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일에 단성사에서 보았다.
배우들은 좋았지만, 영화는 그렇지 못했다.
사람 죽이는 장면이 너무 많았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이해될 만큼
몸서리치게 증오스럽지 않았다.
정말 죽이고 싶은 인간이 하나 등장하긴 하지만,
나쁜 놈 하나가 매우 나쁜 놈이라고만 이야기할 뿐,
그놈이 어째서 활개치고 살 수 있는지,
‘세상 도처의 예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납득시켜주지 못했고,
정치인은 단지 정치인이기 때문에 ‘예의 없는 것들’로 취급해버렸다.
킬라가 그렇게 떼어내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던 꼬마,
그런데 킬라와 그녀가 같이 자는 날 밤이면, 갈 데도 없는 꼬마가 그냥 안 보인다.
김민준은 내가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안 어울리는 연기를 했지만,
신하균과 윤지혜는 좋았다. 심지어 마지막 장면에서는 눈물까지 나왔다.
그녀, 윤지혜가 [여고괴담]에서 늘 2등만 하는 학생으로 나왔던 그 배우 아닌가 해서
찾아보았더니 맞았다.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별 두 개.


예의 없는 것들 (2006) | 감독 :  박철희 | 출연 :  신하균, 윤지혜, 강산, 박길수, 박충선 외 | 2006-08-24 개봉 | 121분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진/우맘 2006-09-27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마나...별 두 개. ^^;; 전 그냥 신하균만으로도 별 서너개는 담아줬는데....ㅎ...ㅎ....^^;;;

가랑비 2006-09-27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신하균은 좋았어요. 이 영화가 신하균을 낭비한 듯해서 속상했음... ^^;

바람돌이 2006-09-27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2개 짜다니까요? 별 4개는.... ^^;;

가랑비 2006-09-27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바람돌이님마저... 제가 너무 짰나요? ^^

mong 2006-09-27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힛~
221661


가랑비 2006-09-27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보는 캡처이옵니다. 감사감사! (^^)/

진/우맘 2006-09-27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정확하고도 속시원한 표현이네요, '신하균을 낭비하다!'

가랑비 2006-09-27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영화 보고 오마이뉴스에선가 신하균 인터뷰를 봤는데, 인터뷰 먼저 봤다면 정말 기대 많이 할 뻔했어요. --+

sooninara 2006-09-27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디오로 봐야지.ㅠ.ㅠ 어찌하다 보니 영화 볼 시간이 없었어요.

가랑비 2006-09-27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일부러 맘먹지 않으면 영화 보러 가기 어렵다니까요.
 

  달과 소년 | 원제 月亮忘記了
지미 幾米 (지은이), 이민아 (옮긴이) | 청미래
 
정   가 : 8,500원
출간일 : 2001-05-01 | ISBN : 8986836041
150쪽 | 200*202mm

감성이 메말랐는지, 달과 우정을 나누는(?), 혹은 달에 애착하는 소년의 감정에 대해서는 무덤덤했다. 다만 달이 사라지자 달을 대량으로 생산해 사람들이 하나씩 끼고 다닌다는 발상에 경의를 표한다. 대량으로 혹은 소량으로 생산되는 웃음, 행복. 진짜 ‘빛’은 쉽게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렵게 어렵게 보살펴 키우는 것이라는 이야기일까? 소년이 주운 진짜 달은 본래 온 세상을 비추는 큰 달이었지만 아기 달로 퇴화해 버린 듯하고, 그래서 소년은 부드러운 수건으로 감싸 주고 빛을 쬐여 주어 조금씩 달을 키워나간다. 아니, 달을 보살펴 회복되도록 돕는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딧불,, 2006-09-15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별로 감흥이 없어서 슬펐어요. 다시 읽어봐야죠.
책이야 읽을 적마다 틀리니..

가랑비 2006-09-18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 그림이 예뻐서 볼 만은 하지요? 그리고 달이 커져 이제 방에 들어올 수 없게 되자 놓아주는 장면도 의미심장하고...

2006-09-21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9-21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9-21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랑비 2006-09-25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9-21 22:12님, 금요일에 회사 일로 부산 다녀오느라 못 보냈답니다. 오늘 부칠게요. ^^
09-22 16:37님, 옴마나, 내가 사시사철 입술 트는 건 어찌 아시고! 감사감사! 잘 쓸게요.
 

     

목사관 살인사건(Murder at the Vicarage, 1930)
갈색 옷을 입은 사나이(The Man in the Brown Suit, 1924)

지난 여름 휴가에 잇따라 읽은, 해문의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 31권, 32권이다.
[목사관 살인사건]은 전에 읽은 적이 있어선지 그냥 그랬다.
전형적인 마플 부인 이야기인데, 바로 그 제인 마플이 등장하는
첫 번째 작품이라 한다.

[갈색 옷을 입은 사나이]는 근래에 읽은 크리스티 시리즈 중
가장 재미있었다. 용감한 여성의 무모한 모험담과 로맨스. ^^
내가 지금까지 읽어온 바로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은 인간성을 비웃는 듯하면서도
대체로 현실을 긍정하고, 영국의 ‘문명’에 대한 ‘도전’이나
‘전복’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작품의 귀여운 주인공들은 웬일로
안전한 지위와 사회적 보호막을 단호히 외면한다.
뭐, 그렇다고 문명을 부정하거나 제국주의에 반기를 들지는 않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에게 그런 걸 기대하긴 어렵지),
지금까지 본 크리스티 작품의 주인공들 중
가장 귀엽다고 말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재미를 헤살 놓을 만한 내용(이른바 스포일러)이 잔뜩 있음.

올 초에 어찌어찌 “씨네21”을 강매당해서(^^), 1년치 정기 구독을 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받아 보는데, 일주일이라는 게 어찌나 빨리 흘러가는지,
제대로 넘겨보지도 못하고 다음 호를 받기 일쑤랍니다.
그래서 받을 때마다 “이건 왜 이리 자주 나오는 거야~” 한다지요. ^^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는 건 한 서너 권 되나?
꼼꼼히 읽다 보면 봐야 할 영화가 어찌나 많은지. -.-
안 볼 때는 요즘 영화관에서 무슨 영화를 하는지도 모르고 지나는데 말여요.

아무튼, 회사에서 구독하는 [말] 지와 지난번 “씨네21”을 넘겨보는데
두 잡지에 다 정성일님이 평을 쓰면서 서두에 스포일러가 잔뜩 있으니
영화 볼 사람은 읽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마침 회사에서 다 같이 보기로 한 참이라 참고 읽지 않았지요.
그리고 지난 수요일(8월 9일)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튿날인 어제 “씨네21”에서 정성일님의 평을 찾아 읽었어요.
 
이 영화, 정말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영화라는 데 동의합니다.
영화 보면서 내내, 어쩌면 이렇게 요소요소에 아주 당연히 정치적인 상징을
배치해놓았나, 너무 노골적이라서 기가 막히다고 생각했거든요.
느림뱅이 남주(배두나)도 그렇고,
남일(박해일, 정성일님 표현대로 ‘80년대에서 그냥 걸어나온 듯한 인물’)이
불붙인 꽃병(!)을 손에서 놓쳐버린 것,
남일의 운동권 선배로
연봉이 육칠천인데 빚도 육칠천이라는
‘이동통신사’의 뚱뚱한 남자,
영화 속에서 정부는 한강변 출입을 막기만 할 뿐
사태 해결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마지막에 사건에 대한 최종 조사 발표를 미국에서 하는 것,
강두(송강호)와 살아남은 아이 세주(이동호)는 밥을 먹으며
그 조사 발표 방송을 하는 TV를 무심히 꺼버린 것 등.

정성일님의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친 것을 알게 되기도 하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을 배우기도 했지만,
동의하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었어요.
그분의 해석이 옳은지도 모르지만,
저는 다르게 받아들였습니다.

우선 영어 제목인 Host에 대한 해석이 그런데요.
정성일님은 Host를 ‘숙주’로 해석하는 데 반대하면서
그 뜻은 ‘주인’으로 봐야 한다고 하네요.
기꺼이 환대하는 주인.
글쎄, 저는 ‘존재하지 않는 바이러스’의 ‘숙주’라는 역설적인
제목으로 생각되거든요.

둘째로, 아버지(변희봉), 강두, 남일, 남주가
괴물에게 잡혀간 현서(고아성, 강두의 딸이자 가족 모두의 자식)를 찾다가
매점에서 컵라면을 먹는 장면. 이 장면에서는 갑자기 현서가 부스스
나타나 김밥을 먹어요. 다른 식구들은 전혀 놀라지 않고
소시지도 벗겨주고 이것저것 거둬 현서에게 먹입니다.
정성일님은 이 비현실적인 장면이 영화 전체의 사실적인 전개와 어울리지 않음을
들어 현서의 꿈, 혹은 강두의 꿈으로 보는데요.
글쎄요, 봉준호 감독은 아주 사실적으로 이야기를 끌어간
영화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비현실적인 ‘군중 환호 배경’을 넣은 바 있잖아요.
제게 이 매점 장면은, 영화 초반에 강두가 주춤거리다 무거운 표지판을
들고 뛰는 장면과 함께 ‘눈물이 핑 도는 장면’ 베스트 2에 속합니다.

셋째, 현서가 나오는 하수구 장면은 그 자체로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고
강두가 자거나 마취되려 하거나 마구 달려가거나 하는 장면 사이에
끼어 있음을 들어, 그게 모두 강두의 꿈, 혹은 의식 속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현서는 영화 초반 괴물에 잡혔을 때 이미 죽고,
그 뒤 현서가 등장하는 장면은 모두 강두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거지요.
매점의 식사 장면에 갑자기 현서가 등장하는 것도
바로 그런 맥락이라고 해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보면 괴물이 왜 현서만 죽이지 않는지가 설명되지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저는,
이 괴물이 왠지 현서에게 애착(!) 혹은 집착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에도 현서가 죽은 것은 괴물이 먹어서가 아니라고.
괴물은 그저 현서와 세주를 입에 넣고 이동했을 뿐이고,
현서가 죽은 것은 노란 독극물 가스가 두 번 괴물을 덮쳤을 때
(그때 괴물은 아주 괴로운 듯 요동치잖아요)라고.
괴물도 외로운 아이일 수 있으니까.
너무 감상적인 생각인가요?

* 괴물이 한강 변을 마구 달리며 처음 등장할 때는 하하, 웃기다고 생각했어요.
식인 물고기 캐릭터를 대형화한 듯한 생김새라니.
아, 그런데 한강 다리에 꼬리로 매달리며 솟구치는 그 날렵한 몸짓은!

* 영화 앞머리에 단체 영결식장에서 네 식구가 울부짖으며 뒹구는 장면은
보기 드문 명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건 그렇고, 이토록 정치적인 영화라도 장사가 된다 싶으면
전국 상영관을 싹쓸이할 만한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자본주의의 위대한(!) 소화력에 감탄합니다.

이러니 정치적으로 말 걸어 오는 영화를 보았다 해도
정치적으로 응답할 수 있을까요?
(이건 핑계이긴 해요.)


괴물 (The Host, 2006) | 감독  :  봉준호 | 119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돌이 2006-08-12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영화평론가들은 오히려 영화를 너무 어렵게 만들어버린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님이 말한 저위의 현서를 모두 강두의 꿈같은 걸로 취급하는것 같은 것 말예요. 사실 꿈이든 아니든 그건 영화를 보는데 별로 필요한 것 같지 않은데....어쨌든 저도 이 영화 굉장히 재미있게 인상깊게 봤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강두가 밥먹을 때는 밥만 먹어야지 하면서 tv를 꺼버리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일상의 힘 - 어찌보면 생존의 힘이랄까요. 오락영화로 치부해버릴 수는 없는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힘을 지닌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가랑비 2006-08-18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네, 재미있고 인상 깊었어요. 평론가의 글을 보면 영화가 너무 어려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제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나 스쳐 지나간 부분을 짚어주기도 하니까 뭐... ^^ 현서가 나오는 장면을 강두의 꿈으로 본다면 강두의 비중이 굉장히 높아지는데(이 영화가 강두를 위한 영화라 할 만큼), 마지막 장면을 보면 강두의 비중을 그 정도로 생각하는 게 맞을 것도 같고...
 

1. 대학에서 배우는 것

『대학』에서는 도 닦는 목적과 방법을 가르친다. 그런데 오늘날의 ‘대학’에서는 ‘이익’을 가르친다. 이익, 곧 자본주의적인 이로움을 잘 취하는 사람이 오늘날 대학이 추구하는 인재상이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맹헌자 이르기를…… 집안에 취렴하는 신하를 둘진댄 차라리 도둑질하는 신하를 둔다고 하였다.”
-164쪽, 「대학 읽기」 중에서

이 말은 백성의 재물을 빼앗아다가 자기 집 창고를 채워 주는 신하를 두느니 차라리 자기 집 창고 물건을 훔쳐 낼 도둑을 기른다는 뜻이다.

맹자가 양혜왕(梁惠王)을 보러 가니 왕이 말하기를,
노인장께서 천릿길 멀다 않고 이렇게 오심은 이 나라에 무슨 이익을 주고자 하심인가?
맹자 대꾸하되,
왕께서는 하필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다만 인의(仁義)가 있을 따름이외다.
왕께서 이 나라에 무슨 이로움이 있을까를 물으면,
대부(大夫)는 우리 집안에 무슨 이로움이 있을까를 물을 것이고,
선비와 서인(庶人)들은 내 신상(身上)에 무슨 이로움이 있을까를 물을 것이며,
위·아래가 번갈아 서로 이로움을 취하면 나라가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천자(天子)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제후(諸侯)의 집안에서 나올 것이요,
제후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대부(大夫)들 가운데 있을 것이외다.
만(萬)에서 천(千)을 가지고 있고 천(千)에서 백(百)을 가지고 있는 것도
적게 가졌다고 할 수 없거니와
굳이 의(義)를 뒤에 두고 이(利)를 앞세우면
나머지도 모두 빼앗기 전에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진 사람으로 자기 부모를 버린 이 아직 없고
의로운 사람으로 자기 임금을 뒷전에 둔 이 아직 없습니다.
왕께서 다만 인의(仁義)를 말씀하실 일인데, 하필 이(利)를 물으십니까?(『맹자』, 양혜왕장)
- 166~167쪽, 「대학 읽기」 중에서


2. 중용이란 중간치기가 아니다  

학문의 지극한 공[學問之極功]은 오직 사람으로 하여금 중화(中和)에 이르도록 돕는 데 있다.
- 194쪽, 「중용 읽기」 중에서

‘중화(中和)’란 적정한 데 들어맞는 것이다. 어디에도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는 것이다. 중화(中和)에 이르는 것, 그것이 배워야 할 본(本)이다.

그는 또한 언제나 중심에 선다[中立]. 그래서 어디에도 기울지 않는다.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는 법 없이 균형을 잃지 않는다. 이 말은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의 갈등 구조, 또는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갈등 구조 속에서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 절대 중간노선을 걷는다는 말이 아니다. 사실 그런 중간노선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은 오히려 모든 경우에 불편부당한 하느님이 아니라, 억울한 자를 편들고 강한 자를 끌어내리며 약한 자를 일으켜 세우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중용의 도를 제대로 걷는 군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중심에 서서 어디에도 기울지 않는다[中立而不倚]는 말은 어느 한 쪽을 편들어야 할 경우,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편을 든다는 말이다. 누구를 끌어내려야 할 경우에도 그를 끌어내려야 할 만큼,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끌어내린다. 호리(毫釐)라도 사욕이 작용하는 한, 그것은 불가능하다. - 220~221쪽, 「중용 읽기」 중에서

중용이란 ‘중립’을 가장한 기회주의가 아니라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적절하게 화내고 적절하게 기뻐하고 적절하게 슬퍼하고 적절하게 싸울 줄 아는 것이 중용이다. 싸워야 마땅한 때에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을 만큼 딱 맞게 싸우는 것이 중용이다.

---------------『이현주 목사의 대학 중용 읽기』에 대해 http://blog.naver.com/hsk5119/120023879622에서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가랑비 2006-08-08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헤헤, 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