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구입해서 보자는 주의다. 솔직히 책값이 비싸졌다고는 해도 그래도 여전히 들어가는 품에 비해 제 값을 못 받는 대표적인 물품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출판사에 몸담고 있는 일가친척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뭣 때문인지 나는 항상 출판사 편을 드는 쪽이었다. 그리고 올 여름 여기로 건너와서 그 생각이 아주 살짝 희석됐다. 북클럽 때문이다.


흔히 떠올리는 그 북클럽이 아니다.




초등학교에서는 한국으로 치면 보림일까 문지어린이일까 아니면 문학동네(어린이)쯤 될까. 여하간 아는 사람은 아는 꽤 큰 출판사가 있다. 여기서 각 초등학교에 매월 그네들이 고른 책목록으로 일종의 공동구매를 연다. 책값은 물론 아마존이나 B&N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저렴하다. 대신 하드커버가 아니라 페이퍼백이다. 그런데 이게 책을 구입하는 학부모 입장에서는 사실 훨씬 메리트가 된다. 책은 저렴하고, 질은 조금 떨어질지 모르겠는데 훨씬 공간을 덜 차지하고 덜 무겁고. 그리고 총 구입권수(였나 금액이었나)를 넘긴 학급은 도서를 기증받는다. 모두가 좋은 프로그램이고 마케팅이라고 생각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이 북클럽을 통해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의 책들을 구입했는데 이걸 다시 검색해보니 이건 무시하고 안하고를 떠나 침이 꼴깍 넘어가는 금액이 출력되더라. 나중에 도로 귀국할 때 들어갈 운반비용을 생각해도 이것은 남는 장사인거다! 

아이 책 사 주는 열성으로 치자면 한국 부모들만한 고객층이 또 있을까싶을 정도인데 말입니다... 책을 물고빨고 장난감처럼 갖고 놀 나이에 수백만원 때려넣을 필요 별로 없고요 초등학교 들어가서 그때부터 좀 사주시면 좋을텐데. 좋은 어린이책들이 정말 많은데, 이런 마케팅은 어떻게 좀 벤치마킹 안되나요. 다른 건 되게 다들 잘 따라하던데. 

껍데기뿐인 블프세일은 초라하다못해 슬프기까지 했지만

아니 말이 나온김에 블프를 따라하기보다 차라리 추석마지막날부터 한 사나흘 명절쫑특가판매 이런거 하면 판매고 대폭 신장할 것 같은 생각은 나만 한걸까... 스트레스가 최고조로 치솟은 그때만큼 지갑이 쉽게 열릴때가 또 있을까. 뭔 되도않는 블랙프라이데이 베낄 생각말고 배경을 연구를 하셔야지라고 흉보다가, 잠시 내가 그 연구를 했던 시절을 까먹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밑에서 아무리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고 백방으로 애를 쓰면 뭘해 윗선에서 잘라버리면 땡인데. 아후.


동생네 식구들과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한국 출산율 또 떨어졌대, 이야기를 해 주니 큰일은 큰일이네 라고 하면서 동생이 받는 말이 (심각한 방향으로) 참신했다. 이렇게 젊은 인구가 줄어들면 대한민국은 날이 갈수록 꼰대의 나라가 될 텐데... 라고 했던가. 


이미 꼰대세포가 비대해지는 나이가 훌쩍 지나버린 나는 어떻게 이걸 좀 줄여봐야 하나, 요즘 그런 게 고민이다. 

기승전꼰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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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홀릭 2019-12-25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어간 품에 비해 제값을 못받는 품목은 맞는것 같아요

라영 2019-12-26 07:4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정말 그렇죠. 그런데도 판매고가 높지 않으니 사명감 없으면 못할 일일 것 같아요.
 


여기엔 나무들이 많다. 딱 봐도 수령이 수십 년은 넘었을 엄청난 어르신 나무들. 아래를 지나갈 때면 애들처럼 공손하게 배꼽인사를 올리고 지나가야만 할 것 같은 위엄이 있는 나무들. 그 나무들 아래를 또 정신없이 바쁘게 뛰어다니는 다람쥐들, 따뜻한 날에 흔히 볼 수 있는 벌새들, 시도때도 없이 공원을 점령하고 있는 오리들과 기러기들. 사람 따위 있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는 까마귀들... 이렇게 넓고 깨끗하고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으면서 고마운줄도 모르고 왜때문에 맨날 산더미같은 쓰레기를 그냥 아무렇게나 내다버리는거야, 화를 냈던 오늘 아침 생각났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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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예전에 읽었을 때는 너무너무 마음에 든 작가였었다. 그 작가가 세상을 보고자 하는 시선이 내가 미처 몰랐던 눈높이여서 새로웠고, 내가 생각보다 훨씬 편협한 사람임을 일깨워주는 손길이어서 무안한 반면 다행스러운 기분을 갖게 했다. 그래서 그의 또다른 책들을 여기서 발견했을 때 정말 반가워서 정말 너무 반가워서 얼른 대출대를 거쳐 집으로 들고 왔던 거였다. 아 그런데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이 당혹스러운 마음은.

<너무 한낮의 연애>는 좋았다. 무엇인가에 대해 좋다는 표현을 쓸 때마다 가장 고민스러운 것이 그러니까 그것이 어떻게 얼마나 좋냐는건데, 를 어찌하면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추운 겨울날 집에 돌아왔을 때 따뜻한 보리차 한 모금을 입에 머금는 것보다, 향수 같기도 한 핸드워시거품을 손에 묻혀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얼어있는 손을 녹여가며 한기를 빼고 향기를 입히는 걸 훨씬 좋다고 느끼는 종류의 사람인데 이렇게 어떤 현상에 대처하는 방식의 좋음이 사람마다 다 다를진대 그것의 좋음을 어떻게 동일한 수위로 받아들일지 아닐지를 (감히) 추측하면서 나와 같은 좋음의 온도를 느껴주기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친한 관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더라도 "이거 좋지 않아요?" 하고 묻는 건, 정말이지 용감무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절반의 나를, 어쩌면 통째로 다일지도 모를 나를 드러내놓는거나 마찬가지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모를 공간에서는 할 수 있는 거다(완전히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ㅎㅎ).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소리지르는 후련함.


아무튼,

그런 난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뭉뚱그려서 대강 말을 만들어보자. 내가 좋음이라는 감정을 발견하는 경우는 대부분 이럴 때다. 좀 대략 난감하게 애매한 것들, 그냥저냥 나도 다른 사람들도 원래 그게 그러려니, 내지는 굳이 그걸 그렇게 구획을 나누어 정확하게 감별을 해야 하나 하는 게으름+귀찮음의 감정으로 대충 한데 버무려 밀쳐두었던 것들을 누군가 깔끔하게 분류하거나 필요없는 부분을 도려내어 나누어놓고 라벨링을 해 놓은 것을 봤을 때. 짙은 그림자 안에 묻혀 있어서 있는 줄도 몰랐던 것을 조심스레 끄집어내 먼지도 털고 모양도 바로잡아 양지바른 담벽에 기대어 앉혀놓은 것을 봤을 때, 즉 솜씨좋은 손길로 잘 다듬어놓은 '존재하는 줄 몰랐던' 삶의, 감정의 디테일한 면들을 발견했을 때 와 이거 진짜 좋구나, 이런 마음이 절로 울렁거리며 일어난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김금희라는 작가가 좋았다. 과거형으로 써서 마치 지금은 별로라는 것 같아 뵈긴 한데 그런 건 아니고...


필용이 알기로 모든 관계는 받아치는 맛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관계의 활력을 만들어낸다. 저렇게 말없이, 모든 것에 초연한 채 수용만 하는 여자친구는 구체관절인형과 뭐가 다른가. <너무 한낮의 연애>, 21쪽

그러니까 안 되었다. 필용이 양희를 볼 수는 있어도 양희가 필용을 봐서는 안 되었다. 시선은 일방이어야 하지 교환되면 안 되었다. 교환되면 무언가가 남으니까 남은 자리에는 뭔가가 생기니까, 자라니까, 있는 것은 있는 것대로 무게감을 지니고 실제가 되니까. <너무 한낮의 연애>, 28쪽

하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남았다. 하지만 그건 실제일까. <너무 한낮의 연애>, 42쪽

무슨 일을 주기적으로 하는 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나는 학교에서 쉬는 시간과 급식시간에는 늘 선글라스를 낀다. 수업시간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엎드렸다 일어났다 한다. 엄마도 주기의 주요성을 알았다면 지금보다는 덜 불행했을 텐데. 수입은 일정한 주기로 들어와야 한다. 부모는 일정 시간 집에 머물러야 한다. 삶에는 파도가 있어야 한다. 무엇이든 일정한 간격으로 밀려왔다 밀려나가야 한다. <반월>, 106쪽

이런 것들이다. 보고서도 그냥 지나쳤던 무심함 속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을 많은 것들이 드러나는 문장을 읽고 있으면 그게 그렇게 좋은 것이다.  도대체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친구들과 얘기하다말고 간혹 sorry, I just can't think of the proper English word for what I have in my mind... 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이런 경우에는 뭐라고 해야 하나. 영어로 딱 맞는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겠어 정도가 아니라, 그게 뭔지는 아는데 맞아떨어지는 단어를 말할 수가 없어일까. 감정도 아니고, 생각도 아니고, 현상도 아니고. 추상화를 가르치는 많은 책들을 보다 보면 여러 겹의 색을 입혀놓은 바탕에서 특정한, 네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carve in 하면서 계속 캔버스를 메꿔나가라, 라는 요지의 문장을 조금씩 다르게 패러프레이징한 가르침을 계속해서 발견하게 되는데 그나마 그게 적절한 표현법 같다. 널브러져 있던 흐리멍덩한 개념적 물체 하나를 한 사람의 작가가 붙들고 깎고 다듬어 어떤 관념을, 순간을 꺼내어 보여준다. 그 지점에서 읽는 사람은 무슨 리액션이라도 하지 않을 수가 없고. 횡설수설 떠들다보니 나조차도 이젠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헤매보지 않은 것보다는 헤매보기라도 한 것은 일종의 무용담이라도 될 수 있으니까, 허리에 손, 으쓱. ㅋ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단편은 역시 <고기>다. 너무너무 있을 법하고, 그래서 더 감정이입이 잘 되고, 그 뒤 이야기가 궁금해서 미치게 하는 종류의 이야기. 큰아이는 자기는 세상에서 열린 결말을 가진 이야기가 제일 싫다는 말을 언젠가 했었다. 이게 뭐냐고,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건지 속시원하게 끝을 내줘야 되는 거 아니냐, 왜 이야기를 제대로 완성도있게 잘 마무리짓는 역할을 읽는 사람한테 (엄마, 이거 게으른 거 아냐? 직무유기가 이거 아냐? 라고까지 ㅎㅎㅎ) 떠넘기냐고!!! 화를 냈더랬다. 이 열변을 토한 아이가, 꼴랑 열 네살밖에 안 되었으니 귀엽게 웃고 넘어가기로 하고. 
아마 얘가 이걸 읽었으면 그렇게 화를 냈겠지. 열린 결말은 그 열려있는 문으로 독자를 결국 끌고 들어와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는, 그런 국어시간 같은 설명으로는 설득이 안 되는 때... 라서, 아마도? 여하간, 이 짧은 단편은 정말이지 모든 사람들이 다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으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하면서, 확신과 의심이 번갈아 왔다갔다 사람을 뒤흔들어 놓고, 그러면서 (결정적으로) 짧고 재미있어서 페이지가 잘 넘어가고. 
어제저녁 식탁에서였나, 큰아이가 도대체 문학의 쓸모를 모르겠다고 한탄(!)하는 말 끝에 남들이 보면 지성인의 스펙을 다 갖춘 남편이 그러게, 사실 아빠도 문학이 왜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어... 말을 받는 것을 보고 생각했는데, 이건 심히 전근대적인 문학 교과서 탓이 큰 것 같다. 사실 요즘 문학 교과서가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세대 문학 교과서만 생각해 보면 왠지 두 주먹이 불끈 쥐어져... 
요즘 작가들의 글을, 아이들이 읽게 해 주세요 제발. 아무리 고전이 훌륭하다지만 고전만 배워서 어떡합니까 요즘 글이 어떻게 씌어지는지 요즘 소설에서 에세이에서 다뤄지는 글감이 뭔지 세상의 관심사가 어디서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아이들이 그걸 알아야죠... 

사실,
이걸 처음 끄적거리기 시작했을 땐 나는 김금희 작가를 좋아한다, 그런데 <나의 사랑, 매기>는 어디를 좋아해야 하는건지... 무엇을 쓰고 싶었던 것인지 잘 찾아내지를 못하겠다, 이런 것을 쓰려고 했는데, 영 엉뚱한 데로 튀어버렸다. 아, 이게 어디 제출해야 되고, 평가받아야 하는 쓰기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얼마나 고마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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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대라고 생각한다. 프로포즈로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는 스토리도 있지만 그 이후부터의 인생에 스토리가 존재하느냐 플롯만 존재하느냐가 개인의 행복을 가름하는 잣대가 될 수도 있다고 느꼈고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그 생각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행복이라는 건 개인의 고유성이 살아있는 이야기가 살아있는 곳에서 뿌리를 내린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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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마음에 남고 머리에 남았을 땐 분명히 이유가 있다. 딱 한 군데의 접점에서만 만나고 잊혀지기에는 파고든 흔적이 생각보다 깊게 남았던 것들, 그냥 그런 게 있었지, 왜그랬는지는 모르겠어도 그 책이(영화가) 한참 잊혀지지가 않았어. 그렇게 말하고 덮어두었다가 또 어느날 문득 다른 뭔가를 끄집어낼때 딸려 나온 그것을 보고 "아 맞아 이거 그 때 참 인상깊었었는데" 말하고 또 한참 잊어버리고... 그런 일들을 많이 하지 않을까,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이 책에도 (바로 그 순간 그 일에 대해 생각하고 이유를 밝혀내거나 감정을 표현하고 정리해야 할 일들에 대해 게으름을 부리는...) 정확히 그런 습성을 짚어낸 대목이 나온다. 


"송우영, 들었지? 잘했다잖아. 네가 꾸물거리다가 편지 줄 타이밍을 놓쳤어 봐. 분명히 너는 다락 깊숙한 곳에다 편지를 넣어 뒀을 거야. 그러곤 시대에 뒤떨어진 뇌를 달고 있는 덕분에, 금방 잊어버렸겠지? 한 10년쯤 지나고 다락 정리를 하다가 편지를 발견하고는 "어, 이게 뭐지? 어머니가 쓴 편지네?" 하고 열어 보면서 펑펑 울 거야. 그러곤 또 넣어 두겠지, 다락 깊숙한 곳에다가. 그때쯤이면 더욱더 시대에 뒤떨어진 뇌가 되어 있을 테니까. 10년 후에 또 그러고, 10년 후에 또 그러고... 그러다가 끝나는 거야.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감정이나 편지는 다락에 넣어 두는 게 아니야. 무조건 표현하고 전달해야 해. 아무리 표현하려고 애써도 30퍼센트밖에 전달 못 한다니까. 아, 내가 말이 너무 많죠, 미안, 차연 씨."


불과 며칠 전에 인용문으로 한 번 썼던 대목인데 그만큼 확 치고 들어오는 말이어서.

나의 뒤떨어진 뇌는... 글쎄, 아마도 내가 이런 책을 읽었었던가? 이 책의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서 여기다 베껴적어놓기까지 했던거지? 이러다가 결국 또 까먹어버리고, 까먹어버리고... 그럴 게 뻔하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이런 식으로라도 적어놓지 않으면 분명히 또 까먹을 거다. 그러니까 이것은 내 식의 책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인 것이다. 어떤 책과 만날 때, 사람마다 그 책과 만나는 부분은 다 다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리뷰를 읽어보면 즐겁기도 하고, 가끔은 뒤통수가 얼얼해진다. 내가 몰랐던 길로 걸어가 그 책을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그 책을 보게 된다. 백 사람이 읽었으면 백 가지의 길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혼자 공상한다. 


엉겅퀴 가시 같은 게 토도도독 뻗어나와 손바닥을 찔러대기도 하고 손바닥이 튀어나와 냅다 머리통을 후려갈기기도 한다. 혹은 그냥 하드커버로 둘러싸인 종이묶음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 같은 한 권의 책이 몽실몽실한 털뭉치처럼 뭉글거리며 무릎에 오래 머물러 있기도 한다. 물론 그냥 망상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책이라는 게 어떤 감각을 강하게 환기시킬 때면 조금 충격을 받는다. 그저 텍스트인데 그냥 문자열은 아니구나. 작가들은 다 천재같다.


이 책의 뭐가 그렇게 기억에 오래 머무르게 했는지는 한참 나중에 알았다. 나만 그랬는지 몰라도 이 책을 보다가 굉장히 유명한 어떤 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도 생각했을 것 같다. 분명히 소재면에서의 유사성을 마음에 두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난이라든가 비아냥(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했나)... 이런 것들이 분명히 튀어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감수하고서도 '유사한 재료를 썼을지언정 맛은 다르다'라는 확신을 갖고 써내려갈 수 있는 마음, 스스로에 대한 믿음. 그럴 수 있는 저력. 마음 속에 갖고 있는 어떤 뿌리, 끈기, 바탕, 인내심, 힘, 뭐라고 부르든, 그런 것들의 근원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항상 좋은 말만 들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도 그냥 계속할 수 있는 힘. 지금 그런 게 필요해서 그런가, 


김중혁 작가에게 계속 쓰게 하는 원동력은 뭘까... 그냥 좋다, 하고 싶다,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이라서... 이런 거 말고,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그것을 견디고 참아내서 결국 무엇을 해내고야 마는 걸까. 잘 안 되는 것 같고, 뭘 해도 안 풀리는 것 같고, 다 집어치우고 싶을 때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안다. 그 어떤 순간에도 그냥, 계속한다는 것. 될 때에도 안 될 때에도 그저 계속하는 것밖에는 답이 없다는 것. 


하루가 열리고 닫히는 걸 멍하니 바라보면서 제3자마냥 관조하고 있는 순간을 갑자기 제대로 바라보는 순간 발 밑에서 뚫리는 구멍, 그런 것들이 던져오는 흐리멍덩한 회색의 감정들. 항상 뭔가를 하고 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우울감. 그런 무의미해 보이는 시간 속에서 심지어 그 무의미한 일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쨌거나 시간을 쪼개 빠듯하게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수행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 이게 앞뒤가 맞는 말이기는 한 건가 제대로 한 번 생각해 보지도 않고 일단 자판을 쳐서 머릿속을 비워내야 좀 살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 지금이 어쩐지 다락에 쑤셔넣는대신 감정을 쏟아내고 있구나... 라는 기분이 드는데 이게 뭔가, 도대체 나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건가 전혀 모르겠지만 장맛비속에 양팔을 펄럭이면서 신나게 비 맞은 기분이어서 일단은 좀 상쾌하다. 


덧. 물론 이것도 별로 감정을 '잘' 쏟아내는 방식이라고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덜 유해한 방식이지 싶다. 남에게 피해가 안 가는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간혹 뱉어내고, 토해내는 방법도... 잘 가르치고 잘 배우면, 좀 낫지 않을까? 뭐가 나은 거냐고 묻는다면... 그냥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일들에 좀 힘이 덜 든다는 뜻으로 낫다고 하고 싶다.


덧2. 그리고 또 생각난건데, 

우주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그러더라).

그런데도 이일영은 계속해서 말한다.

우주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송우영과 강차연과 세미(성이 기억 안난다)는 어머니의 편지를 읽은 소리를 우주로 날려 보내기로 한다. 아마도 이 소리들은 만날 수 없을 것이고 그들도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지만, 그래도 그 마음을 그대로 행동에 옮긴다. 실제로는 무의미한 행위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실행에 옮기는 인간의, 대부분의 우리의 마음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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