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르난두 페소아,『불안의 책』을 올해의 첫 책으로 정하고 읽기 시작하다.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집안의 노동자』를 조심스레 읽다.
오민석,『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를 흥얼거리며 읽다.
미셸 푸코,『담론의 질서』를 꼴랑 20쪽 읽고 집어던졌다가 쭈뼛쭈뼛 푸코에게 사과하고 다시 책꽂이에 꽂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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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참 불쌍하다. 나잇값 한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 겨우 본전치기 한다는 뜻이고, 그 이외의 경우에 나이라는 단어는 대체로 부정적인 대사에 동원되며 부정적인 말 속에서 알록달록하게 변주된다. 그 나이 먹도록, 그 나이 먹고서, 나이 먹었다고, 나이만 먹으면, 나이를 똥구멍으로 먹었나. 실은 알아서 떠먹여 주는 것이라 입을 꾹 닫고 있어도 나이는 피부가 먹고, 아랫배가 먹고, 연골이 먹고, 머리숱이 먹고, 머리 색이 먹고, 똥구멍이 먹고, 지들이 알아서 다 쳐먹는다. 특히 똥구멍.
지금 논쟁과 전쟁 사이 어디쯤 있어 보이는 어떤 충돌이 알라딘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데, 역사가 짧은 syo는 이곳에 터잡고 이런 논쟁을 처음 만났다. 두 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나 없었나 아무 것도 모르는 syo가 한 분이 쓴 글에 댓글을 하나 달았는데(심지어 거기다가도 사정을 모른다고 써놨다......), 다른 분 글에 언급이 되었길래 거기에 가서 글을 좀 읽다가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얼굴이 다 붉어졌다. 사실 syo의 좌우명은 "좌우명 좀 그만 만들자"인데, 그런 좌우명이 나오게 한 무수히 많은 좌우명 가운데 큼직한 하나가 "모르고 깝치지 말자"다. 이놈은 좌우명 사전에 등록된 지 벌써 오래라 syo와 아주 친숙한 사인데, 알고 지낸지 꽤 되었다고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 오냐오냐 했다가 제대로 발등을 찍은 꼴이다.
자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을, 그것도 무슨 사정인지 하등 모르는 상태에서, 닉네임이 직접 적시된 특정인을 조롱하거나 희화화하는 걸로 읽히는 댓글을 남기는 것은 나쁜 짓이다. 게다가 그 일에 대해 특정한 견해나 의도를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글을 쓰는 것은 멍청하기까지 한 짓이다. syo가 시종일관 욕하던 그 한심한 놈이 거울 안에 있다. 새해 벽두부터 똥구멍이 나 몰래 내 나이를 훔쳐먹었음을 알았다.
syo는 문빠를 비난하는 사람과 내가 문빠다 하며 참전하는 사람이 정의하는 두 "문빠"가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몇 번 언급하는 일이지만, 지난 대선기간 정의당을 가장 아프게 때린 사람들이 문재인 후보의 지지자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과하다고 생각한 적도 꽤 있다. 그러나 syo는 그들을 비난, 심지어 비판할 자격도 없다. syo는 곰발님이 좋다. 곰발님이 쓰시는 글의 겉과 속이 다 좋다. 물론 지금도 syo의 글은 후지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모자란 놈일때부터 곰발님의 글을 선망하면서 손을 놀렸다. "곰빠"라 해도 부인하지는 못할 상태인데, 그러다보니 평소에 달던 장난스런 똥댓글을 아무 생각 없이 남겨 잘 알지도 못하는 신지님을 조롱한 셈이 되었다. 신지님은 자신의 글에 반대를 표현하거나 비판, 비난하는 것은 괜찮은 일이라 하셨는데, syo가 댓글을 남긴 시점엔 신지님의 글을 1도 읽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이 syo의 쓰레기성을 증명해 주는 지점이다. 비판이나 비난의 의도가 전혀 없었지만, 그건 욕을 더 먹을 이유지,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두 분 사이에 벌어진 일은 syo가 어떤 견해를 가지고 의견을 보탤 일은 아닌 듯 하다. 그러지도 않았지만. 아직도 두 분 사이에 오가는 일이 뭔지, 그 뒤의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syo는 모른다(알 필요도, 알 생각도 없다). 바로 그 '모른다'는 게 죄목이다. 신지님께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죄송합니다. 아무 생각도 없었고, 악의도 없었지만, 그래서 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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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똥구멍이 내 나이는 훔쳐먹었지만 어쨌든 신림동에 위치한 한 고시원에 무사히 안착하여 서울에서의 두 번째 낮을 맞이했다. 어제는 남산에 기어올라가 책 여섯 권을 빌려 돌아왔다. 오르막을 깡총깡총 뛰어 오르는데 허파가 이럴바엔 차라리 담배를 피라며 앓는 소리를 냈지만 오랜만에 허파랑 대화를 해서 마냥 좋았다. 눈이 온 뒤라 길바닥이 위협적이었는데 익스트림해서 마냥 좋았다. 여전히 서울 버스는 밀도가 장난이 아니고, 검은 롱패딩의 육방향 입체 공격에 마치 침대차라도 탄 것처럼 푹신푹신하게 집까지 올 수 있어서 마냥 좋았다. 대구였으면 수십 개의 쌍시옷을 투척했을 상황에도 여기가 서울이라 마냥 좋았다. syo는 복잡한 게 싫다. 그렇지만 복잡한 서울은 좋다. 사람 많은 게 싫다. 그렇지만 사람 많은 서울은 좋다. 자본주의가 싫다. 그렇지만 자본의 심장 서울은 좋다. 미친 놈 아냐,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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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알라딘의 독서왕 시이소오님이 2017년의 독서왕으로 syo를 지목하셨다. syo는 재빨리 부정한 다음 독서왕 대신 '독서이조판서' 정도에 봉해 주실 것을 제안했지만 시이소오님께서는 이를 겸손 떠는 걸로 받아들이신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 syo가 아는 범위 안에서도 syo는 2017년의 독서왕이 아니다. 깐도리님께서 1300권 넘게 읽으셨다고 밝히신 바, 페이스가 1000권 페이스지 실제로는 700권 남짓밖에 읽지 못한 syo를 자꾸 높이시면 이거 쥐구멍 뚫게 드릴이라도 사와야 하는 판이다. 심지어 그 분은 꼬박꼬박 리뷰 페이퍼도 쓰신다......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다른 분들이 syo에게 어떻게 그리 많이 읽었냐고 하실 때마다, 정말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나처럼 백수라면, 친구도 돈도 없어서 책 빌려 보는 게 낙인 생활을 하다보면, 저 정도는 읽어질텐데, 왜들 이렇게 놀라시는 거지? 그러나 1300권의 거대한 파도 앞에 섰을 때, syo의 떡 벌어진 입에서 자동으로 이런 말이 나왔다. 와, 어떻게 저렇게 많이 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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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녁이다. 다시 책을 좀 읽고, 어제 만든 방정식, "고독한 서울 생활 + 신년 = 독거 노인 생활"을 기념하여 혼닭 한 마리 해야겠다. 이웃님들의 가정에도 복이 충만하고 치킨이 풍만한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독서하는 피조물'이다. 단어를 섭취하고, 단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단어가 존재의 수단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단어를 통해 현실을 파악하고, 자아도 확인한다.
_ 알베르토 망구엘,『은유가 된 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