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쟝쟝님이 전에 추천하신 책 (그러고보니 이 문구 요즘 많이 쓴 것 같은데) <왜 읽을 수 없는가>를 읽었다. 이 책의 저자는 편집자이며 일본어-한국어 번역도 하는 분이다.
두껍지 않지만 알찬 책이었다. 4장으로 나눠져있고 1장에서는 현재 신문에 실리는 칼럼과 대중의 수준을 비교하며 대중적인 글은 대중이 읽을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읽을 수 있게 쓰라- 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2장 '인문학'은 왜 그렇게 접근하기 어려워 보이는가 가 궁금해서다. 3장에서는 한국에 근대에 새로 유입되어 지금까지 쓰이고 있는 말이 주로 서양의 개념을 일본인들이 한자로 번역한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경우가 많음을 지적하고, 우리가 쓰면서도 그 뜻을 잘 모르는 개념어들이 있기에 이해도가 떨어지는 문제와 20세기 말부터 한국에서 번역의 원칙이 되어온 '원어 직접 번역'의 원칙이 이 말들에 적용되지 않는 모순에 대해 이야기한다. 4장에서는 독자 친화적인 인문 교양서의 예를 들었다 (일본어로 쓰여진 책들이다).
일단 2장이 궁금했던 이유는, 교양이 부족한 내가 요즘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으며 괴로웠던 적이 많아서다. 2005년 이후 언젠가부터 본격적으로 성인 대상의 교양서들을 읽은 나는 (그 전엔 성인이 아니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고.. ㅠㅠ 책을 안 읽거나 장르문학이나 문학만 읽었다) 그동안 조금씩 조금씩 쌓아온 얕은 교양으로 이제 기본적인 인문학 책은 겨우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된 것 같다. 그러나 철학이나 철학, 철학 등 특히 취약한 분야가 있다. 그래서 가끔은 분명 한국어로 쓰인 책인데도, 눈으로 따라가고 있는데도 머리 속에서는 독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배경 지식이 부족해서 그렇긴 하다. 저번에 <디지털 미디어와 페미니즘> 에서는 정동 이론을 몰라 고생했고, <캘리번과 마녀> 에서는 푸코의 신체 이론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문장들이 있었다. 웬디 브라운의 <남성됨과 정치>도 마키아벨리 쯤 읽다가 지쳐서 놓았다. 셋 다 일반 대중을 독자로 대상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잠시 방송통신대학이나 디지털대학에 철학 전공이 있으면 시도해볼까 하는 헛된 생각도 해봤는데 (왜 공부를 꼭 제도권 하에서 해야한다고 생각하는지, 강제라는 게 필요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아주 샅샅이 찾아보진 않았지만 최소한 방송통신대엔 없더라. 방송통신대는 대부분 실용적인 학문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그 학제에서 내가 알고싶은 철학이 얼마나 언급될지도 알 수 없고, 나는 지금 페미니즘 책 읽고 싶은데 그걸 하려고 철학을 공부한다는 건 길을 많이 돌아가는 것 같아서 관두기로 했다.
얼마 전엔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원래 나의 성향과 달리 점점 마음으로 공감하게 되고 감성적이 되는 걸 약간 경계하게 되어 (그러니까 사실은 별로 안 그런데 서재에는 엄청 따스한 사람처럼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괴리감이 생겨서) <터프 이너프> 를 읽어보려고 했다 (책이 절판되어 전자책만 있길래, 도서관에서 빌려서 조금 읽어보고 살까 결정하려고 했었다). '들어가며' 와 메리 매카시에 관한 부분 일부분을 읽는데 일단 내가 수전 손택은 조금 읽었지만 한나 아렌트도 안 읽었고 메리 매카시도 안 읽었고 (매카시가 궁금한데 번역이 안 되어 있어서 읽어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조앤 디디온도 안 읽었고 (도대체 뭘 읽었니?) ... 그런데 <터프 이너프>의 글이 일단 나같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건 아닌 것 같았다. 문체가 학술서에 가까운 느낌? <왜 읽을 수 없는가> 의 2장에 나오는 '알려는 욕구가 있고, 사상을 알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득하고, 지식이 밑바닥 수준을 겨우 벗어난 처지' 의 독자가 나이구나, 나는 왜 그러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 책에 나오듯 저자들이 어렵게 써서 그런 것도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 나의 문제는 내가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책이 아닌 것을 읽으려 하는데 있는 게 아닐까.. 읽을 수 없으면 좀더 쉬운 책을 찾아야 하는데 좀더 쉬운 책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지만 (보통은 찾아도 없는 경우가 많을 듯) 어떻게 찾아야 할지도 잘 모르겠으니까. 그리고 저자에 따르면 인문학의 언어가 특히 '언어 내 번역' 그러니까 더 쉬운 언어로 풀어서 설명하는 것을 완고하게 거부한다고 하는데... 언어가 아니라 그 언어의 사용자가 완고하게 거부하는 것이겠지. 이게 결국 4장의 '독자 친화적인 인문 교양서' 와 관련이 있다.
4장에서 소개되는 책은 총 세 권인데, 모두 저자가 일본인이고 그 중 두 권은 번역이 되었다 (한 권은 <왜 읽을 수 없는가>의 저자가 번역했고, 나머지 한 권도 왠지 곧 번역할 것 같다). 이 중 <어른을 위한 국어 수업>은 말하기와 글쓰기에 관한 것이라 별로 상관없을 것 같은데 나머지 두 권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와 <사회학사>는 서구 학문에 관한 책이라, 사실은 이렇게 독자친화적인 책을 쓸 수 있기까지 두 저자의 역량 외에도 웬만한 서양 서적이 다 자국어로 '잘' 번역이 되어 있는 - 내 생각이지만 '언어 내 번역' 도 잘 되어 있겠지 - 일본의 번역 시스템의 힘도 클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자연과학 중 한 분야인 내 전공분야에서는 일본 학생들은 최소한 학부 과정까지는 거의 자국어 책으로 공부를 한다. 한국에서는 번역서가 있어도 번역이 엉망이라 그 번역서의 저자 외에는 원서를 교과서로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이 영어를 잘 하더라도 (대부분 잘 하지도 못하겠지만) 모르는 걸 개념부터 영어로 배우고 생각하고... 학술 용어는 영어로 잘 알고 있겠지만 이해도나 사고의 깊이는 자국어로 배우고 생각하는 학생과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인구가 적기도 하고 책을 읽는 인구는 더 적어서 그런지, 한국에서는 제대로 번역할 여력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아예 원서로 공부하니 평소에 이야기할 때도 핵심어는 다 영어고 조사나 어미만 한국어일 때도 많다. 그런 사람들이 또 학생을 원서로 가르치고... 자연과학은 교과서도 워낙 자주 개정되고 바뀌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인문학 쪽은 좀 다르려나.
계속 쓰다보니 그래서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건가 싶다.. 그냥. 나도 잘 읽고 싶은데 안 읽혀서 슬프다고. 슬프다고!
일단 <터프 이너프>는 사지 않기로 했다. 진실을 직시하는 강인함의 멋짐을 느껴보고 싶었지만... 한나 아렌트 조앤 디디온 시몬 베유라도 좀 읽고 나서 욕심내기로 하자.
이 책에 언급된 책 두 권.
한 권은 책에 한국어판 미출간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저자가 번역해서 출간했고 (이것도 공쟝쟝님이 언급했던 책, 정희진의 공부 7월호에서도 언급됨) 일단 빌려두었는데.. 펴 보기는 한 뒤 반납할 생각이다. 그런데 내가 근대에 도입된 개념어 자체에 관심있는 건 아니라서 조금 보다가 말 것 같다.
푸코 쉽게 읽기... 푸코 읽어야 하니까. 게다가 책이 잘 쓰여져 있다고 하니 이건 좀 구해봐야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