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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드라마 덕인지 갑자기 아이들에게 고구려 관련 책들의 인기가 좋아졌다. 한 번도 대출되지 않던 고구려 왕조사나 동명성왕과 관련된 책들은 반납 즉시 다시 대출이다. 동기야 무엇이든 사서교사의 입장에선 그저 기특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들의 대화를 듣다보니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시대가 뒤죽박죽으로 정리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잘못 알고 있는 아이들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 아이들을 모아놓고 고구려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희들이 텔레비전에서 보는 주몽은 말이지,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왕이야. 예수님이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야. 텔레비전에서는 해모수가 고조선의 유민을 모으는 독립군처럼 나오던데, 원래 알려진 얘기로는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해. 유화부인은 물의 신이었던 하백의 딸이었고.”
아이들이 점점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주몽에서 시작하여 부여에 두고 왔던 유리왕자 이야기, 갑자기 나타난 유리왕자 때문에 왕위를 잇지 못하고 남쪽으로 갔던 소서노와 온조 비류 이야기, 유리왕의 셋째아들로 고구려 3대 임금이 된 대무신왕의 이야기, 그리고 그 대무신왕의 아들인 호동왕자와 낙랑국의 낙랑공주 이야기.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소리. 아이들은 아쉬워하면서 자리를 뜨는데, 갑자기 5학년 여학생이 불만에 가득찬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선생님, 도대체 왜 우리나라 여자들은 그렇게 바보 같아요? 읽기책에 나온 박제상 부인도, 남편만 기다리다가 남편 죽으니까 따라죽어서 자기 아이들을 고아로 만들더니, 낙랑공주는 또 뭐에요? 자기를 이용해 먹은 호동왕자한테 속아서 아버지도 배신하고 나라도 망하게 했잖아요?”
당황스러웠지만 비죽 웃음이 나왔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평범하게 오래 사느니 나라를 구하고 비장하게 죽고 싶었고, 온갖 충신들이 모두 남자라는 것을 분하게 생각했었다. 그 아이가 다시 도서실을 찾았을 때, 나는 강숙인의 <아, 호동 왕자>를 찾아 권했다.
“이 책을 읽으면 고구려 초기 이야기들을 많이 알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낙랑공주의 마음도 조금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작가 선생님은 말이야, 진정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목숨으로써 가르쳐주었다고 쓰셨더라. 진정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호동 왕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거라고.”
아이는 아직 책을 반납하지 않고 있다. 아이의 반응이 궁금하다. 목숨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 사랑을 해봐야만 낙랑공주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 호동 왕자> 강숙인 글. 푸른책들/8500원.
범경화/대전 복수초등학교 사서 교사 bkh0904@naver.com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356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