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복면가왕에서 하현우나 소향이 연승을 달리고 있던 시절, 관련 기사에는 항상 이런 취지의 댓글이 달려 있곤 했다. "한국 사람들, 음악 들을 줄 몰라서 저렇게 고음이나 빽빽 지를 줄 알면 그냥 노래 잘하는 줄 알고, 진짜 음악을 몰라. 저게 무슨 노래야. 기인열전이지. 노래는 감정이야 감정. 曰曰." 


누가 정했나, 노래는 감정이라고. 누가 정했을까, 이건 진짜 음악이 아니고 저게 진짜 음악이라고.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가서 힘들고 외로운 순간 순간 소향의 홀리홀리한 노래를 들으며 치유받곤 했다. 간부에 까이고 선임은 깝치고 후임은 깝깝해 하루 종일 빡쳐 있다가도, 소향이 부른 'O Holy Night'를 듣고 나면, 그래 이 먼지 같은 일들에 일일이 분노하는 작은 사람 되지 말자, 세상은 이렇게나 넓고 높고 성스러운 것을- 하고 마음이 활짝 열려, 까이건 깝치건 깝깝하건 간에 우린 모두 하나, we are the world, 하게 되는 것이다. 그 환희의 순간들이, 희열로 가득 찬 하나됨의 기쁨이, 마치 신탁처럼 나를 그 기쁨으로 인도한 노래가, 다 진짜가 아니라고? 솔직히 조금 울기도 했는데?


"나는 이런 건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해." 혹은 "나한텐 저런 건 음악이 아니야." 라고는 할 수 있는 문제지만, "이건 음악이 아니야." 라고 할 수는 없는 문제다. 당신의 마음 속 진짜 음악은 오롯이 당신의 것이지만, 그냥 '음악의 정의'는 공공재다. 당신의 일기장에, 당신의 블로그에 당신이 생각하는 음악에 대해 A4 700장 분량의 논문을 쓰는 것은 당신의 자유지만, 위키피디아를 고친다면 쓰고 싶은대로 막 쓰면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이런 하찮은 이야기를 서두에다 두서 없이 깔아놓는 이유는, 아마 지금부터 syo는 책 한 권을 깔 것 같은데, 까는 일은 항상 까부는 일이고, 일단 까불다 보면 항상 한없이 까불게 마련이라서다. 설사 이 뒤에 이어지는 글들에서 syo가 공공재인 '시의 정의(定義)'를, 더 나아가 역시 공공재인 '시의 정의(正義)'를 건드리는 듯한 표현을 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다만 syo의 취향과 개인적 정의(定義 & 正義)일 뿐임을 미리 밝히기 위해서이다.


 


2


내가 '은유시인'이라고 부르는 작자들은, 시를 쓰기 위해 은유하는 게 아니라, 은유하기 위해 시를 쓰는 것 같은 무례한 시인들이다. 이름도 대려면 몇 댈 수 있다. 최근에도 한 권 발견했다. 이들의 은유는 '원관념', 그러니까 은유를 통해 빗대어 나타내는 실제의 대상을 독자에게 환기시키지 않는 듯하다. 후려쳐서 말하면, 아무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고,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은유가 무슨 말로도 독자에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물론 잘 된 은유인데도 독자가 무지하여 원관념을 캐치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은유라면 그런 순간에도, 잘은 모르겠지만 이 시가 뭔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자체는 가질 수 있게 한다. 독자 똥으로 보지 말자. 시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시가 문자 이전부터 존재해 온 인류 최고(最古)의 서사 양식이라면, 평생 시집 다섯 권 채 못 읽고 무지개 다리 건널 대부분의 평범한 독자들도 호모 사피엔스적 감각만으로 직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던져야 한다. 최소한 내가 무지해서 그렇다는 자책감 정도는 달라는 것이다. 그게 안 되면, 그냥 자신의 언어조작능력을 과시하고 싶어 똥폼을 부리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syo는 '은유시인'을 멸칭으로 쓰는 것이다.




3


이 책은 네 가지 요소의 복합체다.


하나, '은유'를 은유하는 무수한 말들.


둘, 시집 뒷꽁무니에서 출몰하곤 하는 시 해설들.


셋, 다독가인 지은이가 여기저기서 읽어 온 지식의 파편들(인간 게놈, 감정은 편도체/단어는 측두엽/시각자극은 후두엽, 은하의 속도는 시속 100만 마일, 세계를 지배하는 여섯가지 수, 기타 등등 굳이 왜 은유를 설명하는 책에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참 많기도 많다. 이것도 하나의 은유일까?)


넷, 오, 이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은유인가! 아, 저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것은 또 어떻고! 쪼오오기 저어어쪽 것도.....




4


본문의 한 부분을 따라가 보자. 괄호는 이 부분을 읽던 syo의 마음의 소리다.


시는 언어 놀음이고, 항상 그 놀음 이상이다(좋지 좋아. 그렇고 말고.) 시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말함이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불행에 이름을 부여하고 그걸 호명한다(아, 암만, 그래야지. 시가 안 그럼 누가 그러겠어.) 시는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울려나오는 메아리고(음..... 그.....렇지? 없음과 있음 사이..... 음음.) 뇌의 전두엽에 내리꽂히는 우레며(전.....전두엽.....) 모든 물질에 작용하는 메타과학이고(메타....뭐?) 형이하학의 형이상학이다(네? 예?) 시의 본질은 우연성이고, 이것은 무상성에서 확고한 지지를 자아낸다(.......) 그런 맥락에서 시는 만듦이고 낳음이며, 위함이고 이룸이다(....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관자재보살....) 인간 내부의 구멍이고 그 구멍 속에 사는 신이다(제발....이제 그만.....) 시인은 항상 외부 세계, 멀리 있는 다른 우주의 신과 소통한다(살려줘요! 아님 차라리 죽이시든가....) 그래서 시는 때때로 낯선 신의 알아듣기 힘든 방언이기도 하다(아! 맞아! 정말이야! 지금 딱 그래.....)




5


은유를 설명하는 책은 위험할 수 있다. 지은이가 이육사의 <절정>에 들어있는 은유를 풀어내는 대목을 보자.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절정>의 원문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칼날"이 "강철"에 연접하며 날카로움과 강밀도가 높아지는데, 이는 속화된 현실과 단절하려면 단호한 결기와 강단이 필요함을 암시한다.


특히 "겨울"이라는 시련을 딛고 홀연히 피어난 "강철로 된 무지개"는 무릇 정신을 초극하며 높이 솟구친 범상치 않은 경지를 가리킨다.


이육사가 그토록 되고자 하는, 닿고자 했던, 무른 마음과 발 디딘 현실의 속됨을 떨치고 솟구쳐 일어나는 영웅적 품성의 고결함을 가리키는 고원, 매화향기, 백마, 초인 따위와 연접하며 .... (35- 36)


눈 밝은 분들은 지금 이 대목을 보고, 이건 아마 지은이가 십수 년째 지적받고 있는 학교 시 교육의 문제점을 환기하기 위해 교사용 참고서의 일부분을 인용하는 게 아닐까, 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런 거 아닙니다. 이 글은 이 책의 전반에서 펼쳐지고 있는 지은이의 시 해석 양상이다. <절정>이 아무리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적은 시라고 해도, 이렇게 시 해석을 확정해 버리면 어쩌자는 말일까. 심지어 제도권 교육에서 해석하는 방식과 아무런 차이도 보여주지 않고. 평론집은 평론가가 '자신의 해석'을 드러내는 책이니 또 모를 일이지만, 이 책은 평론집이 아니라 인문서인데? 이러면 이 책은 '은유의 힘'이 아니라 '내 (장석주) 은유의 힘'이 되는데.....


요컨대, 책의 기획 자체가 아슬아슬하다는 말이다. 물론 지은이가 해석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은유를 사고하지 말라는 말은 책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지은이가 은유의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뭇 감탄이 섞인 어조로 좋은 시들의 좋은 은유들을 차근차근 풀어헤쳤을 때, 나는 거기서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았다. 아름다운 시들을 더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암호를 해독하듯이 시의 목을 따고 배를 가르고 뼈와 살을 발라 먹어야 했던 암담한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6


더 큰 문제를 하나 지적하고 싶다. 다소 비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꼭 말하고 싶다. 25쪽이다.


월트 휘트먼은 한 아이가 풀잎을 따와서, 이것이 뭐예요? 라고 물었을 때, "내 기분의 깃발, 희망찬 초록 뭉치들로 직조된 깃발"이라고 말한다. 이 멋진 은유들이라니! (25)


난 이 부분을 보고 월트 휘트먼이 미쳤나 했다. 이 위대한 시인 양반아, 지금 당신 앞에 서 있는 그 불쌍한 아이, 표정 봤어? 아이의 손에 힘이 풀려 팔랑팔랑 떨어지고 있는 그 풀잎이 안 보이냐고. 그리고, 이 마당에 멋진 은유라굽쇼?


나는 나름 마르크스주의자지만, 시인들이 부르주아와 자본주의의 악당 군상들을 문학으로써 처단하고, 프롤레타리아들의 혁명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예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0만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도, 300이 넘는 죄 없는 목숨들이 이유 없이 가라앉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이 서정에 움직인다면 서정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시인들은 대부분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이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울 것이다.) 사회가, 세상이 당신을 호명한다고 느끼지 않았다면, 당신은 당신만의 은유를 마음껏 뽐낼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세상이 당신을 호명했다면, 세상이 아니라 작은 아이 하나라도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당신에게 질문을 던졌다면, 그리고 그 부름과 질문을 당신이 인식했다면, 당신은 거기에 대답해야 시인이다. 


아이는 휘트먼에게 풀잎을 물었다. 그런데 휘트먼은 아이의 질문을 이용해 자신의 기분과 희망을 대답했다. 이것이 아이에게 대답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위험한 시인이 될 수 있다. 물음을 가볍게 뛰어넘는 자신만의 대답을 준비하는 자들, 누가 무얼 묻든 자신이 대답하고 싶은대로 대답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을 보유한 자들, 능력이 권한을 준다고 착각하는 자들, 그리고 그 언어 능력을 지닌 스스로에 감탄하고 자부심을, 나아가 우월감을 느끼는 자들, 그런 자들의 마음 속에 더러운 욕망과 권위의식이 함께 깃들 때, 그들이 은유와 은유를 팔아 쟁취한 문화권력을 동원하여 애꿎은 여성들과 순수한 문청들에게 어떤 일들을 저질렀는지 우리 일반 독자들도 이제 알만큼 안다.


시인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에 대하여 시인이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부분이 물론 있긴 하겠지만, 때로는 시인의 입에서 나왔으므로 시인이 아닌 이들에게는 그저 허튼소리로만 들리는 것들도 있다. "국회의원은 국민 여러분의 뜻을 잘 받들고 국민 여러분을 대신하여......" 라고 말하는 자들은 국회의원과 국회의원 워너비들 뿐이다.


시인은 시인에 대해서 말하는데, 시인이 아닌 사람들은 시인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이 별 것 아닌듯 보이는 틈이 우리 사회에서 시의 시간이 저물어 가는 현실과 과연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

  



7


엄청 까 놓고 이런 말로 급 마무리 하기가 웃기긴 해도, 사실 이 책은 좋은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은유로 밥벌이 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가 한 평생 살면서 은유에 관하여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을 훌쩍 뛰어넘는 막대한 양의 정보가 함유되어 있다는 것이겠다. 그러나 이 책이 진짜 의미를 발휘하는 곳은 시인의 책장도, 시를 읽지도 쓰지도 않는 이의 책장도 아니라, '시인'은 아니지만 시를 쓰는 사람들, 항상 은유를 궁굴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은 은유를 찾아 시집을 뒤적이는 syo같은 만년 문청의 책상 위가 아닐까 한다.


퀄리티로 별 네 개, 이것저것 지적하면서 한 개 뺐다가, 장석주 작가를 향한 사랑에서 별 한 개가 태어나 결국 네 개로 마무리. 알라딘 세상 제일 공신력 떨어지는 Rotten Syomato 신선도 85% 되겠습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표맥(漂麥) 2017-09-08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살아 팅팅거리는 글빨~ 즐겁게(?) 읽었습니다. ^^

syo 2017-09-08 22:57   좋아요 0 | URL
^^ 저도 즐겁게 썼는데, 즐겁게 읽어주셨다니 더할 나위가 없네요.

독서괭 2017-09-0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점이 네 개인 걸 보고 나서 읽어내려가는데, 오호! 역시~ 그렇구나! 이책은 읽지 말아야겠구나... 하다가 잠깐, 내가 별점을 잘못 봤나? 하고 다시 확인했습니다ㅋㅋ
교과서가 생각난다는 지적 때문에 역시 안 읽을 것 같네요. 알쓸신잡에서 김영하씨가 우리나라 문학교육의 문제를 지적하며 한 농담이 생각납니다. 상사의 숨은 의중을 파악해야 하는 사회생활에 대비하기 위한 교육이라면 제대로 하고 있는 거라고..

syo 2017-09-09 12:04   좋아요 0 | URL
네 ㅎㅎㅎ 저는 별을 4개 주었으나, 다른 어디 추천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드는 책이네요.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이나 몇 개 읽는 게 더 남는 장사겠습니다.

다락방 2017-09-11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격렬하게 깠지만 별 네 개 주는 마음, 저도 뭔지 알아요. 마찬가지로 격하게 사랑하지만 별을 네 개밖에 못주는 마음 같은 것도요. 그리고 정말이지 이 글은 씐나게! 읽었습니다. 고백하자면,

4번 읽으면서 ‘그만 읽을까..‘를 고민했고요,
6번 읽으면서 빡침이 몰려왔습니다.

아이가 풀잎을 물었는데 저렇게 대답하면, 아이로서는 읭???????????????? 하게 되는거지요. 자기 기분 표현할 줄만 알지 아이의 기분에 대한 공감은 떨어지는 시인이란 사람... 싫다.......

그런데 쇼님, 리뷰 재미있게 잘쓴다. 진짜 날이갈수록 글 실력이 늘어가네요!! >.<

syo 2017-09-11 11:30   좋아요 0 | URL
글실력이 는 것도 있겠으나, 원래 입진보가 제일 잘하는 게 까는 겁니다. 할줄 아는게 그거 밖에 없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지요. ㅎㅎㅎㅎ
 


 

비둘기가 오리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신 적 있으신지? 상당히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모름지기 비둘기는 비둘비둘 걸어다녀야 제맛이라고 생각했다. 참새처럼 귀엽게 콩콩 뛰는 게 아니라. 목을 앞뒤로 흔들고 상당히 고압적인 눈빛으로 인간을 쏘아보며, 직립 보행은 너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이 신발 신은 원숭이놈들아- 하는 모습이 디폴트로 설정된 비둘기의 자태였는데, 공원의 잔디밭에 서른 마리쯤 되는 비둘기들이 알 품는 자세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진리가 현현했다. 이 세상에 정해진 것은 없다. 정하는 것은 나다. 나라는 놈은 얼마나 오만한지, 나를 정하는 것에 그쳐야 할 것을, 심지어 '너'까지 결정한다. 비둘기도 아니면서 비둘기 너희들은 항시 걸어다니고 있어야 한다고 결정한다. 여성도 아니면서 니들은 남자를 못 만나서 그래, 사랑을 못 받아서 그래, 사회 생활을 제대로 안 해봐서 그래, 하고 여성의 의식을 결정한다. 신도 아니면서 다른 사람들을 인간이 아니라 쓰레기나 유전학적 오물로 규정해 600만이나 죽이고 나면, 결국 스스로가 인간도 아니게 된다는 것. 그것은 알아야 한다.

 

그런 이유로(?) 원래 10일에 한 번씩 정리하던 독서목록을, 부족하지만 일주일만에 대방출 해본다. 이렇게 쉽고 얇은 책 위주로 마구잡이로 읽기보다는 몇 가지 주제를 정해서 한 번 읽어볼까 싶기도 하고, 두꺼운 책을 슬슬 피하며 도망치는 것도 한계에 봉착했다. 나도 이제는 두꺼-업하고 묵지-익한 책 읽고 폼나게 리뷰 쓸 수 있는 지식인이 되고 싶다. 자,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170831-170906 25권

문학 6권


1. 게 가공선

: 이게 소설이라고? 거짓말. 이게 100년 전이라고? 그럴 리가.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란 이러하고 저러한 것이다 말만 들었지, 실제로 읽어보니 현장감과 현실감이 압도적이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열 받는다.


2. 나무는 간다

: 책 딱 한 권 읽으며 여러 번 경탄하려면 시집만큼 좋은 게 없다. 그리고 글 딱 한 편 읽으며 와,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나, 혀를 내둘러 보려면 시집 맨 뒤에 달린 해설만큼 좋은 게 없다.


3. 사라진 입을 위한 선언

: 이 정도면 거의 암호놀이다. 시인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내가 오롯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는 내가 소비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일단 내게 온 시는 머리로든 가슴으로든, 어떻게든 소비되어야 하는데, 단편적인 정황만을 남겨둔 채 시가 허공으로 흩어져버렸다. 결국 나는 시인의 다음 시집을 기다리지 않는다.


4. 중얼거리는 천사들

: 그러니까, 눈이다. 귀다. 손끝이다. 거기서 시작한다. 눈이 가는 자리, 귀가 향하는 자리, 손끝이 닿는 자리. 시인은 거기에 선다. 나머지 일은 시가 다 한다.


5. 인생의 일요일들

: 여행기는 우리에게 네 가지 선물을 줄 수 있다. 하나, 여행지로 데려간다. 둘, 그곳으로 가 보고 싶게 만든다. 셋, 지은이의 마음으로 데려간다. 넷, 그곳으로 가 보고 싶게 만든다. 여행기 입장에서는 둘이 가장 쉽고 넷이 가장 어렵겠다. 정혜윤이 네 번째 선물 언저리에 섰다. 그러나 한번에 다 읽어 삼키기에는 너무 진해 마음이 쉬 피로해지므로 나눠서 읽기를 권한다.


6. 동급생

: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듯, 사람 옆에선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친구를 만드는 것은 거울을 만드는 것이다. 거울을 보고 있으면 거울 안의 내가 보인다. 거울 안의 나를 보고 있으면 거울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은 그렇게 실컷 거울 속의 나만 봐 놓고, 누가 물으면 거울을 봤다고 대답한다. 나를 봤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믿지도 않는다.



젠더 3권




7.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 배우는 것도 많지만, 나는 어디까지 읽어낼 수 있나를 확인하는 데도 좋다. 지식에 관해서건, 분노에 관해서건, 내 입장에서 아직 이 책에 대해 평하거나 쓰거나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읽고, 생각하고, 느껴야 할 것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8. 길 위의 인생

: 많은 사람이 걸어 온 많은 길을 읽고, 듣고, 감탄하고, 부러워해왔다. 그 중 가장 멋지고, 다른 그 누구의 것과도 같지 않은 길이 이 책 안에 있다.


9. 악어 프로젝트

: 논쟁의 철이 지난 책이고, 역시 철 지난 대답이 되겠지만, 왜 남자들을 다 악어로 표현했냐고 분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명민한 꼬맹이가 했던 말이 대답으로 맞춤한 것 같다."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한 것이온데, 왜 홍시맛이 나냐고 물으시면 그냥 홍시맛이 나서...."


철학 7권



10. 현대 철학 로드맵

: 이러면 정말 곤란하다. 원제를 흘낏 보니까 "진짜로 이해하는 현대사상" 뭐 이런 식인가본데, 저자 본인도 서문에서 이런 '후려치기+우겨넣기'가 바람직한 결과를 낳지 못하거나 애당초 불가능함을 은근히 드러낸다. 일본 출판계의 고질병이다. 이 책만 읽으면 ~할 수 있다! 2시간이면 ~를 정복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천안이다. 호도하면 천안이지. 네, 무리였네요. 죄송합니다. 내용 서술은 이런 식이다. "라캉은 '차이의 체계'라는 소쉬르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시니팡의 연쇄를 '구조'로 이해했다. 라캉에 따르면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이러한 시니피앙의 연쇄(언어)에 의해 구조화된다." 이러고 띡 끝이다. 아, 입문서를 읽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말이 나오면 책은 이미 실격인 것이다.


11. 비트겐슈타인 철학으로의 초대

: 절반을 다 읽고 나서야 예전에 한 번 읽은 책이라는 사실이 기억났다. 내용도 같이 기억났으면 좋았을텐데. 심지어 당시에 리뷰도 썼었던 것 같다. 지금도 있으면 좋았을텐데. 비트겐슈타인 입문서 중에서는 정말 쉬운 편이라고 평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진짜 쉽다는 말이면 좋았을텐데. 


12.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 1년에 한 번 꼴로 읽으면서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해 보는 측량기로 삼는 책이다. 작년에 뿌려 놓은 눈물의 냄새가 나는 걸로 보니, 별로 멀리 오지 못했군. 여전히 데리다, 지젝, 랑시에르, 바디우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깝다. 그러니까 엄밀히 따지면 이건 읽었다고 할 상황도 못 되는 셈이다. 또 한번 쓰린 눈물을 심으며 내년을 기약한다.


13.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 "자본론" 입문서가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철학" 입문서라는 입장에 맞게 상당히 폭넓은 범위를 다루고 있다. 다른 책들을 읽기에 앞서 일독하면 방황을 크게 줄일 수 있겠다.


14. 헤겔

: 이걸로 시작하기보다는 좀 더 다정하고 두꺼운 책이 좋았겠다. 그러나 헤겔은 한없이 두꺼울 수는 있어도 결코 다정할 수는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함정.


15. 한 눈에 읽는 현대 철학

: 역사에, 철학에, 뭐가 됐든 남경태의 책은 심지어 사전식이라도 어쩐지 잘 읽힌다. 최소 40년은 더 책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물론 그도 모든 방면에 달통한 만물박사는 아니었던 듯하다. "지금 상대성 이론은 양자역학에 자리를 내주고 패배한 이론이 되어 있다. 상대성이론이 뉴턴 역학을 대체했듯이 양자역학은 상대성 이론을 대체했다." 랄지, "뉴턴역학과 상대성이론의 관계처럼 서로 화합할 수 없고 정면으로 대립되는 이론이다"랄지 하는 구절을 보면 좀 의아해질밖에.


16. 프로이트 씨, 소통은 어떻게 하나요

: 청소년용을 만만히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당신, 그렇게 자신만만하다가 정말 부럽습니다. 백미는 푸코, 마르쿠제, 융, 포퍼와 프로이트가 벌이는 가상대담이다. 시리즈물로 니체와 마르크스도 절찬 판매중.


정치 / 경제 / 사회 4권



17.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

: 기본소득에 관한 책인 줄 알았는데, 21세기형 아나키스트의 일기장이었다. 그럴 바에는 사랑이나 하자, 집이나 불태우든지 가라오케나 가자, 하는 식으로 글을 마무리하는 것을 즐기는 듯 보인다. 재미도 꽤 있다. 마지막 꼭지인 "미친 사회를 위한 화장실 사보타주"는 압권이다.


18. 국가란 무엇인가

: 살을 붙이고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뼈대가 필요하다. 뼈대를 빚는 책으로 부족함이 없다. 부족한 건 항상 여기를 시작점으로 해서 더 깊게 더 많이 읽어나가자는 의지의 지속력이다.....


19. 자본론 이펙트

: 자본론도 자본론이지만, 자본론의 이펙트를 다루는 데 주력한 책이다. 얇아서 내용이 풍부하지는 않지만, 핵심을 비껴가지 않는 눈이나, 비판적 견해의 고갱이를 저며내는 손놀림을 보고 있으면 저자의 저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20. 위대하고 찌질한 경제학의 슈퍼스타들

: 글과 만화 중 어느 것도 내 취향 아닌 것이 없는지라, 유유에서 나온 책이 아닌가 하여 출판사를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러고보니 유유가 요즘 잠잠하다? 싶어서 검색해봤더니 지난 달도 두 권이 나왔다. 소홀했다. 모든 게 내 불찰이다....



인문일반 / 책 / 생활 5권



21. 장서의 괴로움

: 알라디너들이여, 우린 이제 그만 사야 합니다. 책 무게로 집이 무너지는 일을 막으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미니멀리즘입니다. 그러나 미니멀리즘은 파산과 함께 오거나, 아님 최면이라도 걸리지 않는 한 결코 그냥 오지 않겠지요..... 


22.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

: 발매된지 4년이 다 되어가는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나를 포함해 5명뿐이라고 알라딘은 말한다. 그게 내가 최근 맞닥뜨린 가장 큰 미스테리다. '쓰레기 고서'라는 '얼굴'이 독자들의 간택을 막는 요인이 되는가본데, 일단 읽기만 하면 재미와 의미를 두루 갖춘 훌륭한 책임을 알게 된다. 


23. 공부해서 남 주다

: 우리에겐 익숙치 않은 지식인들의 초상을 제공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에릭 호퍼나 듀랜트 부부에 대한 이야기는 읽기 즐거웠다. 다만 이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지식의 대중화에 일획을 긋긴 한 것 같은데, 그들이 지식을 대중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식자층과 투쟁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공부해서 남 줬지만 남 주자고 공부한 것은 아닌 셈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칭찬하기 애매할 수 있다.

24. 편안하게 따뜻하게 휘게

: 행복이 들어오는 입구는 소소한 것들을 바라보고 보듬을 줄 아는 눈과 손과 그 온기 속에 숨어 있다. 그리고 코코아와 아로마 향초와 벽난로가 필요하다..... 휘게는 어려운 것이 아니랍니다. 어느 집이나 벽난로 하나쯤 다 있잖아요.


25. 올 어바웃 러브

: 나는 벨 훅스를 정말 좋아하고 그녀가 써낸 모든 책들을 사랑하지만, 사랑론만큼은 예외로 해야겠다. 사랑을 정의할 수 없다고 보는 방식에도 단점이 있고, 그녀가 제기한 문제의식 또한 납득은 가지만, 사랑을 한 가지 정의 안에 가둘 수 있다고 보는 관점도 분명히 크고 작은 문제들을 낳는다. 거칠게 말하자면, 이게 사랑이니? 야, 사랑 몰라? 사랑은 이거야 이거, 다 정해져 있음, 그러니까 내 건 사랑, 니 건 사랑 아님. 헐, 대박. 뭐 이런 문제랄까?



내일부터는 아마도 초심으로 돌아가 마르크스를 열심히 읽게 될 것 같다. 사실 초심 찾을만큼 어디 멀리 간 적도 없다. 그냥 마르크스 읽다가, 까먹었다가, 다시 읽다가, 다시 까먹었다가, 다시 읽.....다가 세월은 가고 허리만 굽은 것이다. 그래도 계속 읽는 거 보면 이게 끈기가 없어서 이렇게 된건지, 있어서 이렇게 된건지 막 헷갈린다. 마르크스의 '마'까지 알았다 싶으면 까먹고, '마르'까지 알았다 싶으면 또 까먹고. 그러니까 결국 마르크스 관련 책을 처음 읽은 지 1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마르크스'를 알지 못하고 '마마르마르마르크마르마마르큿!마마...마..마르말'뭐 이런 것을 알고 있는 셈이라 하겠다. 이번에는 꼭 '스'까지 알고 싶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9-06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라진 입을 위한 선언》을 읽고 나니까 제 머리도 사라진 줄 알았습니다. 시구가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어요.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은 처음 보는 책입니다. 이런 책을 보면 헌책방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7년 전 알라딘 서재에 활동한 ‘노이에자이트‘님이라는 분이 있었어요. 그분 말로는 아파트 재활용분리수거장에 가서 버린 책들 중에 읽을 만한 것을 건진다고 해요. 한때 저도 그분의 책 사랑(?)에 반했습니다. 가끔 분리수거함을 지나가면 기웃거려요.. ㅎㅎㅎ

syo 2017-09-06 20:21   좋아요 0 | URL
보셨군요. 《사라진 입을 위한 선언》을. 솔직히 저건 너무 심했습니다.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은 어쩐지 cyrus님과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금정연 작가 책에서 발견하고 읽었지요. 분리수거함을 기웃거리는 cyrus님의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집니다. 한 번 뵌 적도 없는데 말이지요ㅎㅎㅎㅎ

독서괭 2017-09-06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마르..(중략)..마르말‘ 이라니 ㅋㅋㅋㅋ 그 정도면 뭐, 끈기 인정입니다!(엄지척)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이 보관함에 추가되었습니다. 보관함에서 장바구니로 넘어가기까지 기나긴 기다림이 필요하겠지만요...

syo 2017-09-06 23:2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제가 책 추천 타율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라서 걱정입니다. 저 혼자 좋아하는 경우가 더 많더라구요.
 
국가란 무엇인가 - 2017 개정신판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시민이 고등학교 선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스물 한 살이었다. 심지어 이 세상 모든 스물 한 살 중에 가장 문제가 많다는 정치에 관심 없는 스물 한 살이었다. 아빠, 유시민 아세요? 고등학교 선배래요. 철없는 아들이 물었다. 철없는 아버지가 이렇게 대답했다. 유시미이 그거, 국회에 빽바지 입고 오는 빨개이거든, 그거? 아주 웃긴 놈이지. 원문에는 쌍시옷이 더 많고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네발 짐승도 두어 마리 등장했으나 고인의 명예를 위해 옮기지 않는다. 어쨌든 향후 몇 년을 유지될 내 이미지 사전 속에 유시민이라는 사람이 웃긴 빨갱이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무슨 일만 터지면 이게 다 노무현 탓인지 아닌지 저울질하던 시절이었다. 밝은 가운데 엄혹한 시간이었다.


웃긴 빨갱이를 다시 발견한 것은(사실 그는 항상 있었다. 내 눈이 그에게 닿지 않았을 뿐) 한참 뒤의 일이었다. 통치해서는 안 될 사람이 통치하고, 그 결과 떠나서는 안 될 사람이 말도 안 되게 떠난 뒤였다. 강동구청에 마련되었던 분향소를 그냥 지나치고 나서야 뒤늦게 떠난 사람의 소중함을 알게 된 나는, 여기저기 그 사람의 흔적을 찾아 인터넷을 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그가 있었다. 떠난 사람의 옆자리에 그가 있었다. 더는 빽바지는 입지 않았지만 여전히 빨간 사람이라는 소문을 흙먼지처럼 끌고 다녔다. 그는 발견하지 않을래야 발견하지 않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었다. 송곳은 그의 혀였다. 그 송곳을 휘둘러 그는 수없이 많은 사람을 발랐다. 털었다. 종횡무진이었다. 그와 마주 선 토론자들의 얼굴이 한 여름 좋았던 날을 추억하며 초라하게 바닥을 뒹구는 늦가을 나무 이파리 빛깔로 변할 때까지, 그는 가차없이 발랐다. 털었다. 뭔가를 갚아주기라도 하려는 듯, 거침이 없었다. 이미지 사전이 한차례 갱신된다. 웃긴 빨갱이는 지워지고 프로발골러와 천사소녀 네티가 기록되었다. 아주 싹 발라먹고 탈탈 털지만, 아쉽게도 그는 모든 선거가 끝나면 언제 있었냐는 듯 마법처럼 사라진다. 그러다 심지어 정계에서 사라졌다. 정말 마법처럼,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그는 짱가처럼,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앞에 나타났다. 이 다음에 그를 만난 것은 역시 그렇게 떠나서는 안 될 목숨들이 무수히 떠나고 난 다음 달이었다. 슬픔이 내게 정치를 가르쳐주었다. 그 슬픔은 나 말고도 많은 이들에게 정치를 가르쳐주었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마다 내 컴퓨터 속으로 내게 정치를 가르치러 오는 선생이 다시 그였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다시 듣고, 또 다시 들었다. 월요일을 그렇게 보내면 화수목금토를 침대에 누워 그의 책을 뒤적이며 보냈다. 일요일은 쉬었다. 내일이 월요일이고, 내일이면 다시 그가 말한다는 생각에 설레 차마 책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 두자. 이미지 사전이 마지막으로 갱신된다. 그는 선생이다. 한 번도 나를 제자로 삼은 적이 없지만, 아몰라 그냥 나한텐 선생이다. 그의 말은 내게 권위를 넘어섰다. 유시민과 여친과 치킨은 삼위가 일체였다. 셋 다 조금은 낮은 데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내 인생의 성스러운 트라이앵글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내겐 바이블이다. 바이블은 신비한 책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보기에는 별 의미없는 옛날 이야기나 담겨 있는 책으로 보이지만, 믿는 이들은 그 안에서 세상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낸다. 근 1년간 내가 궁구했던 큼직한 질문들(주로 어떤 독재자의 딸과 그녀의 추종 세력을 둘러싼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의 답이 때로는 대놓고, 또 때로는 은근하게 이 책에 다 들어있고 녹아있다. 그러니까 이 책이 어떤 책인가 하면, 


아, 큰일 날 뻔했다. 읽는 분들은 모르시겠으나, 지금 이 순간 나는 거의 서른 줄에 달하는 찬양고무문건을 작성했다가 기겁해서 백스페이스를 연타하여 없애 버렸는데, 그것은 이런 여덟 글자로 요약 되는 등골이 서늘한 글이었다. "시민천국, 불신지옥." 쓸 게 없어서 이런 말로 때우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21개월의 군생활동안 구약을 2번, 신약을 4번 통독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어떤 신자들의 마음을 한 방에 공감시키고, 심지어 똑같은 행동까지 하게 만들다니, 그것만 해도 이 책 진짜 위대한 책 아닌가? 전 대통령이 그렇게 달고 살던 국론분열의 골을 메울 수 있는 막강한 접착제가 여기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누구보다도 전 대통령이 읽었어야 할 책이라 하겠다. 지금이라도 좀 읽었으면 좋겠다. 난 거지지만, 사비로 한 부 보내드릴 마음 있다. 없는 것은 지갑 속의 돈이 아니라 더 나은 것을 향한 당신의 의지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요.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17-09-05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 님에게 유시민이 그런 의미로 다가오셨군요.
저도 유시민 무척 좋아하지만
글쎄요, 현실에선 2프로 아닌 20프로 부족한 거 같습니다.
그나마 유시민 만한 정치인과 사람 없단 현실이 많이 슬픕니다.
마지막으로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는 썩 맘에 들지 않습니다. 그의 국가관 땜에요...

syo 2017-09-05 22:58   좋아요 2 | URL
하하하, 전 사실 유시민 작가님보다는 훨씬 좌측이라 결과적으로는 저도 그 국가관에 100%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지금 정치 중2라 치면 분명 저를 코닦아 가며 유치원 보내고 초등학교 보내고 중학교까지 입학시킨 건 또 100% 저 사람이라서요 ㅎㅎㅎㅎ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른이 되려면 아직 한참 남았지요. 저한테 유시민은 그런 의미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9-05 23:24   좋아요 0 | URL
<국가란 무엇인가>도 언급하지만, 유시민은 베른슈타인 사상에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로쟈 사상도 좀 더 소개했으면 좋았을 거 같습니다.
책에서 진중권이 비판했듯이 유시민의 국가관인 ˝사회자유주의˝는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회˝와 ˝자유˝가 엄밀히 공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 물론 그렇게만 된다면 최상이죠. ^^

syo 2017-09-05 23:34   좋아요 1 | URL
제 생각에도 유시민은 베른슈타인 방식이 현 상태의 최적해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전 아직 베른슈타인도 룩셈부르크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아서 뭐라 입장을 내세울 단계는 아니지만, 솔직히 개혁이나 혁명이나 둘 다 너무 어려워 제 살아생전에 완수되는 꼴을 볼 수 없는 길 같다는 느낌입니다. 젠더 문제, 인종과 종교문제를 보면 사회혁명이 모든 걸 일거에 해결해줄 것 같지도 않구요.....

북다이제스터 2017-09-05 23:44   좋아요 0 | URL
저도 말씀에 공감합니다.
제 생애에 개혁이나 혁명은 없을 거 같습니다.
그게 그렇게 쉽고 단순하게 일어나지 않을 거 같습니다.
그치만 그걸 우리 세대에 방향성으로 놓느냐 마느냐는 중대한 문제인거 같습니다.
갑자기 괜시리 오늘같이 좋은 밤, 얘기가 무거워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요즘 살기 넘 팍팍해서요. ㅠㅠ

syo 2017-09-05 23:54   좋아요 1 | URL
죄송은요. 좋은 말씀 감사했습니다. 북다님의 깊이있는 리뷰들과 이런 유익한 댓글들이 항상 큰 도움이 됩니다^^
저는 살기가 팍팍 할땐 일단 팍팍 먹습니다. 말장난 아니라 진짜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09-05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유시민님을 좋아해요

학교 다닐때 ‘항소이유서‘ 를 출력해서 가방에 가지고 다녔던 기억이..

syo 2017-09-05 23:34   좋아요 1 | URL
저도 그 글 정말 좋아합니다. 요즘도 가끔 읽습니다.

독서괭 2017-09-05 2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잘 쳐 줘도 정치 초1 정도라(얼마 전까지는 신생아였으니 급성장?! 응애응애) 유시민씨의 빽바지나 프로발골러 시절은 잘 모르지만, 썰전과 알쓸신잡을 보며 존경할만한 멋진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그의 가치관에 동의하느냐 여부와 관계없이요. 논리 없이 떠들어대는 많은 사람들이 뱉어내는 먼지 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지성을 목격한 느낌이랄까요... 앞으로도 종횡무진 활약해 주셨으면!
유시민과 여친과 치킨을 삼위일체로 모셨다는 syo님의 너스레에 또 웃고 갑니다. syo님의 글도 북플에서 별처럼 빛나고 있네요^^

syo 2017-09-05 23:53   좋아요 1 | URL
ㅎㅎㅎ 항상 읽어주시고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라딘에 글 올리고, 달아주시는 댓글들 보고 있으면 너무 과한 칭찬 많이 받아서 이거 원 까딱 잘못하면 저 자신도 실제보다 더 잘난 놈인 줄 착각하게 생겼습니다...
 

 

1

 

누구를 만나지도 않고,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뭐 특별한 것 먹지도 않고, 그저 침대에 책 서너 권 올려놓고 뒹구는 것. 읽고 싶을 때 읽고, 읽다 지치면 졸고, 졸다 깨면 기지개를 켰다, 달달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네이버에 물어도 봤다 하면서 빈둥빈둥, 침대 위에서 하염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 밑줄을 치거나 귀퉁이를 접어가며 하루를 탕진하는 것. 매주 하루씩 뺄 수는 없었지만, 한 달에 두 번은 꼭 그렇게 별다른 '아무 것'도 없는 시간을 가지는 것. 창 밖으로 잔잔히 빗방울 떨어져 똑똑똑 유리 두드리는 소리 들려 주기라도 하면 더할 나위 없는. 내가 오래 사랑해 온 나의 휴식은 대충 이런 야트막한 그림이다. 커피 맛 잘 알지는 못하지만 90도에서 25도로 차근차근 식어가는 사이에 숨어있는 모든 온도의 맛을 칭찬하는 마음을 배우고, 소소한 것들을 얻는 데 드는 기다림을 고마운 마음으로 덧칠하는 법도 배우고. 그러다보면 어쩐지 마음에 가득 힘이 생겨 오래도록 소홀했던 옛 친구에게 용기를 내어 전화를 해 보기도 하는. 어떻게 내게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기특하고 예쁜 나의 휴식. 충분하면 그걸로 충분한 시간.

 

그 시간들이 다 어디로 갔나.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서너 권의 책과, 자꾸자꾸 식어가는 한 잔의 커피와, 거친 숨을 자주 내쉬는 고물 노트북과, 그 모든 것들이 올려져 있는 작은 내 침대와, 그 사이를 뒹굴고 있던, 뒹굴 수 있던 나는. 모두들 어디로 갔나. 

 

  

...... 용기를 내 침대 밖으로 나오기로 한다. 일상이 망가져서 자질구레한 일들을 방치하는 게 아니라 자질구레한 일들을 방치해서 일상이 망가진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야 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침대에서 멀어지는 걸음걸음마다 나는 거듭해서 마음을 먹는다.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마음까지 먹어야 하다니.

_ 금정연, 『실패를 모르는 문장들』

 

 

 

2

 

처음 욕심을 가졌을 때는 아무것도 모른다. 욕심이 그려준 지도를 따라 길을 걷다 보면, 이미 그 길을 거쳐간 사람들의 흔적과 저 앞에서 쉬지도 않고 걸어나가는 사람들의 뒷통수를 발견하는 일이 있다. 기진맥진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 보면 저 아련하게 먼 곳, 더 높은 봉우리에 이미 깃발이 꽂혀 펄럭이고 있음을 깨닫고 벼락맞은 기분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마침내 그때는 모를 수 없게 된다. 세상에는 천재가 있음을. 천재가 나를 길 잃게 한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졌으므로 내가 갈 수 없을 곳에 이미 가 있는 이들의 존재가 내 삶을 박해한다. 내 의지를 굶긴다. 세계는 벌써 정복되었거나 정복되는 중이다. 자유를 욕심내는 사람만이 지금 자유롭지 않음을 깨닫고 분노하거나 슬퍼할 수 있듯, 나는 삶의 많은 국면에서 좌절할 자유를 얻었다. 천재를 인정하고 나의 둔재를 시인하는 것은 천천히 100년을 해야 하는 일이지만 120년을 지치는 일이다. 

 

   

성실하다는 말이 듣기 싫었던 건, 내가 천재들을 동경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게 너무 싫었나 보다. 뭐 어쨌든 이제는 내가 성실하다는 걸 알고,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마치 내게 타고난 재능이 없다는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뭐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_이유경,『독서공감, 사랑을 읽다』

 

엥겔스는 이렇게 회고한다. "누가 어떻게 천재를 질투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 능력은 너무나 특별한 것이기에, 그것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처음부터 그것을 자신이 획득할 수 없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런 것에 질투를 느끼게 된다면, 그런 사람은 분명히 가공할 정도로 속이 좁을 것이다.

_프랜시스 윈,『마르크스 평전』,『자본론 이펙트』

 

"아니요, 사라졌어요, 제리. 난 두 번 다시 예전처럼 할 수 없어요. 사람은 자유롭거나 자유롭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예요. 자유로워서 쌩쌩하게 실재하는 진짜 재능을 가졌거나 아무것도 없거나 둘 중 하나라고요. 난 더는 자유롭지 않아요.

_필립 로스,『전락』

 

 

 

3

 

천재는 더 남길 것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겠지만, 범재는 아무것도 남길 것이 없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다. 내가 죽은 오늘을 생각한다. 슬픔만이 남을 것이다.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므로 이내 슬펐다는 기억만이 남을 것이다. 사람들은 기일에만 나를 기억할 것이다. 기일은 남아있는 사람들이 추억할 만한 것을 달리 세상에 남겨 놓지 못하고 떠난 이들을 위해 관습이 제공하는 사회안전망 같은 것이므로. 나는 기일의 혜택을 입어 간신히 기억되다가, 남아 있는 이들이 잊지 말아야 하는 것들, 결혼 기념일이나, 직장 상사의 생일이나 출신 학교처럼 기억해야 할 것들이 늘어남에 따라 천천히 사라질 것이다. 이미 가고 난 마당에 남아 있는 이들이 기억해 주는지가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싶으면서도, 아직 살아 있기 때문에 버릴 수 없는 치명적인 욕심이다. 산다는 게 그런 것 아닐까? 잊히고 싶은 욕심과 기억되고 싶은 욕심 사이에서 하는 고무줄 놀이 같은 것.

 

그러나 우리에겐 너무나 슬프게 기억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기억을 둘러싸고 징징거리는 것은 오늘을 마지막으로 해야 좋겠다.

 

   

페소아는 베개에다 뺨을 갖다 대며 피로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사랑하는 안토니우 모라, 페르세포네가 자기 왕국에서 나를 원해요. 이제 떠날 시간이에요.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이 이미지들의 극장을 떠날 시간입니다. 내가 영혼의 안경을 통해 무엇을 보았는지 당신이 알까요. 나는 저 위 무한한 공간 속에서 오리온의 버팀대를 보았고, 이 지상의 발로 남십자성 위를 걸었고, 빛나는 혜성처럼 무수한 밤을 가로질러갔고, 별들 사이의 공간, 쾌락과 두려움을 가로질러갔고, 또한 나는 남자이자 여자, 노인,소녀였고, 서양 세계 수도들의 커다란 대로에 모인 군중이었고, 우리가 평온함과 지혜를 부러워하는 동양 세계의 온화한 부처였고, 나 자신이면서 동시에 타자들, 내가 될 수 있었던 모든 타자였고, 명예와 불명예, 열광과 쇠잔함을 알았고, 험준한 산들과 강들을 가로질러갔고, 평화로운 양떼를 보았고, 머리 위로 햇살과 비를 맞았고, 타오르는 여성이었고, 길에서 노니는 고양이였고, 태양이자 달이었고, 모든 것이었습니다. 삶이란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제 충분합니다. 사랑하는 안토니우 모라. 내 삶을 산다는 것은 바로 무수한 삶을 사는 것과 같았어요. 이제 피곤해요. 내 촛불은 소진되었어요.

_ 안토니오 타부키,『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

 

우리는 더 이상 '기억 속의 한국'에 머무를 수 없다. 어둡고 불편한 기억이 순서없이 등장하는 낯선 꿈처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풍경들과 얼굴들이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중심이 없는 풍경들과 익명의 얼굴들.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는다. 우린 속수무책으로 그 풍경을, 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 보면 문득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 풍경이, 얼굴이 전하려는 바는, 우리가 그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그 시간 속에 머무르길 바란다는 것이다.

_ 김은산,『기억극장』

 

우리에게는 공동의 빛이 있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빛은 우리가 태어나기 아주 오래전에, 아주 오래전부터 여기 살고, 죽고, 살고, 죽고, 살고, 죽어간 모든 사람들의 눈빛이 담긴 빛이야. 그 모든 눈빛을 기억하는 빛이야. 푸른빛이 감도는 모닥불. 그 주위에 가득한 어둠. 어둠 속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동자. 영원히 잠긴 눈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눈빛을 기억해

_윤해서,「우리의 눈이 마주친다면」,『제7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행복의 과학』

 

11. 15

죽음이 하나의 사건이 되는, 모험이 되는 때가 있다. 그런 때 죽음은 운동을 일으키고, 흥미를 자극하고, 긴장감을 깨우고, 행동을 하게 하고, 마비를 일으킨다. 하지만 죽음이 더는 사건이 되지 못하는 그런 날이 온다. 그때 죽음은 그저 일정한 시간의 연장, 딱딱하고, 뻔하고, 특별한 것도 없고, 지루하고,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일 뿐이다. 진정한 슬픔은 그 어떤 내러티브의 변증법보다도 강력하다.

_ 롤랑 바르트,『애도 일기』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9-03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3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3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3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7-09-04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런 휴식... 정말이지 딱 하루만 누리고 싶네요. 흑흑
<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의 문장이 좋아 보관함에 담아 봅니다. 책장에 꽂혀만 있던 <불안의 책>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syo 2017-09-04 07:13   좋아요 2 | URL
저도 불안의 책 꽂아놓기만 하고 하루하루 불안해하는 중입니다.....
 

 

 

장서의 괴로움 / 오카자키 다케시 /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처음 이 책이 발매되고 도서관에 입고되었을 때, 한동안 서가에 꽂힐 새가 없을 정도로 불티나게 대출되더라. 처음에 나는 좀 놀랐다. 세상에, 장서의 괴로움을 공감할만큼의 고수들이 이렇게나 많단 말인가? 아니 잠깐, 그런 사람들은 책을 빌리는 게 아니라 사서 볼 텐데, 아니 잠깐잠깐, 그럼, 책을 사서 보는 사람들이 빌려 보기로 마음먹을만큼 이 책이 별로라는 말인가? 뭐 대충 이런 식의 되먹지 못한 논리의 흐름에 휩쓸려 그만 이 책에 대한 관심을 정리했던 것 같다. 3년 전이다.

 

엄청 재미있을 것 같은 소재(최소한 의욕적인 알라디너라면 그렇게 생각할 공산이 크다)로 쓴 책을 막상 읽어보니 그저 소소했을 때, 리뷰어는 난감하다. 칭찬하기도 부끄럽고 욕하기도 뻘쭘하고, 칭찬거리가 오히려 단점을 부각시키고 마는 희한한 상황. 게다가 남의 나라 남의 책 이야기라서 한층 더 재미없다. 문장은 더 문제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고, 쓰기도 한다는 사람의 글 치고 어쩐지 문장에 매력이 없고 재미도 없다. 몇 군데 오자를 발견하는 바람에 혹시 이게 번역가와 편집자의 문제는 아닐까 싶은 의심도 든다. 무엇도 확실하지는 않다.

 

내용의 절반이 책이 너무 무거워 집 무너지거나 무너질 뻔한 이야기인데, 나는 저런 막장까지는 가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과 그러나 저런 막장 인생이라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복잡하게 뒤엉킨다.

 

다른 책들도 떠오른다. 윤성근의 책은 재미 면에서 이 책이 지닌 단점들을 모두 극복하고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은 스케일 면에서 이 책은 물론 독자까지 압도하는 데가 있다.

 

 

 

 

 

길 위의 인생 / 글로리아 스타이넘 / 고정아 옮김 / 학고재

 

특수성과 보편성이라는 양 극단의 두 우물이 있다고 치자. 한 번은 이쪽 우물에서 빨간 물을, 또 한 번은 저쪽 우물에서 파란 물을 길어야 한다면 얼마나 난망할까. 그런데 이 책은 또 그걸 한다. 그 양쪽 우물에서 빨간 물과 파란 물을 동시에 길어내는, 우리가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책들 중 하나다. 평생을 길 위에서 보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길 위에서 만난 무수한 사람들의 주옥같은 이야기들은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 책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결코 얻을 수 없었을 특수성의 보석이다. 또한, 한 사람의 인생은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 그들과의 교감과 충돌로 빚어진다는 보편적인 지혜도 들려준다.    

 

나는 길에 오를 수 있다. 집에 올 수 있으므로. 나는 집에 올 수 있다. 자유롭게 떠날 수 있으므로. 존재의 모든 방식은 다른 사람의 현존으로 가치가 더 빛난다. 캠프 치기와 계절 따르기 사이의 이 균형은 아주 오래된 동시에 아주 새롭다. 우리 모두 두 가지 다 필요하다.

 

아버지는 오로지 길의 기쁨을 위해 혼자 죽는 편을 택할 필요가 없었다. 어머니는 집을 갖기 위해 자신만의 여정을 포기할 필요가 없었다.

 

나도 그렇다. 당신도 그렇다. (414-415)

 

앞으로 50년이 더 지나, 내가 걸어온 길, 만나온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을 때, 내가 이 책의 절반, 혹은 그 절반의 가치라도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선, 지금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꼼꼼히 듣고, 자세히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위대하고 찌질한 경제학의 슈퍼스타들 / 브누아 시마, 뱅상 코 / 권지현 옮김, 류동민 감수 / 휴머니스트 

 

 나는 비꼬는 책을 싫어한다. 그러나 제대로 비꼬는 책은 사랑한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

 

지식의 교수대가 있다면, 가장 먼저 마셜의 머리를 건 다음 파레토, 발라, 제번스 등 신고전학파 일당 전체에게 벌을 줄 것이다. 당시에도 이미 낡았던 가설(오늘날에는 오죽하랴.)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실 세계를 정의하는 것은 경제의 균형, 이를테면 공급이 수요에 다가가거나 수요가 공급에 다가가면서 추는 배꼽춤이라고 믿었다.

 

이 책을 통해 지식을 얼마나 얻을 수 있을는지가 채점기준이 된다면 득점에는 독자의 수준과 입장에 따라 논쟁이 붙겠지만, 일단 재밌다! 나보다 6살이나 어린 친구가 그렸다는 만화는 정말 뭐라고 칭찬해야 할지 말을 못 고를 지경이다.『자본』의 귀퉁이에 조그맣게 스마일을 그려넣고 있는 맑스의 저 표정을 좀 보라지! 그림은자본』이 그야말로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제대로 비꼬고 있다. 만화 속 맑스는 예언자다! 그의 염려대로자본』은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지만 실은 출간된 후 150년 동안 진짜로 읽은 사람은 전 세계를 탈탈 털어도 열두 명, 좋게 봐줘도 열 세명 뿐이며 향후 10년 안에 읽기만 하면 그 사람이 곧바로 열 네번째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추측되는 비운의 책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저러나, 그간의 정황으로 미루어보건대, 어쩐지 나는 맑스를 그린 그림에 페티시가 좀 있는 것 같다. 저 지맘대로 수염 하며, 저 결코 가려지지 않는 배 하며. 하악하악.....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 권김현영 외 / 교양인 

   

이 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마르크스는 상품의 가치를 그 상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에서 찾아냈다. 노동자의 임금 또한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노동력이 하나의 상품이라고 하면, 그 노동력을 만드는데 필요한 것들의 노동시간의 총량을 임금으로 보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노동력의 재생산'이라 불렀고, 노동자가 노동력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물적, 정신적, 교육적 여건들의 가치를 노동력의 가치로 본 것이다. 근데 이때, 아내가 제공하는 가사노동을 노동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즉 노동력을 재생산하는데 필요한 가사노동의 가치를 매기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임금 전체가 낮게 책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이놈의 여편네가 집에서 빈둥빈둥 하는 것도 없으면서 서방이 왔는데 밥도 안 내놔, 라는 개소리를 할 권리가 있다는 지독한 오해를 획득한 대신 임금의 일부에 손실을 보게 된 제 발 찍기식 실책이 아니었나 하는 것이다. 오독일 수 있다. 거친 결론일 수도 있다. 깊이 공부해 본 적이 없으니 자신이 없다.

 

어쨌든 이런 생각을 친구놈에게 말했다. 친구놈은 주류경제학의 입장에서, 가사노동은 딱히 그 가치를 측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나는 측정하기 힘든 것이 아니라 측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놈은 그렇다면 책정된 가사노동의 대가는 누가 지급해야 하냐고 말했다. 나는 임금 자체가 가사노동을 배제하여 부족하게 책정되어 있으므로 임금 상승이 수반되어야겠지만 최종적으로는 가사노동이라는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구놈은 그렇다면 그것이 돈이 오가는 계약관계랑 다를 것이 무엇이냐며, 가족이란, 결혼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알았다. 부셔야 할 것이 곳곳에 있다. 낭만적 결혼에 대한 가부장적 환상. 사랑은 대가가 없는 것이므로 돈이 오가면 오염된 것이라고 보는 맹목적인 헌신의 사랑관. 정신차려야 한다. 그럴 이유가 없다. 인간이 만든 모든 관습은 절대 공평하지 않다.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관습으로 고정될 이유가 없다. 관습이 전통이 되었다는 것은 보편성을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기득권 세력의 통제력이 그만큼 강하다는 이야기이다. 전통이 문화가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인정해주어야 할 절대적인 가치가 발현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 세력의 통제력이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그들을 감추는 투명망토가 되었다는 뜻이다. 많이 읽어야 한다. 날카롭게 보아야 한다.  

 

    

근육을 사용해야 걷거나 달릴 수 있듯이, 이론이 있어야 우리는 모든 것을 집어삼켜버리는 현실의 중력에 대항해서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다른 것이야 말로 '새로운 것'이다. 중력을 거스르기 위한 힘, 이것이 바로 근육의 쓸모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론은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을 찾아내는 관점을 뜻하기도 한다. (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9-03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정말 좋은데 좋다고 표현하는 일이 어려워요. 책을 읽다보면 좋다고 느끼게 되는 특별한 이유가 없을 때도 있어요. 좋으면 그냥 좋은거죠.. ㅎㅎㅎ

syo 2017-09-03 09:18   좋아요 0 | URL
전 이유 여하에 상관없이 책이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대놓고 표현하는 편인데, 문제되는 지점은 아무래도 한 책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할 때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