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 수면과 꿈의 과학
매슈 워커 지음, 이한음 옮김 / 사람의집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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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저 자신도 잠을 많이... 구체적으로 하루의 1/3을 수면으로 채우는 남편을 잠탱이라고 놀리며 적게 자는 나 자신을 대조적으로 몹시 생산적이니(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부지런하느니하며 스스로 추켜세우는, 대표적인 수면 혐오자중의 하나였습니다. 과거형으로 쓴 이유는, 나름 개과천선했기 때문이고요. 수면찬양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는 말자 정도로 개종했다고나 할까요. 고백하건대 이 책이 계기가 된 건 사실이나, 하루 세 개의 도시락과(심지어 간식도 싸가야 한다) 부식으로들 먹는 밀가루 기반 스낵류를 수차례 구워내고 한참 뛰노는 아드님의 놀이터 라이프를 하루 한 시간씩 함께 버텨내는 생활은 일곱 시간 미만의 수면으로는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절로 일고여덟 시간의 수면을 취하게 됐음도 부정할 순 없군요. 어쨌든, 원인이 뭐가 됐든...


친구들이 종종 집에 드나들곤 하는데,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했었어서 우리말을 꽤 하는 친구가 책 제목을 보고 박장대소를 했더랬습니다. 왜 자냐니 뭐래... 왜 자기는 왜 자 졸리니까 자는거지... 라면서 한참동안 터진 웃음보를 그치지 못해 애를 먹었어요. 그렇긴 해, 졸리니까 자는 거지. 그러나 우리 같은 사람은 그렇게 웃고 잊어버리는 일들에 호기심을, (솔직히 호기심은 불만 붙이고 연구는 인내심이 하지... 불만 지르고 댕기는 호기심아 니가 하는 일이 뭐냐 대체) 갖고 덤벼드는 과학자들이 있어서 미지의 바다에서 뭍으로 끌려나오는 신비한 지식들이 얼마나 많으냐 이 말입니다. 잠, 까이꺼 최소한으로 자는 것이 현대인의 미덕이지, 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우리에게, 얼마나 심각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는지, 얼마나 소름끼치는 연구 결과를 들이밀면서 애써 알려고 하지 않던 현실의 많은 일들을 설명하고 있는지를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토록 대단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저자의 수고로움에 감사하는 뜻에서도 적당히 얼버무리고 나머지는 책을 읽어보셔야 돼요, 하는 게 인지상정이기도 하겠고요. 여튼 백문이 불여일독입니다.


가장 충격적인 것들 중 하나로 기억하는 것은 초반부에 등장하는 약물실험입니다. 실험내용은 간단합니다. 거미를 여러 종류의 약물에 노출시켜놓고 거미가 잣는 거미집을 관찰하는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우리가 알고 있는 해롭기 짝이 없어 법으로도 금지하고 있는 그 유명한 약물들- 필로폰, 마리화나 등등의 유명 마약을 모두 제치고 카페인이 1등을 먹습니다. 가장 거미집 같지 않은 거미집을 짓는 순서로 등수를 매길 때 말이죠. 합법적이고,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미성년자에게도 간혹 허용하기도 하는 바로 그 카페인이요. 


두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건 이겁니다. 

10대들의 뇌성숙과, 그 길 끄트머리에 기다리고 있는 전두엽- 즉 합리성의 거주지까지 완전히 성숙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은 바로 잠이라는 거예요. 자정 넘어서까지 학원 숙제에 매달리게 두는 것은 정말... 속상한거죠... 이것도, 가슴 아프게도 동물 실험으로 증명됐지만, 이 시기의 충분한 수면을 박탈당하게 되면 뇌 연결 성숙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고 합니다. 특히나, 아직 연구중이기는 하지만서도 이미 나온 결과만 보자면 청소년기 수면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비렘수면의 결핍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금 두려워도 하는, 어떤 질환의 발생률과도 매우 유의미한 상관성이 있고요. 


하나 더. 수면은 뇌의 학습 용량을 복구합니다. 즉 수면시간이 여섯 시간 아래로 줄어들면 수명 방추가 정상적으로 제공하는 이 놀라운 학습 혜택을, 못 받게 됩니다. 건강에만 좋은 게 아니라, 돈도 안 들면서 학습 능률을 높일 수 있는 엄청난 메리트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잠자는 시간과 깨어있는 시간을 대조해 기억을 단단히 굳히는 데 더 혜택이 큰 쪽을 알아보는 실험은 이미 1924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 이후로도,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이 실험 결과는 늘 재확인됐어요. 즉 잠으로 보낸 시간이 새로 학습한 지식을 저장하는데 도움이 됐다는 뜻입니다. 잠을 자지 않으면 새로 입력된 정보는 단기 저장소인 해마에 머무르다가 그냥 잊혀지고 맙니다. 수면은 이 정보들이 신피질의 장기저장소로 옮겨가도록 돕습니다. 이것은 동물 실험도 아니고, 실험 참가자들의 MRI스캔으로 확인된 사실입니다. 


우리는 한 가지 미묘하지만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잠이 지금껏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적이라는 점이었다. 20세기와 21세기에 했던 가정들과 달리, 잠은 낮에 배운 모든 정보를 전체적으로 무차별적으로(따라서 너저분하게) 보존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잠은 기억 증진에 훨씬 더 식별력을 제공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강화하거나 그렇지 않을 정보를 추리고 고를 수 있다. -179쪽


사실 나는 고고하기 그지없는 교육 기관이 자신이 계속 써 온 안 좋은 시험 방식을 그 특집 기사 하나로 180도 바꿀 것이라고는 결코 믿지 않았다. 그런 고고한 기관을 두고 사람들이 으레 하는 말이 있다. 기존 이론, 신념, 관습이 바뀌려면, 세대가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대화와 싸움은 어디엔가에서든 시작되어야 한다. -227쪽


그러니...

잠을 잡시다. 잠을 재웁시다. 충분히, 깊게, 넉넉히 잡시다. 양질의 수면이 사회 전반에 끼치는 긍정적인 -경제적인 이득도 포함하여- 영향력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 책에 나와 있는 그 많은 실험과 연구 결과를 일일이 인용할 수 없음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여기서 줄여야겠어요. 다만 저자가 내내 강력한 증거들과 더불어 주장하듯 최고 저렴(공짜잖아요!)한, 최고의 혜택들 -일부 속물적인 관점에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을 제공하는 잠을 도로 삶에 불러들이기 위해서, 더 확실한 신념과 설득의 근거를 찾고자 하는 분들께 두 손 받들어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책이 좀 두껍고, 왠지 부담스럽게 느껴질 경우를 대비하여 저자의 서문 중 가장 상냥하고 친절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일종의 포기 선언인데, 다른 대부분의 저자들과 달리 나는 독자가 이 책을 읽다가 졸음이 와서 잠에 빠져든다고 해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의 주제와 내용을 고려할 때, 나는 독자가 그런 행동을 하기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바다. 잠과 기억의 관계에 관해 내가 아는 바를 토대로 판단하자면, 독자가 잠이 든다는 것은 내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머릿속에 통합하고 기억하려는 충동을 거부할 수 없다는 뜻이니, 나로서는 가장 큰 찬사를 받는 셈이니까. 그러니 이 책을 읽는 동안 의식의 흐름이 출렁이는대로 마음껏 의식의 안팎을 오가시라. 나는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을 것이다. 정반대로, 기뻐할 것이다.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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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가락을 뒤로 꺾어야하는거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한다...)



... 하... 반년만 기다리자아... 

곰곰 생각해보니 UPS에서 오늘 알라딘 책 박스 배달온댔지. ㅋㅋ

내 책은 아니지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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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World (Hardcover)
Ishta Mercurio / Harry N Abrams Inc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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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성장을 다루는 그림책은 종종 만나지만, 배율을 조절해가며 성장 과정 자체를 조망하다 처음과 끝을 부드럽게 맞물리는 이 책의 가장 놀라운 부분은 시적 운율감을 살린 본문이 굉장히 수학, 공학적인 시선으로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고 또 드러냈다는 데에 있어요.

그리고 결국 그 성장의 끝에서 주인공이 키워 온 세계는 자기의 첫 출발점과 같은 형태로 아름답게 응축되며 매듭지어집니다.

괜히옛날생각 
감동받았어 
시화집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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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권의 기억 데이터에서 너에게 어울리는 딱 한 권을 추천해줄게 - 책을 무기로 나만의 여행을 떠난 도쿄 서점원의 1년
하나다 나나코 지음, 구수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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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블로그를 훑어보는 기분이었다는 거죠...

책 한 권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어려운 일인지 짐작은 가지만 (책을 쓰는 것도 아니고 번역하는 것만으로도 머리 쥐어뜯는 사람을 아주 가까이서 봤어서), 그래도 책으로 출판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 것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아주 빵빵 터지게 해서 엄청 웃게 해주든가, 나만 이런 생각을 감정을 갖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위로를 얻고 연대를 느끼게 하든가, 전혀 몰랐던 새로운 지식을 전해준다든가, 편협했던 생각의 방에 문짝을 하나 더 달아 다른 시야를 틔워준다든가,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든가... 뭐 많잖아요. 


가다 만 느낌입니다. 힘들었구나? 알겠어. 그런데 뭐가 어째서 그렇게 힘들었던건지 솔직히 얘기해서 공감을 얻으려는 시도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 되게 힘들었는데, 그래서 이렇게저렇게 나름의 시도를 해서 어떤 돌파구를 찾았어. 이런 프로젝트를 해봤는데, 재미있었고 보람도 있었어. 라는 굉장히 일차원적인 이야기를 들어준 기분이예요. 심하게 말해서 초등학교 저학년이 쓴 일기와 비슷했습니다. 오늘은 뭐뭐해서 이러저러한 날이다. 그래서 이러이러한 것을 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도 보람있는(내지는 재미있는 하루였다. 어쩌라고요?

솔직히 말해 소재와 기획은 아주 참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어떤 책을, 어떤 이유로 추천하게 되는 것인지가 아주 궁금했거든요. 책 소개도 좀 잘 되어 있으면 더 좋겠다는 기대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 중요한 부분은 너무나 기대 이하이고... 개연성도 없는 거 아닌가 싶고. 만남 사이트로 만나게 된 사람들에 대한 인상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그것도 정말 서점원 출신이 쓴 게 맞을까 싶을 정도로 실망스럽고. 


이렇게 대놓고 '실망스럽다'고 적는 리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사실 책을 사고 읽고 그러다보면 기대 이하인 책은 얼마든지 만나게 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처음으로(마지막이기를 바라지만) 이렇게 궁시렁대는 이유를 강변하자면 책값에 필적하는 배송료를 지불하고 바다 건너에서 받아서 그렇습니다. 책값에 비등한 배송료를 내고 한껏 기대한 책을 펼쳤는데 예상과 달라도 너무 다르면 누군들 짜증스럽지 않겠어요. 책을 구입할 예정이 있으신 분들 참고되시길 바라요. 좋아하는 출판사인데 어째 이 책은 좀... 에러인 듯한 느낌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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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쩌면 기적일수도 있겠다. 습관처럼 입에 올리는 '우리'보다 지극히 개인적인 단수의 '나'들이 더 많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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