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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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신문이나 잡지에서 읽게 되는 박노자의 글에 물론 수긍은 하고 있었다. 그의 비판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애정을 전제로 함을 모르고 있지 않기에, 귀화한 낯선 외국인의 비판을 그럭저럭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비판의 내용 속에 내가 들어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박노자와 비슷하게 한국의 비합리적인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뿌리 깊은 권위주의가 싫었고, 그런 내게 명확한 논리와 구체적인 사례로 그것을 지적해주는 글은 당연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단행본으로 출간된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으면서 나는 누군가의 서평 그대로 면구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느껴야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다른 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통쾌함이나 시원함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나는 자주 고개를 숙였고, 얼굴을 붉혔야만 했다. 이 책 속에서 비판하고 있는 한국인의 모습은, 정치 경제 영역에서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권력 집단이 아니라 나로 내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의 말대로 나는 우리 나라의 뿌리 깊은 권위주의에 대해 혐오에 가까운 불만을 느끼고 있었지만 내게 문학과 삶을 가르쳐준 선배님들과 교수님들의 논리에는 그대로 복종하고 있었다. 그들의 강권하는 술 한잔을 제대로 거부한 적이 없었고, 이따금 내 생각과 다른 그들의 생각에 논리적인 대응을 해보지도 못했다.

나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물질과 힘의 논리를 증오한다고 하면서도, 외국인 노동자나 조선족들의 삶에 대해 피상적인 수준의 인식밖에 하고 있지 않았다. 내게는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의 투쟁만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뿐, 겨우 모은 전재산을 다 날리고 본국으로 쫓겨간 조선족 청년의 삶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따금 손님으로 초대되어 우리 집을 방문하는 조선족 언니들에게 선심 쓰듯 한국 관광을 시켜주었을 뿐, 그들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문화적 자산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복학생들의 군대 기질과 그들의 허풍에 화를 내면서도, 군대에 다녀와서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막내 동생을 향해 '너는 군대에 다녀와서도 철이 들지 않았다'고 핀잔만을 늘어놓았다. 건들건들하면서 삶을 낭비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저 녀석들 군대 가서 죽을 고생 좀 해야 철이 들지 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아무런 비판을 제기할 줄 몰랐다.

이런 내 모습은 박노자의 책 속에서 고스란히 발가벗겨졌다. 내 안에 존재하는 비합리성을 직시하는 것은 당연히 즐겁지 않은 과정이었고, 이 책을 다 읽고도 며칠 나는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그리고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이 나라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내 자신에 대한 냉철한 비판도 부족했던 내 모습과 만날 수가 있었다. 이건 내 자신의 모습이었고, 내 주변에서 함께 삶을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었고, 바로 우리(?)들의 대한민국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법의 호출을 기다리고 있는 한 청년의 얼굴을 생각한다.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법당에서 절을 하는 그 사람의 평화에 대한 사랑을 생각한다. 그 사람의 병역 거부 선언과 박노자의 뼈아픈 질책이 다른 선에 있지 않다는 것을 겨우 이해하기에, 나는 내 안에 존재하는 모순들에서 눈을 돌리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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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09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이맘 때 저도 이 책을 읽었는데, 읽는 내내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의 장면들이 맴을 돌더군요. 저 또한 님처럼 부끄럽기 그지 없어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당시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 뉴스를 보면서, 그저 분노만 삭히고 있었을 뿐이었죠. 글쎄요, 이론과 실천의 문제가 쉽지만은 않겠죠. 저도 항상 그 부분에서 고민만 하고 있을 뿐이니...

선인장 2004-05-10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남루한 생활인에 불과한 까닭에 내 고민의 수위만큼, 행동이 뒤따르지 않아, 가끔 자괴감에 빠지기는 하지요. 마음 깊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무언가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의 열정을 보면 부러울 따름입니다. 대부분이 그렇게 살고 있다고 위안하기에는, 이따금 느끼는 부끄러움의 강도가 좀 세죠. 나를 흔드는 모든 것들과 제대로 싸워봐야 할 텐데 말이지요....
 
Snowcat의 혼자놀기
권윤주 글, 그림 / 열린책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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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매일매일 스노우캣의 일기를 본다. 거기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빈둥거리는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하루 종일 누워서 텔레비젼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고, 불 끄는 것조차 싫어서 엄마를 부르는 아주 한심한(?)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이따금 찾아오는 친구가 반갑지 않고, 밖에 나가야 할 일이 생기는 것도 싫고, 여러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는 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귀차니즘이라는 제법 그럴싸한 철학을 가진 그 고양이 한 마리는 내 삶의 반대편에 있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없으면 불안해지고, 하루 종일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으면 짜증이 난다. 주말에 약속이 없으면 세상에서 나 혼자 소외된 것만 같아서 불쑥불쑥 눈물이 날 때도 있다. 이런 내게 그 고양이는 아주 거만해보이고, 아주 한심해보인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항상 일을 만들고, 옆에 사람을 두려고 한다는 사실을 나는 몸으로 체험하여 알고 있다. 내가 일복을 타고 났다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일을 만들어하는 것은, 특별히 일을 잘 하는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일이 아니고서는 나라는 존재를 증명할 만한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해서이다. 그래서 나는 그 일때문에 내 자신을 혹사시키고, 나라는 인간에 대한 고민을 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나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내가 해야 할 고민들을 책상 위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거만한 고양이는 도통 세상에 대해 고민하지도 않고, 아무 일도 하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 틈에 있으려고 하지도 않지만, 간혹 사람들과 같이 있어도 그들의 존재 영역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그의 소외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고, 그래서 그 고양이는 불쌍하다기보다는 건방지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 건방짐은 정말로 신선하다. 굳이 빠름과 느림을 비교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하고 있지 못해서, 어느 집단에 소속되어 있지 못해서 안달이 사람들이 잊고 있는 그 무언가를 고양이는 알고 있다. 그래서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가면서 그가 개발하고 있는 혼자 놀기의 방법들은 어쩌면 내가 배워야 할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 발찍한 고양이가 추구하는 귀차니즘 속에서 (김규항이 말했듯이) 새로운 좌파적 신념이 있고, 나름대로 치열한 세상에 대한 인식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빛나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들여다보려는 내밀한 노력이 있다.

그저, 무언가를 하기가 귀찮아질 때, 비스듬히 벽에 기대어 앉아서 스노우캣과 함께 혼자 노는 방법들을 배워본다면 분명히 보다 많은 시간들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하루라는 시간이 얼마나 길어질 수 있는지 그 발찍한 고양이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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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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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것이, 특히 최근에 나온 한국 소설들을 열심히 찾아서 읽는 것이 갑자기 지겨워졌다. 누군가의 소설이 새로 나왔다는 광고를 보아도 시큰둥했고, 누구의 소설이 재미있다고 해도 관심이 가지 않았다. 늘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이 책 속에서는 끊임 없이 반복되는 것만 같았고, 저마다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작가들의 그 독특한 감각을 읽어내기에는 내 생활의 권태가 극에 달해 있었다.

다만, 천운영이라는 작가를 기억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녀의 신춘문예 등단 작품은 그해 나온 어느 작품보다 오래 기억에 남았고, 이따금 계간지에서 읽게 되는 그녀의 작품은 그녀에 대한 내 기억을 조금씩 연장시켰다. 그리고 작품집이 나왔다. 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나는 조금 실망했다. 그 책에 나온 작품들이 훌륭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의외로 그녀의 소설을 많이 읽은 탓으로, 새로운 작품들이 눈에 띄지 않아서였다. 그래도 나는 서점 한쪽에 쭉 쌓아올려진 <바늘> 중에서 중간쯤에 놓인 이 책을 샀고 하루 종일, 그리고 일주일 동안 이 책을 계속해서 읽었다.

처음에는 바늘로 상징되는 그녀의 날카로운 시각, 온통 날을 세우고 세상과 겨루고 있는 인물들이 좋다고만 생각했다. <바늘>이라는 작품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과도하게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지 않았고, 독자에게는 별 감흥도 일지 않는 감상을 풀어놓지도 않았다. 그녀들은(물론 남성 화자가 등장하는 작품들도 있지만) 여성성이라고 규정된 식물성을 거부하고 동물성을 드러내면서 세상과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싸움의 과정은 식물이 섬세한 물관을 통해 물을 흡수하여 온 몸에 전달하는 과정만큼이나 치밀했고, 그 치밀한 시선은 마장동 우시장이나 부산의 영도 다리 밑 구석진 곳까지 구석구석 닿아 있었다. 후미진 골목을 뛰어다니는 인물들의 감정선은 잘 벼러진 칼처럼 날카로웠지만, 매우 섬세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줄곧 여향을 하는 기분이었다. 은행 나무 아래 버려진 트럭 뒤에 몰래 올라타도 후미진 세상을 살펴보는 느낌, 트럭 뒤에 앉아서 세상을 다니는 내게 이따금 부는 바람은 무척이나 찼고, 한낮의 햇빛은 견디기 힘들만큼 뜨거웠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그렇게 나와 같이 세상을 떠돌았다. 그 세상에는 좀처럼 가로등 불빛이 비추지 않았고, 소글프지만 예쁘고 상냥한 여자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누추하고 못 생긴 그녀들의 삶은 동정 같은 건 끼어들 여지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천운영의 그런 당당함이 좋아졌다. 이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고, 불쌍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저 눈을 흡뜨고 세상과 정면대결하고 있는 그녀들의 당당함도 좋아졌다. 그리고 얼마쯤은 나도 힘을 내서 그렇게 내 자신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이제 그만 일어나서 무릎에 묻는 흙 탁탁, 털고 걸어가도 좋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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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나이였을 때 소설이 나를 찾아왔다
최인호.오정희 엮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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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막 입성한 나는 날을 세운 자동차들의 속도에 질려있었다. 청계천 8가 삼일 아파트 복도에 서서, 청계 고가 도로 위를 지나는 자동차를 바라보며 나를 말을 잃어갔다. 전라도에서 막 상경한 내가 한 마디 할 때마다 아파트에 살던 남루한 아이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동차 불빛도 무서웠고, 아이들의 손가락질도 무서웠다. 밤마다 꿈 속에서 자동차들은 아이들의 높은 웃음소리와 함께 고가도로에서 떨어졌다.

그때, 내 유일한 안식처는 청계천 도로가에 늘어선 헌책방이었다. 엄마가 선금을 내놓은 그곳에 가면, 언제든지 읽고 싶은 책들을 읽을 수 있었다. 칼라로 고운 그림이 그려져있던 세계명작동화 전집은 몇 질이나 맘껏 읽은 수 있었고, 그것들이 시들해지만 나는 세로로 편집된 소설들을 읽곤 했다. 소설 속의 장면들은 머리에 그려지지 않았고, 거기서 하는 말들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나는 낡은 헌책 속에서 나는 쿰쿰한 냄새가 좋았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에 위안을 느꼈다. 그때부터 막연하게 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설이 나를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 나오는 작품들은 그 때의 나를 생각하게 한다. 직접 소설을 쓰지 않았지만, 소설로 삶의 위안을 삼으면서 소설로 자존심을 세우던 내 감수성이 작가들의 그것에 비해 낮은 수준임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나는 자꾸만 그 작품들 속에서 나를 읽는다. 치기 어린 관념과 고달픈 감수성, 그리고 삶에 대해 꼿꼿하게 머리를 들고 있는 그들의 자존심은 매우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내용들이다.

그들에 비해서, 아직은 너무나 어린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나는 부끄럽다. 그리고 언제가 더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이 순간을 회상하면서, 그때 소설이 나를 찾아왔다고 고백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대가가 되어버린 작가들이 청소년 시절에 쓴 작품들은 물론 지금 보기에는 아주 낡고 관념적이고 치기어린 내용들이지만, 그 치기 속에서 나는 그들이 품고 있던 열정을 느낀다. 그 열정은 지금 그 작가들이 쓰고 있는 소설보다 크고, 뜨겁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문학과 삶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전히 유효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물론이지만, 이미 단편집을 몇 권씩 가지고 있는 작가들에게도 여전히 삶은 의문투성이인 모양이다. 그들이 청소년 시절에 쓴 작품들 속에서 던져진 질문들이 아직도 질문인 채로 남아있는 것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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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백민석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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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백민석을 본 적이 있다. 어두컴컴한 술집이었고, 그는 후배 한 명과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마침 가방 속에 <목화밭 엽기전>이 있었다. 나는 용감하게 그 책을 들고 백민석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가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책의 속지에 싸인을 받았다. 생각했던 대로, 그리 좋은 글씨체는 아니었다. 그 날 이후, 나는 이미 다 읽은 책을 한 달 정도 더 가방에 넣고 다녔다.

<목화밭 엽기전>이후로도 나는 몇몇 계간지에서 백민석의 소설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소설을 읽은 때마다 나는 소설에 나오는 인물에 작가 백민석의 얼굴을 겹쳐서 상상을 하곤 한다. 소설에 자전적인 요소가 있을지라도, 그것이 직접적으로 드러나기에는 백민석의 소설은 낯선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도 나에게는 끊임없이 백민석이라는 우연히 한 번, 한 일 분 정도 얼굴을 보았던 작가의 모습만이 보인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아마도 이것은 그의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무의식적으로 터득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즐겨 들었다던 헤비메탈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고, 그가 만들어내는 가상의 세계는 내가 만들어내는 가상의 세계와 정반대에 존재한다. 그래서 백민석의 소설에 나오는 장원이나, 저택은 아무리 상상을 하려고 해도 머리 속에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다.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을 읽는 내내 나는 수첩에 장원의 건물들을 그려보려고 노력했고, 몇 인물들의 구체적인 시간들을 따라가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역시 허사다. 나에게 백민석이 만들어내는 세계는 여전히 낯설고 기이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계는 매력적이다. 그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집중력 있는 독서를 방해하면서도, 그 책을 가방에서 꺼내 놓는 것을 어렵게 한다. 나는 끊임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낙서를 해가면서, 그리고 이따금 그의 소설에서 빠져나온 작은 샛길을 따라 산책을 해 나가면 책을 읽는다. 이따금 작가 백민석의 얼굴이 나타나기도 한다. 한 번 얼굴을 보았다고 나는 안심이 되어서 그 얼굴을 따라간다.

이 책에 나온 몇몇 작품들은 이미 읽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여러 갈래로 계속 뻗어가는 샛길을 가진 골목을 헤매다 온 것같은 기분이다. 이 낯설고 기인한 감정이 꽤나 매력적이어서 나는 아마도 당분한 백민석의 작품을 읽게 될 것 같다. 끊임 없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마음 깊숙한 곳에 존재하지만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새 세계를 어슬렁거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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