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최 떠날 생각을 않는 무기력과 비참, 그 와중에도 올 준비를 마친 우울과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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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룩돼룩 살이 찌고 있다. 말이 살찌는 계절에. 내가 말일 줄이야. 100미터 18초 겨우 뛰는 내가 말일 줄이야. 말은 말인데, 책 읽는 말은? sy......
말 같잖은 말로 말장난 하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말, 책 읽는 말 syo말은 말이 되었다 말았다 하는 말인데 말씀입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요즘 이래저래 제정신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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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막 손바닥이 폭발할 듯 세차게 박수쳐 모기 한 마리를 잡았다. 2018년도 이제 두 달 남짓 남은 이 시점에. 생태계도 요즘 이래저래 제정신이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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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세상도 이제 이래저래 제정신인 인간으로 살기가 어려운 곳이 되고 있다. 제정신인 로봇으로 살면 모를까. 되어가는 분위기가 정말 인간의 시대에 로봇이 찾아든 게 아니라 로봇 시대에 인간이 불시착했다는 느낌인 요즘이다보니, 이 책의 네이밍 센스는 더욱 빛을 발한다.
인간의 밥줄은 점차 가늘어지다가 마침내 소멸되리라는 사실이 불을 보듯 뻔하고 불에 덴듯 따가운 상황인데도, 가지각색의 인간들이 세상을 종횡무진하며 다채롭게 물을 타고 있다. 일례로, 자동차 발명되던 시절에 마부 일자리 걱정했지만 실제로 자동차가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다는 사례를 무슨 물리법칙이라도 되는 양, 앞으로의 사태를 전망하는데 그대로 가져다붙이는 치들의 낙관적인 태도를 보면 순진한 건지 무식한 건지 잘 판단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만약 내가 로봇이라면, AI라면, 저게 순진과 무식 가운데 어느 쪽인지 1나노세컨드 안에 판단할 수 있다! 바로 이게 무서운 지점이고 이전과는 다른 지점이다. 이번 발명품은 인간보다 더 나은 ‘기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판단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 법조계? 의료계? 최소한도만 남기고 아작 난다. 문화 예술계? 문화 예술을 향유하는 소비자들의 안목이 대중화하고 획일화할수록, 더 빨리 대체될 것이다. 끝났어. 인간의 노동은 다 끝났어. 이제 최소한의 생명 유지를 위해서라도 기본 소득 말고는 뚜렷한 답이 없다고..... 이제 논의 좀 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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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리스토텔레스는 ‘무기력한’ 날에, 스피노자는 ‘비참한’ 날에 읽어야 하는지에 중점을 두고 읽었고 읽는 중이다. 요즘 남부럽지 않게 무기력하고 비참한 중이기 때문인데, 일단 아리스토텔레스를 다 읽었지만 무기력을 떨치고 나오지는 못했다. 책이 괜찮았음에도. 그렇다면 스피노자를 읽고 나서도 여전히 비참할 것이란 말인가? 니체(우울)와 키에르케고르(절망)도 있는데...... 정말 우울하고 절망적인 소식이다.
그나저나 얘네들 색깔 참 이쁘게 잘 빠졌다. 되게 사 모으고 싶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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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 여기서 때로는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라면 그 역시 선한 행동이 아니겠느냐 하는 질문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행위에 일정 확률로 좋은 일도 일어나고, 또 다른 확률로 나쁜 결과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행위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어느 정도 확률을 가지고 계속해서 좋고 나쁜 산물을 낳겠죠. 그렇다면 좋은 결과를 낳을 확률을 따지며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일까요? 확률이라는 개념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 환경에는 이런 의문들이 깔려 있습니다.
청중 : 의도를 가지고 결정해야 하는가, 결과를 생각해서 결정해야 하는가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늘 부딪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수학적인 개념 하나를 받아들이는 데 거의 200년 가까이 걸린 셈이군요?
저자 : 그런 딜레마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희곡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싶군요. 바로 T. S. 엘리엇의 희곡 <대성당의 살인>입니다. 이 희곡을 대학생 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130-131쪽)
'대학생 때'. 이 네 글자가 무기력과 비참과 우울과 절망을 가져다주는 단어가 될 수도 있다니. 저자 소개를 참조하자면, 지은이 김민형 선생님은 중학교 1학년 때 몸이 아파 학교를 쉬었다는데 그때부터 혼자 공부하기 시작하더니 뚝딱 서울대 수학과 입학. 개교 이래 최초 조기졸업생. 예일에서 박사 받고. 지금은 옥스퍼드 수학 정교수.
대학생 때, 그러니까 서울대 수학과 조기졸업 할 만큼 공부하던 때, 그때 엘리엇(살면서 엘리엇을 읽었다는 비전공자는 보기는커녕 듣는 일조차 처음)의 희곡(셰익스피어를 제외한 희곡을 읽는 사람 역시 알라딘에서조차 만나기 쉽지 않음) 대성당의 살인(세상에 이런 책이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음)을 읽었다는 것인데...... 이건 재능도 재능이지만 열정과 노력의 문제이기도 하잖아. 아버지 이런 거 잘 안 믿는데, 그럼에도 아버지가 한 나라에서 맨 앞자리를 다투는 인문학자라면 이야기가 다른 모양이다. 수학책인데도 이례적으로 근 한 달 만에 6쇄를 찍었다기에 의아했는데, 이 정도면 그러고도 남음이 있다.
-- 읽은 --
다카하시 도루, 『로봇 시대에 불시착한 문과형 인간』
다미엥 클레르제-귀르노, 『무기력한 날엔 아리스토텔레스』
김민형, 『수학이 필요한 순간』
-- 읽는 --
황경식, 『존 롤스 정의론』
존 몰리뉴,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에릭 홉스봄, 『혁명의 시대』
발타자르 토마스, 『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에이모 토울스, 『모스크바의 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