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이 나라는 사실을 추호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시절과, 그 시절을 거치며 거칠게 쏟아 내놓은 많은 말들 중 몇몇이 아직도 기억난다. 우연히 마르크스와 라캉을 만나고, 뒤적거리고, 열었다 닫았다 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는, 사회와 언어에 포획된 인간으로서, 내가 살아가는 일이 그저 내 안에다 나를 풀어 놓고 먹여 키우는 과정으로 치환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예컨대, 나의 글을 읽기 위해서는 활자가 된 내 생각덩어리도 있어야겠지만, 언어라는 규약과 규범이 없으면 활자는 그냥 얼룩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의 생각이 저장되는 곳은 내 머릿속이나 내가 써 놓은 글이 아니라 언어라는 큰 망 그 자체는 아닐까? 내가 쓴 글은 언어를 따를 뿐 아니라 언어에 파문을 일으키면서 내 글과 다른 이들의 글과 규약과 규범이 모두 그 위에서 춤을 추는 거대한 언어망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글을 써야 할까.


어쩌면 인간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나는 내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밖에 있는 내가 내 안의 나와 다르다면 그것은 바깥이 나를 오해한 것으로 치부하고 고집스레 내 안의 나를 주장하고 말 일은 아니다. 바깥은 내가 가진 한 가지 양태를 되비추는 거울이며, 내 안에다 내가 세워 놓은 나 또한 그저 나의 한 가지 양태일 뿐임은 마찬가지다. 바깥이 절대로 알 수 없는 내가 있지만, 내가 나라서 나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나도 있다. 얼룩덜룩한 덩어리로 뭉쳐진 이 모든 나는, 내 안이 아니라 인간의 망 안에 있다. 내가 누구와도 섞이지 않고 살겠다고, 어떤 말도 글도 밖으로 꺼내놓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산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내 존재는 모든 방식으로 인간의 망에 요동을 일으키고, 인간이라는 개념 전체의 위치를 약간이나마 이동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



171112-171129 32권



1.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 희한하게, 한 권의 책 안에서도 뒤로 갈수록 말이 재치있고 문장이 괜찮아진다. 내용 적당히 있고, 재미 적당히 있는 적당한 소설이다. 사람 사는 게 그렇지, 하고 쓴웃음 한번 싹 짓고 나면 끝나는 소설이다, 라고 처음에는 생각했는데, 오래 남는 진한 끝맛이 있다. 역시 쓴맛이긴 하지만,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끝맛.


2. 박이문의 서재

: 선생의 글은 높다. 높이 있는 것은 아름답지만 때로는 손에 잡히지 않아 아득하기도 하다.


3.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소로의 전기로 이름 높은 것들이 많은데, 번역 된 것이 없는 듯 하다. 소로 탄생 200주년을 맞아 결정판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을 좋은 전기가 한 권 등장했다고 한다. 얼른 번역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너무 빈약하다.


4. 월든

: 2017년까지 7번. 2018년에 8번째를.




5. 서민 독서

: 대놓고 웃자던 책에서는 그냥 편히 웃을 수 있었는데, 이 문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나 웃어야 하나 헷갈리게 만드는 주제와 엉켜들다보니 결국 이거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저거라고 하기도 찝찝스런 좀 허망한 책이 되고 만 것이 아닌지. 여전히 재미있기는 하다.


6. 지그문트 바우만을 읽는 시간

: 서평은 저자들이 각자 다른 책을 다뤘음에도 내용에 중복이 많다. 한 권에 묶일 예정이 없던 각각의 원고를 모아 책을 펴내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좌담은 바우만에 대해 모르고 보면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결국 책의 절반은 모르는 사람을, 나머지 절반은 아는 사람을 타겟으로 하기 때문에 결국 이거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저거라고 하기도 찝찝스런 좀 요망한 책이 되고 만 것이 아닌지. 그 와중에 강수미는 여전히 글을 잘 쓴다.


7. 공부할 권리

: 이 책을 '책 읽은 책'으로 읽으면 그저 한 다독가의 다소 섬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울 것도 없는 독서기로 끝나고 만다. 좀 더 가까이 끌어안기 위해 '책 읽는 책'으로 읽을 필요가 있겠다.


8. 시사인 531




9. 눌변

: 간결하다. 저 눌변의 '눌'은 어눌한 게 아니라 '눌'러 담았다는 이야기 같다. 아주 말을 꾹꾹 눌러 담아 길지도 현란하지도 않은 글로 책을 지었다.


10. 일요일의 역사가

: 일요일에도 이 정도면, 이 사람의 월화수목금토에는 도대체 무슨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11. 낭비사회를 넘어서

: 내구재 공유. 지나친 물질적 안락의 포기. 공감되는 이야기지만, 계획적 진부화의 악취가 자본의 아가리에서 나오는데, 소비자가 코를 막거나 숨을 참는 것에 앞서 자본을 후려 패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는가 싶다.


12. 물건의 탄생

: 턱을 한쪽 손에 딱 괴고, 다른 손으로는 권태롭게 페이지를 띡띡 넘기며 불량한 자세로 아무 생각도 없이 설렁설렁 읽기에 그만인 책이다.




13. 차마 하지 못했던 말

: syo는 저렇게 치열하게 20대를 건너오지 못하였기 때문인지 비루하게 살아가는 형편없는 30대지만, 저 거대한 피로와 희망공백의 파도가 syo를 못 본척 슬쩍 지나가 줄 리가 없기 때문에, 조심스레 함께 아프다.


14.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

: 진짜 빡세게 사는구나, 이 남자. 아, 우리에게 주진우 2호기와 3호기만 있었어도....


15.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 syo의 어릴 적 기억 속 보노보노는 도대체 알 수 없는 말들이 오가는 만화, 못된 너구리가 종주먹을 휘두르고 멍청한 주인공 해달놈은 땀방울을 중력 역방향으로 뻘뻘 흘리며 하염없이 얻어터지기만 하는 이유 없는 폭력과 약육강식의 만화였는데, 세상에, 알고 보니 해양생물버전의 어린왕자였구나.


16.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 21세기의 홍길동전이랄까. 21세기라는데 주목하면, 이번에는 우리가 힘을 합쳐 율도국을 한 번 만들 수 있을지도.




17. 좌파 이야기

: 우리 좌파는 저기 가면 중도 보수라더니만, 듣던 대로 본토의 좌파는 독하구만.


18. 타네 씨, 농담하지 마세요

: 프랑스 소설에 처음 관심을 갖게 해 준 고마운 작가가 장폴 뒤부아였다.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지경이지만, 분명 이 사람만의 한칼은 있다. 이건 그의 가장 좋은 책은 아니지만 가장 편한 책이겠다.


19. 내가 세계를 지배한다면

: 처음에는 아이들에게나 권할 만한 만화책이라고 생각했다. 읽고 나서 첫 번째로 깨달은 것은 syo가 아이였다는 것이다. 와, 본격 회춘 조장 만화책. 그렇다고 책 자체가 막 엄청 훌륭한 것은 또 아니다. 그래도 읽고 나서 확실히 깨달은 두 번째 지혜는, 아, 세계 지배도 피곤해서 못 해먹겠다는 것이다. 손이 너어어어어무 많이 가.


20.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노동의 이유를 묻다

: 포퍼와 함께 맑덕후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 중 하나로 손꼽히는 베버. 안 읽고 까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그 정도의 결함은 맑덕후의 과반이 실은『자본론』도 안 읽었다는 공공연한 비밀 앞에서 무색해진다. 청소년용 책이지만, 노명우의 필력이 어디 갈까. 




21. 서툰 감정

: 돈 주고 사서 보지 않은 게 이렇게 다행스러운 것은, 이 책이 필요없을 만큼 syo의 삶이 건강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syo가 건강한 삶을 사는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만큼 이 책이 필요없는 책이기 때문일까.


22. 다윈주의 좌파

: 마르크스가 부활하여 오늘날 다시 연구를 시작한다면 분명 150년 전과는 다른 말들을 많이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회관계의 총체라는 그의 말에 따라 내린 결론이다. 나 좌파요, 떳떳히 밝히고 살기 위해 더 넓게 읽어야겠다.


23. 판타스틱 과학 책장

: 목록의 책. 4장까지 다 읽기 힘들거나 귀찮다면, 이정모 소장이 쓴 1장만이라도. 개인적으로는 1장이 반 이상 했다고 생각한다.


24. 기억나지 않음, 형사

: 추리나 스릴러물을 몰입해서 읽지 못하는 편인데도 한 큐에 아작낼 수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반전 같은 거, 전혀 맞히지 못했다.......




25.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 과연 프랑스 철학자의 산문이라는 느낌을 팍팍 먹여주는 책. 걷는 것은 왼발이 땅에 닿으면 오른발을 떼서 옮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작은 일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300페이지를 채우는 아름다운 글들을 만들어냈다.


26.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 매력적인 제목과 표지에 끌려 읽었는데, 뇌과학을 살포시 발라 놓은 자기계발서 장르의 책이었다. 요지는 멍 잘 때려야 만사형통.


27. 좌파의 생각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나

: 좌파는 과연 말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말을 잘 한다는 것은, 이해와 재미를 동시에 안겨주는 사람에게만 붙일 수 있는, 특급 칭찬이야.


28. 칼 포퍼의『열린 사회와 그 적들』읽기

: 그냥 요약서에 불과하다. 불과한데, 사실 원전을 읽더라도 업자가 아닌 이상 이 요약서에 든 내용 이상으로 뭔가를 꺼내서 남은 평생 짊어지고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겠느냔 말이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다 보니,『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그냥 입문서 없이 바로 읽어도 슥슥 읽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읽어 보신 이웃분들의 조언을 구합니다.




29.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

: 이 책만 놓고 보면 다윈은 참 소박하고 평이한 그을 쓰는 사람으로 느껴진다. 겸손하고 고요하다. 자서전치고는 자기 이야기보다 주변 사람 이야기가 더 많은 느낌인데, 이게 더 매력적이다. 그에 관해서 알고 싶은 이들을 위해 2000쪽 짜리 평전도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조바심을 느낄 필요가 없다. 두려움을 느낄 뿐이지.


30. 에덴의 종말

: 생물종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란 참 못돼쳐먹은 종이다. 깡패도 이런 핵깡패가 없다. 공룡이 이 꼴 볼까봐 무서워서 일찌감치 멸종을 택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농업.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했거나 최소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가속화시킨 주범은 농업이다. 사실『사피엔스』가 있으므로 이 책은 그다지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31. 시사인 532


32. 경제 성장이라는 괴물

: 이런 제목이 붙었길래 경제 책인 줄 알고 빌렸더니 환경책. 뭐 경제랑 환경이랑 둘이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지만, 그래도 제목을 이렇게 붙이기 있기? 책 자체는 그냥 애들 보기 좋은 딱 그 수준. 역시 syo가 보기에 좋았다. 딱 그 수준.




책 참 많이 줄였다. 그래도 이렇게 읽으면 나, 100퍼센트 망한다. 망하면? 몰라, 망하면 지금처럼 백수로 남은 평생 빈둥빈둥 살면서 죽을 때까지 꾸역꾸역 한 5만권 읽다가 묘비에 "왔노라, 읽었노라, 그렇다고 뭐 별 건 없었노라." 새기고 가는 거지......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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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9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7-11-29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그랬듯이 반전 같은 거, 전혀 맞히지 못했다.

아 빵 터졌네요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7-11-30 06:57   좋아요 0 | URL
syo의 자랑스런 순진무구함. 반전 뭐죠??

수이 2017-11-29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멋져요 syo님

syo 2017-11-30 06: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근데 어디가......?

psyche 2017-11-30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험공부 시작하신다고 해서 책 읽으신 후기가 덜 올라오겠구나 했는데 여전히 많이 읽으시네요! 분명 시험과 독서 두 개를 다 꽉 잡으실거라 믿습니다

syo 2017-11-30 07:23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ㅎㅎ 그런데 두 놈 다 여간 까칠한 놈들이 아니라서...

북다이제스터 2017-11-30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대략 800권 읽는데 15년 걸렸는데요.
죽기 전 5천 권이라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ㅎ ㅎ

syo 2017-11-30 07:49   좋아요 1 | URL
저도 말만 저러는 거예요. 여차하면 만화책도 끼워넣을 심산입니다.....

단발머리 2017-11-30 0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나처럼
소개해주신 책들도 syo님 글도
좋아요~~
좋아요~ 누르다 syo님 좋아할 태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7-11-30 09:22   좋아요 0 | URL
그 태세 좋은 태세 ㅋㅋㅋㅋㅋㅋ

2017-11-30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졔졔 2017-11-30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월든 7번.... 우와... 월든 읽는 법(?) 좀 알려주시겠어요? 여러번 시도했으나 소로 선생이 절 받아주지 않아요ㅠ

syo 2017-11-30 18:35   좋아요 1 | URL
허어.... 굉장히 어려운 질문하셨네요. 저와 소로 선생은 첫만남부터 눈이 맞아가지고 백년해로 하기로 한 사이라...

cyrus 2017-11-30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윈의 성격이 실제로 겸손하고, 성품이 좋아요. 진화론에 대한 외부 비판을 경청할 줄도 알았어요. 다윈의 아내가 다윈의 연구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다윈도 아내의 공을 인정했어요. 아인슈타인과 많이 비교되요. 아인슈타인은 첫 번째 아내 밀레바의 지적 능력을 무시했어요. 밀레바가 자식들 보살필 때 두 번째 아내가 될 여자와 바람 피우고 다녔어요.

syo 2017-11-30 21:36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조만간 두껍한 펑전을 읽게 될 테니 그 양반 성격 한 번 속속들이 알아보겠습니다.

2017-12-01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2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2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7-12-04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나라서 나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나도 있다. -에 밑줄!!
언제나 그랬듯이 반전 같은 거 전혀 맞히지 못했다 - 저도 늘 그렇습니다... ㅋㅋㅋ

syo 2017-12-04 11:51   좋아요 0 | URL
제가 맞힐 수 있는 반전이 나오면 그게 저한테는 더 큰 반전처럼 느껴질 것 같아요....

2017-12-04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4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4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