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읽을 것 같지 않은 책인데, 도서관 행사에 참여하며 읽게 되었다. 친구가 좋아한다던 고명재 시인의 산문집.
4주간 토요일 저녁에 도서관에 가서 각자 책을 읽고, 독후활동(?)으로 필사를 하고 편지를 쓰고 낭독을 하고 명상을 했다
끝나고는 친구와 이야기하며 지하철 역까지 함께 가고, 하루는 저녁도 함께 먹었다.
그러다보니 이 산문집이 좋았던 건지, 모여서 각자 책 읽는 시간이 좋았던 건지, 필사-편지쓰기-낭독-명상의 활동이 좋았던 건지, 토요일 저녁마다 4주 동안 외출한 게 좋았던 건지, 친구와의 시간이 좋았던 건지... 잘 모르겠다. 그냥 그 모든게 다 좋았고, 그러다보니 나도 이 시인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시가 너무 어려운 시알못이기도 하고, 간결함보다는 자세한 것을 좋아해서 (그래야 뭔지 정확히 알 수 있으니까) 시집이 아닌 산문집이라서 좋았다. 그러나 (에이드리언 리치의 산문집을 읽었을 때도 그런 경험을 했는데) 시인이 쓴 산문은 시 같은 산문이었다. 그럼에도 시보다는 조금 더 쉽게 읽을 수 있었고, 한 사물과 다른 사물을 연결할 때 그 공통점, 이유를 대체로 써주어서 반쯤은 이해하며 따라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산문집이 아닌 시집을 읽는다면 좀 달랐을 것 같다.
이 산문집에 실린 글에는 대체로 어떤 사물 하나의 제목이 붙어있고, 그 사물이 대체로 등장한다. 가끔은 왜 이 제목이 붙었을까 싶은 글들도 있었지만. 그리고 사랑,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 중 가장 많이 나오는 사람이 자신을 키워줬던 엄마, 할머니, 그리고 어릴적 집안 사정으로 잠시 절에서 자랄 때 돌봐줬던 비구니다. 그 중 둘은 이미 세상을 떠났는데... 그래서 더 보고싶고 생각나는 지도 모르겠다. 이 책 마지막에 실린 글의 일부에는
생각해보면 마음은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어요.
단 한 번도 가시광선 아래에 드러난 적 없어요.
그럼에도 이것이 결정적으로
우리를 살아가게 만든다는 아름다운 사실.
그래서 이젠 만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마음에만 존재해도 괜찮습니다.
볼 수 없어도 계속
사랑할 수 있어요.
262쪽
이런 구절이 있다. 나에게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중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또 사랑했었고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슬프다고 생각했는데, 볼 수 없어도 계속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위안이 되었다. 난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 사실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그렇게 많이 계속 생각해본 적이 없기도 하다. 이 산문집만 보면 이 시인은 정말 사랑둥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랑에 대해 엄청 많이 생각하는 사람 같다. 당연하게도 시도 그 사랑의 대상 중 하나다.
시란 막연히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것이라 생각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시인에게 시란...
알지 못해도 '생존'에는 하등 영향이 없는,
그러나 알게 되면 세상이 애틋해지는 이야기가 좋다.
나는 이런 것들을 시, 라고 부르기로 한다.
...
이런 것들은 '생존'과는 거리가 멀지만
때때로 '삶'을 바꿔놓기도 한다.
...
시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고 시 덕분에 잎처럼 웃기도 했고
시 때문에 삶이 너무 미워져버려서 시를 놓고 포동포동 살이 찌기도 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시가 늘 함께했기에 나는 사랑을 쥐고 이 삶을 살아낼 수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시라는 이토록 불분명한 개념이 (나의 경우에는) 생존에도 영향을 끼쳤는지 모른다.
188-189쪽
이런 복합적인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함께 했기에 이 삶을 살아낼 수 있었다고.
이 산문집을 읽으면서 시인의 경제적 상황이 넉넉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고, 그럼에도 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추구하고 또 온가족이 응원해주었다는 걸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어떤 걸 그렇게까지 좋아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도 느꼈고, 그렇게 뭔가를 많이 좋아해보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나는 하고 싶은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왔다는 생각, 또 내 감정에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알던 예술을 하고 싶어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마음도 조금 이해가 되었고.
시인의 시집도 읽어보고 싶은데, 시는 아무래도 좀 더 어려울 것 같다... (이미 찾아봤는데 어렵다) 고명재 시인이 산문집을 더 내주시면 좋겠는데, 일단은 이 산문집을 필사라도 하면서 더 아껴서 읽어보고 싶고, 그 다음에는 시집도 읽어볼 생각이다.
마음에 남는 글이 많았지만, 그 중 짧은 글을 하나 옮겨본다.
목화
발음하기만 해도 입속에서 꽃이 피는 것 같다. 목화는 시월에 솜을 틔운다.
멀리까지 씨앗을 퍼뜨릴 수 있도록 씨를 감싸는 솜을 안에서 키운 것이다.
그 덕에 이 한해살이풀은 강이나 바다에 둥둥 떠서 멀리까지 갈 수 있었다.
더 아름다운 건, 잠에 취한 연약한 우리가 그걸 덮고 꿈을 꾼다는 것.
겨울에는 그게 참 위로가 된다.
턱밑까지 이불을 당겨 덮은 채 볼 수 없는 사람을 보고 싶어요,
꽃의 잔해를 덮고 우리는 잠드는 것이다.
95쪽
겨울이다. 아직 눈은 오지 않았지만.
요즘은 꽃의 잔해가 아닌 다른 게 들어있는 이불이 더 많은 것 같지만 (내 이불도 그렇다)
턱밑까지 포근한 이불을 당겨 덮고 꾸는 꿈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