 노 대통령의 탈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당내 논쟁이 벌어지고 노사모와 친노세력이 탈당하면서 당장의 대선은 포기하더라도 장기적인 정치적 기반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어쨌든 지역구도의 연합의 흐름, 그리고 이와 다른 정파적 흐름이 복합적으로 한국정치를 구성해나갈 것이다.
  
  김호기 : 신보수와 관련해 얘기를 덧붙이고 싶다.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신보수주의는 아직 자기정체성은 가지고 있지 않다. 고작해야 북한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 정도다. 지난 총선과 이번 지방선거를 묶어보면 가장 중요한 그룹은 '보수적 중도 그룹'이 누구를 선택하느냐다. 대부분 표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우리 사회를 냉전적 보수세력이 아닌 민주화세력이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호하는 것이다. 2002년 탄핵은 이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당시 이들이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선 우리당이 이 그룹을 잡지 못해 한나라로 넘어갔다고 본다. 우리당이 잘못한 부분도 있지만 한나라당이 적어도 이미지로서는 신보수, 뉴라이트의 모습을 보여줘서 이 그룹에게 일정한 호감을 산 것이다. 향후 이 그룹을 어떻게 잡느냐가 보수세력과 중도세력의 핵심적인 포인트가 될 것이다.
  
  중도세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대연합론과 같은 인위적 정계개편으로는 사실상 전선이 짜여질 수 없고 국민지지도 얻기 어렵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져온 양극화, 그로부터 도출되는 성장동력, 부동산, 교육 등의 이슈에 대한 비전과 정책으로 짜여져야만 국민 지지가 안정화되고 지속성을 갖는다. 중도세력은 이 부분 깨달아야 한다.
  
  손호철 : 대안을 내놓고 투쟁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런데 그 측면에서 보면 우리당과 민주당이 뭐가 다른가. 다르다면 나뉘어서 싸워도 되는데, 정책적 수준에서는 두 당 모두 자유주의 세력이다.
  
  김호기 : 정계개편을 통한 전선이 아니라 비전과 정책으로 전선이 생긴다면 양대 흐름은 신자유주의 대 지속가능성의 대립일 것이라고 본다. 민노당에게 아쉬운 것은 반신자유주의는 명확하지만 지속가능의 모델은 여전히 모호하다는 것이다.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민노당의 핵심관건이다. 지속가능한 진보로서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제는 민노당도 성장을 얘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지기반 확대가 어렵지 않을까 싶다. 10~15% 사이가 현재의 정치적 전략으로 얻을 수 있는 최대치일 가능성이 크다.
  
  "민노당 탈노동자화 우려" vs "민노, 이제 성장을 말해야"
  
  손호철 : 민노당은 이번 선거에서 양면적 평가를 받는다. 이기면서도 지는 선거를 했다는 말이다. 지지율은 8~12%로 4년 전에 비해 전진했다. 그러나 울산 기초단체장 2개를 잃어버렸다. 노동자들의 핵심지역에서 후퇴한 선거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내용이 중요하다. 지지율이 올라 전진했지만 질이 나쁜 전진이 아닌가 싶다. 외양적으로 전국정당의 모습을 갖추고 중산층의 표를 얻었지만 핵심기반이 될 노동자 표는 잃어버려 빠르게 탈노동자 정당화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김 교수는 민노당이 성장을 말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민노당에 열린우리당과 어떤 차별성이 남을까 싶다. 2008년 제1야당, 2012년 집권은 황당개그다. 그러려면 우경화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 지지율 12%로 탈계급적 정당을 말할 때가 아니다.
  
  김호기 : 민노당은 전지구적으로 스웨덴 사민당이나 브라질 노동당 같은 유사정당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국민들 눈에 민노당은 분배를 말하는 당이지 이를 위한 성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안 보인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바람, 요구, 희망을 어느 정도 채워줘야 한다.
  
  손호철 : 지금 민노당은 국민 다수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 30%의 표를 어떻게 얻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불특정다수를 겨냥하면 실패한다. 스웨덴은 몰라도 브라질 노동당을 벤치마킹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프레시안 : 시간이 많이 됐다. 노무현 정부가 내년까지는 어쨌든 집권세력이다. 현정부에 대한 제언을 마무리로 부탁한다.
  
   손호철 : 걱정스러운 것 중 하나는 노 대통령이 지방선거 패배로 인해 더욱 전의에 불탈까봐 걱정이다. 전의와 소명의식, 여론은 중요치 않고 오로지 역사에 남겠다는 식의 잘못된 선각자 정신으로 갈까봐 무섭다. 소수자이지만 나는 이겼다는 생각을 할까봐 가장 걱정스럽다.
  
  지금까지 노무현 정부는 참여 없는 참여정부였다. 한미 FTA에 대한 국민적 토론을 조직화했어야 했다. 개방, 지속가능성, 경제발전이 무엇인지 여론과 토론을 조직해야 했다. 21세기형 한국적 발전모델 논의를 조직화했어야 했다. 그런데 현실은 박정희 개발독재가 노무현 개방독재로 바뀐 것밖에 없다. 이제부터라도 사회적 양극화와 한미FTA, 전략적 유연성, 21세기의 중국과 미국의 패권 전쟁의 첨단기지로 평택을 만들 것인지 토론을 조직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김호기 : 처음 얘기한 대로 이번 선거가 가진 의미는 짧게 3년, 길게는 8년간 집권한 중도개혁세력에 대한 평가였다. 이 세력의 과제는 개방과 복지를 효율적으로 결합시킬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조건에 비춰볼 때 반세계화는 어렵다. 개방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 개방이 무조건 옳아서가 아니라 어떤 개방이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개방이라고 해도 속도조절이 중요하고 창의적 개방이 중요하다.
  
  당장 양극화로 인해 약자들의 삶이 주변으로 내몰리고 있다. 복지의 강화와 결합시킬 구체적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양극화 해소로서의 복지문제는 노 대통령이 작년과 올해 연두회견에서 했다. 그러나 국민들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사회통합적 세계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중도개혁세력은 사회통합적 세계화에 대한 비전을 만들고, 이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중도개혁세력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이를 원한다. 이것이 없으면 중도개혁세력이 내년 대선에서 받을 수 있는 성적표는 이번 지방선거보다 더 초라할 것이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말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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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에로이카 > [한겨레신문] 김기원, 재벌이냐 외국자본이냐

이러한 류의 글을 읽을 때 드는 느낌은 늘 용두사미라는 거다. 재벌이냐 외국자본이냐라는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구도는 잘못됐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맞다. 그런데.. 그러구 나서.. 결론은 기본에 충실하자는... 좋은 대기업을 키우고 좋은 외국자본을 유치하자는... 황당한 얘기를 해댄다. 케인즈주의는 국가사회주의와 더불어 자본성악설 취급을 받고, 작금의 신자유주의처럼 극단적 근본주의로 간주된다. 물론 좋은 게 좋은 거지만, 굳이 그 말하려고 이런 글을 쓸 필요가 있나 싶다. 그저 양자택일 허구론에서 그치고 말 뿐, 그 이상의 뭔가는 없다. 역사는 상상력을 제약하기도 하지만, 역사를 무시하고는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 좋은 기업과 좋은 외국 자본이 공공성 확보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아무래도 회의적이다. 뭐 좀 근사한 생각하는 양반들 없나?  

 

재벌이냐 외국자본이냐 / 김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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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
바야흐로 재벌과 외국자본의 수난시대다. 현대차 총수가 구속되었고, 두산 총수는 재판을 받고 있고, 삼성 총수도 언제 불려갈지 전전긍긍이다. 그런가 하면 론스타의 한국대표가 조사를 받았고, 외환은행의 웨커 행장은 일주일 출근을 저지당했다. ‘세금폭탄’이 투하된 외국계 펀드도 여럿이다. 한국경제를 지배하는 듀엣의 갖가지 비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고나 할까.

사태가 이쯤 되면 “재벌이든 외자든 모두 ‘자본’이므로 악이다”는 ‘자본성악설’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본을 타도하려는 이런 관점은 “재벌이든 외자든 모두 ‘자본’이므로 선이다”는 ‘자본성선설’과 마찬가지로 시대착오적이다. 그리고 “외자는 ‘외국’ 자본이므로 재벌보다 좋다”는 외환위기 직후 풍미했던 ‘외자 우상숭배론’이나 그 반대로 “외자는 ‘외국’ 자본이므로 재벌보다 나쁘다”는 최근 부상한 ‘외자 마녀사냥론’이라는 양극단의 오류도 다를 바 없다.

재벌과 외자는 우리에게 일자리와 생산물을 제공한다. 하지만 황제경영 아래 나라를 멋대로 주무르는 재벌도 있으며, 허술한 한국경제를 공략해 부동산 투기꾼처럼 폭리를 챙기는 외자도 있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재벌과 외자의 긍정적 효과를 최대화하고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는 일이다. 재벌체제를 개혁하고 외자를 주체적 선별적으로 활용하는 게 바로 그런 길이다.

그런데 소버린파동 때처럼 재벌과 외자가 충돌하는 경우엔 어찌해야 하나.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난감해한다. 재벌의 행태는 괘씸하지?그렇다고 알토란 같은 우리 기업을 외국에 넘겨주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식이다. 재계는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낡은 재벌체제를 고수하려고 안간힘이다. 미꾸라지는 자신의 적인 메기가 옆에 있어야 긴장해서 잘 큰다는 ‘메기경영론’을 떠들다가 메기, 곧 공격적인 외자의 그림자가 겨우 보일 뿐인데도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물론 죽을지 모르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총수의 경영권이다.

우리의 군사정권은 북괴의 남침위협을 독재의 구실로 삼았다. 그런데 그랬더니 오히려 북한을 우상숭배하는 주사파가 자라나고 남한체제가 더 흔들렸다. 그러다 사회가 민주화되자 주사파는 맥이 빠지고 북한과의 교류가 늘면서 남침위협 운운은 ‘잠꼬대’가 되었다. 재벌체제도 다를 바 없다. 외자의 위협을 빌미로 재벌체제를 고수하면 할수록 기업은 위태로워진다. 부패하고 무능한 총수 탓에 기업이 도산해 대우차처럼 결국 외자에 넘어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최근 뉴라이트가 민족주의를 짓밟고 극우 국가주의로 치달리는 한편에서 이렇게 민족주의를 악용하는 사이비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진보를 내세우는 듯한 일부 인사마저 여기에 가세한다. 총수의 세습적 경영권을 안정시켜주고 싶어 온갖 머리를 짜내고 있는 것이다. 경영권을 안정시켜주는 대신 기업에서 세금을 더 거두자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주장을 펼친다. 세금 증대는 차라리 노사관계 개혁과의 타협대상이다. 공익재단을 경영세습에 써먹게 하자는 발상은 또 무엇인가. 공익재단이 총수의 사익재단인가.

경영이 과도하게 불안해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이들이 외치는 식으로 경영권을 안정시키는 것은 무책임한 황제경영으로 돌아가고, 그리하여 기업과 나라경제를 망치는 사술이다. 정공법은 한국의 기관투자가, 우리사주조합 및 개인의 지분을 늘려 이들이 외자의 투기적 공격은 저지하되 부패하고 무능한 총수는 교체하는 것이다.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재벌과 외자에 엄정하고 공정한 규율을 적용하고 재벌개혁에도 박차를 더할 때다.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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