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계곡의 나우시카](전 7권)를 4년 전에 처음 읽었을 때는,
나우시카의 여정을 따라가는 일이 참 힘들었습니다.
나우시카와 사람들 하나하나의 감정에 그대로 들어가려고 했기 때문일까요.
(그때 쓴 독후감은 http://www.aladin.co.kr/blog/mypaper/450091)
이번엔 두 번째로 읽어서인지 아니면 나이 든 탓인지(몇 년 전부터
눈물은 헤퍼졌는데 감정이입은 도리어 잘 안 된다는... -.-)
거리를 두고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전에는 힘겹기만 하던 여정을 재미를 느껴 가며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에 읽은 내용을 다 잊은 건지 아니면 처음에 헛읽었던 건지 몰라도,
아, 나우시카가 이런 이야기였구나, 하고 비로소 알게 된 기분이 듭니다.
만화책 [나우시카]가 영화 [나우시카]보다 더 깊고 넓다는 건 알았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나우시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본격적인 시작이고
[모노노케 히메]는 그의 완성’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나우시카]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었던 거예요.
인간이 자연에 끼치는 영향을 보다 보면,
인간은 그 존재 자체가 오염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 생각에서 허무가 시작됩니다.
허무는 포기로 이어지든가 열정으로 이어지든가 합니다.
인간이 그대로 사라지도록 내버려둬,
아니면
인간을 통째로 바꿔버리자!
열정은 모든 것을 일관된 한 가지 계획에 다 담으려는 욕심을 낳고,
똑똑한 소수 인간이 전체 역사를 완벽하게 계획대로 바꿀 수 있으리라는
오만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그러나 계획대로 착착 움직이기엔 너무 많고 다양하며 또 어리석고 개성 넘치는
인간의 역사는 늘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지요.
그러면 포기해야 할까. 그러나 내 존재에 대한 자긍심을 포기하면
모든 생명을 아끼고 두려워하는 자세까지 같이 버려지는 게 아닐까.
나우시카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습니다.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는 삶이란,
꼭 인간의 역사와 문명을 통째로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적어도 인간이 처음 문명과 역사를 만들어낼 때에는,
그 역시 자연에 대한 반응이었을 것입니다.
자연이 내놓은 과제에 대한 대답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나우시카에게 고개를 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