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한 쪽을 쓸 수 없는 것은 처음 겪는 종류의 불편이다. 자랑일 수 없지만 다리 골절은 몇 번을 겪었는데, 힘들기는 했어도 그게 자존감을 건드리는 수위까지 올라가진 않았다. 이번 사고로 손목과 더불어 앞니까지 깨져버린 순간 나를 둥글게 감싸안고 있던 어떤 무형의 보호고리가 함께 깨져나간 것을 하루 늦게 깨달았다. 입안 상처와 붓기가 모두 가시고 난 뒤라야 심미적 후처치가 가능하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몸으로 아득함이 느껴졌다.

향후 2주간은 누구도 만나지 못하겠고 바깥나들이를 해서도 안되겠구나, 생각했다. 흡사 지금의 내 몰골은 아마도 강백호에게 시원하게 깨진 정대만의 꼬락서니랄까... 라면 비양심적인 극적 미화인거지만 암튼. 혐오표현이나 차별적인 비유를 하지 않으려면 이런 방법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깁스 감은 팔로는 어디건 돌아다닐 수 있지만 1/3 나간 치아를 남들 앞에 드러내고 다니긴 용기가 풀 충전되지 않고선 쉽지 않은지라...

 

하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나는 당장 어제부터 잘만 돌아다녔고 말도 잘만 했다. 도대체 하루 만에 마음이 어떻게 그렇게 역주행을 한 건지 더듬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어제 아침에 상황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를 보살피고 정돈했다는 걸 기억해냈다. 간헐적인 출혈이 지속됐지만 가능한 한 열심히 칫솔질을 했고, 한 손밖에 쓸 수 없어서 사방팔방에 비누거품이 다 튀었지만 얼굴을 깨끗이 닦았다.

무려 20분이 걸리는 바람에 허리가 꺾이는 기분이었지만 머리를 감고 말렸다. 평범한 일과에 지나지 않았던 일상 습관이 처졌던 하루의 기분을 세워주었고 누가 날 보고 웃든 말든 그게 나라는 인간의 본질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사실을 뼛속 시리게 깨우쳐줬다.

머리로만 알던 것을 마음에 받아들여 몸에 씌우는 느낌이라고 하면 비슷할지. 잘 모르겠다. 그 감각을 되감았다 풀어보기를 되풀이하다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 대한 어떤 연구가 기억났다. (연구였던가?) 극한 환경 속에서, 그나마 지급된 멀건 커피물이나마 아껴서 씻고 스스로를 정갈히 하려 했던 사람들이 살아남은 비율이 높았다던 그것.

상황의 극한성이나 비참함의 정도에서 견주어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절대. 다만 내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내가 나를 사람답게 지키고자, 보살피고자하는 마음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보탠다는 뻔한 사족을 덧붙이고 싶었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내게 데려다 줄 수 있는 그 동력은 아주 사소한 생활의 습관 어딘가에서 나온다. 내일은 아마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다. 오늘의 내가 어제로부터 받아온 것에 뭔가를 더하여 전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3일에 걸쳐 나눠서 입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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