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 금정연 / 어크로스
일기만 쓰다 질려 슬금슬금 서평의 영토를 넘보던 꼬꼬마 시절, 내 서평이 가야할 길을 탐색하기 위해 명망 높은 서평가들의 책을 뒤지곤 했다. 많이들 권하던 정희진 스타일은 멋있고 욕심도 났지만 어쩐지 냉엄해서 포기. 아무도 권하지 않던 장정일 스타일은 식음을 전폐하고 독서에만 매달리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음을 깨닫고 아, 이래서 아무도 안 권했구나 하며 포기. 비슷한 이유로 이현우 스타일 포기. 포기. 포기. 포기. 그렇게 포기로 배추 말고 책을 세는 것도 지쳐서 그만 포기하려는 찰나 운명처럼 금정연이 걸렸다.『서서비행』이 연이은 대출로 서가에 꽂힐 틈이 없었던 탓이니, 우리의 만남이 늦은 이유는 전적으로 금정연의 책임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사실 매우 좋았다. 내가 금정연의 글에서 발견한 매력 포인트는 빈정거림과 투덜댐의 통속적인 앙상블이었는데, 나 또한 또래집단 내에서 빈정거림으로는 아주 명망이 드높은 재야의 빈정거리니스트였으므로 아, 바로 이거다 싶었던 것이다. 물론 금정연의 글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기조는 "자조"지만, 그거야 뭐 나 자신을 빈정거리면 되는 거 아니겠어? 그리하여 나는 금정연 이미테이션, 금정연의 하위호환 기종, 양산형 금정연을 목표로 달리기 시작했다. 배'칠'수와 '너'훈아가 그 이름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내며 당당히 활동하듯, 언젠간 나도 당당한 금정'역'이 되어 사해에 명성을 떨치리라 이를 악물었다. 악물었으나 이는 한 달도 안 되서 느슨해졌다. 아무리 서평이랍시고 각 잡고 써도 끝내 일기나 자소서가 튀어나온다는 사실을 절감한 것이다.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심지어 지금 이 글도『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의 서평이라고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구러 오늘날 여기까지 왔는데, 사실 어디까지 온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는 나른하달지, 나태하달지, 어쩐지 슬그머니 늘어지는 매너리즘의 냄새가 나는데, 그건 나도 그래. 항상 매너리즘에 푹 빠져 있지(겨우 이 정도가 현재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빈정거림x자조 컬래버레이션의 최대치인 걸 보니 아, 아직 갈 길이 구만리임을 알겠다.....). 어쨌든, 여전히 금정연은 나한테 참 탐나는 글을 쓰는 서평가고, 솔직히 말하면 아직까지 금정역의 꿈을 완전히 버리진 못한 것도 같다.
어서오세요, 오늘의 동네서점 / 땡스북스 + 퍼니플랜 / 알마
내 기억 속 최초의 동네서점에서, 아버지가 3권짜리 만화 한국사 책을 사 주셨던 것 같다.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사줬겠지만 그걸 읽고 훌륭한 사람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히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혁명과 경제 업적을 칭송하는 내용이 막대한 분량으로 실려 있었을 테니까. 그런 시절이었다. 그 책을 다 읽었을 무렵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아버지는 그저 동향 사람일 뿐인 당신에게 뭐 하나 챙겨준 것 없다는 이유로, 아주 냉정하고 잔혹한 놈, 차갑고 인정이 메마른 시대라고 노태우와 그 집권기를 평가했다. 그리고는 당시 우리 나라에서 돈이 제일 많다고 여겨지는 노인에게 투표했는데,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었다던 그 노인 자신의 말에 따르면 노인은 아마 생애 최초로 실패한 것 같고, 그래봐야 시련의 경험을 1회 추가하는 데 그쳤겠지만, 우리 아버지는 또 대통령에게 콩고물을 받아먹는 데 실패한 셈이었다. 시련이었다. 실패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하여튼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이나 마나, 나는 좋았다. 동네에 서점이 있는 것은 큰 축복이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동네에 서점이 있는 것이 축복이라고 느낄 줄 아는 깨친 꼬맹이었다는 게 더 큰 축복이 아닌가 싶다. 그것도 역시 서점이 만들어 준 축복이었다. 책은 너무도 구하기 어렵고, 어린 아이 용돈으로는 침도 함부로 흘리면 안 될 물건이었으므로, 그저 책을 만져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막 행복하고 그랬다. 당시는 그런 시절이기도 했다.
그런 시절은 끝났다. 우리는 이제 어떤 책이건, 어디의 책이건 너무도 쉽고 간편하게 구할 수 있다. 얻기 쉬운 것은 얻지 않기도 쉬워진다. 언제나 얻을 수 있으므로. 얻기 쉬운 것은 버리기도 쉬워진다. 언제나 다시 얻을 수 있으므로. 얻지 않거나 버리는 데 부담이 없으면 이내 소중하지 않게 된다. 지금 당신의 등 뒤에 있는 책꽂이를 보세요. 사놓기만 하고 읽지도 않은 책이 무수히 많진 않습니까. 그러고도 당신의 장바구니는 여전히 새 책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습니까! 인정하자. 우리에게 이제 책은 소중하지 않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주변은 다 낡고 허물어져가는 공중 목욕탕이고, 다리엔 차꼬가 채워져 있고, 눈 앞에 있는 낡은 모니터 안에서 광대뼈에 회오리 모양을 한 인형이 음산한 목소리로 "너는 책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지." 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게 되어도 양심에 찔려서 차마, 이거 왜 이러십니까, 따져 볼 도리가 없을만큼, 우리에게 이제 책은 소중하지 않다. 그러므로 책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공간인 서점 또한 더 이상 소중하지 않다.
책이 흔해져 그 소중함을 잃었고, 그건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라면, 다른 방법으로 다시 책에게 소중함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현실에 마침내 그들이 떨치고 일어나 우리에게 왔다.『어서 오세요, 오늘의 동네서점』은 책의 소중함을, 서점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되돌려주기 위하여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분투하고, 그 분투 속에서 소소한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판매용 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책 읽는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이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서점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43)
저희는 소심한 책방이 '숨어있기 좋은 방, 전망 좋은 방, 자기만의 방'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58)
서점은 단순히 책을 사고 파는 공간이 아니라, 세상의 온도를 높이는 곳이라 생각해요. (81)
이미 너무 구하기 쉬운 책의 소중함을 되찾기 위해서, 책과 함께하는 삶의 소중함을 탈환하기 위해서, 우리에겐 그들과 그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우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있다.
그나저나 세상에, 명색이 서평인데 정작 책 이야기는 인용 빼면 꼴랑 6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