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제1호

6월21일

 


 


사저널 기자들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시사저널 기자들은 그야말로 시일야방성대곡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금창태 사장이 시사저널에 처음 왔을 때 ‘어리석은’ 우리 기자들은 서로 말하기를, “금창태 사장은 보수언론 출신이어서 시사저널과 코드는 맞지 않겠지만, 최소한 언론인으로의 양식은 있을 터이니 편집권을 훼손하지 않은 채 시사저널의 새로운 비전을 열 수 있으리라”며 일말의 희망을 품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천하 일 가운데 예측키 어려운 일은 많도다. 천만 꿈밖에 날치기 편집권 강탈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 사태는 비단 우리 기자들뿐만 아니라 시사저널을 거쳐 간 선배들이 몸과 마음을 바치며 만든, 권력과 자본에 굴복하지 않는 시사저널의 정체성에 칼을 들이댄 사상초유의 사건이었다.

 

아, 슬프도다. 소위 시사저널의 사장이란 자는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삼성의 위협에 겁먹어 벌벌 떨며 시사저널 기사를 난도질하는 강도가 되기를 감수했던 것이다. 사장이란 자가 편집국 간부들과의 회의석상에서 “언론이 힘들 때 기댈 곳은 삼성밖에 없다. 그러니 삼성에 깔짝거리는 기사는 쓰지 말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사장과의 결별을 선언했어야 했다.  

 

아, 17년의 정론지사를 삼성에게 들어 바치고, 시사저널 기자들로 하여금 자본의 노예가 되게 하고는, 뒤늦게 ‘기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변명만 늘어놓을 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금창태 사장은 사상초유의 날치기 편집권 강탈도 모자라 이윤삼 국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속 인사까지 자행하려 하는가. 이는 금창태 사장과 경영진의 태도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더 이상 시사저널의 언론정신을 고수할 마음이 없다는 확고한 의지였으리라. 그런데도 어리석은 시사저널 기자들은 그 순간까지 회사 측의 책임있는 반성을 기대했으니 그 무슨 면목으로 취재에 나설 것이며, 그 무슨 면목으로 독자들의 얼굴을 맞댈 것인가.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시사저널 편집국 동지들이여, 자본의 노예된 시사저널 식구들이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시사저널의 언론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은 여기까지였다. 그러나 시사저널 기자들은 6월 21일 오전 10시, 비상 총회를 개최한다. 편집국 전 기자들이 총궐기하여 한밤중에 빼앗긴 편집권을 되찾아오고, 편집권을 날치기로 강탈한 사장을 시사저널에서 축출할 것이다. 시일야방성대곡은 하루로 족하다. 우리는 곡을 거두고 빼앗긴 우리의 권리를 찾는 투쟁의 한 길로 나설 것이다.

2006년 6월 21일  시사저널 기자협의회     


 

도대체 어떤 기사길래 그들은 두려워했나

 

삭제된 기사 내용은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전략기획실장)의 인사 전횡에 관한 것으로 제목은 “이학수 부회장 권력, 너무 비대해졌다”였다. 6월19일 발매예정이던 <시사저널> 제870호(표지 날짜는 6월27일자) 60~62쪽에 걸친 원고지 20매 분량의 기사였다.

 

기사는 <엑스파일>처럼 경천동지할만한 특종을 담고 있다기보다는, 삼성그룹 내부의 권력 지형을 분석하고 비평한 기사였다. 삼성 그룹 2인자인 이학수 부회장이 계열사 사장단 인사에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반발하는 목소리가 삼성 내부에서부터 흘러나온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기사는, ‘주요 삼성 계열사 사장단이 이학수 부회장과 인연이 깊은 사람들로 채워진지 오래고, 최근에는 CFO들마저 전략기획실 재무팀 출신 인사로 배치되고 있다’는 내부인사의 말을 전하고 있다. ‘이학수 맨’으로 분류되는 주요 인물들의 실명과 사진을 싣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학수 부회장으로서는 마뜩치않은 기사지만, 사실 이 내용은 삼성 그룹을 취재하는 출입기자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상식으로 통하는 놀라울 것이 없는 내용이다. 단지 이를 기사화한 언론이 없었을 뿐이다.

 

편집국 한 기자는 “이번 기사가 삼성의 구조적 비리나, 이학수의 개인 비리를 폭로하는 기사도 아니고, 사내 2인자의 권한이 비대해진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사내에서 등장하고 있는 것을 소개한 것 뿐이다. 이런 기사에 대해 삼성이 이렇게 과민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뜻밖이다. 이건희 보다 더한 성역이 이학수인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라고 말했다.


 

 

3년 전, 예언이 현실로!


다시 읽는 그 때 그 성명

 

아래는 2003년 4월 시사저널 신임 사장으로 금창태씨가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시사저널 기자협회가 긴급 발표한 성명이다. 성명 마지막 문단은 작금의 현실과 비추어 뼈아프게 읽히는 부분이다. 이번 사태의 근원을 이해하기 위해 그 때 그 성명을 다시 읽는다.

  

금창태 대표이사 취임에 대한 기자협의회 입장 '금창태 대표이사 발행인 겸 편집인의 임명'.

 

3월31일 '느닷없이' 인사 발령문이 사내 공고판에 게시되었다. 기자협의회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 사전 논의도 없는 일방적인 통고로 시사저널의 대표이사이자 발행인 편집인이 발령 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취임식을 한다고 한다. 마치 기습작전을 벌이듯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이번 인사에 대해, 기자협의회에는 절차와 내용 면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중략)

 

기자 일동은 금창태 대표이사 영입 이후 시사저널의 정체성이 위기를 맞는 것이 아닐지 심각하게 우려한다.

 

'시사저널은 사실과 진실의 등불을 밝히고 이해와 화합의 광장을 넓히며 자유와 책임의 참언론을 구현합니다.' '한국의 지성, 시사저널'의 창간정신이다. 시사저널은 그동안 독립언론으로서 숱한 고난 속에서도 창간정신을 지켜왔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기형적이고 보수적인 언론 독점 구조에서 시사저널의 존재는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중앙일보 출신인 금 대표이사가 과연 시사저널이 지켜온 창간정신과 이른바 `코드'가 잘 맞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기자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만일 금 대표이사가 독립언론으로서 지켜온 시사저널 정신을 훼손한다면 기자협의회는 결코 좌시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같은 우려가 기우에 그치기를 기대한다.

2003년 4월1일 기자협의회


 

 

심야의 쿠데타 국장도 몰랐다

 

새벽1시 광고팀장이 인쇄소에 전화해 기사 판갈이

 

<시사저널>17년 역사 초유의 ‘뒷구멍 기사 삭제’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6월15일 이후 상황을 재구성해본다.

 

6월15일(목요일)
- 오후 2시 30분경 : 이철현 기자가 삼성에 전화
이날 이철현 기자는 다음 주에 실릴 예정인 기사의 최종 확인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날 삼성 전략기획실에 전화를 걸어 기사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고 이에 대한 삼성 그룹의 공식 견해나 반박 논리 등을 물었다. (기사 내용 관련 기사 참조) 이에 대해 이아무개 삼성 전략기획실 차장은 “윗분과 상의해 답하겠다, 기다려 달라”고 답한다. 그러나 이후 삼성으로부터 아무런 답변이 없자 이철현 기자는 15일 오후 3시 기사를 1차 마감하고 취재총괄팀장에게 넘긴다.

 

- 오후 4시 10분 경 : 삼성이 회사로 찾아옴
임아무개 삼성 전략기획실 전무와 이아무개 삼성 전략기획실 차장이 시사저널을 찾아와 인근 커피숍에서 이철현 기자와 만났다. 이 자리에서 임아무개 전무는 “삼성에게 지나치게 민감한 사안이므로 부탁드린다”라고 말했으며 해당 기자는 “삼성에서 민감하게 반응할만한 기사가 아니다. 기사와 관련해 해명할 것이 있으면 추가 반영하겠다. 하지만 이미 기사가 데스크에게 갔으므로 기사를 뺄 권한이 나에게 없다”라고 답했다.

 

- 오후 4시 경 : 사장이 편집국장에게 기사 삭제 요구
비슷한 시각, 금창태 사장이 이윤삼 국장을 6층 사장실에서 면담했다. 금 사장은 이학수 관련 기사를 빼라고 요구했으며 이윤삼 국장은 “기사를 아직 보지 못했다. 기사를 보고 나서 판단하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금 사장은 이철현 기자를 설득하겠다고 나섰으며 이 국장은 “그러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통화가 끝난 뒤 금사장은 기어코 이철현 기자를 6층으로 호출해 “삼성이 회사 경영과 관련해 도움을 많이 줬다.기사를 빼는 것을 양해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해당 기자가 자신의 권한이 아니라고 답하며 사장실을 나왔다. 이 때 사장은 이학수 부회장이 자신의 학교 후배라는 사실도 언급했다.

 

- 오후 5시 경 : 국장 기사 게재 결심
장영희 팀장이 ‘기사 보내자 갈수있다’ 라고 하자 이국장은 ‘그러자’ 라고 말함.

 

- 오후 6시 경 : 삼성이 국장에게 전화
임아무개 삼성 전략기획실 전무가 이윤삼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해서 “이번 기사는 이건희 회장 관련 기사보다 우리에게는 더 아프다. 기사를 빼는 것을 부탁한다”라고 했고 이 국장은 “임전무 뜻은 알겠지만 기사는 빠지지 않는다”라고 통보했다.

 

- 오후 7시30분 경 : 편집국 내부 논의
이윤삼 국장이 장영희 팀장과 김은남 취재2팀장과 회의를 갖고 기사에 대한 판단을 나누었다. 김은남 팀장은 ‘파괴력 있는 특종성 내용을 담은 기사는 아니지만 다른 언론에서는 다루기 힘든 기사이다. 삼성 내부에서 이견이 표출되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충분히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사이다’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 국장은 김 팀장의 의견을 경청했다. 오후 8시 삼성그룹 임아무개 전무의 확인 전화를 마지막으로 이 국장은 더 이상 삼성 측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 밤 10시 : 삼성이 기자에게 전화
이아무개 삼성전략기획실 차장이 이철현 기자에게 전화를 해서 “기사를 뺄 수가 없으면 미룰 수는 없나?”라고 부탁했으나 역시 기자가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거절했다.

 

6월16일(금요일)
기사 삭제 압력이 더욱 노골화되고 강해진다.

 

- 오후 3시 : 회장이 기자에게 전화
심상기 회장이 이철현 기자에게 전화해 “기사 내용이 인사 관련이라면 빼는 것이 어떠냐? 인사라는 것이 원래 잡음이 많은 것이고 사기업의 인사 내용이라면 기사화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 오후 6시 : 회장이 국장에게 전화
심 회장은 똑같은 내용의 요구를 이윤삼 국장에게 했으며 이 국장은 “회장 뜻은 알았으니 기자들과 상의해 보겠다”라고 답한다. 이 시각 이후로 국장은 심회장, 금사장, 삼성 그룹 측의 전화를 일체 받지 않고 5층 편집국에서 업무에만 전념하기 시작했다.

 

- 오후 7시40분~7시50분 : 삼성이 취재총괄 팀장 찾아옴
임아무개 삼성 전략기획실 전무, 이아무개 삼성 전략기획실 차장이 장영희 취재총괄팀장을 방문한다. 임아무개 전무는 “(기사에 거론된) 당사자들은 명예훼손으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벌일 수 있다. 삼성에게 지나치게 민감한 사안이므로 부탁한다”고 말했다. 장팀장은 “내가 무엇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라고 말했다.

 

- 오후 8시 : 심상기 회장이 충정로 시사저널 본사에 직접 들어왔다.

 

- 오후 10시
6층에서 심상기 회장, 금창태 사장, 박경환 상무, 현병구 광고팀장 4인이 참석한 가운데 비상회의가 소집되었다. 이 자리에서 편집국장 동의 없이 인쇄소에 연락해 기사를 광고로 판갈이하자고 결의가 이루어졌다.

 

- 오후 11시
심상기 회장이 충정로 시사저널 본사를 나감.

 

- 오후 12시
이국장과 장영희 총괄팀장이 퇴근했다. 두 사람 모두 이 때까지 회사 상층부의 결정을 전혀 알지 못했다.

 

6월17일(토요일)

- 새벽 1시
현병구 광고팀장(부국장)이 삼화인쇄에 전화를 건다. 그 시각 인쇄소에서 <시사저널> 인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양아무개 과장이었다. 양 과장에 따르면 현병구 팀장은 “이미 제작 부서와 다 이야기가 되었으니 기사를 빼고 대신 광고를 넣어달라”라고 요청했고, 양 과장은 별다른 이의 없이 기사를 뺐다고 한다.

 

- 오후 5시~6시 경
금창태사장이 안철흥 기협회장에게 집으로 전화를 걸어, 기사 삭제 사실을 알렸고, 그 직후 기협회장이 국장에게 사태를 알림. 이 시각까지도 국장은 기사 날치기 삭제 사실을 모르고 있었음.

 

6월19일(월요일)

- 오전10시
편집국 전체회의에서 이윤삼 국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이날 오후 5시 기자협회 비상총회에서 심상기 회장에게 4대 요구조건을 제시했고, 수요일 10시까지 답을 달라고 결의했다.

 

6월20일(화요일)

-오후 12시30분 경
‘이윤삼 편집본부장 의원 면직‘이라는 요지의 인사발령이 편집국 알림벽에 게재되었다. 오후 6시 기자협회 2차 비상총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사태의 심각성과 긴박성을 인식하고 편집권 사수를 위한 전면 투쟁을 결의했다.


 

 

사태의 본질은 ‘삼성맨’ 사장

 

시사저널 사장직보다 삼성과의 의리가 더 중요?

 

겉으로 드러난 이번 사태의 발단은 이학수 삼성 그룹 부회장 관련 기사가 편집국장도 모르게 ‘뒷구멍 삭제’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기사 하나가 게재되느냐 안 되느냐가 아니다. 삼성이라는 거대 자본이 독립 언론의 편집권에 영향을 미치는 메카니즘의 한 단면을 보여줬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 연결 고리에는 지난 3년간 삼성을 대변하며 편집권 강탈에만 골몰해온 ‘삼성맨’ 금창태 사장이 있다.

 

비극은 2003년 4월 시사저널 신임 사장으로 금창태 전 중앙일보 사장이 임명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삼성맨’이 시사저널 사장으로 온다는 소식에 기자들은 <시사저널>의 정체성이 흔들릴 것을 우려했지만 회사 측이 ‘금사장은 판매·경영에만 관여할 뿐, 편집에는 간섭하지 않는다’고 보장함에 따라, 기자들은 그의 <시사저널> 입성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때 발표된 시사저널 기자협회 성명이 기자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부속기사 참조)

 

취임 이후 금사장은 <시사저널>에 얼토당토 않은 딱지를 붙이면서 보도 성향을 문제삼았다. 그는 “좌파 언론이 되어서는 비전이 없다”라며 “중도 우파 잡지가 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역설했다. 기자들은 “언론사가 무슨 좌파 우파 이데올로기를 따지느냐, 사안에 따라 올바른 판단을 내리면 되는 것이다”라고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금사장은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라고 물러섰지만 이후 금사장은 정치 기사 등을 둘러싸고 편집국 간부들과 빈번하게 갈등을 빚었다.

 

정치 기사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삼성그룹 관련 기사였다. <시사저널>은 정치권력보다 더한 성역이 된 삼성그룹에 대해 공정한 보도를 해 왔다. 그 과정에서 숱한 어려움이 발생했다. 2003년 제716호 기사에 게재된 문정우 편집장의 칼럼 <우리 현병구 광고부장>은 삼성의 압력에 시달리는 주간지 편집장의 고뇌를 솔직히 드러내 언론계의 화제가 되었다.

 

이런 압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편집국 기자들은 <삼성 구조본 ‘매직 파워’의 비밀>(2005년 04월 29일 경) <구설 오른 ‘이건희 슬로프’> [851호] 2006년 02월 03일 경) 등 다른 언론에서 담지 못하는 삼성 관련 기사를 다뤘다. 기사 90%이상을 삼성 관련 기사로 채운 삼성 통권호를 발행해 언론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2005년 9월12일, 830호). <시사저널>은 44꼭지 75쪽에 걸쳐 할애된 삼성 특집 기사에서 <무노조 경영의 비밀:무노조 신화뒤에 지대위 있었다> <삼성 비판기사 이렇게 막는다> <누가 삼성을 움직이는가> <후계자를 보는 눈> 등 민감한 사안을 다뤘다. 이 특집호가 나간 이후 광고국은 영업에 극도의 어려움을 겪었다.

 

이 삼성 특집은 이윤삼 신임 편집국장의 주도아래 이루어졌다. 특집이 발행되기까지 이윤삼 국장은 ‘인간적 수모’에 가까운 압력을 회사와 삼성측으로 받았다. 금창태 사장은 삼성으로부터 편집국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기보다는 삼성을 편들기에 급급했다. 기사 발행 이후 개별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기사에 등장한 평소 친분이 있는 모 삼성 인사를 옹호하며 기자를 강하게 질책하기도 했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이학수 부회장 관련 기사가 ‘뒷구멍 삭제’된 근본 이유가 금창태 사장이 <시사저널> 사장의 정체성보다 ‘삼성맨’으로서의 의리에 더 목매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1938년 8월생인 금사장은 1965년 중앙일보 편집국 기자로 언론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삼성그룹 계열사였던 중앙일보는 삼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금사장은 1980년 중앙일보 사회부 부장을 거쳐, 이후 1991년부터 1993년 3월까지 중앙일보 자회사인 동양개발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는 1985년 중앙일보 편집국 국장직무대리에 올랐으나 자신의 후배인 편집국 기자들로부터 임명동의를 받지 못해 끝내 편집국장이 되지는 못했다. 금사장은 1999년 10월부터 2001년 2월까지 중앙일보 사장을 맡았다. 중앙일보가 1999년 4월 형식적으로 삼성그룹과 계열분리가 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삼성 그룹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한 간부가 전하는 삼성의 대 언론 영향력에 대한 그의 철학은 이러했다. 워낙 자주 들어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라고 한다.

 

‘언론이란 정도를 추구해야한다느니, 불편부당해야 한다느니 해봐야 소용없다. 겉으로 우아해 보이는 백조가 발 밑으로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언론은 기업이기 때문에 영업을 해야 한다. 힘들 때 최후에 기댈 수 있는 데는 결국 삼성 뿐이다. 그러니까 삼성에 대해서는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기사 좀 쓰지 말자’

 

그의 전횡을 참다못한 기자들은 지난해 금사장에게 퇴진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시사저널> 사장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면서, 시사저널 사장 자리가 자신에게 경제적으로도, 명예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성원들을 모욕했다. 오로지 자신을 불러들인 사주에 대한 후배로서의 도리 때문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다.

 

한 편집국 기자는 다른 일에는 무능하지만, 유독 삼성 관련 기사를 막는 일에는 뜨거운 열정을 발휘하는 금사장을 보며 “사장이 취임 3년 만에 처음으로 야근하면서 한 짓을 보라”고 평했다. 그의 인생에 그토록 소중한 삼성과의 인연이라면, 그 길로 가는 게 회사와 금사장 개인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닐까.


 

<시사저널>830.831호
삼성은 어떻게 한국을 움직이나



<시사저널> 811호
삼성 구조본 대해부




<시사저널>851호
구설 오른 '회장님 슬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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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6-23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기막힌 일이네요. 위대하여라 삼성.

물만두 2006-06-2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chika 2006-06-23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상실. ㅡㅡ^

호랑녀 2006-06-23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그냥 넘어가면 안되겠지요?
시사저널 편집국에 전화하고 정기구독 해지할까요?
거의 창간 즈음부터 지금까지(모으지는 않지만) 정기구독하고 있었는데...
대단하군요, 삼성.

반딧불,, 2006-06-23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도 안찹니다.
그래도 시사저널은 믿었건만.

가랑비 2006-06-26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후다닥 올리고 회사 행사 땜에 서둘러 나갔다가 주말에 시체처럼 뒹굴고, 이제야 왔습니다. ^^ 조선인님 만두 언니 치카님 호랑녀님 반딧불님 반가워요. 흑흑. 이러다 괜찮은 잡지 하나 망가지는 거 아닌가 몰라요. 호랑녀님, 정기구독 하시는군요. 독자의 힘을 보여주세요. 불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