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나는 항상 내가 가진 것보다 남이 가진 것을 먼저 보는 사람이었어."

"왜 과거형이야?"

"이제 안 그러려고. 물론, 이런 말 했다고 해서 순식간에 짜란 하고 변할 수야 없겠지만, 이제 나는 ... 할 거야, 라는 선언 같은 건, 어쨌건 허공에라도 새끼손가락을 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거든."

"그런데 뭐가 그렇게 부러웠어?"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하나에만 집중해서 마음에 여유를 두는 것."

"언제는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그것도 다 평균 이상 한다고 인정받으면서 살고 싶다며."

 

잠시 시선을 공중에 띄웠다. 곳곳에 내 것이었으면, 소망하던 현실들이 환상처럼 눈 안에 들어와 박혔다. 그래봐야 내 것이 아닌 건 아닌 것이다. 대신에 내가 선택한 것들이 뭐였더라, 머릿속을 더듬었다. 머리속을 뒤져서 말을 찾아야 할 때도 있고, 마음밭을 캐서 말을 파내야 할 때도 있다. 지금은 머릿속을 열어봐야 할 때였다. 그렇다고 내가 이렇게 열심으로 말을 고르는 노력을 들이는만큼 말을 유창하게 잘 하는 사람인가 하면, 그도 아니었다. 목구멍에 적절한 말들이 채워지지도 않았는데, 성미 급한 입은 벌써 열려서 뭔가를 뱉어내곤 했다. 그야말로 아무말 대잔치의 향연이라고나 할까. 늘 그런 사달이 벌어지는 탓에 이성은 이미 엎질러진 아무말과 그나마 그럴싸한 말들을 얼기설기 엮어대기 바빴다.

핵심은 늘 어딘가에 도망쳐 몸을 사리고 있었다. 네 이놈, 하고 구석탱이에 있는 그 놈을 꼬챙이에 꿰어 걷어올리는 심정으로 노려보면 그제서야 핵심이는, 헤헤 나 벌써 찾았쪄? 하고 비슬비슬 웃었다. 에라이 몹쓸 놈아.

 

"그랬는데, 역량이 안 되는 것 같아."

"그 일들을 다 좋아하는 거 아냐?"

 

생각해 보면, 그랬다. 나는 늘 뭔가를 '열렬하게' 좋아해서 끝까지 밀어붙이기보다는, 적당히 하되 남보다 조금 잘 한다 소리를 들으면 거기서 좀 더 뭔가를 이뤄보자, 보다는 그래 그거면 됐다... 하고 또 다른 우물자리를 눈여겨보는 타입이었다. 그렇게 이 날 입때껏 파 놓은 우물구멍이 수백 개는 될 터였다.

적당히 사교적인 성격이었다. 공부도 적당히 해서 부모님 낯부끄럽지 않게 학교를 갔다. 또 적당히 급여 주면서 일도 적당히 시키는 직장에서 일했다. 악기 연주도 적당히, 남들 앞에서 한두 곡 정도 연주할 줄은 알지만 그 이상 넘어가면 밑천이 털리는 수준으로만 연주할 수 있었다. 음식도 살림도 적당히 할 줄 알아서 십여 년 남짓 전업주부 생활을 했다. 손으로 하는 일이면 뭐든 적당하게는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알맞게 마땅하고, 정도에 알맞은 그것에 신물이 나려 한다. 우는 소리는 듣는 것도 하는 것도 싫어하지만, 오늘은 종일 커피 향기를 쐬면서 나의 적당주의를 격하게 성토했다.

 

"좋아하긴 하는데 그냥 남들 사이에 적당히 (아놔 또...) 묻어가면 그걸로 만족했나봐."

"그럼 지금은 적당히 만족하고 싶은 게 아닌 거네?"

"딱히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그게 나인 것 같고, 그렇게 나를 받아들이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은데 그게 안 돼서. 어차피 난 내가 뭐 하나에 미칠 수 없는 인간인 건 알거든.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냐면, 내가 뭐 이래저래 만든 것들 있잖아. 그거 가끔씩 찍어서 SNS에 올리기도 하고 그러거든. 근데 만날 테이블 위에 놓고 찍다가 갑자기 뭔 바람이 불어서 다른 곳에 놓아봤는데, 어쩜 집에 '여백'이 없는거야. 계속 뭔가가 프레임 안에 걸려들어와. 이를테면 애가 쓰고 의자에 걸어놓고 나간 에코백 끄트머리라든가, 조명 지구본 전선이라든가, 충전기, 리모컨, 옷걸이... 그런 생활의 잡동사니들이 말야, 너무 거슬리고 화가 나면서 급기야 우울해지더라고. 왜 우리 집은 이렇게 뭐가 많은거야. 근데 결국 그게 내 마음의 풍경이 그대로 녹아나온 현실이라고 생각하니까 이걸 뭘 좀 어떻게 치료를 해야하는 건 아닌가... 오바일수도 있지만 생각이 그렇게까지 흘러갔어."

"치료?"

"사실 극단적인 치료인 거지. 집안에 걸리는 게 없게 싹 다 내다버리면, 그럼 마음이 좀 한산해지지 않을까. 정말 나한테 꼭 있어야 하는 것만 다시 찾게 되지 않을까... 뭐 굳이 이름붙이자면 미니멀라이징 라이프 테라피 정도 될라나."

"글쎄 내 생각엔 너 내다버린 거 6개월 안에 고스란히 새 물품으로 도로 사 주워들일 것 같은데."

"나도 그래서 생각만 해 봤다가 접었어."

"너무 거창하게 말고 작은 것부터 실천하면 되잖아. 커피를 마셨으면 최소한 물주전자라도 바로 제자리에 올려놓고, 책을 봤으면 책갈피 꽂아서 책꽂이에 도로 꽂아두면 되는 거 아냐? 금방 다시 할 거니까, 그러면서 그 자리에 그대로 흔적을 남겨두는 습관이 제일 문제로 보여."

"......"

"일이 잘 풀릴 때면 하나도 안 보이다가, 뭐가 하나 꼬이기 시작하면 네가 여기저기 남겨뒀던 흔적들이 다 한꺼번에 우르르 쌓여 스트레스로 쏟아지는 거 아냐. 아, 이것도 안 풀려서 짜증나 죽겠는데 저것도 치워야하고, 이것도 넣어놔야하고, 그런 거지.

그러니까 마음이 무너지기 전에 작은 돌들은 좀 그때그때 치워. 산사태 나면 그 때 가서 아, 역시 이런 거 다 미련 갖고 끌어안고 살 필요없어, 그러니까 다 때려 치워야지, 그런 홧김에 나올 소리 하지 말고."

 

그럴지도 모른다. 가능한 한 손에 닿는 일들을 두루 잘 하려드는 성향은 그것대로 놔두고 계속 잘 길들이고 길러도 괜찮은 건지도. 엄청난 경지에 이르른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존경의 눈빛을 보내면 되고, 굳이 어떻게 좀 쫓아가볼까 욕심내서 괜히 지금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이 생활의 균형을 깰 필요가 없는 건데, 영원히 내 몫이 될 수 없는 어떤 것을 바라보느라 머리 위로 뭐가 떨어지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도 좀 그렇기는 하네.

 

"이것도 적당히, 저것도 적당히 할 수 있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야. 그러니 계속 그렇게 살면 돼."
"듣고 싶은 말이었는지 확신은 안 서는데, 아니 사실 네 말에 말려든 것 같기도 하고. 근데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

"아, 맞다니까. 그러니까 커피 다 마셨으면 빨리 가. 나도 바빠."

"비 오는데..."

"그냥 가. 까짓것 좀 맞아도 안 죽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친구의 육아서 추천 요청에 갑자기 그 동안 읽었던 육아서들의 목록을 만들어 본다. 생각나는대로 적는 것이라 거칠고 다듬지 않은 목록이지만 언급하는 책들은 모두 읽은 것이고 기억나는 순서대로 쓰는 것이지 내용의 유용성이나 성실성 내지는 전문성을 판단한 (판단할 능력도 없거니와...) 것이 아님을 밝힌다.

 

 

 

 

 

 

 

 

   
  

 

 

 

 

 

 

 

 

 

 

 

 

 

     
     
     
     
     

 

 누군가 책 제목을 댔을 때 요약은 고사하고 에센스라고 할 만한 키워드 하나라도 생각이 날까 싶은 의심이 드는 순간이다... -_-

무턱대고 많이 읽는 것이 좋은가, 하나라도 제대로 정독하는 것이 좋은가. 망막과 뇌에 굵은 체를 끼우는 게 나은 건지 촘촘하고 튼튼한 융 같은 필터를 씌우는 게 나은건지 갑자기 심각하게 고민이 되는 순간이다... 라고 해봤자 나는 이미 텄어... ㅎㅎ 그래도 머릿 속 어딘가에 내가 언젠가 무슨 책을 읽었더랬지, 하는 조금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을까? 애잔하다 애잔해.

 

뱀발.

그러고보니 어린 시절에 읽었던 무슨 소녀문고(지경사였던가 아니면 그 유사시리즈였을 듯)에서 목록 만들기가 취미인 여주인공 소녀가 나왔던 게 떠올랐다. 이름이 아나스타샤였던 것까지 기억나는데 스토리고 제목이고 역시 아무것도 기억 안 나네. @_@;;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이건 물건이건 장소건, 다 똑같이 적용되는 법칙이었구나.

 

넓디넓은 인터넷 세상에서 평수 작은 집을 지어놓고 길어야 삼사 년 머무르다가 또 다른 터전을 찾아 헤매고 또 어설픈 집을 짓고, 몇 해 못 버티고 또 떠나고. 계속되는 방랑의 원인을 헤아려 보니 역시 '실제로 아는 친구들'이었다.

얼굴과 목소리를 알고, 심지어 성격마저 바닥까지 아는 친구들은 한결같이 나를 좋아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지만, 말로 만나던 사람을 글로도 만나는 것은 영 적응하기가 어렵다. 재미있는 것은 짤막한 한두 마디의 교감만 주고받던 사람들과 실제의 친구 관계가 되어도 그들을 여전히 온라인에서 만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다. 그 반대의 상황은 나를 아주 긴장하게 만들지만.

 

네이버 블로그도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들통이 난 마당에 최후로 도망친(!!!) 곳이 여기다. 여기서도 발각당하면 ㅎㅎㅎ 난 이제 갈 곳이 없는 거지... 이렇게 쓰니까 무슨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고 몸을 숨기러 다니는 모양새가 되네.

 

꼬박 챙겨듣는 팟캐스트의 진행자이시면서, 또한 그 분의 전문분야에서 명성을 떨치시는 서천석 선생님의 말씀을 머리에 새기며 다시 한 번 적어본다. 온라인에만 존재하는 작은 게시판 하나는, 내게는, 문이다. 일 분 일 초를 못 참고 계속 빵빵 터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고함소리,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 일과 계속해서 뭔가를 고민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산적한 이 세계를 잠깐 살짝 닫아두고, 혼자 바람 소리도 듣고 하늘도 보고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앉아 있어도 아무것도 문제될 게 없는 하얀색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우울하면 노랑과 회색을 섞은 하늘을 칠할 것이고, 기분이 한껏 고양될 때는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마냥 사방팔방에 물감을 뿌려댈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라도, 혹시라도 현실의 '나'를 아는 님아...

저를 찾아냈다면 말이죠 (특히 옆지기 아저씨, 당신 말입니다 ㅎ)

나 오늘 네가 블로그에 뭐라고 쓴 거 봤는데 블라블라블라.

제발 넣어두세요 ㅎㅎㅎㅎ

플리이이이이이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지고 있는 자수책은 이것들

 

 

 

 

 
   

 

 

 

 

   

 

 

     

 

있는 책이나 잘 활용해야지 싶은데 그래도 또 눈이 가끔씩 가는 자수책들

 

       

  

 

 

 문득 드는 의문은, 실용서를 정말 실용적으로 잘 쓰고(?) 있는 독자는 몇이나 될까 하는 것. :D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밥만 먹고 살 수 없는 것처럼 책도 음악도 좋아하는 것들이 적당히 분야별로 섞여 있으면 근사한 밥상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