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쯤 전에 끔찍한 범죄를 재연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연쇄살인 등 정말 상상만으로도 두려운 범죄가 많았는데, 그 중에 잊을 수 없는 게 있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 집에 가려고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엘리베이터가 여고생 집으로 올라가는 도중 1층에서 동승한 또래의 남자애가 갑자기 칼을 꺼내 여고생을 난도질한 것이다.
여고생의 집이 있는 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섰고, 그 여고생은 기다시피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냥 문 앞에서 사망했다.
남자애의 살해동기는 정말 기가 막혔다. 그 아이의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내 기억으로는 아마도 아버지의 가정폭력이 도가 지나쳤다) 그 날도 아버지 때문에 홧김에 품에 칼을 품고 나왔고, 어슬렁거리다가 여고생을 우연히 봤는데, 표정도 밝고 매우 발랄해 보이는 그 모습에 괜히 화가 나서 미행을 했고,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 사건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 이후 얼마간은 술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갈 때 엘리베이터를 타면 겁이 나기도 했다. 어디선가 괴한이 불쑥 나타나 나를 해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그 때 생각했었다. 그 당시에 이미 아파트 현관에 열쇠를 설치했거나, 혹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는 곳이 많았는데 정말 그런 게 필요한 건가 싶기도 했고, 최소한 엘리베이터에 CCTV는 설치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우리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 CCTV가 작년인가 재작년에 생겼다. 그것까지는 이해를 쉽게 했다. 혹여 도난사건이라도 일어날 경우에 요긴할 테니까.
그런데, 작년 하반기 드디어 현관 열쇠가 생겼다. 우리 건물 뿐만 아니라 단지 전체에 다 생겼다. 신용카드 크기의 카드나 열쇠고리에 걸어서 갖고 다닐 수 있는 걸로. 하지만, 이게 보통 귀찮은 게 아니다. 집 앞에 뭐 사러 나갈 때도, 쓰레기 버리러 나갈 때도 들고 나가야 하니 외출할 때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리고, 가끔 낯선 이(대부분 낯설긴 하지만)가 내가 열쇠로 열 때만 기다리고 있을 때는 겁이 나기도 한다. 혹시??? 하는 불길한 생각에 무조건 앞만 쳐다보고, 절대 한눈을 팔지 않는다.
아, 점점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고 있다. CCTV만 설치했을 때가 나는 더 좋았던 것 같다. 현관 열쇠를 만드니, 오히려 더 무섭다. 괜히 한 번 더 쳐다보게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