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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돌아왔다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창비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몇몇의 소설들을 읽고 난 후에 나는 조금 무서웠던 것 같다. 한 달 전 이사날이 생각났고, 아무 일도 없었던 평온했던 그 날의 풍경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내면이 궁금해졌고, 나의 아무 일 없는 일상이 두려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무언가 섬찟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세상, 혹은 정말로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무심한 세상. <오빠가 돌아왔다>에 나오는 세상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곰곰 생각하니, 내 일상 역시 그렇다. 아무 일도 없는 일상은 그것 자체로 공포이고,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세상은 평온하다. 표제작 <오빠가 돌아왔다>의 그 콩가루 가족이 그저 그런 삶들을 인정하고 떠난 야유회와 같은 날들. 조금은 떠들썩하고 조금은 불안하고, 무슨 일인지 일어날 것 같지만 그저 그런 날들. 내 일상은 그런 날들의 연속이다. 스토커에게 살해되었을 것 같은 동창생은 태연히 전화를 받고, 위태위태하던 이사는 가야토기 하나를 박살내고 끝이 난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독자인 나는 책을 읽는 동안 긴장감에 사로잡히고, 허탈한 한숨의 끝에서 삶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문득 광화문 네 거리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의 안위가 궁금해진다. 그게 있거나 말거나 그리 관심도 없으면서, 혹 지금 이 시간 그게 파괴되지는 않았는지, 궁금함에 사로잡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