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kimji 2005-01-30  

그러니까, 이건-
ㅡ 리뷰에 올려주신 코멘트를 보고서, 한참 망설였습니다. 답글을 달까, 하닥, 언제부터인지, 리뷰에는 제 코멘트를 달기가 조금 쑥스럽더군요. 그래서, 오랜만에(어쩌면 처음인지도 모를) 방명록으로 찾아왔습니다. ㅡ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안 읽고가, 사실 무어가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중요한 건 사랑, 그 자체여야 하겠지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했던 저의 솔직함과 희생(이라고 믿었던 맹목적인 감정들), 때로는 어린 아가처럼 바라고 했던 간절함들이 결국에는 일종의 폭력과 닮아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 상대는 물론이고 결국에는 제 스스로까지 피폐하게 몰아가야 했던 시간들도 있었고요. 조금 지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말이지요. 그랬더군요, 저란 사람은.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여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랑도, 그래서, 과거가 아니라 현재형의 사랑이 가장 가치롭다고 생각이 들고요. 그럼, 현재의 제 사랑은?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게 또 오랜 시간 전의 저와 그리 달라질 것이 없군요.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조금 심드렁하게, 굳이 사랑이 아니어도 세상은 살만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고 해야할까요. (저란 사람, 참 재미없네요) 사실, 큰 맘 먹고, 그래서 방명록으로 찾아 온 것이었어요. 저의 사랑이야기가 궁금하다는 코멘트를 읽고서, 며칠 고심하다가, 그렇게 온 것이었는데, 막상 시작하고나니, 제 사랑이야기라는 게, 또, 누구나 겪는, 누구나 앓는, 누구나 실패하고, 누구나 성공한 그런 사랑과 다른 게 없더라는 걸 알아버리고 말았네요. 그러니, 중언부언, 핵심을 사라지고(아니, 어쩌면 핵심은 처음부터 없었는지도요) 말았고요. 사랑 이야기,라- 마치, 사랑,이라는 단어가 터무니없이 감상적으로 들리기까지 하니, 이를 어쩔까요- 일요일 오후입니다. 연애 중이었다면, 이런 날은 고궁에서 만나, 휘적휘적 걷다가 가까운 중국집에 들어가 자장면과 짬뽕을 시켜놓고, 번갈아 나눠 먹으면서 보내면 딱 좋을, 그런 일요일 오후네요. 님은 어떤가요. 님의 사랑은요-
 
 
선인장 2005-01-31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전에 출근을 해서, 이 글을 읽고, 저도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점심을 먹고, 외근을 나가고, 다시 들어와 회의를 하고, 하는 내내, 저는 님에게 어떤 말을 남겨야 하나, 계속 생각했어요.
그러다 문득, 눈이 왔어요. 눈,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님, 서울에는 눈이 왔답니다. 아주 잠시 잠깐 동안요. 하늘을 가득 덮은 구름이 눈을 뿌렸어요. 그러더니, 금세 구름이 걷히더군요. 구름과 구름 사이에, 건물과 건물 사이에, 지는 해가 참 어지러웠어요. 저는 눈이 온다는 소식을 정확히 9분 전에 들었답니다. 내가 있는 곳과 좀 떨어진 곳에 눈이 온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눈이 내게로도 올꺼라고 했지요. 그 소식을 듣고, 9분 후 제가 있는 곳에도 눈이 내렸어요. 아주 잠시, 잠깐 동안요.
눈을 좋아하지 않아요. 질척거리고, 거추장스럽고. 오히려 오늘 낮처럼 하늘이 파랗고, 공기가 쨍쨍한 날을 좋아하지요. 그런데도, 저는 님에게 눈, 이야기를 해요. 올해는 유난히 눈이 내리지 않아서, 누군가 멀리서 제게 눈 소식을 전해와서, 그리고 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어서 말이지요.

선인장 2005-01-31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답글은 길게 남길 수가 없군요. 글을 잘라야 한다는 생각에만 골몰하다, 정작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헤아리지 못했어요. 눈, 이야기를 하고나서, 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도 말이지요.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어요. 눈은 더 이상 내리지 않아요. 다시 눈이 오면, 그 때는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다시 눈이 오면요...

kimji 2005-01-31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있는 곳도 눈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아주 많이 왔어요. 온 세상이 온통 흰색 천지네요. 님의 답글 읽다가, 저도 눈 소식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눈 온다고, 말이지요.
날이 추워진다고 합니다. 꽁꽁 여미고 출근하세요. 하지만 마음의 문을 조금 열어두셔도 될 듯요. 마음의 감기가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요.
또 뵈요, 님-
 


mannerist 2004-12-27  

꾸벅
올해 크리스마스는 참으로 지리멸렬했어요. 작년도 마찬가지였지만 이틀 후 폐인(?)이라 불리우는 친구들과 무박2일 여행을 떠나면서 세밑 기분을 만끽했는데 올해는 금, 토, 일 동안 수업 나간 거, 밥사달라고 조르는 취직한 후배 녀석 만나 저녁 먹은 것 말곤 계속 방 책상과 방바닥만을 왔다갔다했어요. 뭔가 꾸미는 일이 연말에 하나 있는지라 그거 신경쓰여 제대로 손에 책이 잡히지는 않고, 두시간짜리 집중력은 이제 한시간 이내로 떨어졌습니다. 그저 손에 잡히는 일. 을 해야겠지요.

개중 킥킥 소리내서 웃을만한 이야기. 한때 제 글에 등장했던 얼굴동글동글한 동갑내기 아가씨와 제 친구가 눈맞은지 이주일만에 세밑 분위기에 동참해서 손 잡고 다닌다 하더군요. 내 일 신경 안 쓰고 남 잘되는 일에 키득대고 있는 거 보면 아직 클렴 멀었나봐요. 키득.

사람들의 공식 이미지. 그런 거 있나요? 뭐 이런겁니다. 매너가 조선남자님을 떠올리면 담배 꼬나물고 싱긋 웃는 사진 속 모습을, 마태우스님을 떠올리면 제가 찍은 흑백사진 속에서 돌아보는 모습을, 진/우맘님을 떠올리면 숨책 서가에서 책에 둘러싸인 모습을 떠올리는거. 대개는 제가 찍은 사진 속의 사람들 모습이에요. 근데 선인장님 공식 이미지는 재미나게도, 저 위에 '사막에서 꾸는 꿈'옆에, 목도리 동여매고 갸날픈 표정 짓고 있는 모습이에요. 바람구두님의 능력에 새삼 다시 놀라게 되네요. 헤헤... 이의 없으시죠? 아직 쏙 맘에 드는 사진이 없으시다고 했으니 당분간은 저 이미지 고수하렵니다.

정릉 산비탈에 지어진 동향 집이라 겨울이 되면 스산해요. 지금도 방탄조끼 껴 입고 언 손 호호 불며 책상앞에 앉아있답니다. 건강하세요. 몸도, 마음도. =)

 
 
mannerist 2004-12-28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정문금추. 라는 사람 혹시 아시나요? 모처에서 '편집자' 타이틀을 단 누이 이름을 보고 깜짝. -.-

선인장 2004-12-28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크리스마스에 모인 사람들과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뭘 했었지, 생각했더랬어요. 근데 그게 잘 기억이 나질 않더군요. 아마도 내년에도 그럴 것 같아요. 어차피 남의 생일인데, 뭐 특별하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같은 것도 없는데, 그래도 허전한 사람들 몇 모여, 술잔을 기울였지요. 그 자리에서 누구는 문광부 장관이 되었고, 누구는 영진위 위원장이 되었어요. 우리는 문화예술계의 구조를 온통 바꾸고, 연극판과 영화판과 문학판을 들었다놨다 했지요. 그리고 새벽, 돌아가는 뒷모습은 모두 허전하기만 했어요.
누군가 나에 대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그건, 실제의 나와 참 많이도 다를 거에요. 언제부턴가 날 아는 지인들은 나를 볼 때마다 살 쪘구나, 하지요. 실제로 몸무게는 하나도 늘지 않았는데요. 그들의 기억 속에 나는 실제의 나보다 훨씬 더 깡마르고 비실비실한 아이인 거죠. 그러니 저 이미지의 나는 또 실제의 나와 얼마나 다를까요?

정문금추, 이상하게도 처음 들어본 말인데, 이상하게도 낯이 익어요. 그걸 어디서 봤지요?

선인장 2004-12-28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확인해 보니, 울 후배가 그런 닉을 쓰고 있네요. 그런데, 내 이름이 편집자로 쓰일 일은 없는 거 같은데...
 


hanicare 2004-12-24  

사막은 무고한가요.
메리 크리스마스. 춥고 건조한 겨울이어서 뜨끈한 정종에 오뎅국물같은 것이 더 그리워지네요. 안부를 물으면서 선인장님의 건강을 빌어봅니다. 하는 일 잘 되고 가족분들도 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선인장이 꽃피는 것도 내년엔 한 번 보고 싶은데요? 너무너무 즐거워서 알라딘서재가 어디있었더라???하는 상태가 되시길 바랍니다.후훗.
 
 
선인장 2004-12-28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크리스마스 이브날, 정종에 오뎅국물 따위를 먹었더랬어요. 남들은 거리로,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그 시간에 우리는 골방같은 단골 집에 앉아 새벽까지 따뜻한 정종으로 몸을 덥혔지요. 하고 싶은 것들은 마음 속에 가득한데, 세상에 쏟아내지 못해 답답한 선배들과 함께요.
선인장은 몇 년에 한 번 꽃을 피울까요? 꽃을 피울 수 있을 만큼의 열정에 저에게 아직 남아있으면 좋겠어요...
 


바람구두 2004-12-24  

메리 크리스마스!
후배... 누군가에게 애써 선배라고 기억되고 싶지는 않지만 학연이니 뭐 그런 것들 타파하자고 말은 하면서도 우리 학교는 또 그만의 고통, 그만의 기쁨, 정서란 게 유별난 데가 있어서 우리끼리만 알고, 우리끼리만 미워하는 그런 분위기란 게 있잖아요. 작년에 처음 만났지만... 마음만은 공연히 친한 척 부비대는 건... 우습지만... 동문수학한 사이라 그렇겠지요. 메리 크리스마스! 보내준 책 여전히 잘 읽고 있어요. 새해엔 웬수 갚을 일이 있겠죠.
 
 
선인장 2004-12-24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의 생일날, 온 나라가 들썩이는 걸 보면, 참 어이가 없다가도, 저도 그 한틈에 끼고 싶은 마음을 부정할 수가 없어요. 벌써부터 시내는 들썩거리더군요.
선배님도(그러고보면, 그 학교 선배들 중 제대로 알고 지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동기들 이름도 다 모를 판이니... 그러니까 선배님이 유일하네요) 메리 크리스마스! 내년에는 보다 유쾌한 자리를 마련해서, 한번 만나도록 하죠.
 


로드무비 2004-12-22  

선인장님~
보내주신 책상자 잘 도착했습니다. 카드도 너무 멋졌구요. 대여료치고 너무 좋은 책 주셨네요. 이성복 씨 이 책 사보고 싶었는데...... 횡재맞은 기분입니다.^^ 감기 걸리지 마시고요. 크리스마스와 연말 따뜻하게 잘 보내세요. 저도 언제 끼적이고 싶은 날, 엽서 한장 보낼게요. 꼭!
 
 
선인장 2004-12-24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만 턱 보내놓고, 인사 한 마디 남기질 못했네요. 덕분에 재미있는 책을 읽었습니다. 님도 크리스마스와 연말, 잘 보내세요. 건강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