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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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면가왕에서 하현우나 소향이 연승을 달리고 있던 시절, 관련 기사에는 항상 이런 취지의 댓글이 달려 있곤 했다. "한국 사람들, 음악 들을 줄 몰라서 저렇게 고음이나 빽빽 지를 줄 알면 그냥 노래 잘하는 줄 알고, 진짜 음악을 몰라. 저게 무슨 노래야. 기인열전이지. 노래는 감정이야 감정. 曰曰." 


누가 정했나, 노래는 감정이라고. 누가 정했을까, 이건 진짜 음악이 아니고 저게 진짜 음악이라고.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가서 힘들고 외로운 순간 순간 소향의 홀리홀리한 노래를 들으며 치유받곤 했다. 간부에 까이고 선임은 깝치고 후임은 깝깝해 하루 종일 빡쳐 있다가도, 소향이 부른 'O Holy Night'를 듣고 나면, 그래 이 먼지 같은 일들에 일일이 분노하는 작은 사람 되지 말자, 세상은 이렇게나 넓고 높고 성스러운 것을- 하고 마음이 활짝 열려, 까이건 깝치건 깝깝하건 간에 우린 모두 하나, we are the world, 하게 되는 것이다. 그 환희의 순간들이, 희열로 가득 찬 하나됨의 기쁨이, 마치 신탁처럼 나를 그 기쁨으로 인도한 노래가, 다 진짜가 아니라고? 솔직히 조금 울기도 했는데?


"나는 이런 건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해." 혹은 "나한텐 저런 건 음악이 아니야." 라고는 할 수 있는 문제지만, "이건 음악이 아니야." 라고 할 수는 없는 문제다. 당신의 마음 속 진짜 음악은 오롯이 당신의 것이지만, 그냥 '음악의 정의'는 공공재다. 당신의 일기장에, 당신의 블로그에 당신이 생각하는 음악에 대해 A4 700장 분량의 논문을 쓰는 것은 당신의 자유지만, 위키피디아를 고친다면 쓰고 싶은대로 막 쓰면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이런 하찮은 이야기를 서두에다 두서 없이 깔아놓는 이유는, 아마 지금부터 syo는 책 한 권을 깔 것 같은데, 까는 일은 항상 까부는 일이고, 일단 까불다 보면 항상 한없이 까불게 마련이라서다. 설사 이 뒤에 이어지는 글들에서 syo가 공공재인 '시의 정의(定義)'를, 더 나아가 역시 공공재인 '시의 정의(正義)'를 건드리는 듯한 표현을 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다만 syo의 취향과 개인적 정의(定義 & 正義)일 뿐임을 미리 밝히기 위해서이다.


 


2


내가 '은유시인'이라고 부르는 작자들은, 시를 쓰기 위해 은유하는 게 아니라, 은유하기 위해 시를 쓰는 것 같은 무례한 시인들이다. 이름도 대려면 몇 댈 수 있다. 최근에도 한 권 발견했다. 이들의 은유는 '원관념', 그러니까 은유를 통해 빗대어 나타내는 실제의 대상을 독자에게 환기시키지 않는 듯하다. 후려쳐서 말하면, 아무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고,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은유가 무슨 말로도 독자에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물론 잘 된 은유인데도 독자가 무지하여 원관념을 캐치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은유라면 그런 순간에도, 잘은 모르겠지만 이 시가 뭔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자체는 가질 수 있게 한다. 독자 똥으로 보지 말자. 시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시가 문자 이전부터 존재해 온 인류 최고(最古)의 서사 양식이라면, 평생 시집 다섯 권 채 못 읽고 무지개 다리 건널 대부분의 평범한 독자들도 호모 사피엔스적 감각만으로 직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던져야 한다. 최소한 내가 무지해서 그렇다는 자책감 정도는 달라는 것이다. 그게 안 되면, 그냥 자신의 언어조작능력을 과시하고 싶어 똥폼을 부리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syo는 '은유시인'을 멸칭으로 쓰는 것이다.




3


이 책은 네 가지 요소의 복합체다.


하나, '은유'를 은유하는 무수한 말들.


둘, 시집 뒷꽁무니에서 출몰하곤 하는 시 해설들.


셋, 다독가인 지은이가 여기저기서 읽어 온 지식의 파편들(인간 게놈, 감정은 편도체/단어는 측두엽/시각자극은 후두엽, 은하의 속도는 시속 100만 마일, 세계를 지배하는 여섯가지 수, 기타 등등 굳이 왜 은유를 설명하는 책에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참 많기도 많다. 이것도 하나의 은유일까?)


넷, 오, 이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은유인가! 아, 저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것은 또 어떻고! 쪼오오기 저어어쪽 것도.....




4


본문의 한 부분을 따라가 보자. 괄호는 이 부분을 읽던 syo의 마음의 소리다.


시는 언어 놀음이고, 항상 그 놀음 이상이다(좋지 좋아. 그렇고 말고.) 시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말함이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불행에 이름을 부여하고 그걸 호명한다(아, 암만, 그래야지. 시가 안 그럼 누가 그러겠어.) 시는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울려나오는 메아리고(음..... 그.....렇지? 없음과 있음 사이..... 음음.) 뇌의 전두엽에 내리꽂히는 우레며(전.....전두엽.....) 모든 물질에 작용하는 메타과학이고(메타....뭐?) 형이하학의 형이상학이다(네? 예?) 시의 본질은 우연성이고, 이것은 무상성에서 확고한 지지를 자아낸다(.......) 그런 맥락에서 시는 만듦이고 낳음이며, 위함이고 이룸이다(....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관자재보살....) 인간 내부의 구멍이고 그 구멍 속에 사는 신이다(제발....이제 그만.....) 시인은 항상 외부 세계, 멀리 있는 다른 우주의 신과 소통한다(살려줘요! 아님 차라리 죽이시든가....) 그래서 시는 때때로 낯선 신의 알아듣기 힘든 방언이기도 하다(아! 맞아! 정말이야! 지금 딱 그래.....)




5


은유를 설명하는 책은 위험할 수 있다. 지은이가 이육사의 <절정>에 들어있는 은유를 풀어내는 대목을 보자.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절정>의 원문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칼날"이 "강철"에 연접하며 날카로움과 강밀도가 높아지는데, 이는 속화된 현실과 단절하려면 단호한 결기와 강단이 필요함을 암시한다.


특히 "겨울"이라는 시련을 딛고 홀연히 피어난 "강철로 된 무지개"는 무릇 정신을 초극하며 높이 솟구친 범상치 않은 경지를 가리킨다.


이육사가 그토록 되고자 하는, 닿고자 했던, 무른 마음과 발 디딘 현실의 속됨을 떨치고 솟구쳐 일어나는 영웅적 품성의 고결함을 가리키는 고원, 매화향기, 백마, 초인 따위와 연접하며 .... (35- 36)


눈 밝은 분들은 지금 이 대목을 보고, 이건 아마 지은이가 십수 년째 지적받고 있는 학교 시 교육의 문제점을 환기하기 위해 교사용 참고서의 일부분을 인용하는 게 아닐까, 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런 거 아닙니다. 이 글은 이 책의 전반에서 펼쳐지고 있는 지은이의 시 해석 양상이다. <절정>이 아무리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적은 시라고 해도, 이렇게 시 해석을 확정해 버리면 어쩌자는 말일까. 심지어 제도권 교육에서 해석하는 방식과 아무런 차이도 보여주지 않고. 평론집은 평론가가 '자신의 해석'을 드러내는 책이니 또 모를 일이지만, 이 책은 평론집이 아니라 인문서인데? 이러면 이 책은 '은유의 힘'이 아니라 '내 (장석주) 은유의 힘'이 되는데.....


요컨대, 책의 기획 자체가 아슬아슬하다는 말이다. 물론 지은이가 해석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은유를 사고하지 말라는 말은 책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지은이가 은유의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뭇 감탄이 섞인 어조로 좋은 시들의 좋은 은유들을 차근차근 풀어헤쳤을 때, 나는 거기서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았다. 아름다운 시들을 더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암호를 해독하듯이 시의 목을 따고 배를 가르고 뼈와 살을 발라 먹어야 했던 암담한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6


더 큰 문제를 하나 지적하고 싶다. 다소 비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꼭 말하고 싶다. 25쪽이다.


월트 휘트먼은 한 아이가 풀잎을 따와서, 이것이 뭐예요? 라고 물었을 때, "내 기분의 깃발, 희망찬 초록 뭉치들로 직조된 깃발"이라고 말한다. 이 멋진 은유들이라니! (25)


난 이 부분을 보고 월트 휘트먼이 미쳤나 했다. 이 위대한 시인 양반아, 지금 당신 앞에 서 있는 그 불쌍한 아이, 표정 봤어? 아이의 손에 힘이 풀려 팔랑팔랑 떨어지고 있는 그 풀잎이 안 보이냐고. 그리고, 이 마당에 멋진 은유라굽쇼?


나는 나름 마르크스주의자지만, 시인들이 부르주아와 자본주의의 악당 군상들을 문학으로써 처단하고, 프롤레타리아들의 혁명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예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0만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도, 300이 넘는 죄 없는 목숨들이 이유 없이 가라앉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이 서정에 움직인다면 서정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시인들은 대부분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이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울 것이다.) 사회가, 세상이 당신을 호명한다고 느끼지 않았다면, 당신은 당신만의 은유를 마음껏 뽐낼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세상이 당신을 호명했다면, 세상이 아니라 작은 아이 하나라도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당신에게 질문을 던졌다면, 그리고 그 부름과 질문을 당신이 인식했다면, 당신은 거기에 대답해야 시인이다. 


아이는 휘트먼에게 풀잎을 물었다. 그런데 휘트먼은 아이의 질문을 이용해 자신의 기분과 희망을 대답했다. 이것이 아이에게 대답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위험한 시인이 될 수 있다. 물음을 가볍게 뛰어넘는 자신만의 대답을 준비하는 자들, 누가 무얼 묻든 자신이 대답하고 싶은대로 대답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을 보유한 자들, 능력이 권한을 준다고 착각하는 자들, 그리고 그 언어 능력을 지닌 스스로에 감탄하고 자부심을, 나아가 우월감을 느끼는 자들, 그런 자들의 마음 속에 더러운 욕망과 권위의식이 함께 깃들 때, 그들이 은유와 은유를 팔아 쟁취한 문화권력을 동원하여 애꿎은 여성들과 순수한 문청들에게 어떤 일들을 저질렀는지 우리 일반 독자들도 이제 알만큼 안다.


시인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에 대하여 시인이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부분이 물론 있긴 하겠지만, 때로는 시인의 입에서 나왔으므로 시인이 아닌 이들에게는 그저 허튼소리로만 들리는 것들도 있다. "국회의원은 국민 여러분의 뜻을 잘 받들고 국민 여러분을 대신하여......" 라고 말하는 자들은 국회의원과 국회의원 워너비들 뿐이다.


시인은 시인에 대해서 말하는데, 시인이 아닌 사람들은 시인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이 별 것 아닌듯 보이는 틈이 우리 사회에서 시의 시간이 저물어 가는 현실과 과연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

  



7


엄청 까 놓고 이런 말로 급 마무리 하기가 웃기긴 해도, 사실 이 책은 좋은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은유로 밥벌이 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가 한 평생 살면서 은유에 관하여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을 훌쩍 뛰어넘는 막대한 양의 정보가 함유되어 있다는 것이겠다. 그러나 이 책이 진짜 의미를 발휘하는 곳은 시인의 책장도, 시를 읽지도 쓰지도 않는 이의 책장도 아니라, '시인'은 아니지만 시를 쓰는 사람들, 항상 은유를 궁굴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은 은유를 찾아 시집을 뒤적이는 syo같은 만년 문청의 책상 위가 아닐까 한다.


퀄리티로 별 네 개, 이것저것 지적하면서 한 개 뺐다가, 장석주 작가를 향한 사랑에서 별 한 개가 태어나 결국 네 개로 마무리. 알라딘 세상 제일 공신력 떨어지는 Rotten Syomato 신선도 85%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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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7-09-08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살아 팅팅거리는 글빨~ 즐겁게(?) 읽었습니다. ^^

syo 2017-09-08 22:57   좋아요 0 | URL
^^ 저도 즐겁게 썼는데, 즐겁게 읽어주셨다니 더할 나위가 없네요.

독서괭 2017-09-0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점이 네 개인 걸 보고 나서 읽어내려가는데, 오호! 역시~ 그렇구나! 이책은 읽지 말아야겠구나... 하다가 잠깐, 내가 별점을 잘못 봤나? 하고 다시 확인했습니다ㅋㅋ
교과서가 생각난다는 지적 때문에 역시 안 읽을 것 같네요. 알쓸신잡에서 김영하씨가 우리나라 문학교육의 문제를 지적하며 한 농담이 생각납니다. 상사의 숨은 의중을 파악해야 하는 사회생활에 대비하기 위한 교육이라면 제대로 하고 있는 거라고..

syo 2017-09-09 12:04   좋아요 0 | URL
네 ㅎㅎㅎ 저는 별을 4개 주었으나, 다른 어디 추천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드는 책이네요.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이나 몇 개 읽는 게 더 남는 장사겠습니다.

다락방 2017-09-11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격렬하게 깠지만 별 네 개 주는 마음, 저도 뭔지 알아요. 마찬가지로 격하게 사랑하지만 별을 네 개밖에 못주는 마음 같은 것도요. 그리고 정말이지 이 글은 씐나게! 읽었습니다. 고백하자면,

4번 읽으면서 ‘그만 읽을까..‘를 고민했고요,
6번 읽으면서 빡침이 몰려왔습니다.

아이가 풀잎을 물었는데 저렇게 대답하면, 아이로서는 읭???????????????? 하게 되는거지요. 자기 기분 표현할 줄만 알지 아이의 기분에 대한 공감은 떨어지는 시인이란 사람... 싫다.......

그런데 쇼님, 리뷰 재미있게 잘쓴다. 진짜 날이갈수록 글 실력이 늘어가네요!! >.<

syo 2017-09-11 11:30   좋아요 0 | URL
글실력이 는 것도 있겠으나, 원래 입진보가 제일 잘하는 게 까는 겁니다. 할줄 아는게 그거 밖에 없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지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