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책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온전히 자기중심적인 흥분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이 바로 독서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책이 건네는 말을 찾는다. 작가들이 아무리 엉뚱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세상에! 이건 내 이야기잖아!' 라고 말하는 독자는 언제나 존재한다. -81쪽


맞다. 정말 맞는 말이다. 에지간한 책에서는 분명 어딘가 나의 일부와 공명하는 인물이든, 사건이든, 배경이든, 어쨌건 그런 문장이 찾아진다. 


이 책에서 예를 들자면, 내 경우에 나 이거 뭔지 너무 잘 압니다 싶었던 건 이 대목. 


어떤 작품들을 읽으면 '나라고 쓰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평론가로서 오랜 길을 걸은 끝에 루슈는 질투와 좌절이 뒤섞인 심정으로 결국 소설 쓰는 걸 포기했다. 글쓰기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니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졌다.

그는 원하던 일을 끝내 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마음 한 쪽에 늘 묵직하게 남겨둔 채 살아왔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누구도 원하지 않은 책들의 도서관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던 건지도 모른다. 그는 내려놓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222쪽


나이를 먹고 세상에 적응하면서 산다는 건 하나씩 마음에서 내려놓아가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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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돌보기 - 초보자를 위한 안내서 튼튼한 나무 29
미셸 쿠에바스 지음, 강나은 옮김 / 씨드북(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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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새롭게 찾은 내 초능력이 생각났어. 여태 깜빡하고 아빠한테 얘길 안 했는데, 이 능력은 아빠가 아플 때 생겨난 거야. 그리고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난 후에 가장 강력해졌어. 그 능력은 깜깜할 때 적외선 안경을 써서 앞이 보이는 것과 비슷해. 우리가 사는 우주 말고 또 하나의 평행 우주가 보이는 거야. 전에는 안 보였는데 이제 보여.


님버스 아주머니가 정신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떠난 남편이 보고 싶으니까 그 석상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 얘길 나도 한 백만 번은 들었고 전엔 지루해 죽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젠 말이야,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 그러니까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으면 나랑 비슷하단 생각이 들어. 아빠와의 추억이 떠오를 때 내 기분을 아주머니도 느끼는 것 같아. 전에는 아주머니를 봐도 그런 게 안 보였어. 그런데 이제 보여. -48~49쪽



시간이 가서, 세상을 더 배워서, 경험치가 늘어나서 '능력치 목록'에 새롭게 등재되는 항목들이 늘어날수록 한 존재의 성장을 실감한다. 긍정적인 경험치에서 얻는 능력만 있으면 세상이 얼마나 장밋빛이겠냐마는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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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 삶의 한가운데 있을 때는 전혀 흥미진진하지 않은 법이야. 그저 버겁기만 하지. 그 오묘한 의미는 한참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거란다. -378쪽

친구가 어른이 되는 일에 갈수록 고민이 많아진다고 말을 꺼내놓은 직후 이 소설이 떠올랐다. 어린 나이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일궈야만 하는 환경에 내던져졌던 도리스의 인생이 그녀의 삶을 교차해 지나간 타인들을 회상하며 되감기된다. 평탄하지 못했지만 평범하게 살기 위해 갖은 애를 썼던 도리스가 죽음을 직감하고 조카손녀에게 남긴 일종의 회고록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 작가의 메시지가 더 많은 독자에게 가 닿기를. 


덧. 도리스의 일생의 사랑이었다고 등장하는 앨런보다, 예스타 닐슨이라는 인물이 훨씬 매력적이고, 인간적이고, 가까이하고 싶은 종류의 사람이다. 이별을 말하기가 무서워서 잠수나 타는 남자가 뭐가 좋단 말인가. 영문을 모르는 여자는 속 터지게. 연애 감정으로 옆에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도리스의 소녀시절부터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고 가족이나 다름없이 도리스를 기다렸던 예스타가 더더더더더 인간적으로 훌륭한 거 아니냐고요. 자기가 먼저 잠수 타놓고 당신이 내 일생의 사랑이었네 잊지를 못했네 어쩌네 저쩌네 구질구질... 이러는 거 감동적이지 않단 말이죠. 짜증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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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철학자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는 <덕의 상실>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가 정체성 형성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지금까지 그것이 철저히 소외되어 왔다고 비판한다. 그는 인류가 점점 비도덕적 존재로 변하는 원인도 삶의 서사의 상실에서 찾는다. 자기 삶의 이야기보다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률을 동경하는 것이 실제 자신의 삶에서 마주하는 도덕적 판단과 인간적 감성을 무디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매킨타이어는 삶의 서사가 사라지면 인간은 점점 무감각해지고, 결국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한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25쪽


사회학 서적들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포인트가 몇 가지 있는데, 늘상 등장하는 단골메뉴 중의 하나가 자기서사의 상실이다. 그 바닥에서 공부 좀 했다 하는 분들이 모두 이 말을 입에 올리고 있으면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적어도 문제의식이라도 공유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조차도 좀 먼 것 같다. 자꾸 이야기라도 꺼내야지, 별 수 있나... 


개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것부터, 그게 시작이다. 뭘 모르는 사람이 생각하기엔 그렇다. 다수가 따르는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을 밟지 말고, 그들을 먼저 오롯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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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주체는 더 이상 자기 경험을 확장하지 않는다. 성장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그의 삶은 그때그떄 벌어지는 일들의 단편과 파편으로만 이루어지게 된다. 이런 점에서 성장이란 자기삶을 연속적으로 흐르는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려는 의지와 그것이 의미있고 가능할 때에만 이뤄진다.

파편적인 삶에 성장이란 있을 수 없다. -245쪽


죽어서 누군가 관뚜껑 덮어줄 때까지는 계속 움직여야 하나보다. 몸도 그렇지만, 마음이 멈추면 자기서사도 동력을 잃고 조각나기 시작할 테니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욕망일 것이고 욕망을 추동하는 것은 꿈이겠다. 나이는 들어가도 꿈을 키워야 하는 이유... 


#성장하는인간 #삶의연속성 #자기이야기를갖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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