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는 그랬지만

 



 

메리, 마리아, 마틸다 중, 메리를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syo는 이 작품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손에 쓰였다는 것, 비교적 이른 시기에 쓰인 여성의 주체성에 관한 소설이라는 것, 그러니까 계보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어떤 의의를 찾지 못했다. 메리는 큰 매력이 없는 캐릭터고, 울스턴크래프트는 메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독자에게 떠먹이려 한다. 그건 울스턴크래프트가 이 작품을 쓴 의도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syo는 추측한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이 작품을 통해 메리들이 이렇게 억압을 당하고 있다보다는, “메리들도 너희 남자들처럼 이성이 있고, 자기 삶의 방향을 자기가 그려나갈 능력이 있다는 말을 하려고 했다.

 

울스턴크래프트가 만든 여성은 당대에는 선취적이었겠으나 그 선취가 도착한 곳 역시 오늘의 우리 눈으로 보면 지나친 과거다. 메리가 택한 방식은 우리가 고려하기에 지나치게 소설적이다. 또한 울스턴크래프트가 사용한 기술 역시 우리가 오늘 참고할 만하지 않다. 오늘날의 여성 역시 이성이 없다’, ‘태생적으로 열등하다하는 식의 통째 공격을 받긴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인신공격에 불과하여, 닥치게 만들면 그만이다. 그런 것보다는 여성의 특성으로 여겨지는 어떤 특성을 지목하며 특정 분야나 특정 지위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위에 있다는 주장, 그러니까 영역 단위로 분할된 공격과 맞서야 한다. 그럴 때, 그 주장은 오류이며 그 근거가 실은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결과에 불과함을 증명하기 위해 오늘 우리가 택해야 할 수단은 과학이나 통계, 사회적 실험 같은 것들이다. 더는 소설이 아니다. 그러니까 syo의 생각에, 이 작품에 한정해서 보자면 메리에게서도 울스턴크래프트에게서도, 딱히 쓸만한 뭔가를 배울 수 없다. 우리가 이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명제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쩔었네뿐이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울스턴크래프트와 동시대 조선에는 연암 박지원이 살았는데, 그는 허생전이나 양반전 같은 당시에는 상당히 선취적인 사상이 담긴 작품을 남겼다. 그런데 그 선취는 이제 선취가 아니고, 우리는 과거에 선취적이었던 그 작품들보다 지금 나오고 있는 그다지 선취적이지 않은 책들로부터 더 쓸모 있는 것들을 배운다. 그리고 박지원이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사는 데 진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메리는 읽었고, 이제 마리아를 읽겠다.

 

 

 

--- 읽은 ---

 


158.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이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

 

일기를 에세이로 바꾼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선뜻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굳이 책을 읽어본 게 사실이다. syo에게 그건 뭐랄까, “H2O를 물로 바꾸는 법처럼 들렸다.

 

나는 아직도 뭐가 일기고 뭐가 에세이인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뭐가 일기여야 하고 뭐가 에세이여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그것은 수준의 문제인가? 잘 쓰는 일기스트의 일기는 못 쓰는 에세이스트의 에세이보다 당연히 수준 높다. 글은 그냥 잘 쓰는 사람이 잘 쓴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 글의 사적/공적 성격의 함량에 따라 결정되나? 순전히 내가 오늘 겪은 사건만 나열한 글이 사회문제를 연구하고 분석해 놓은 논문보다 더 큰 사회적 함의를 가지고 기능하는 때도 많다. 그러면 일기란 세상에 내놓지 말고 혼자 쓰고 읽어야 하는 되다만 에세이의 멸칭인가?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니며 발견한 역겨운 댓글은 참으로 많고 많지만, 가장 역겨운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일기는 일기장에. 이건 니 이야기는 들을 생각이 없으니 그냥 닥치라는 소리다. 게다가 들을 가치가 있는 이야기인지 없는 이야기인지는 내가 결정한다는 오만이 깔려 있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일기가 왜 뭔가로 바뀌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에세이를 쓰고 싶은 사람들이 소비자로 존재하므로 이 책은 이런 제목을 달 수 있었을 것이다.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야 좋은 마음이다. 그런데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을 찾는 독자들은 에세이를 일기로 바꾸는 법이라는 책에도 같은 크기의 관심을 둘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이게 중요하다. 지금 syo가 제목만 가지고 꼬투리 잡는 것처럼 보이지만(사실 아닌 건 아니다), 뭔가를 쓰는 사람에게 자기 글에 대한 정의는 곧 자기 영토를 포위하고 있는 국경선이다. 내가 승인하고 스스로 둘러친 한계다. 스스로 에세이를 쓴다고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이해하고 있는 에세이라는 장르의 규칙, 그 장르가 다루는 영역의 한계선, 트렌드(와 트렌드에 올라탈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판단) 같은 것 안에서 글을 쓴다. 이야기에는 저마다 자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 있어서 우리는 가끔 이야기를 살리기 위해 장르를 횡단할 필요도 있다. 나는 내가 쓰는 글이 뭐라고 정의되는 것을 열심히 회피하는데, 그건 실제로 글이 잡스러워서 겸연쩍어 그러는 거기도 하지만, 잡스러우려고 노력하는 바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잡스럽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글은 가만히 두면, 자꾸 정돈되려 한다. 맹렬한 기세로 열역학 제2법칙을 역행한다.

 

syo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하지만 에세이를 일기로 바꾸는 법에는 지대한 관심이 있다.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이 팔리는 이 세계는 에세이가 일기보다 높은 세계다. 이건 전복할 수 없는 기본적 사실이다. 그런 이 세계에서 에세이를 일기로 바꾸는 법』이 출간된다면, 그 책은 일기가 에세이보다 높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일기를 써도 그게 그냥 에세이 급이 되어버리는 미친 기본필력을 선사해 주겠다고 말하는 것일 테니까.

 

, 그런데 솔직한 글을 위해 나의 단점을 모조리써야 할까요?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내 흠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써야 하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글로 인해 오히려 자신이 상처를 받고 우울해질 것 같다면 절대 그렇게는 쓰지 마세요. 나의 흠을 독자와 공유하는 글쓰기 과정에서 본인이 조금 홀가분해질 수 있기 때문에 솔직하게 쓰라는 것이지 내 단점을 정말 남들한테 말하기 싫은데 사람들이 이거 읽으면 엄청 재미있어 하겠지라는 생각에서 쓰면 안 된다는 소리예요. 그게 과연 누굴 위한 글이 되겠어요? 에세이를 쓰면 가장 먼저나 자신이 첫 번째 독자가 됩니다. 그런데 그 독자가 상처를 받으면 안 되잖아요. 에세이를 쓰면서 , 내가 이런 것까지 써야 돼?’ 하면서도 줄줄이 써지는 주제가 있는 반면 이건 아닌데, 이런 건 말하기 싫은데하는 게 있을 것 아니에요? 후자를 쓰지 말라는 겁니다. 아마 전자의 글은 자신의 흠을 드러내면서도 떳떳한 상태일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바꾸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경우일지 몰라요. 어쨌거나 내 글을 보고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면 안 돼요. 그게 나여서는 더더욱 안 되고요.

_ 이유미,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159. 소크라테스 씨,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

허유선 지음 / 믹스커피 / 2020

 

철학을 지식의 덩어리가 아닌 하나의 방법론으로 본다면, 소크라테스는 철학자가 해야 할 것들을 이미 다 해치워버렸다고 여겨져도 되지 않을까. 그는 물었다. 답이 나올 때까지 물었다. 그래도 모르는 것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다른 것을 물으러 갔다. 물었고, 물었고, 물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귀찮게 했다. 그러다 권력 있는 사람들의 눈에 거슬렸다. 그리고 자기가 말한 대로 살기 위해 죽었다. 철학자가, 이것들 말고 뭘 더 해야 하는가?

 

만일 철학이 확실한 답을 주어 그 물음이 종결되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철학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철학은 없어지지 않는 물음에 대해 도망가지 않고 생각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들과 관계를 맺는 법을 생각하고 그에 따라 시도하고 움직이게 한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과 움직임이 과연 적절한 것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철학을 통해 우리는 계속 묻고 생각하며 나아갈 수 있다. 곧 철학은 피할 수도, 제거할 수도 없는 문제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생각하는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_ 허유선, 소크라테스 씨,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

 

 

 


160.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지음 / 이재경 옮김 / 반니 / 2019

 

비소설 산문 읽는 양으로 치면 남부럽지 않은 syo, 독서 인생이 20년이 달하는 동안 조지 오웰의 산문을 읽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참 대단하다. 읽지 않아도 좋았을 쓰레기들을 수없이 읽으며 얻은 건 쓰레기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었는데, 사실 그런 건 그다지 필요 없다. 명백히 쓰레기가 아닌 것으로 널리 인정받는 책들만 골라 읽어도 죽을 때까지 다 못 읽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인생사다. 쓰레기를 읽고 쓰레기 감별력이 생겼다면 그 시간에 명작을 읽고 명작 감별력이나 갖출걸. 이번 생은 대충 망했다. 헛되고 헛되고 헛…….

 

기왕 헛된 거 아주 제대로 헛되어 보기로 했다. 거장들과 그들의 명작들을 읽어보기로 한 것이다. 이게 왜 헛된 일인가 하면 역시 인생이 짧아서다. 짧은 인생, 한 우물만 디립다 파도 그 우물로 몇 사람 목 축이기가 쉽지 않다. 기왕 syo가 쓰레기 판별의 길에 들어섰다면 이번 생은 열심히 쓰레기의 우물을 파는 데 소진하는 게 낫다. 여러분 이 책은 쓰레깁니다, 이 책은 쓰레기가 아닙니다, 이 책은 쓰레기인 듯 쓰레기 아닌 쓰레기 같습니다, 여러분. 이런 자세가 바로 이번 생에 몇 사람의 목이라도 축여줄 수 있는 syo의 작은 우물인 것이다. 그런데 그 분수에 맞는 한 우물을 포기하고 뒤늦게 거장들이 묻혀 있는 땅을 파 들어가기 시작했으니, 남은 생은 짧고 아무리 파도 물 한 방울 구경하기 어려울 것만 같다., 아아,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내가 오웰의 책을 읽으며 했던 이것과 비슷한 고민을, 오웰도 어떤 책을 읽다가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느낌 자체는 내 느낌과 정반대였는지, 아래와 같이 썼다.

 

모든 책이 검토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당연시되는 한, 해결책은 없다. 책을 대량으로 검토하면서 그중 대부분을 극찬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책과 직업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책들이 얼마나 허접한지 알지 못한다. 객관적이고 정직하게 비평하자면 열에 아홉은 "이 책은 무가치하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고, 서평가의 솔직한 속내는 아마 이럴 것이다.

  "나는 이 책에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하며, 돈만 아니면 평을 할 마음이 없다."

  하지만 대중은 이런 책은 사지 않는다. 대중은 어떤 책을 읽으라는 권유와 안내를 원하고, 가치 평가를 바란다. 문제는 가치가 거론되는 순간 평가의 기준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리어왕은 훌륭한 희곡이고, 4인의 의인은 훌륭한 스릴러라고 한다면(거의 모든 서평가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이런 말을 한다.) '훌륭하다'는 말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_ 조지 오웰, 어느 서평가의 고백

 

그러니까 오웰, 왜 허접한 걸 읽었어요. 그런 건 syo나 읽는 거죠. 당신 글솜씨가 아깝네요. 쓰레기는 syo에게 맡겨요. 당신 같은 사람은 좋은 글을 읽고 더 좋은 서평을 남겨야죠. 그러니까, , 예를 들면 조지 오웰 같은 걸 읽으시라구요, 미스터 오웰.

 

 

 


161. Chaeg 2021. 5

()(월간지) 편집부 지음 / ()(잡지) / 2021

 

관심 없던 분야의 책을 읽는 데는 하늘의 뜻이 약간은 필요하다. 읽으려면 어떻게든 맞닥뜨려야 하고, 맞닥뜨리려면 누가 도와도 도와야 하는 것이다. 주로 철학이나 문학 위주의 독서를 하다 보니, 도서관을 그렇게 뺑뺑 돌아봤자 특정 서가에서 syo는 눈뜬 대바늘이나 마찬가지다. 눈이 없고 귀만 있는 셈. 그 좁은 귓구멍에다가 세상에는 다양한 책들이 있다는 사실을 길고 튼튼한 실처럼 꿰어주는 책이 책Chaeg이다. 매달 한 번씩 막힌 귀를 뚫어주고, 새로운 서가에 눈뜨게 해주는 사랑스런 나의 Chaeg.

 

진짜 책 같은 거 신물 나서 거들떠보기도 싫을 때, , 이 Chaeg 한번 잡솨 봐.

 

 

 



162. 우리가 함께 걷는 시간

이규영 지음 / 넥서스BOOKS / 2018

 

당 떨어질 때 한 줌 집어서 사르르 녹여 먹으면 연애의 달달함을 이어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는 귀여운 책들이 있다. 달달한 월드는 일단 곁사람에게 달달할 줄 아는 이들이 모여 만드는 것.

 

syo는 남자 평균 키보다 한참 작은데 지난 연인들은 작아야 여자 평균 키 이상이었고 간혹 높은 신을 신으면 syo보다 커지기도 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손잡고 돌아다니는 것도 그거대로 귀여운 맛은 있었지만, 안 되는 그림도 많았다. 정수리에 턱을 올려놓을 수가 없었고,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한 칸 아래에서 안을 때도 내 코는 그 사람의 엄한 곳, 이를테면 간지러워도 잘 긁을 수 없는 날개뼈와 날개뼈 사이의 안닿아메다 삼각지대 같은 곳에 처박히기 일쑤였다. 그건 예쁜 그림이 아니고 그냥 냄새 맡는 그림일 수밖에 없었고, 재미가 없었다. 물론 그것은 내게 이런 유전자를 물려주신 뿌리 깊은 우리 노비집안 조상님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우유를 처먹지 않던 몰상식한 청소년 syo가 합심하여 그린 그림이었으니, 누구 탓을 하겠는가마는.

 

지금 만나는 사람은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작다. 처음 같이 이를 닦았을 때 나는 그녀의 뒤에서 몸을 딱 붙이고 서 있었는데, 그렇게 욕실 거울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각자 서 있을 때보다 몇 배는 보기 좋았던 자신들의 모습에 감탄한 우리는 너무 예뻐, 우와, 너무 예뻐를 반복하느라 양치질을 길게 했고, 칫솔을 꺼낸 입이 허전하다며 다른 것을 찾아서 서로의 입술로 즉시 달려들…… 뭐 그랬다고 합니다. 하고픈 말은 그게 아니고(그거면서), 이제는 나도 요런 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쟤네처럼 완벽하진 않지만. 목이 조금 꺾이긴 하지만. 우리 아빠가 원래 남자는 언제나 높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고 그랬어.😤



 

 

 


163. 가벼운 영어

가벼운학습지 지음 / 패스트캠퍼트랭귀지 / 2020

 

 

 

--- 읽는 ---


영원한 이방인 / 이창래

경제학의 모험 / 니알 키시타이니

비트겐슈타인 철학으로의 초대 / 박병철

어떤 물질의 사랑 / 천선란

빈 옷장 / 아니 에르노

메리, 마리아, 마틸다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셸리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 / 박가분

시민의 물리학 / 유상균

미술사 아는 척하기 / 리처드 오스본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 박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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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21-05-10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는 일기장에 ㅋㅋㅋ

syo 2021-05-10 15:02   좋아요 0 | URL
우웩 🤮 ㅋㅋㅋ

난티나무 2021-05-10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는 책에 이런 말이 나와요. 권력이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 그 사람을 정의하는 것, 그 사람의 이야기도 정의내리는 것. 중간쯤 읽다 댓글 우선 달고 (까먹을까봐) 나머지 읽으러 갑니다.

다시 왔어요.^^
[오늘날의 여성 역시 ‘이성이 없다’, ‘태생적으로 열등하다’ 하는 식의 통째 공격을 받긴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인신공격에 불과하여, 닥치게 만들면 그만이다.] - 저는 한번도 면전에서 제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지만 눈빛과 행동과 평소의 말투 등등에서 이런 생각을 읽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이라는 게 있다면)에는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시대나 지금의 시대나, 지금이 겉으로 보기에는 나아보일지라도 속은 그닥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드러나지 않으니 더 무서운 것... 그런 거 느낍니다. 열등하다거나 이성이 없다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보이지만 시집에서 제가 저를 투명인간으로 느끼는 것이 또 이것과 그렇게 먼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음 그러니까 저는 아직 [메리]를 다 읽지 않았는데, 다 읽으면 정말 ˝쩔었네˝밖에 안 남는 건가요? ㅠㅠ

syo 2021-05-11 11:59   좋아요 1 | URL
저도 난티나무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다기보다 그런 생각을 쉽게 내뱉을 수 없는 딱 그 정도만큼 환경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현실에서 200년이 지나도록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그 ‘무의식‘을 직접적으로 타격하는 것보다는, ‘여성은 관리직에 젹합하지 않다‘, ‘여성이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진화적 특성 때문에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일이다‘처럼 연구나 통계, 실험을 통해 반증될 수 있는 것들에 역량을 투입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던 거죠.

이런 ‘기계적인‘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아마 제가 남성이라서, 난티나무님께서 겪은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소위 말하는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1도 모르는, 공감 부족의 결과 태어난 주장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저렇게 생각했지만 저 생각을 가지고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권할 자격도 의지도 없습니다. 난티나무 님이 댓글처럼 생각하셨다면, 그게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메리를 읽고 ˝쩔었네˝밖에 남지 않았던 것은 제 독서의 결과입니다. 그건 제 한계지요. 다른 분들의 독서는 다를 거고, 저보다 많은 것들을 느끼고 남긴 다른 분들의 독서를 보고 저는 배우겠습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주욱 읽으소서^-^

반유행열반인 2021-05-10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웰 다른 산문집에서 저 서평가의 고백을 읽었는데 역시 돈 때문이죠 억지로 똥글 읽고 글 쓰는 건…돈도 안 주는데 이제 남은 생은 고전 명작만 골라 읽지 하니 안일하고…동시대의 좋은 글이란 무얼까 좋은 글은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하다보면 결국 똥을 조금씩 주워 먹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오늘의 글이 명문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다 죽고 나야 판정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오늘의 우리에게 좋은 글이 미래에는 먼지만도 못할 수도 있고 예전에 눈여겨보는 이 없던 글들이 뒤늦게 미래인인 우리가 찾아 읽기도 하니까요. 쓰고 보니 하나마나 한 소리나 재잘대는 오후네요. ㅎㅎㅎ 하나마나 한 소리라도 더 예쁘게 하고 싶다…일기는 일기장에 써야지…죄송합니다 ㅋㅋㅋ

syo 2021-05-11 12:05   좋아요 2 | URL
저는 오늘의 글이 명문인지 아닌지 읽는 사람이 읽는 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래에 먼지만도 못한 글이 더 먼 미래에는 찾아 읽는 글이 될 수도 있고 그러다 다시 더 미래에는 또 먼지가 될 수도 있어서, 미래의 어느 한 시점이 글을 판단하는 기준점이 된다기보다, 각각의 미래를 현재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읽는 그 순간 각자의 방식으로 명문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넘어가면 되지 않나, 합니다.

꼭 일기장에 써야만 한다고 본인이 판단하는 일기만 일기장에 쓰시고, 이런 의미있는 소리는 계속 알라딘에 써주세요 ㅎㅎㅎ

수이 2021-05-10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는 알라딘에~ 신승훈 오빠 노래 들으면서 말할 때마다 속눈썹 나풀나풀거리던 레지던트 오빠를 떠올리는 찰나 신승훈 오빠가 그럽니다 슬프기는 하지만 창 밖을 보면 편지를 써야지....... 여기에서 저 왜 이러나요 조증이다 조증 속눈썹 나풀나풀에 순간 조증이 오는 이 갱년기여 영원하라!

syo 2021-05-11 12:0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어쩐지 따라잡을 수 없는 텐션의 댓글이다....

수이 2021-05-11 12:08   좋아요 0 | URL
나 글 썼어 1등 축하 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1-05-11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되고 헛되도다... 안타까운데 웃긴 이 마음 ㅎㅎ 일기든 뭐든 간에 읽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서랍에서 꺼내어 공개할 가치가 있는 거 아닐까요? 오늘도 즐겁게 읽고 갑니다^^

syo 2021-05-11 12:06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이 계셔서 늘 든든하다니까요 ㅎㅎㅎㅎ

AgalmA 2021-05-13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는 일기장에나 써라. 저도 이 소리를 들은 적 있는데, 공개되는 글을 쓴다면 누구나 한 번쯤 듣는 소리 아닌가요ㅎㅎ 요즘은 더욱 그렇고^^;; 원글의 내용보다 도를 넘는 악플이 더 문제가 되고...

존 치버 등등 많은 작가들은 공개될 걸 염두에 두고 아예 일기를 썼잖습니까.
누구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구는 저렇게 쓸 수도 있죠. 정치판처럼 말 꼬투리잡기식이 아니라 좋은 대화 나눌 수 있으면 그 글은 어느 정도 의미는 있는 거죠. 님의 이 글과 아래 많은 댓글들처럼.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글의 운명들ㅎㅎ

syo 2021-05-16 14:4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무슨 일기장 감별사처럼 넌 일기, 넌 안 일기, 잘도 정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놓고 그래 이건 일기고 여긴 일기장이다 임마들아- 하고 살지만요.

유부만두 2021-05-14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 정말 재미 드럽게 없어요 ㅜ ㅜ

syo 2021-05-16 14:4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미없어요 맞아요.
마리아랑 마틸다는 어떨까.....

감은빛 2022-05-06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는 내가 어쩔수 없죠.
저는 유당분해효소가 없어서 어려서부터 우유만 먹으면 탈이 났지만,
만약 우유를 많이 마셨어도 키가 더 자랐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가 아는 어느 작가가 소설로 한 번 등단하고 다음에 수필로 등단했다고 하더라구요.

소설로 등단은 실패했는데, 어쩌면 수필은 가능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가끔 했어요. 물론 이젠 포기한 지 오래예요.

일기, 수필, 에세이 그리고 잡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냥 끄적이는 것만으로 재미도 있고 뭔가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열역학 제2법칙을 맹렬한 기세로 역행하는 syo님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