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자아파티
몸
콜레스테롤이 있었고 혈당도 안전하지는 않다. 간 수치는 20년째 주의를 받는다. 혈압과 혈당은 모계, 간은 부계의 내력이다. 피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사연이다. 준비할 따름이다.
거의 달리지 않았다. 달리지도 않으면서 몸을 위해 다른 무언가를 열심히 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은 버려야 옳다. 달려야 달린다. 달리지 않으면 달리지 않는다. 달리자.
배가 나오는데 눈에 띄는 체중 변화는 없다. 내게 어떤 틈이 있어 그 사이로 건강이 새고 있다는 이야기로 읽힌다. 누수탐지와 개선을 새로운 한해살이의 큰 틀로 삼아야겠다.
책
400권 언저리에서 마무리되겠다. 재작년 700권, 작년 500권이 기록되어 있다. 좋다. 일이 시작되면 축소는 피할 수 없다. 실망하지 말자. 한 줄, 한 쪽을 오래 읽자. 베껴 쓰고 되새김하는 한 해, 읽은 것을 잃은 것으로 쉽게 바꿔먹지 않는 한 해를 목표하자. 100권도 좋고 50권도 좋다. 다만 12권이라도 좋다. 좋을 것이다.
사랑
다 마음의 문제였다고 속이지 말자. 자본을 적으로 놓는 것과 자본의 위력을 무시하는 것은 다르다. 자본이 허락하지 않는 사랑이 곧 어려운 사랑이 되는 세상에서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따위 것에 지지 않았다고 자기를 최면하지 말자. 속물이 되지 않으려 애쓰는 속물이 되지 말자.
아무것도 필요 없는 순간은 있다. 그러나 그런 순간은 순간이라 순간이 지나면 우리는 옷을 주워입고 방문을 열고 나가 먹고 마셔야만 한다. 영원한 사랑이 있다면 먹고 입을 것이 갖춰진 집에 놓인 침대 위에 있을 것이다. 영원한 사랑이 없다면 주리고 헐벗은 이에겐 더욱더 없을 것이다.
상대의 모든 시간을 움켜쥐고 싶은 욕심은 사랑을 더 빠르게 키우고 더 빠르게 소모하는 센 불이다. 불과 불이 만나면 불같이 서로를 핥다가 서로를 삼키고 서로의 잿더미 위에서 잿더미가 된다. 맞불이다. 그러나 물과 물이 만나면 물이다. 물은 물들이 되지 않고 물이 된다. 우리는 물을 세지 않는다.
사랑 + 몸
기회가 닿지 않았고 마음이 닿지 않았다. 둘 중 하나가 닿았는데 닿지 않은 척했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부족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고 괜찮다고 말하며 부족한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에게 부담이었겠다. 오랜 부담이었겠다. 욕망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이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시절에 시작한 사랑이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많이 당황한 두 사람이 있었다. 부수고 부서져 가며 맞추었으나 맞지 않고 맞추어야 했다는 사실은 소각되지 않는 미안함으로 남았다.
괜찮을 줄 알았고 그 안에서는 영영 괜찮을 것이었으나 밖에 나오고 나니 더는 괜찮고 싶지 않아졌다. 괜찮음을 넘어서 즐겁고 싶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더 즐겁고 싶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라 예단하기 섣부르고 몸과 마음의 일이라 예측하기 미묘하다. 한해살이의 깃발로 세우기에는 이미 지나친 감이 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정한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까지 어딘가로 가는 삶, 정해놓은 일을 마치고 나면 조금 남은 시간 동안 무얼 할지 정해야 하는 삶이 새로 와 눈앞에 섰다. 버려야 할 것들의 목록을 들고서 이름을 또박또박 부르고 있다. 충분히 비우고, 정돈하고, 청소하고 맞이할 일이다. 나는 문제없다. 주어진 것들 안에서 최대한 즐겁고 행복할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서투르더라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보아야 할 것들을 빠뜨리지도 들어야 할 것들을 무시하지도 않고, 작고 귀엽고 무해하게 살 작정이다.
--- 읽은 ---

우리는 책 앞에서 가장 솔직해진다 / 안드레아 게르크 : 185 ~ 275
: 좋은 책을 만나면, 책이 있고 인간이 있어서 세상은 완전해진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저 솔직할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세상이 한주먹은 밝아지는 기적, 그거 어떤 기분인지 우리 다들 조금씩은 알잖아요? 아, 진부한 말이지만 역시 인간에겐 책이 필요하고 책에겐 인간이 필요하다.
금융 지식이 이렇게 쓸모 있을 줄이야 / 김현섭 외 : 223 ~ 326
: 돈 공부는 돈에 대한 관심이 선행되었을 때 비로소 효과가 있다. 아직은 그저 많으면 좋겠다 하는 뜬구름 잡는 애기 마음뿐이라, 나는 곧 이 책 속에 든 것들을 모두 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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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교양 과학 / 홍성욱 외 : ~ 93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 김재인 : 106 ~ 161
내게 무해한 사람 / 최은영 : ~ 102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 요조, 임경선 : ~ 143
소문들 / 권혁웅 : 58 ~ 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