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창비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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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몇몇의 소설들을 읽고 난 후에 나는 조금 무서웠던 것 같다. 한 달 전 이사날이 생각났고, 아무 일도 없었던 평온했던 그 날의 풍경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내면이 궁금해졌고, 나의 아무 일 없는 일상이 두려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무언가 섬찟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세상, 혹은 정말로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무심한 세상. <오빠가 돌아왔다>에 나오는 세상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곰곰 생각하니, 내 일상 역시 그렇다. 아무 일도 없는 일상은 그것 자체로 공포이고,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세상은 평온하다. 표제작 <오빠가 돌아왔다>의 그 콩가루 가족이 그저 그런 삶들을 인정하고 떠난 야유회와 같은 날들. 조금은 떠들썩하고 조금은 불안하고, 무슨 일인지 일어날 것 같지만 그저 그런 날들. 내 일상은 그런 날들의 연속이다. 스토커에게 살해되었을 것 같은 동창생은 태연히 전화를 받고, 위태위태하던 이사는 가야토기 하나를 박살내고 끝이 난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독자인 나는 책을 읽는 동안 긴장감에 사로잡히고, 허탈한 한숨의 끝에서 삶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문득 광화문 네 거리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의 안위가 궁금해진다. 그게 있거나 말거나 그리 관심도 없으면서, 혹 지금 이 시간 그게 파괴되지는 않았는지, 궁금함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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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4-05-24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미건조한 일상, 이것이 사실은 얼마나 연약하며 깨지기 쉬운 축복인지.
herstory란 잡지를 후루룩 넘겨보다가 김영하 인터뷰가 있길래 서서 봤습니다.그런데 그의 입을 빌려 내가 말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지요.그런 착각을 하는 이들을 많이 만들수록 유능한 작가겠지만,거의 엇비슷한 시기의 공기를 마셔왔다는 것도 무시할수는 없겠다 싶었습니다.결국 한권 사가지고 들어오면서 끝내 김영하에게 마음 전부를 줘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비시시 웃었습니다.역시 매혹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지참해야 스며들어갈 수 있는 무도회인 모양입니다.또 한 주 잘 누리시길.

선인장 2004-05-24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내 마음 전부를 줘 본 적 없다는 말, 저도 동감입니다. 그러나 그 거리만큼 매혹되고 있다는 말, 역시 동감입니다.
님도 좋은 한 주 보내세요.
 
4인용식탁 [dts] - [할인행사]
이수연 감독, 전지현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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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개인적으로 나는 <토요 미스테리 극장>이나 <전설의 고향> 같은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무자비한 살인마가 나와서, 사람을 토막내버리는 헐리우드의 공포영화보다 마음을 지속적으로 긴장시키는 서글픈 귀신들이 나오는 우리나라의 공포영화를 보고 있으면, 나는 무섭고도 슬픈 쾌감에 사로잡힌다.

시작은 동생과 같이 했다. 초반에 지하철에서 죽은 아이들이 나왔고, 정원의 식탁에 그들이 등장하자마자, 공포 자체를 질색하는 동생은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거실의 조명을 죽이고, 영화에만 집중하던 나는 내 뒤의 스피커에서 "오빠"라는 어린아이의 음성이 들리자마자 남동생을 불렀다. 휴학생 주제에 무슨 바쁜 일이 그리 많은지, 새벽 두 시에도 동생은 할 일이 있었고, 무서우면 불이나 켜고 보라는 충고를 남기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감독의 말처럼 <4인용 식탁>은 공포에 방점이 찍힌 영화가 아니었고, 인간이 과연 자신의 기억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조금 무서운 영화였다. 이불을 끌어당기고 공포의 기분을 만끽하고자 했던 나의 계획에는 차질이 생겼지만, 영화는 오히려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전지현이 분한 연은 기면증이라는 희귀한 병을 앓고 있으며 사람의 과거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가 보는 과거는 그 과거를 가진 개인이 무의식 중에, 혹은 의식 중에 잊어버리고자 했던 악몽이며, 이 악몽을 알게 되는 순간, 그의 삶을 불행해진다. 산동네에서 개척교회를 하는 인자한 목사를 자신의 아버지로 알고 있던 정원은 연으로 인해, 잃어버린 일곱 살 이전의 기억을 찾게 된다. 악몽 같았던 어린 시절, 그리고 가족의 죽음을 초래한 자살기도. 그는 평화로운 잠과 같은 죽음을 원했지만, 그의 선택은 끔찍한 결과만을 낳았을 뿐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정원과 연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아이를 아파트에서 내던진 정숙의 이야기였다. 죽은 엄마의 젖을 물고 살아난 어린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았지만, 그 아이가 자신의 젖을 무는 것을 못견뎌 한다. 자신을 향해 아장아장 걸어오는 아이를 소름끼치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그리하여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푸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이 한 인간에게 얼마나 큰 공포를 주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다. 그녀가 느끼는 공포와 슬픔의 크기가 너무 커서, 정작 영화가 끝나면 주인공 정원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가 궁금해지기보다는 정숙이 과연 살아났을까, 그녀가 과연 앞으로의 생을 어떻게 견딜까가 염려되는 것이다.

이 영화를 소개한 몇몇 리뷰들은 이 영화 속 공포의 근원은 가족이며, 이 영화는 가족이 무너진 현대 사회의 실상을 공포라는 장르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말하고 있었다. 물론 가족을 만들어가는 시점에서 정신적 혼란을 겪는 정원이나 다른 등장인물 모두가 앓고 있는 공포의 내용은 가족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특별히 가족에 대해 말하고 있기보다는, 상처와 고통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성장영화라고 말했는데,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된 정원이 흐느끼며 두려워하는 모습은, 어느 십대 후반의 아이들보다 훨씬 서글프고 힘겨워보였다.

나이를 먹고, 사람이 자란다는 것은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과거의 시간들을 그만큼 늘리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일들만, 자신에게 이로운 일들만 기억하고 그 왜곡된 기억에 매달려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문득, 내가 내 기억의 밖으로 몰아냈던 어느 한 시절이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어쩔 것인가. 정원은 4인용 식탁에 홀로 앉아 밥을 먹는다. 그의 곁에 있는 건 산 자들이 아니라, 죽은 자들이다. 정원의 불신으로 인해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진 연이 그 앞에서 웃고 있다. 이제 정원은 뜨거운 국물을 넘겨야 한다. 가슴이 뻐근하고, 속이 아플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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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psy 2004-05-22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포영화는 잘 안보는데 저도 사인용시탁은 끌리더군요.. 공포에대한 또다른 시각이라고 할까.. 귀신이 무서운게 아니라 그 귀신을 보는 인간이 더 무서웠던 영화였던거 같아요.. 좋은 리뷰였습니다~^^

선인장 2004-05-22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히 귀신은 존재한다고, 완전히 믿어버리고 있는데도, 이따금씩 두려운 건 무슨 까닭일까요? 저 역시 귀신을 보는 제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요?
야자와 아이, 저도 참 좋아하는 만화가입니다.

프레이야 2004-05-24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저도 참 인상깊었어요. 제 페이퍼에도 있어요. 믿음이란 것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보았죠. 님의 리뷰, 많은 부분 공감하며 잘 읽고 갑니다. ^^

선인장 2004-05-25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믿음의 정체라.... 저 역시 그게 궁금하군요. 마음을 주지 않으니 오해할 것도 없고, 의심할 것도 없어서 좋긴 한데, 더불어 믿을 것도 없어지더군요. 과연 연은 자신의 죽음으로 자신을 증명한 것일까요? 영화가 끝나고 저는 조금 궁금했습니다. 죽음이 증명의 방식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july 2004-06-26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때문에 <4인용식탁> 봐야겠네요
왜곡된 기억, 미화된 신념.. 그래서, 인정하지 않는 끔찍한 진실들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하네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세트 - 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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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실, 얼마 전 출판사에 다니는 한 후배 녀석에서 이 책의 출판을 권하고 있었다. 절판된 지 꽤 오래이고, 찾는 이도 많은데 왜 책이 없는 걸까. 니네가 판권 사들여 다시 찍어라, 그러면 꽤 잘 팔릴 것이다. 혹 잘 팔리거든 기획료 좀 챙겨주고. 결국 엉뚱했던 나의 제안은 이 책의 재출간으로 의미가 없어지고 말았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꽤 강도 센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다니. 전쟁 이후 참혹한 상황을 다룬 많은 소설들을 읽었지만, 어린 아이들이 세상을 견디는 성장소설을 많이 읽었지만, 이 책이 주는 충격은 전쟁으로 인한 상흔이나 성장통이라는 상투적인 독후감을 멀찍이 밀어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면서도, 나는 이 책의 장점이나 그 책의 특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근친상간, 살인, 동성애, 아동학대, 전쟁, 기형아, 수간 등 온갖 자극적인 것들이 난무하는 세계. 태연하게 사람을 죽이고, 어른들의 절절한 슬픔을 냉소하고, 개와 성교하는 여자아이를 태연하게 바라보는 루카스와 클라우스라는 이 괴물같은 아이들에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나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그 아이들은 불쌍했고, 안쓰러웠지만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내가 동정했던 존재는 부모도 없이,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살아가는 어린 쌍둥이 형제가 아니라 그 녀석들에게 조롱 당하고, 그 녀석들에게 속을 보이게 되는 어른들이었다.

두 녀석은 전쟁이라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생존을 모색했고, 할머니의 온갖 구박도 그럴 듯한 방식으로 대처해 나갔다. 동성애자인 장교나 신부를 상대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녀석들의 모습은, 처절한 생존의 본능이라기보다는 이따금 어린 아이들에게서 엿볼 수 있는, 사람을 섬찟하게 하는 무자비한 폭력의 형태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기 아버지의 시체를 징검다리 삼아(그것도 아주 계획적으로) 국경을 넘어가는 이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그 녀석들의 상황을 동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루카스와 클라우스가 성장하고, 도대체 이 녀석들이 쌍둥이였던 게 과연 맞는지, 한 정신 나간 녀석의 망상은 아니었는지 머리 속에 복잡한 상황에서 세 권의 소설을 다 읽고나면,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모두 한 덩어리로 뭉쳐져, 그들 모두를 증오하고 그들 모두를 동정하게 된다.

전쟁이라는 상황은, 혹은 전쟁이 아니더라도 은밀하고 무자비한 폭력이 곳곳에 존재하는 이 인간세상은 아비의 자식을 낳게 하고, 개와 성교하게 하며, 아비의 시체를 밞게 한다. 자신의 사랑을 부정하게 하고, 잃은 사랑이 안타까워 잠 못 들게 한다. 어린 아이로 하여금 살인을 하게 하고, 그 녀석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루카스가 클라우스든 루카스든, 그 녀석들이 함께 했던 시절이 있었든 없었든, 이 비밀노트가 과연 실제한 상황이든 아니든, 이 소설 속의 고통은 그대로 실재하여 읽는 이의 숨을 가쁘게 한다. 딱딱한 껍질 속에 웅크려 어떤 고통에도 반응하지 않는 어린 녀석들의 삶을 따라가는 동안, 그 껍질 속에서 날것 그대로의 삶을 만나, 읽는 이의 마음에 상처가 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 책은 아주 원색적이고, 폭력적이다. 고백하자면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에게 증오심을 느꼈다. 이런 마음을 만들어낸 건 순전히 작가의 문체 탓이다. 지극히 건조하고 지극히 냉정하게 사건을 진행해 나가는 작가의 문체는 이 절망적인 상황으로의 감정이입을 철저하게 막아낸다. 나는 전쟁이라는 상황 한 복판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 모든 인물들을 미워하고 만 것이다. 그러면서 이 모든 이들의 불행한 삶에 대해 동정하지 않는 내 자신조차 증오하게 되었다.

솔직히, 재출간된 책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표지는 소설의 내용과 전혀 어울리지 않고, 예전부터 거슬렸던 활자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으로 열심히 이 책을 선전하고 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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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4-05-21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추천만 꾸욱 누르고 갑니다.

이쁜못난이 2004-05-24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내용에 대한 간략한 내용 설명과 책의 내용을 접하면서 느낀 솔직한 감정을 표현한것 같아 맘에 든다.^_^*

kuroko 2004-05-25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에게 증오심을 느꼈다. "
동감입니다.
인물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증오하게 만드는 것. 작가의 대단한 재능이죠.

선인장 2004-05-25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쁜못난이님, kuroko님, 글에 대한 평 감사합니다.
좋은 책이 좋은 인연을 만들어주는군요...

날개 2004-05-26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평이네요.
그저 평을 쓰신 분과 작가에 대해 감탄할 뿐입니다.

선인장 2004-05-27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이야 뭐, 그렇지만, 책은 아주 좋습니다. 꼭 읽어보세요.

비로그인 2004-05-28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읽어 보고 싶어집니다...

선인장 2004-05-28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귀여운 아기로군요.
문학에 대한 취향이야 다들 다르겠지만, 이 책은 거의 대부분 흥미 있게 읽더군요. 흡인력이 강한 소설이라, 누가 읽어도 나름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에요.

내가없는 이 안 2004-06-23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쟁이란 상황은 보기 싫다고 해서 소멸되는 게 아니겠죠.
읽고 싶은 소설은 아니지만 님의 훌륭한 리뷰가 자꾸 읽고 싶어지게 하네요. ^^

바람꽃 2004-07-01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 책이 읽어보고 싶군요.

선인장 2004-07-01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거리와는 상관 없이 큰 충격을 주기는 하지만 자극적이지만은 않은 소설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몰두하게 되실거에요.
 
아담이 눈 뜰 때
장정일 지음 / 김영사 / 199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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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대학 초년생이었다.(나는 눈 내리던 겨울에 나아준 엄마께 감사)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자식에게 아무 것도 해준 게 없어 늘 미안해하시던 부모님께서 제발 대학에 가라며 사 주신 꽤 값나가던, 인켈 오디오는 내 방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뭉크라는 작가 이름 따위, 나는 알지도 못했다. 서정윤이 왜 별 볼일 없는 시인인지, '홀로서기'가 써진 연습장과 책받침을 즐겨사용했던 내가 알 리 없었다.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아서, 원하는 게 아무 것도 없던 시절.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궁금한 것도 없던 시절, 나에게 열 아홉은 그런 나이였다. 성인이라고 세상에 팽개쳐진 듯한 기분, 내 발목을 붙잡고 영원히 놓아주지 않을 것 같던 가족들 틈에서 나는 어른 흉내를 내던 조로한 아이였다. 아담이 경험했던 그 강렬한 열 아홉에 나는 늙디 늙은 표정으로, 굽은 허리를 부여잡고 종종걸음치며 세상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장정일에 대한 그 많은 소문들에게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진지하게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담이 눈 뜰 때>는 아주 뛰어난 성장 소설이면서, 동시에 한 시대에 대한 치열한 반항이지만 이미 영화화된 그 작품은 은밀한 성적 뉘앙스만을 풍긴 채, 제대로 읽혀지지 않았다. 이미 그 시절에서 아주 멀리 와 있는 나에게 여전히 삶에 대한 깊은 애정과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대립을 각을 잃지 않은 아담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의 타락과 그의 좌절, 그리고 그의 선택은 2003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어설프게 좌절을 흉내내고, 나를 부정하는 대신 졸렬하게 타인을 비판하면서 살았던 내 이십대의 삶은 아담 앞에서 너무나 초라해진다.

세상과 직면해 똑바로 눈 뜨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아직도 제대로 모르는 나에게 장정일은 소문보다 훨씬 자극적이다. 그의 소설을 읽고 밤새 나는 열아홉을 앓고 있다. 나의 열아홉, 아담의 열아홉은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내가 견뎌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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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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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은 이번 주에 표지글로 쿨함에 대해 다뤘다. 쿨한 사랑, 쿨한 관계-질척거리지 않고 눈물 흘리지 않고 경쾌하게 사랑하고 이별하는 사람들, 자신의 삶에 당당하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사람들. 시사 주간지의 분석 대상이 될 정도로 지금의 우리는 쿨함을 원한다. 그리고 정이현의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쿨하다. 쿨한 소녀는 가정불화의 그늘에서도 그것에 대해 염려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외도를 알고, 그의 상대를 만나서도 어린 소녀는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상대의 낙태 비용을 마련할 방법을 찾는다. 사랑을 하지만, 그 상대가 과도한 것을 요구할 때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위해서라면 사랑도 때로 전략이 된다.

90년대 소설에 등장한 여성들이 불륜이라는 이름으로 가정으로부터 독립하였으나 여전히 사랑의 아린 그늘 속에서 가슴을 부여안고 살았다면 2000년대 등장한 쿨한 여성들은 사랑 따위, 매일 저녁 화장을 지우듯, 쓱 지워버리면 그만이다. 그래서 이들은 과거의 여성들보다 훨씬 여성적이고 소녀적이다. 과거의 여성들이 자신의 사랑을 위해, 사회로부터 강요당한 부당한 여성성을 전복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의 그녀들은 아주 영악하게도 그들에게 강요된 여성성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전략적으로 가녀리고 불쌍한 여인이 되고, 세일러복을 입은 청순한 소녀를 연기한다. 그 위장된 여성성은 그녀들에게 여성성을 강요한 사회를 분열시키거나, 폭력을 행한 남성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제 여성성은 여성에게 강요된 굴레가 아니라, 여성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무기인 것이다.

이런 변화된 여성들은 정이현의 소설에서 아주 경쾌하게 움직이며 자신의 삶을 살아낸다. 무겁고 질척한 여성들의 한숨이 그들 나름의 진정성에 근거한 것이라고 확신하면서도 답답하게 느껴졌던 사람이라면, 정이현의 소설을 아주 빠르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따금 생각한다. 쿨함이라는 것이 어쩌면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또 하나의 기만에 다르지 않다고. 상처받기를 두려워하고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기 어려워하는 우리 세대의 자기 방어 기제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고.

나는 내츄럴 본 쿨 걸이라고 자신을 선언하는 그녀들의 삶이 또 위태롭게만 보인다. 가식적이고 기만적인 세상과 직면하고 쿨한 그녀들을 만들어냈던 작가처럼, 소설 속의 그녀들이 기만적인 세상을 또 다른 방식으로 비웃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들이 가진 여성성이라는 무기가 그들 자신의 안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폭력에 대항하는 것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차가운 그녀들의 속성이 더욱 꽁꽁 얼어붙어 언젠가는 한 번 제대로 깨어지기를. 위태롭게 세상을 비웃으며 견디는 것보다 마음껏 소리 지르며 부서질 수 있다면 그녀들은 그 자리에 존재하면서 먼 곳만 꿈꾸는 지리한 삶이 끝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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