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17-06-1 子張問仁於孔子. 孔子曰: "能行五者於天下, 爲仁矣①." 請問之②. 曰: "恭,寬,信,敏,惠. 恭則不侮, 寬則得衆, 信則人任焉③, 敏則有功, 惠則足以使人."


자장문인어공자. 공자왈: "능행오자어천하, 위인의." 청문지. 왈: "공,관,신,민,혜. 공즉불모, 관즉득중, 신즉인임언, 민즉유공, 혜즉족이사인."

번역 : 子張이 孔子에게 仁에 대해 물었다. 孔子가 말하였다. "다섯 가지(의 덕)를 천하에 행할 수 있다면 仁이라 할 것이다." (子張이) 가르쳐 줄 것을 청하였다. 孔子가 말하였다. "恭(공손함),寬(너그러움),信(미더움),敏(민첩함),惠(은혜로움)이다. 공손하면 모욕당하지 않고, 너그러우면 대중의 옹호를 받고, 미더우면 사람들이 신뢰하게 되고, 민첩하면 功이 있게 되고, 은혜로우면 사람을 부릴 수 있다."

① '爲仁矣'를 陽伯俊은 "便是爲仁人了<仁한 사람이 되게 된다>"라고 번역하였다.

② '請問之'에서 '請'은 상대방에 대한 권유를 나타내고, '之'는 당연히 앞에 나온 '五者'를 가리킨다.

③ '焉'은 '於+之'로 '그에게'정도의 의미이나 번역에는 빼버렸다.

集註 - 行是五者, 則心存而理得矣④. 於天下, 言無適而不然, 猶所謂雖之⑤夷狄⑥不可棄者. 五者之目, 蓋因子張所不足而言耳. 任, 倚仗也, 又言其效如此. ♥ 張敬夫曰: "能行此五者於天下, 則其心公平而周遍可知矣, 然恭其本與⑦." 李氏曰: "此章與六言,六蔽,五美,四惡之類, 皆與前後文體大不相似."

번역 : 이 다섯 가지를 행하면, 본성이 보존되어 이치가 얻어질 것이다. 於天下는 어디를 가더라도 그렇지 않은 곳이 없다는 말이니 비록 오랑캐의 땅에 가더라도 버릴 수가 없다고 한 말과 같다. 다섯 가지의 덕목은 아마 子張이 부족했기 때문에 말한 것일 것이다. 任은 의지하는 것이다. 또한 그 다섯 가지의 효과가 이러함을 말한 것이다. ♥ 張敬夫가 말하였다. "이 다섯 가지를 천하에 행할 수 있으면 그 마음이 공평하여 두루 미침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恭이 근본일 것이다." 이씨가 말하였다. "이 장은  六言,六蔽,五美,四惡의 부류와 마찬가지로 모두 앞뒤의 문체와 아주 같지 않다."

④ '則心存而理得矣'를 李申은 "就善心在胸而一切有理<善한 마음이 가슴속에 있어 모든 사물이 이치를 가진다.>라고 번역한다. 나의 번역이 별로 잘한 것 같아 보이지 않으니 더 나은 번역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알려 주기 바란다.

⑤ '之'는 動詞로 '가다'라는 뜻이다.

⑥ '夷狄'은 '동쪽오랑캐와 북쪽오랑캐'이니 '오랑캐 땅'이다.

⑦ '其'는 뒤의 '與'와 호응하여 이 문장이 단순 서술문이 아님을 알려 준다.

집주 - 행시오자, 즉심존이이득의. 어천하, 언무적이불연, 유소위수지이적불가기자. 오자지목, 개인자장소부족이언이. 임, 의장야, 우언기효여차. ♥ 장경부왈: "능행차오자어천하, 즉기심공평이주편가지의, 연공기본여." 이씨왈: "차장여육언,육폐,오미,사악지류, 개여전후문체대불상사." 433508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7-05-1 公山弗擾以費畔, 召, 子欲往.


공산불요이비반, 소, 자욕왕.

번역 : 公山弗擾가 費땅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켜 孔子를 부르니 孔子가 가려고 하였다.

集註 - 弗擾, 季氏宰. 與陽虎共執桓子, 據邑以叛.
집주 - 불요, 계씨재. 여양호공집환자, 거읍이반.

번역 : 公山弗擾는 季氏의 宰相이다. 陽虎와 함께 季桓子를 잡아 가두고 邑을 점거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17-05-2 子路不說, 曰: "末之也已①, 何必公山氏之之也②."


자로불열, 왈: "말지야이, 하필공산씨지지야."

번역 : 子路가 기뻐하지 아니하고 말하였다. "갈 곳이 없으면 그만 두셔야지 하필 公山氏 그에게 간단 말입니까?"

① '末之也已'에 대해 陽伯俊은 "沒有地方去便算了<갈곳이 없으면 그만 두어야지>"라고 번역하며, " '末', 沒有地方的意思; '之', 動詞,往也;'已',止也.<'末'은 아무 데도 없다는 뜻이고,'之'는 動詞로 '가다'라는 말이고, '已'는 '그만두다'라는 뜻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또한 陽伯俊은 '末之也,已'로 표점을 찍고 있다.
 
② '公山氏之之也'는 公山氏(주제어, 의미상 목적어)+之(複指代詞)+之(동사)+也(어기사)로 풀이할 수 있겠다.

集註 - 末, 無也. 言道旣不行, 無所往矣, 何必公山氏之③往乎?
집주 - 말, 무야. 언도기불행, 무소왕의, 하필공산씨지왕호?

번역 : 末은 없다는 말이다. 道가 이미 행해지지 않아 갈 곳이 없는데, 하필 公山氏 그에게 가시려고 하시니까라고 말한 것이다.

③ 여기서의 '之'도 複指代詞이다.

17-05-3 子曰: "夫召我者, 而豈徒哉④? 如有用我者, 吾其⑤爲東周乎?"


자왈: "부소아자, 이개도재? 여유용아자, 오기위동주호?"

번역 : 孔子가 말하였다. "나를 부르는 자가 어찌 헛되이 불렀겠느냐? 만약 나를 써주는 자가 있으면 나는 東周로 만들 것이다."

④ '而豈徒哉?'에서 '徒'를 '空然'으로 보아 풀어도 좋고 아니면 '而豈徒(召我)哉?'(陽伯俊)로 보아도 좋겠다.

⑤ '其'는 뒤의 '乎'와 호응하여 이 문장이 단순 서술문이 아니다는 것을 알려 준다.

集註 - 豈徒哉, 言必用我也. 爲東周, 言興周道於東方. ♥ 程子曰: "聖人以⑥天下無不可有爲之人, 亦無不可改過之人, 故欲往. 然而終不往者, 知其⑦必不能改故也."
집주 - 기도재, 언필용아야. 위동주, 언흥주도어동방. ♥ 정자왈: "성인이천하무불가유위지인, 역무불가개과지인, 고욕왕. 연이종불왕자, 지기필불능개고야."

번역 : 豈徒哉는 반드시 나를 쓴다는 말이다. 爲東周는 周나라의 道를 東方에 일으킨다는 말이다. ♥ 정자가 말하였다. "聖人이 天下에 훌륭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없고 또한 잘못을 고칠 수 없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끝내 가지 않은 것은 그가 절대로 고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⑥ '以'는 '以爲'의 뜻으로 '생각하다','여기다'의 뜻이다.

⑦ '其'는 '公山弗擾'를 가리킨다. 433508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7-04-1 子之武城, 聞弦歌之聲.


자지무성, 문현가지성.

번역 : 공자가 武城에 가서 거문고 타는 소리와 노래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集註 - 弦, 琴瑟也. 時子游爲武城宰, 以禮樂爲敎①, 故邑人皆弦歌也.
집주 - 현, 금슬야. 시자유위무성재, 이예약위교, 고읍인개현가야.

번역 : 弦은 琴瑟이다. 이 때 子游가 武城의 邑宰가 되어 禮樂으로 (백성들을) 교화하였다. 그래서 邑人들이 모두 거문고를 타고 노래를 부른 것이다.

① '敎'를 名詞로 보아 '禮樂으로써 敎(가르침)로 삼다'라고 번역해도 좋고, '敎'를 動詞로 보고 목적어인 邑人이 생략되어 있다고 이해해도 좋겠다. 나는 後者로 번역하였다.

17-04-2 夫子莞爾而笑曰: "割鷄焉用牛刀?"


부자완이이소왈: "할계언용우도?"

번역 : 夫子가 빙긋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닭을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느냐?"

集註 - 莞爾, 小笑貌, 蓋喜之也. 因②言其③治小邑, 何必用此④大道也.
집주 - 완이, 소소모, 개희지야. 인언기치소읍, 하필용차대도야.

번역 : 莞爾는 빙긋이 웃는 모습이며, 아마도 기뻐서일 것이다. 그래서 그가(子游)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데 하필 이런 큰 道를 쓰느냐고 말한 것이다.

② '因'은 虛辭로 전치사와 접속사로 쓰인다. '因'이 접속사로 쓰일 때는 김원중의 ≪虛辭辭典≫ 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접속사로서(써) 뒷일이 앞일과 긴밀하게 이어지는 것을 나타내고, 구 맨 앞이나 주어 뒤에 쓰인다. '이에', '곧', '즉'이라고 해석한다." 나는 이 문장에서는 '因'을 접속사로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③ '其'를 나는 '子游'를 가리키는 人稱代詞로 보아 동사술어 '治'의 주어로 번역했다.

④ '此'는 指示代詞이며 이 문장에서는 관형어(定語)로 쓰였다.

17-04-3 子游對曰: "昔者偃⑤也聞諸夫子曰: '君子學道⑥則愛人, 小人學道則易使也.' "


자유대왈: "석자언야문저부자왈: '군자학도즉애인, 소인학도즉이사야.' "

번역 : 子游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예전에 저는 夫子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君子가 道를 배우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小人이 道를 배우면 부리기에 쉽다.' "

⑤ '偃'은 言偃, 즉 子游의 이름이다.

⑥ '道'는 孔安國은 禮樂으로 보고 있다.  

    "道, 謂禮樂也. 樂以和人, 人和則易使.
    <道는 禮樂을 이름이다. 음악으로써 백성을 교화시키고, 백성이 교화되면 부리기에 쉽다>"

集註 - 君子小人, 以位言之⑦. 子游所稱, 蓋夫子之常言. 言君子小人, 皆不可以不學. 故武城雖小, 亦必敎以禮樂.
집주 - 군자소인, 이위언지. 자유소칭, 개부자지상언. 언군자소인, 개불가이불학. 고무성수소, 역필교이예악.

번역 : 君子와 小人은 地位로써 말한 것이다. 子游가 말한 것은 아마도 夫子가 평소에 하던 말일 것이다. 君子와 小人이 모두 배우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武城이 비록 작지만 반드시 禮樂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⑦ 論語에서 말하는 君子와 小人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德이 있는 자(有德者)와 없는 자(無德者)이고, 다른 하나는 地位가 있는 자와 없는 자이다. 이 문장에서는 後者의 경우이다.

17-04-4 子曰: "二三者⑧! 偃之言是也. 前言戱之耳."


자왈: "이삼자! 언지언시야. 전언희지이."

번역 : 공자가 말하였다. "얘들아! 偃의 말이 옳구나. 전에 한 말은 농담이다."

⑧ '二三者'는 孔子가 武城에 갈 때 따라간 제자들을 부르는 말로 보인다. 들녘에서 번역 출판한 丁寅生의 『孔子演義』에 따르면, 이 때 수행한 제자는 자로, 안회, 자공, 염구 등이다.

集註 - 喜⑨子游之篤信, 又以⑩解門人之惑也. ♥ 治有大小, 而其治之必用禮樂, 則其⑪爲道一也. 但衆人多⑫不能用, 而子游獨行之⑬. 故夫子驟聞而深喜之, 因反其言⑭以戱之. 而子游以正對, 故復是其言, 而自實⑮其戱也.
집주 - 희자유지독신, 우이해문인지혹야. ♥ 치유대소, 이기치지필용예악, 칙기위도일야. 단중인다불능용, 이자유독행지. 고부자취문이심희지, 인반기언이희지. 이자유이정대, 고부시기언, 이자실기희야.

번역 : 子游가 독실하게 믿음을 칭찬하고, 또한 그럼으로써 제자들의 의혹을 풀어 준 것이다. ♥ 다스림에는 크고 작음이 있으나 그 다스림에는 반드시 禮樂을 써야 한다. 즉 그들이 道를 행함은  한 가지이다.  다만 뭇 사람들이 대다수 禮樂을 쓰지 못하는데 子游만이 禮樂을 썼던 것이다. 그래서 夫子가 언뜻 듣고는 아주 기뻐서, 고의적으로 말을 바꾸어 그를 놀린 것이다. 하지만 子游가 바르게 대답하므로 다시 그 말을 옳다고 하여 스스로 자기의 말이 농담임을 사실대로 말한 것이다.

⑨ '喜'는 '칭찬하다'라는 뜻이다.

⑩ '以'는 전치사로써 목적어는 앞의 분구 전체이다. '以'는 목적어 생략이 자주 일어나는 전치사이다.

⑪ 의미상으로 이 문장에서 '其'는 (큰 지역이건 작은 지역이건 지역을 다스리는) '治者'로 보는 것이 좋겠다.

⑫ '衆人多不能用'에서 '多'는 부사어로 쓰였지만 한국어로 번역할 때에는 관형어로 번역하는 것도 좋겠다. 이를테면, <많은 사람들이 .....>라고 말이다.

⑬ '行之'는 用禮樂을 말한다. 이때의 '行'을 나는 '用'을 받는 代動詞로 본다. 당연히 '之'는 '禮樂'을 받는 指示代詞이다.

⑭ '反其言'에서 '反言'은 '고의적으로 자기 생각과 반대되게 하는 말(을 하다)'이다.

⑮ '實'은 이 문장에서 동사술어로 쓰여 '사실대로 말하다' 정도의 번역이 가능하겠다.  433508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7-03-1 子曰: "唯上知與下愚不移.①"



자왈: "유상지여하우불이."

번역 : 공자가 말하였다. "오직 上知와 下愚만이 변화시킬 수 없다.

① 孔安國의 疏에는 "上知不可使爲惡, 下愚不可使强賢<上知는 억지로 惡하게 할 수 없고, 下愚는 억지로 賢하게 할 수 없다>"라고 되어 있다. 陽伯俊의 번역(只有上等的智者和下等的愚人是改變不了的)에서 보듯이 '不移'는 '변화시킬 수 없다' 정도로 번역이 가능하겠다.

集註 - 此承上章而言. 人之氣質相近之中, 又有美惡一定, 而非習之所能移者②. ♥ 程子曰: "人性本善, 有不可移者何也? 語其性則皆善也, 語其才則有下愚之不移③. 所謂下愚有二焉: 自暴自棄也. 人苟④以善自治, 則無不可移, 雖昏愚之至⑤, 皆可漸磨而進也. 惟自暴者拒之以不信, 自棄者絶之以不爲⑥, 雖聖人與居, 不能化而入也⑦, 仲尼之所謂下愚也. 然其⑧質非必昏且愚也, 往往强戾而才力有過人者, 商辛⑨是也. 聖人以其自絶於善, 謂之下愚⑩, 然考其歸則誠⑪愚也." 或曰: "此與上章當合爲一, 子曰二字, 蓋衍文⑫耳."

번역 : 이 장은 앞장에 이어서 말한 것이다. 사람의 氣質이 (서로) 비슷하지만, 좋고 나쁨이 일정하여 습관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 있다. ♥ 정자가 말하였다. "사람의 본성은 본래 善한데 변화시키지 못함이 있다는 게 무슨 말인가? (사람의) 본성을 이야기하자면 모두 善하고, 材質을 이야기하자면 변화시킬 수 없는 下愚가 있다. 이른바 下愚에는 두 가지가 있다. 自暴하는 자와 自棄하는 자이다. 사람이 만일 善으로써 스스로를 다스린다면,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고, 비록 어둡고 어리석음에 이르렀다하더라도, 모두 점차로 닦아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오로지 自暴者는 믿지 않음으로써 거부하고, 自棄者는 하지 않음으로써 거절하므로, 비록 성인이, (그들과) 더불어 살더라도 교화시켜 들일 수 없는 것이고, (이들이 바로) 공자가 말한 下愚이다. 하지만 그들의 바탕이 반드시 어둡고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가끔은 강하고 사납고, 재능과 역량이 보통사람들보다 뛰어난 자가 있으니 商辛이 그러한 사람이다. 聖人이 그들이 스스로 善을 끊었기 때문에 그들을 下愚라고 이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귀착점을 살펴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혹자는 말하였다. "이 章은 앞 章과 마땅히 합하여 한 章이 되어야 한다. '子曰' 두 자는 아마도 衍文인 것 같다."

② "此承上章而言. 人之氣質相近之中, 又有美惡一定, 而非習之所能移者" 이 문장은 의외로 살펴볼 만한 것이 많다. 먼저 여러 책에서 아래와 같이 달리 끊어 읽기를 하고 있다.

 1) 此는 承上章而言人之氣質이 相近之中에 又有美惡一定하여 而非習之所能移者라 (성백효)
    - 이것은 윗 章을 이어서 사람의 氣質이 서로 비슷한 가운데에도 좋고 나쁨의 일정함이 있어서 습관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씀한 것이다.

 2) 此承上章, 而言人之氣質相近之中, 又有美惡一定, 而非習之所能移者. (김도련)
   - 이것은 윗장을 이어서 사람의 氣質은 서로 비슷한 가운데에도, 아름답고 惡한 것이 一定하여 習慣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신 것이다.

 3) 此承上章而言. 人之氣質相近之中, 又有美惡一定, 而非習之所能移者. (李申, 中華書局版 四書章句集註)
    - 這(zhe)是接着上一章說的.人的氣質相近之中,又有善惡固定不變的情形, 不是操習所能改變的.
  
 끊어 읽기가 다름에도 성백효와 김도련의 번역은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李申의 번역과의 가장 큰 차이는 언뜻 보기에는  '동사 言을 타동사로 보느냐 자동사로 보느냐'는 것이다. 성백효와 김도련은 言을 타동사로 보아 문장 끝까지 言의 목적절로 보고 있고, 李申은 言을 此의 술어로만 보고 있는 듯하다. 한국과 중국에서 나온 책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고, 어느 것이 옳은 지는 나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조금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 다음은 '人之氣質相近之中, 又有美惡一定, 而非習之所能移者.'을 보자. 먼저 나는 人之氣質相近之中을 부사어로 보고, 뒤에 나오는 又와 연관지어 양보의 의미로 번역해 보았다. 또한, 有의 목적어를 문장 끝의 者까지로 보아, 美惡一定로 본 성백효나 김도련과는 다르게 번역하였다. 아마도 성백효나 김도련은 非의 목적어를 習之所能移者로 보는 것 같은데 나는 習之所能移로 보았다. 하나 더 부언하자면, 習之의 번역인데 참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배워서'라고 번역하기도 좀 어색하고 해서 그냥 '습관으로'라고 번역하였다.

③ '有下愚之不移'에 대해서 살펴보자. 여기서의 '之'도 앞에 나온 下愚를 다시 받는 複指代詞이다. 좀더 정확하게 직역하면 <下愚, 그것을 변화시키지 못함이 있다>정도이겠다. 물론 도치의 가장 큰 이유는 강조이다.

④ 苟를 '진실로'라고 번역하기보다는 假定詞로 보아 '만일, 만약에' 정도로 번역하는 게 낫다고 본다.

⑤ '雖昏愚之至'에서도 之를 昏愚를 다시 받는 複指代詞로 보아 번역하면 <비록 昏愚, 거기에 이르렀다하더라도>가 되겠다.

⑥ '惟自暴者拒之以不信, 自棄者絶之以不爲'을 다른 번역자들이 번역한 것을 보자.

1) 성백효 : 다만 自暴하는 자는 善을 막아서 믿지 않고, 自棄하는 자는 善을 끊어 버려 행하지 않으니

2) 김도련 : 오직 自暴하는 자는 막아서 믿지 아니하고, 自棄하는 자는 끊어서 하지 아니하므로

3) 李申 : 只有自暴者用不相信來拒絶接受敎育,自棄者用不去做來自絶于聖人之道,
       <오로지 自暴者는 믿지 않아서 교육받기를 거절하고, 自棄者는 하지 않음으로써 聖人의 道를 스스로 끊는다>

 한문의 묘미를 조금 살려서 이 문장을 다시 살펴보아, 나는 '惟自暴者與自棄者拒絶之以不信'을 두 문장으로 나누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한다. 동사 信의 의미상의 목적어를 성백효와 같이 善으로 보든지 李申과 같이 敎育이나 聖人之道로 보는 건 且置하고, 번역하면 <오로지 自暴者와自棄者만이 믿지 않아서 拒絶한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맨 뒤의 爲는 앞의 동사 信을 받는 代動詞로 볼 수 있다. 동사1 + 以 + 동사 2 가 있을 때의 번역은 다들 알다시피 두 가지가 가능하다. 以를 전치사로 볼 수도 있고, 접속사로 보아 而와 같이 보는 경우이다.  이 문장에서는 문맥상 '거절하다'와 '믿다'라는 동사의 인과관계를 미루어 볼 때, 성백효나 김도련처럼 而와 같이 보기보다는 李申의 번역이 더 나아 보인다.

⑦ '雖聖人與居, 不能化而入也'에서 다시 다른 번역자들의 번역을 보자.

1) 성백효 : 비록 聖人과 함께 거처하더라도 변화하여 들어갈 수 없다.

2) 김도련 : 비록 聖人과 더불어 살더라도 化하여 들어가지 못하니,

3) 李申 : 卽使和聖人住在一起,也不能讓他們(men)聽進善言受到感化,
    < 비록 聖人과 함께 살더라도, 善言을 듣게 하여 감화시킬 수 없다>

 내가 가장 한문 번역에서 강조하는 것은 문장에서 동사술어의 주어와 목적어를 정확하게 찾아내어 번역하는 것이다. 한문은 시도 때도 없이 아무런 규칙없이 문장에서 주어와 목적어가 생략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 점은 더욱 중요하다.  먼저 '雖聖人與居'에서 주어는 무엇인가? 위의 번역자들은 모두 의미상으로 自暴者와 自棄者로 보고 있다. '不能化而入也'에서 주어는 성백효와 김도련은 여전히 自暴者와 自棄者로 보고 있고, 李申은 聖人 또는 일반인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두 分句(종속절과 주절) 모두의 주어를 聖人으로 보고 싶다. 그렇게 보면 뜻이 훨씬 잘 통한다고 생각된다. 자세하게 직역해 보면 <비록 성인이 (그들과) 더불어 살지라도, (성인도 역시) (그들을) 化하게 하고 入하게 할 수 없다> 여기서 化와 入의 번역은 별개의 문제이나, 李申의 풀이도 참고할 만하다.

⑧ '其'는 의미상 '下愚之'이다.

⑨ '商辛'는 商나라 紂王이다.

⑩ '謂之下愚'에서 '之'는 간접목적어이며 '下愚'는 직접목적어이다.

⑪ '誠'은 '愚'를 강조하는 강조부사이다.

⑫ '衍文' - 문장 가운데서 쓸데없는 글귀

집주 - 차승상장이언. 인지기질상근지중, 우유미악일정, 이비습지소능이자. ♥ 정자왈: "인성본선, 유불가이자하야? 어기성즉개선야, 어기재즉유하우지불이. 소위하우유이언: 자포자기야. 인구이선자치, 즉무불가이, 수혼우지지, 개가점마이진야. 유자포자거지이불신, 자기자절지이불위, 수성인여거, 불능화이입야, 중니지소위하우야. 연기질비필혼차우야, 왕왕강려이재력유과인자, 상신시야. 성인이기자절어선, 위지하우, 연고기귀즉성우야. 혹왈: "차여상장당합위일, 자왈이자, 개연문이." 433508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7-02-1 子曰: "性相近①也, 習相遠也."


자왈: "성상근야, 습상원야."

번역 : 공자가 말하였다. "성품은 서로 가깝지만, 습성은 서로 멀다."

① '近'의 풀이를 古今漢語詞典에서는 '差不多,接近(비슷하다)'라 하고 위의 본문을 들고 있다. 나는 굳이 '가깝다'라고 번역하였으나, 아무래도 '별 차이가 없다'나 '비슷하다'가 더 나을 것 같다. 당연히 相遠은 반대의 意味일 것이다.

集註 - 此所謂性, 兼氣質而言者也②. 氣質之性, 固有美惡之不同矣. 然以其初而言, 則皆不甚相遠也. 但習於善則善③, 習於惡則惡, 於是始④相遠耳. ♥ 程子曰: "此言氣質之性. 非言性之本也. 若言其⑤本, 則性卽是理, 理無不善, 孟子之言性善是也. 何相近之有哉?⑥"

번역 : 여기서 말하는 바의 性은 氣質(氣質之性)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 氣質之性은 본래 美惡이 같지 않음이 있다. 하지만 그 처음(始初)을 가지고 말한다면, 모두 서로 먼 것이 심하지 않다. 다만, 善에 습관이 되면 善해지고, 惡에 습관이 들면 惡해지니, 여기에서 비로소 서로 멀어지는 것이다. ♥  정자가 말하였다. "이는 氣質之性을 말한 것이지 性의 근본을 말한 것이 아니다. 만약 性의 근본을 말한다면, 性은 바로 理이고, 理는 不善이 없는 것이니 맹자가 '性善'을 말한 것은 이것이니( 性의 근본이니) 어찌 '相近', 그것이 있겠는가?"

② 李申은 '包括氣質之性'이라고 번역한다. 즉, 이 문장에서의 兼은 '포괄하다'의 뜻으로 보아도 좋겠다.

③ 但習於善則善에서 '習'을 번역하기가 아주 애매하다. 언뜻 이해는 되는 데 글로 표현하기가 용이하지 않은 것이다. 중국인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李申의 번역을 보자. "只要從事于善就成爲善" 엄밀하게 이 문장을 번역해 보자. '只要~就~'는 원문의 '但~則'을 번역한 것으로 어떤 동작이 일어나는 최소한의 조건을 말한다. 즉, '~하기만 하면'으로 번역이 가능하다. '從事'는 當代漢英雙解詞典에는 1)'投身到(某種事業中去)' 2)'(按某種辦法)處理'라고 풀이되어 있다. 但習於善則善을 직역이 아닌, 의미에 근거하여 번역하면 <단지 善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기만 하면 선해지고>가 되겠다.  별로 어렵지도 않은 문장을 어쩌면 어렵게 풀어 보는 이유는 나 역시 단어 하나하나에 너무나도 고정된 의미밖에 없는 것처럼 알아, 번역에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李申은 나에게 좋은 스승이다.

④ 始는 부사로 '비로소'라는 의미이다.  

⑤ 其는 性을 가리키는 대사로 여기서는 관형어로 쓰여 '性之'이다.  늘 강조하지만, 사소한 것이라도 외국어 공부에 있어서 대(명)사의 지시대상을 꼼꼼히 챙기는 것은 중요하다.

⑥ '孟子之言性善是也. 何相近之有哉', 이 문장의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이 되지 않아 李申의 번역을 보니 문장 구조 자체를 다르게 보고 있어 소개한다.

* 孟子說的'性善'就是, (na)有什 (shenme)'相近'一說 (ne)?
 <맹자가 말한 '性善'에 어디에 무슨 '相近' 이런 말이 있더냐?>

내 개인적으로 李申의 번역에 찬성한다. 정자가 바로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여기서는 맹자가 말한 性과는 다른 氣質之性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何相近之有哉를 분석하면, 何(의문사)相近(주어)之(주어를 다시 가리키는 復指代詞)有(술어)哉(何와 호응하여 쓰이는 語氣詞)이다. 다시 직역하면, <어찌 '相近' 그것이 있겠는가?>가 될 것이다.

집주 - 차소위성, 겸기질이언자야. 기질지성, 고유미악지부동의. 연이기초이언, 즉개불심상원야. 단습어선즉선, 습어악즉악, 어시시상원이. ♥ 정자왈: "차언기질지성. 비언성지본야. 약언기본, 즉성즉시리, 리무불선, 맹자지언성선시야. 하상근지유재?" 433507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