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장 좋아하는' '내 인생의' 이런 수식어가 붙은 질문들을 아주 어려워한다. 결정 장애가 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이런 점에서 좋고 다른 것은 또 다른 점에서 좋고.. 그래서 하나만 고르는게 아주 어렵다. 그래도 '올해의' 어떤 것을 고르는 건 좀 수월한 것 같다. 올해 1년만 생각하면 되니까.
올해의 가장 큰 이벤트는 작년 한 해 휴직했고 3월부터 복직을 한 것. 작년은 쉬었다기보다는 삼시세끼와 독박육아의 시기였지만, 내 일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를 가졌고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시기였다. 복직을 했더니 코로나 바이러스로 직장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서 상반기에는 어리버리하며 보냈고, 하반기에는 새로운 일들이 몰려와 정신없이 보냈다. 이 나이쯤이 그런 시기인건지 올해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한 해 쉬고나니 마음가짐도 조금 바르게 된 것 같고 (얼마나 갈 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에 언제 또 기회가 많이 생기겠나 싶어 당분간 열심히 살아보려 한다.
올해 완독한 책은 (재독한 책, 시리즈 물 제외, 그림책 포함) 105권이다. 많이 읽었는데 또 아주 알찬 것 같진 않고 나의 관심사가 그렇듯 이것저것 다 섞여있다.
iOS 전용앱 5Stars의 '통계' 이미지이다
리뷰가 148은 뭐고 128은 뭔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읽다만 책, 두 번 읽은 책이 있고.. 완독한 책은 105권이다.
소설을 별로 안 읽은 줄 알았는데 그래도 제일 많긴 하다.
그림책 다음으로 많이 읽은건 '여성' 카테고리인데, 페미니즘 책 분류가 좀 애매하다.
'여성'으로 분류한 것도 있고 '사회'로 분류한 것도 있고... 어쨌든.
올해의 책: <여자의 적은 여자다>, 필리스 체슬러
올해의 관심사: 페미니즘
이게 올해의 책인 이유는, 나로 하여금 페미니즘을 본격적으로 알아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했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이 책을 읽으며, 또 한 여성 커뮤니티 내에서 복잡한 인간관계 문제를 겪으면서 여성의 행동과 심리에 사회 특히 가부장제 사회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고싶어졌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인류의 반이니까 모든 여성들이 연대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서로 싸우기 보다는 좀더 큰 그림을 봤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안다고 꼭 실천하는 건 아니지만 일단 알아야 될 것 같고, 특히 혼자 읽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으면 하는 분야라서 기혼 유자녀 여성으로 구성된 페미니즘 책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결국 이 관심사로 인해 알라딘 서재에도 오게 되었다.
올해의 소설 :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사실 올해는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는데,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소설을 굳이 고르자면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이다. 클라라가 너무 인간 같아서,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고 클라라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과 그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는 과정 또한 너무 인간스러워서.. 인간의 한계에 대해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작가의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은 여전히 놀라웠지만, 그 점에 있어서는 <나를 떠나지마>가 더 좋았고 <클라라와 태양>은 좀 친절했는데 그게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래도 가즈오 이시구로는 여전히 좋다.
올해의 그림책 :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찰리 맥커시
누가 봐도 좋아할만한 그림책이지만, 그래서 나도 좋았다.
이런 뻔한 말들이 쓰여있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선 이런 말이 별로 뻔하지가 않아서.. 그래서 좋다.
올해의 희곡 - <화전가>, 배삼식
올해 초부터 낭독 모임을 했었는데, 중간에 희곡을 몇 번 읽었다. 배역을 나눠 낭독하는 재미가 있어 소설보다 재미있었다.
6.25 무렵의 이야기인데 이 시절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도 하고 다들 언급을 꺼리기도 하는 부분인데 문학으로 접하니 좋았고
그 시절을 즐겁게 아름답게 묘사한 것이 오히려 당시의 슬픔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표현도 마음에 들었다.
우리 말이다 보니 입에 잘 붙어 낭독하기가 좋았다.
한국의 셰익스피어라는 배삼식님 작품인데... 다만...
처음과 마지막에 셰익스피어의 시가 원문으로 적혀 있어 그것은 잘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냥 한국시가 들어갔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작가의 의도가 있겠지.
올해의 작가 - 코니 윌리스
어째 이수정 교수님이랑 닮았다..?
둠즈데이북-화재감시원-개는말할것도없고-블랙아웃-올클리어 로 이어지는 '옥스퍼드 시간여행 시리즈' 를 올해 다 읽어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
수다스러운 문체가 나는 별로 거슬리지 않아서 재미있게 읽었고
문체만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몇 번이나 반복하는 (경제적이지는 않은) 이야기이지만 딱히 거슬리는 부분도 없어 재미있게 읽었다.
이때쯤 좀 지쳐있었는데 이 책들을 읽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듯.. 지쳤다 생각했지만 2차대전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유대인 이야기 아닌 2차대전 이야기를 더 보고 싶다 (라지만 얼마 전 유대인과 관련된 <사랑의 역사>를 읽었다).
올해의 발견 : 알라딘 서재의 재발견
페미니즘 책읽기 덕분에 다락방님 서재를 방문하며 알라딘 서재를 재발견했다. 페미니즘 책 외에 다른 책 이야기를 함께 나눌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좋아서 요즘 여기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몇년 전의 나라면 글을 쓰는걸 싫어해서 리스트만 올렸겠지만 지금은 끄적거리는 것도 좋아하니 편하게 놀아보려고 한다. 내년 서재의 달인을 목표로... =ㅁ=
그나저나, 알라딘 서재에서는 이미지 사이즈 조절이 안되나...?
알라딘 서재에 단점이 있다면 시스템이 좀 옛날식이라는 점, 북플과 애매하게 부분적으로만 연동이 된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