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전혀 안 간다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빨리 6주가 흘러갔다. 그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는데 유일하게 예외가 책 읽는 것이더라. 하다못해 종이에 뭔가를 끼적대기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의욕은 생기지 않았다.

팔에 2킬로짜리 돌덩이(??)를 매달고서, 이러고 도서관을 어떻게 가? 이런 그럴싸한 핑계를 갖다붙이고 열심히 책을 사고 배달시키고 또 사고 택배받고... 이 짓을 한참을 하고 나니, 깁스를 풀고 나서 남은 것은 사상 최고이자 최악의 금액을 달고 나타난 이용대금 명세서다. 진짜 기절할 뻔 했다. 이건 뭐니. 난 너하고 친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 1도 없는데, 너는 왜 느닷없이 나한테 달려들어 떨어지질 않는 건데.

 

이럴 바에야 차라리 넷플릭스를 열심히 공부(?)할 걸 그랬나...

 

다 까먹어버리기 전에 뭘 어떤 기분으로 읽었는지 간단한 정리라도 해 두고 싶은데, 대부분 그랬듯 마음만 앞선다.

한 줌 남아있는 양심상 사재기한 목록은 빼고 읽은 목록만 남기기.

 

     
       
       
       
       
       
       
       

 

 

차마 여기에 자백 못 한 나머지는 천천히 읽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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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한 쪽을 쓸 수 없는 것은 처음 겪는 종류의 불편이다. 자랑일 수 없지만 다리 골절은 몇 번을 겪었는데, 힘들기는 했어도 그게 자존감을 건드리는 수위까지 올라가진 않았다. 이번 사고로 손목과 더불어 앞니까지 깨져버린 순간 나를 둥글게 감싸안고 있던 어떤 무형의 보호고리가 함께 깨져나간 것을 하루 늦게 깨달았다. 입안 상처와 붓기가 모두 가시고 난 뒤라야 심미적 후처치가 가능하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몸으로 아득함이 느껴졌다.

향후 2주간은 누구도 만나지 못하겠고 바깥나들이를 해서도 안되겠구나, 생각했다. 흡사 지금의 내 몰골은 아마도 강백호에게 시원하게 깨진 정대만의 꼬락서니랄까... 라면 비양심적인 극적 미화인거지만 암튼. 혐오표현이나 차별적인 비유를 하지 않으려면 이런 방법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깁스 감은 팔로는 어디건 돌아다닐 수 있지만 1/3 나간 치아를 남들 앞에 드러내고 다니긴 용기가 풀 충전되지 않고선 쉽지 않은지라...

 

하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나는 당장 어제부터 잘만 돌아다녔고 말도 잘만 했다. 도대체 하루 만에 마음이 어떻게 그렇게 역주행을 한 건지 더듬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어제 아침에 상황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를 보살피고 정돈했다는 걸 기억해냈다. 간헐적인 출혈이 지속됐지만 가능한 한 열심히 칫솔질을 했고, 한 손밖에 쓸 수 없어서 사방팔방에 비누거품이 다 튀었지만 얼굴을 깨끗이 닦았다.

무려 20분이 걸리는 바람에 허리가 꺾이는 기분이었지만 머리를 감고 말렸다. 평범한 일과에 지나지 않았던 일상 습관이 처졌던 하루의 기분을 세워주었고 누가 날 보고 웃든 말든 그게 나라는 인간의 본질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사실을 뼛속 시리게 깨우쳐줬다.

머리로만 알던 것을 마음에 받아들여 몸에 씌우는 느낌이라고 하면 비슷할지. 잘 모르겠다. 그 감각을 되감았다 풀어보기를 되풀이하다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 대한 어떤 연구가 기억났다. (연구였던가?) 극한 환경 속에서, 그나마 지급된 멀건 커피물이나마 아껴서 씻고 스스로를 정갈히 하려 했던 사람들이 살아남은 비율이 높았다던 그것.

상황의 극한성이나 비참함의 정도에서 견주어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절대. 다만 내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내가 나를 사람답게 지키고자, 보살피고자하는 마음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보탠다는 뻔한 사족을 덧붙이고 싶었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내게 데려다 줄 수 있는 그 동력은 아주 사소한 생활의 습관 어딘가에서 나온다. 내일은 아마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다. 오늘의 내가 어제로부터 받아온 것에 뭔가를 더하여 전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3일에 걸쳐 나눠서 입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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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늘. 하루키 정도는 못 되어도, 운 따위에 질까보냐 비슷한 정도의 투지는 갖고 사는 인간이라고 생각해왔다. 건강 검진을 제때 잘 안 받았던 건 다분히 게으름으로부터 비롯한 것이었으나 허울좋게 저 태도를 핑계삼아왔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하루동안 일어났던 수많은 불운들은 도대체가 운수라는 말의 뒷배에 기대지 않고 설명이 안 되었다.

 

독(수리)타(법)로 찍는 노동의 무게상 모든 중언부언은 잘라내고 결론만 뽑자면 어제 하루의 불운은 결국 손목뼈와 부분적 치아를 전리품으로 가져가 버리고 내게 50만원의 견적서를 던져줬다. 아, 되게 일진 나쁘네. 너무 아파서 눈물을 찔금거리며 구시렁댔더니 엄마는 일진은 뭔 일진, 니가 정신 빼고 다녀서 그렇지, 하고 일갈하시었다. 넵. 나쁜 것은 나 하나였던 것이었다... 흐극.

 

한 십여년 전엔 무릎뼈를 산산이 부숴먹은 적도 있었는데, 그땐 세상 불편하다고 불평했는데 그나마 다리가 손보다 나았다. 아... 손은 정말 소중한 것이로군요. ㅎㅎ

답답답다ㅏㅂ....

 

이 와중에 좋은 점은 딱 하나 있다. 평소엔 도저히 읽을 수 없었던 책도 술술 읽힌다는 거. 할 수 있는 게 책장 넘기는 것 밖에 없어서... 도무지 안 읽히던 오페라의 유령을 가뿐히 다 읽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렇게 쉽게 정리가 될 거 도대체 그동안 뭐하러 이 난리부르스를 떨었냐아아아.... 라고. 이렇게 심드렁하고 편협한 생각이 먼저 튀어나오는 건 순전히 내 개인의 고통(?)이 더 크기 때문일거다. 인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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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홀릭 2019-04-09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쾌유를 빕니다

라영 2019-04-09 22: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매해 3월은 사람에 체하는 달이다. 희한하게 위장에 뭐가 잘못 들어가서만 막히는 게 아니라, 감각기관으로 지나치게 많은 자극이 들어와도 체기가 든다. 사람 많은 곳에 가면 멀미가 난다는 사람도 흔히 있으니까. 사람의 성향이라는 게 한 방향으로만 자라는 건 아니라 나면서부터 깔려 있는 기본 바탕에 물 주고 볕 주는 방향으로 겹겹이 시간이 쌓이면서 어떤 특질들이 두드러지게 자란다고 믿어왔다. 남들은 처음 보는 나를 사람 좋아하고 바깥에서 에너지를 얻곤 하는 외향적인 인간형으로들 생각하지만 본바탕은 혼자 조용히 있으면서, 혼자 좋아하는 일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만 충전이 되는 타입인 까닭에 학부모 이름표를 단 이래로 매년 신학기 초가 되면 다른 의미로 사람앓이를 하는 날이 잦아진다.

 

지난 주에 두 건의 입학식을 치르고, 세 아이들의 학부모 모임들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이들과의 개학 자축 모임(이라고 하니 어쩐지 나쁜 엄마가 된 것 같은 이 죄책감 뭘까) 약속 등등은 오늘과 내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라 거의 일 주일이 넘게 원치않게 사람들과 계속 어울려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반 정도는 내가 먼저 벌인 일이라 빼도박도 할 수 없는 데다가 원래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서 만날 약속이 기다려져야 하는 게 맞다. 원래의 컨디션이라면. 그러나 지금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아침에 집을 대충 치워두고 옷을 갈아입는 그 순간부터 미치도록 배깔고 엎드려 책이나 뒤적거리고 싶은 마음이 이미 배밖으로 튀어나온지 오래인 것이지. 이 비극을 어째야 하는가!

오늘도 그랬다. 몸은 어찌저찌 외출 준비를 마쳤는데 그림자는 눌어붙어 죽어라 안 떨어지는 누룽지마냥 마룻바닥에 있는 힘을 다해 들러붙어 나갈 생각을 안 해... 저거슨 그림자인가 그림자의 탈을 뒤집어쓴 본심인가... 알 수 없는 헛소리를 주절거리면서 간신히 현관문을 열고 나갔는데 약속장소에 앉은 순간부터 사람들의 웃는 얼굴 뒤에 따라나오는 의례적인 얘기들에 속이 울렁거렸다. 모임 회원들이 잘못하신 건 아무것도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다만 나 자신의 피로관리를 제대로 안 한 매니저에게 화가 날 뿐. 그런데 그게 나야...

아, 미치겠다. 진짜.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그냥 무슨 핑계든 갖다 붙이고 집에서 쉴 걸. 후회해봤자 늦었어.

 

수요일까지 며칠 남았나 세어 봤다. 내일 모레가 수요일이다. 수요일이 되면 드디어 쉴 수 있다. 아무도 안 만나고 누구의 전화도 안 받고 핸드폰은 비행모드로 돌려버리고 칩거해야지.

금요일은 무려 중학교 학교 설명회가 있다... 그것도 안내문 온 걸 보니 예상 소요시간은 무려 세 시간이다아아아아아아!!!!! 일일 알바 엄마를 구하고 하루 오프를 내고 싶은 이 마음을 남편인지 내편인지는 알려나?

 

 

 

 

 

 

 

 

 

 

 

 

 

 

이 책들을 작업테이블(???)화한 식탁에 올려놓고 번갈아가며 읽고 있다. 이런 갈짓자 읽기 방식에 병렬독서법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였던 어느 일본 작가분... 복 받으실 것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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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희은수네 2019-03-27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4권의 책을 돌려읽고 있어요.^^.글을 맛깔나게 쓰시네요.부럽부럽합니다^^

라영 2019-03-27 10:58   좋아요 0 | URL
역시 책 읽는 사람들은 비슷하구나 하는 모종의 연대감을 느끼게 되는군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상실의 소식이 많이 들려온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주변에서도 있었다. 안됐구나, 라는 생각은 했지만 정말 안타까울 정도로 아무런 감정적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은 파도조차 가라앉은 바다와 같았다고나 할까요... 라고 쓰면 네가 인간이냐, 싶어 뵐까봐 소심한 변명을 한 마디 놓자면 생전의 그 분이 참 상처를 많이 주셨다. 내게도 내게 너무너무 소중한 어떤 사람에게도. 스스로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아무렇지 않을수도 있나 의아했는데 가만 보니 나와 돌아가신 분의 마음 사이에는 어떤 종류의 연결도 없었던 거다.

 

엄마 뱃속에서 나와 탯줄을 끊은 아이의 배에도 (아이 입장에선) 원치 않는 단절로 인한 상처가 남아 한동안 아물도록 보살펴야만 하는데, 그건 열 달 가까이 끊임없이 생존을 위해 엄마와 어떤 종류의 교류를 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이어지는 줄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달고 살며, 예전에 달고 있었던 줄이 탯줄 하나 뿐일까...

짧지 않은 시간을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갯수의 줄들을 달게 되는지, 보이지 않지만 무게만큼은 꽤나 나갈 것 같은 교류를 위한 가늘거나 굵은 끈들. 인위적으로 끊거나 자연적으로 절단되거나 상관없이 줄을 떼어낸 자리엔 상처가 남을 수밖에 없다. 굵고 두껍게 뻗었던 줄들이 뽑혀나간 자리는 얼마나 상처가 깊을 것이며 흉은 또 얼마나 오래 갈 것인지. 흉이 깊게 난 만큼 상처를 들여다 볼 때마다 그 순간의 통증이 다시 떠오르지 않을 재간이 있을까.

상처가 아무는 동안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아픔으로 옆에 있는 이들에게 괜한 성미를 부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쓸데없이 감정의 낭비를 하게 되는 건 아닐까. 벼라별 생각을 다 한다. 튼튼한 줄 알았던 어떤 관계들이 예상치 못한, 그러나 짐작가는 이유들로 헐거워질때 별로 튼실하지 못했던 이성이 마구 흔들리곤 한다.

 

나이먹는게 그다지 반갑지 않구나, 라고 처음 느꼈던 시점부터 이런 종류의 통증을 감당하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그럭저럭 감당하고 현장에서 감정을 수습하는 방법은 얼치기로 배웠지만 천천히, 깊게 애도하는 방법은 전혀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런 면에서 외국의 장례 문화는 배울 점이 많지 않은가... 생각한 적이 있었다.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며, 그 사람이 좋아하던 것도 같이 준비하고, 잘 보내고, 잘 남아있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모두 그를 마음으로 애도하는 그런 것들이 좋아보였다.

먼 고향에 따로 모셔놓고 가네마네 쌈박질하지 말고 도시에 묘지공원같은 걸 조성해서 자주자주 찾고 기억해주면 더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하고. 삶에 대해 좀 더 진지해지는 효과도 있지 않으려나, 우리나라 정서상 이건 힘들까. 나는 좋던데.  

세상에 딱 하나 무엇, 절대적으로 옳은 정답이란 건 없겠지만, 뭔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보고, 그렇게 천천히, 인간적으로 더 나아지고 좋아지는 방식의 발전에 대해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느닷없이 써 보는, 몸도 피곤하고 부모님들 편찮으시다는 소리에 괜히 축 처지는 오후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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