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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평점 :
한겨레 21은 이번 주에 표지글로 쿨함에 대해 다뤘다. 쿨한 사랑, 쿨한 관계-질척거리지 않고 눈물 흘리지 않고 경쾌하게 사랑하고 이별하는 사람들, 자신의 삶에 당당하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사람들. 시사 주간지의 분석 대상이 될 정도로 지금의 우리는 쿨함을 원한다. 그리고 정이현의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쿨하다. 쿨한 소녀는 가정불화의 그늘에서도 그것에 대해 염려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외도를 알고, 그의 상대를 만나서도 어린 소녀는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상대의 낙태 비용을 마련할 방법을 찾는다. 사랑을 하지만, 그 상대가 과도한 것을 요구할 때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위해서라면 사랑도 때로 전략이 된다.
90년대 소설에 등장한 여성들이 불륜이라는 이름으로 가정으로부터 독립하였으나 여전히 사랑의 아린 그늘 속에서 가슴을 부여안고 살았다면 2000년대 등장한 쿨한 여성들은 사랑 따위, 매일 저녁 화장을 지우듯, 쓱 지워버리면 그만이다. 그래서 이들은 과거의 여성들보다 훨씬 여성적이고 소녀적이다. 과거의 여성들이 자신의 사랑을 위해, 사회로부터 강요당한 부당한 여성성을 전복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의 그녀들은 아주 영악하게도 그들에게 강요된 여성성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전략적으로 가녀리고 불쌍한 여인이 되고, 세일러복을 입은 청순한 소녀를 연기한다. 그 위장된 여성성은 그녀들에게 여성성을 강요한 사회를 분열시키거나, 폭력을 행한 남성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제 여성성은 여성에게 강요된 굴레가 아니라, 여성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무기인 것이다.
이런 변화된 여성들은 정이현의 소설에서 아주 경쾌하게 움직이며 자신의 삶을 살아낸다. 무겁고 질척한 여성들의 한숨이 그들 나름의 진정성에 근거한 것이라고 확신하면서도 답답하게 느껴졌던 사람이라면, 정이현의 소설을 아주 빠르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따금 생각한다. 쿨함이라는 것이 어쩌면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또 하나의 기만에 다르지 않다고. 상처받기를 두려워하고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기 어려워하는 우리 세대의 자기 방어 기제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고.
나는 내츄럴 본 쿨 걸이라고 자신을 선언하는 그녀들의 삶이 또 위태롭게만 보인다. 가식적이고 기만적인 세상과 직면하고 쿨한 그녀들을 만들어냈던 작가처럼, 소설 속의 그녀들이 기만적인 세상을 또 다른 방식으로 비웃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들이 가진 여성성이라는 무기가 그들 자신의 안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폭력에 대항하는 것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차가운 그녀들의 속성이 더욱 꽁꽁 얼어붙어 언젠가는 한 번 제대로 깨어지기를. 위태롭게 세상을 비웃으며 견디는 것보다 마음껏 소리 지르며 부서질 수 있다면 그녀들은 그 자리에 존재하면서 먼 곳만 꿈꾸는 지리한 삶이 끝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