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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리코더 - 못하는데 어째서 이리도 즐거울까 ㅣ 아무튼 시리즈 76
황선우 지음 / 코난북스 / 2025년 7월
평점 :
아무튼 시리즈의 책날개를 펼쳐보면 이런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 아무튼.
<아무튼,…>을 달고 나오는 책들은 글쓴이의 세계 어느 한 구석을 떠받치고 있는 든든한 기둥들이다. 비록 내게는 잠시 스쳐가는 인연이었거나 대체 저게 왜,라는 의구심까지 드는 대상일지언정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그의 세계를 직조하는 중요한 재료라는 사실을, <아무튼,…>의 한없이 늘어나는 목록을 볼 때마다 깨닫는다. 함께 찾아오는 경외감은 필수.
수많은 <아무튼,…>들이 출간되었고, 제법 많은 타이틀을 읽었다.
원래부터 나 자신도 좋아했기에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여가며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있었고(피아노, 언니, 서재, 사전, 양말 등등),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지만 완전히 설득된 것도 있었다(디지몬, 인가가요, 여름 등등). 페이지마다 눈물이 나도록 폭소하느라 유난히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는 것도 물론이고(술, 노래).
그러니까 아무튼 시리즈를 읽어나가면서 처음엔 이 시리즈가 과연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조금은 궁금해했던 첫 책을 지나 이제는 다음에는 무엇이 나오려나 기대하기에 이르렀다고 해도 빈말이 아니다. 개중 누군가가 내가 관심 있었던 소재를 다뤄주면 고맙고 반가운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혹은, 이 책처럼 완전히 잊고 살았지만 당당히 추억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물건을 기억하게 만드는 책 역시도 그렇고.
요즘 리코더는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직접 불어봤는데, 소리가 상당히 괜찮았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만 해도(엄밀히 말하면 국민학생이었겠지) 리코더는 실로 고문에 적합한 악기였다. 아니 이걸 악기라도 해도 되는 건지 궁금했을 정도니까, 말 다 했지. 황선우 작가가 나와 비슷한 또래인데 그 추억(?)을 딛고 다시 리코더를 취미로 키웠다니 존경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악기를 연주하는 데서 느끼는 즐거움, 그것을 제대로 느껴보지 않으면 절대 이어갈 수가 없는 것이 악기 취미다. 50대 아래로는 전 국민 누구나 한 번쯤은 불어봤을 악기가 아닌가. 그것을 어디서든 연주가 가능한 레퍼토리를 만들고 끊임없는 연습으로 유지하는 건… 그건 정말이지 찐사랑이 아니면 못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리코더에 대한 확고한 애정 고백이자 순정한 사랑의 연대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게다가 심지어 책 뒷면엔 이렇게 실려 있다. 무려 고딕체로, “리코더와 함께, 나의 세상은 영원히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어머나, 열렬해라.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사귀어 왔기에, 영원히 지루하지 않게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할 수 있는지 절로 궁금해지지 않나(나는 궁금했다).
리코더는 아마추어들에게 널리 열려 있고 접근성이 좋다 보니 누구나 쉽게 연주하다가 다양한 실수를 한다. 어느새 이 악기 자체가 켜켜이 웃음을 담은 상징물이 되어, 특유의 소리만 들으면 뇌에 저장된 추억의 압축이 풀린다. 다양산 서투름을 목격했던 각자의 경험을 소환하면서. 그래서 리코더 소리를 들으면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웃는다. -38쪽
이쯤 되면 전 국민 추억의 대동단결도 가능한 소재가 아닌가. 누구나 리코더에 얽힌 귀엽고 웃긴 기억 하나쯤은 있을 터. 내게 가장 감동스러웠던 대목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맺는다.
… 우리는 여섯 곡을 연주했으며, 단 한 곡도 빠짐없이 실수를 했다.
(…)
옛 노래가 아직도 마음을 설레게 한다는 노랫말을 가진 옛 노래를, 고개를 까딱이며 따라 부르는 관객들의 입 모양을 보며 예감했다. 아, 어쩌면 앞으로 이걸 계속하게 되겠구나. -1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