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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눈 뜰 때
장정일 지음 / 김영사 / 1992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대학 초년생이었다.(나는 눈 내리던 겨울에 나아준 엄마께 감사)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자식에게 아무 것도 해준 게 없어 늘 미안해하시던 부모님께서 제발 대학에 가라며 사 주신 꽤 값나가던, 인켈 오디오는 내 방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뭉크라는 작가 이름 따위, 나는 알지도 못했다. 서정윤이 왜 별 볼일 없는 시인인지, '홀로서기'가 써진 연습장과 책받침을 즐겨사용했던 내가 알 리 없었다.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아서, 원하는 게 아무 것도 없던 시절.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궁금한 것도 없던 시절, 나에게 열 아홉은 그런 나이였다. 성인이라고 세상에 팽개쳐진 듯한 기분, 내 발목을 붙잡고 영원히 놓아주지 않을 것 같던 가족들 틈에서 나는 어른 흉내를 내던 조로한 아이였다. 아담이 경험했던 그 강렬한 열 아홉에 나는 늙디 늙은 표정으로, 굽은 허리를 부여잡고 종종걸음치며 세상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장정일에 대한 그 많은 소문들에게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진지하게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담이 눈 뜰 때>는 아주 뛰어난 성장 소설이면서, 동시에 한 시대에 대한 치열한 반항이지만 이미 영화화된 그 작품은 은밀한 성적 뉘앙스만을 풍긴 채, 제대로 읽혀지지 않았다. 이미 그 시절에서 아주 멀리 와 있는 나에게 여전히 삶에 대한 깊은 애정과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대립을 각을 잃지 않은 아담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의 타락과 그의 좌절, 그리고 그의 선택은 2003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어설프게 좌절을 흉내내고, 나를 부정하는 대신 졸렬하게 타인을 비판하면서 살았던 내 이십대의 삶은 아담 앞에서 너무나 초라해진다.
세상과 직면해 똑바로 눈 뜨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아직도 제대로 모르는 나에게 장정일은 소문보다 훨씬 자극적이다. 그의 소설을 읽고 밤새 나는 열아홉을 앓고 있다. 나의 열아홉, 아담의 열아홉은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내가 견뎌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