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자의 회고록
La Mémoire des Vaincus

미셸 라공 Michel Ragon 지음 |  이재형 옮김 |  예하 |  531쪽
발행일 1992년 5월 10일, 당시 값 6,700원.
원서는 프랑스 Albin Michel 출판사에서 1990년에 냈는데,
프랑스판 위키피디아에는 작가가 1989년에 썼다고 나온다.

예하에서 나온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지인에게 빌려주었다가
알게 된 책입니다. 지인이 [연애소설 읽는 노인]의 뒤표지 날개에 소개된 제목을 보고,
이 책도 있느냐고 묻더라구요. 자칭 아나키스트인 그이는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이야기라는 데 끌렸던 게지요.
그래서 저도 호기심이 생겼는데, 절판되어버린 이 책은 헌책방에도
쉽게 나타나지 않더군요. 1년 넘게 틈틈이 헌책방 사이트를 뒤져도 못 찾았는데,
올 8월 혹시나 하고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검색해 보았더니
기적처럼 한 권이 나왔습니다. 놓칠세라 당장 주문했지요.
알라딘 중고서점을 검색한 것도, 이용해본 것도 처음이었어요.
책값은 저렴하여라, 5000원에 배송비 2200원.

제목을 직역하면 ‘패배자들의 기억’입니다. 그러니까 소설의 주인공인
알프레드 바르텔르미 한 사람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20세기 혁명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때마다
가장 열심히 투쟁하고도 늘 배신당하고 배제당했던
아나키스트들, 혹은 아나키스트 운동 자체에 관한 이야기라고나 할까.
아나키즘은 본래 ‘우두머리가 없다’는 뜻이므로
‘무정부주의’는 잘못된 번역이라고 하지만,
“볼셰비키들은 (압제와 권력을 의미하는) 정부와 군대를 없애겠다고 해놓고
지금 어느 때보다 더 강한 정부와 군대를 만들고 있다”고
소련의 권력 구축 과정을 비판한
이 책 속 아나키스트들의 관점에서는 ‘무정부주의’라고 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정부’라고 하면 무질서와 혼란을 연상하기 쉬운데,
이러한 연상 역시 ‘정부’만이 질서를 관리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의 소산 아닐지요.

이 책에는 너무 많은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1899년에 태어나 1985년에 세상을 떠난 프레드, 곧 알프레드 바르텔르미
(작가는 어느 실존 인물의 가명인 것처럼 썼어요)는
부모를 잃고 고아로 길거리를 방황하던 어린 시절에 우연히
아나키스트인 리레트와 빅토르의 도움을 받은 뒤로 평생을
노동자로, 혹은 소련 정부의 일원으로, 혹은 망명객으로, 
혹은 자유롭고 또 외로운 아나키스트 활동가로서
고민하고 싸우고 사랑하고 방황합니다.
러시아 혁명과 에스파냐 내전을 비롯해 역사가 크게 굽이치던 현장에는
늘 그가 있었기에, 이 사람의 인생을 스쳐 가는 사람도 많을 수밖에요.
하지만 저는 아나키즘과 러시아 혁명사를 공부하지 않은 터라
그 사람들, 그 사건들을 바로 이해하고 넘어가기 어려웠어요.
그런 점에서 그리 친절하지는 않은 소설입니다.

그리고 프레드가 왜 아나키즘을 받아들였는지도 나오지 않습니다.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지는 나오지만.)
아나키즘의 무엇이 길거리를 방황하던 ‘부랑아’ 프레드를 설득했는지,
프레드가 아나키즘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는,
그의 자유로운 성정과 정직한 심성,
그리고 정말 해야 할 말은 하는 용기를 통해서 짐작할 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단 한 번도 권력을 쥔 적 없었고
영웅이 된 적도 없었던 이 사람의 일생이,
패배하기만 했던 아나키즘이,
무용한 것이라거나 패배했으니 사라져야 할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섣부른 생각이겠지만, 아나키즘은 패배할 운명이라서 가치 있는지 모릅니다.
아나키즘은 권력을 배격하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패권을 쥘 수가 없습니다.
인간 사회에는 권력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별수 없이 있게 마련이고,
권력이란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배제하고 소외시키게 마련이라면,
인간이 그나마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건
패배해도 패배해도 도전과 저항을 그치지 않는
아나키즘 같은 정신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그래서 프레드가 결국 앙상한 껍데기같이 늙어갔더라도,
아름다웠던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에서도 그랬고, 이 책을 읽으면서도,
20세기까지(사실은 지금도 그럴지도)
어떤 ‘사상’은 남자들의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여성 공산주의자, 여성 아나키스트가 등장하지만
주인공이 남자다 보니 여성들은 동료나 벗이라기보다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요.
이 책에 등장하는 아나키스트들에게는 더욱,
뭐랄까, 원초적인 ‘남자’ 느낌이 납니다.
세련된 지식인의 교묘한 남성중심주의보다는 그게 낫지만요.
주인공 프레드가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평생의 연인 플로라,
소련에서 일했을 때의 아내 갈리나,
프랑스로 돌아와 숙련 노동자로 안정된 가정을 꾸렸을 때의 아내 클로딘,
에스파냐 내전에서 만난 많은 여성 전사들,
그리고 노년의 프레드를 돌보았던 이자벨(이름만 나오고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그리고 이름 모를 헌신적인 여성들...
그들의 생애에 프레드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프레드와 플로라가 너무 어렸을 때 낳은 아들 제르미날은,
전쟁 때문에 부모가 헤어져버려 아버지 없이 자라지만, 
성장하여 정치와 사상에 귀 기울이게 되자
자신을 키워준 엄마 플로라보다는 
그때까지 남이나 다를 바 없었던 아버지 프레드와 친구이자 동지가 됩니다.
프레드가 우러러 사모한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도
멀리서 "마음으로만 의지하는" 어머니 같은 존재지요.

프롤로그와 본문 다섯 장(章)의 앞에
인용된 글귀가 인상 깊어, 여기에 옮깁니다.

(프롤로그 앞)
이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 이상이 갖고 있는 사상을 위해
죽을 수 있을 때 생겨나는 것이며, 정치라는 것은 우리가
그 사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때 존재한다.―샤를르 페귀

(1장 ‘생선 수레를 타고 온 소녀’ 앞)
하지만 난 불쌍한 녀석이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이승에서는
이렇게 불행하게 지내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하늘나라에서는
다른 사람 아닌 바로 우리들이 벼락을 내리게 될 거야.
―게오르그 뷔흐너, 《보이체크Wayzeck》

(2장 ‘트로츠키 동지의 쓰레기통’ 앞)
모든 예술이 최고의 아름다움들을 만들어 냈지만
통치술만큼은 추잡한 괴물들밖에 만들어 내지 못했다.
―생 쥐스트

(3장 ‘비앙쿠르의 식인귀’ 앞)
비겁한 사람들이 실로 아연실색할 만큼 무분별해지면,
결국 가장 용감한 사람들에 비견된다. 그들의 심복들을 하나는
근위병으로, 하나는 재판관으로, 또 다른 하나는 세무서원으로
위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이는 한, 그들은 화염에 휩싸인
도시 한복판을 비스킷과 통조림으로 살아내면서, 머지않은 장래에
보수파가 승리하기를 숨죽여 기다릴 테니까.
―조르주 베르나노스 《보수주의자들의 대공포La Grande Peur des bien-pensants》, 1931

(4장 ‘인민의 치욕’ 앞)
……결국 또다시 권력이 승리할 것이다. 결코 죽지 않는
영원한 권력. 쓰러졌다가도 불사조처럼 다시 살아나는 권력.
사람들은 혁명을 통해서, 소위 혁명이라 이름붙인 학살행위를
통해서 권력을 무너트렸다고 믿었다. 그러나 권력은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난 것이다. 다만 까만색에서 빨강색으로 그리고
노란색으로 파란색으로 자주색으로 색깔만 바뀐 채. 한편 인민들은
또다시 권력에 굴복하거나 순응해야 했고, 어쩔 수 없이
권력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오리아나 팔라치, 《한 인간Un homme》, 1979

(5장 ‘헌책 장수’ 앞)
이성의 이름으로 영혼이 소멸되고 나면
그 이성 또한 소멸되고 말리라.

정의의 이름으로 자비심이 소멸되고 나면
그 정의 역시 소멸되고 말리라.

물질의 이름으로 정신이 소멸되고 나면
그 정신(* ‘물질’의 오타인 듯!) 역시 소멸되고 말리라.

무가치한 것의 이름으로 인간이 소멸되리라.
인간의 이름이 소멸되리라.
더 이상 이름이 존재하지 않으리라.

바로 우리처럼

―아르망 로뱅, 《달갑지 않은 시Les Poèmes indésirables》, 1945


이 책은 곧 지인에게 선물할 것이라서,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표지 앞날개의 작가 소개.




저작권 표시.




권두의 헌사. ‘장 말라위리’가 누구일까요?
혹시 알프레드 바르텔르미의 실제 모델?




차례.





표지 뒷날개의 예하 책목록.
[레이스 뜨는 여자]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도
예하에서 먼저 나왔더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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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8-10-24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꼭 구해 볼랍니다.
무지하게 땡기네요.


가랑비 2008-10-27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문드문 틀림없는 오역도 보이고, 교정 실수인지 앞뒤 안 맞는 부분도 가끔 있답니다. 이 책, 벌써 선물해버려서 빌려드릴 수 없지만, 로드무비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해요.

진주 2008-12-18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너무 띄엄띄엄이시네요..

가랑비 2008-12-18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주님 진주님 진주님... 거기 계신 거지요? 글썽.
 



카트린 M의 성생활 | 원제 La Vie Sexuelle de Catherine M. 

카트린 밀레 Catherine Millet, 2001 (지은이), 이세욱 (옮긴이) | 열린책들
출간일 : 2001-12-20(초판 1쇄), 2003-2-20(초판 5쇄)
ISBN(13) : 9788932904634
양장본| 334쪽| 196*126mm

전에 마냐님이 방출한, 아마 2003년에 아담한 양장본(이른바 열린책들 판형)으로
재출간된 책을 받아 가지고 있었는데, 작년 4월에 헌책방 온고당에서
양장본 아닌 초판본(신국판)을 동료에게서 선물받았다.
동료 왈, 이 책을 읽고 성해방을 이루라고. -.-
그래서 같은 책을 두 권 가지게 된 셈인데,
지난해 말, 올 초에 걸쳐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아버지(남자) 이야기를 읽고 났더니
여자 이야기가 읽고 싶어서 펴 들었다.

20대까지 성관계를 매우 두려워했고, 마흔이 다 되도록
성을 툭 터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워하던 나에게
꽤 필요한 책이었다. 인간행동의 하나로, 거리를 두고
담담히 볼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자유의사로, 서로 배려하면서 하는 일이라면,
그게 항문섹스든 그룹섹스든 스와핑이든 각자의 취향일 뿐이다.
금기는 무지의 소산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게 실제로 무엇인지도 모르고, 모르기에 두려워 피하는.
성관계의 자세나 방법을 상상할 때 매우 흥미롭기도 했지만
줄창 섹스 이야기만 나와서, 나중에는 좀 지겨워지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는 불특정 다수와 맺는 ‘자유분방한 관계’보다는
한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좀더 ‘충실한 관계’가 더 좋다.

카트린 M과 나의 공통점을 두 가지 발견했는데, 하나는 공간에 대한 집착이다.
카트린과 애인 자크(나중에 남편이 된다)는 사랑하여 함께 살게 된 뒤에도
서로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겼지만,
“우리의 추억이 서린 친근한 풍경 속에”(109쪽)
다른 여자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느끼면 격심한 고통을 느낀다.
“우리의 살이 닿은 물건이나 우리가 내밀한 목적으로 사용했던 물건은 어느 것이나 확장된 우리 몸의 일부이며 감각 능력이 있는 보철 기구 같은 것이다. 어떤 사람이 없을 때에 그의 살이 닿은 물건을 만지는 것은 간접적으로 그 사람을 침해하는 것이다.”(232-233쪽)

그리고 편집자로서 취하는 자세도 비슷한 것 같다.
“나에게는 도달해야 할 목표가 없다. 있다면 남들이 나에게 부여한 목표들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일단 목표가 주어지면, 나는 대단히 성실하고 끈기 있게 그것을 추구한다. ......
나는 편집부에서 내가 하는 역할을 항구가 어디 있는지 아는 안내자로 생각하기보다는 레일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기관사와 같다고 느낀다. 나는 섹스도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했다. 나는 어떤 고정관념에 매여 있지 않았고, 일에서든 사랑에서든 도달해야 할 이상을 설정하지 않았다.”(41쪽)

하지만 나는, 사랑에서는 어떤 ‘이상’을 설정하는 실수를 범하곤 한다...
그리고 가끔 부당한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점도 비슷하다.
“부당함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 부당함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부당성에 대한 몰이해라고 정의한 그런 상태에 빠지게 되면,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부당하다는 느낌조차 갖지 못한다.”(106쪽)

여기 적은 쪽수는 모두 양장본의 것이다. 양장본 표지의 M자를 보면,
사람이 손바닥과 무릎을 바닥에 대고 엎드린 자세가 연상된다.
카트린 M이 섹스할 때 즐겨 취하는 자세다. ^^

아무튼 마냐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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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제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
박현욱 (지은이) | 문이당
정   가 : 9,800원
출간일 : 2006-03-15 | ISBN(13) : 9788974563301
반양장본| 357쪽| 223*152mm (A5신)

작년 겨울, 남편이 동료에게 빌려다 읽으라고 가져다주기에
“왜? 나 결혼시켜 주려고?” 했더니 쪽 흘겨본다.
일부일처제란 인간의 자유로운 감정 모색을 억압하는 제도이고,
가부장적 일부일처제(하긴 인간의 일부일처제라는 게 원래
가부장제 사회에만 있다)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 일부일처제 가족 간에 형성되는 유대감은 논외로 치고
(사실 어떤 형태의 가족이더라도 그 안에는 유대감이 생기게 마련일 테니
‘부부 간, 가족 간의 끈끈한 정’이 일부일처제 가족만의 장점이랄 수도 없겠다),
일단 이 사회에서 결혼의 규칙을 잘 지키자면
인간관계가 엄청 제한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구도, 곧 ‘한 여자와 두 남편’이란
그다지 혁명적인 대안 같진 않다.
흔히 볼 수 있는 양다리, ‘한 남자와 두 애인’을 성별만 바꿔놓은 게 아닌가.
그리고 이 여자와 연애하고 결혼하고, 
여자가 다른 남자와 다시 결혼하면서
두 결혼을 모두 유지할 것을 고집하는 전 과정에 걸쳐,
이 소설의 화자인 남자(첫 번째 남편)가 겪는 감정의 변화는
생생하고 잘 이해되는데,
일부일처제의 모순을 논박하며 일처이부제라는 새로운 결혼 형태를 주장하는
여자와 그 두 번째 남편의 말은 그저 책에 나온 논리를 줄줄 외는 것 같고
도무지 살아 있는 인간의 능동적인 이야기 같지가 않다. 나만 그런가.
(그리고 솔직히... 남편이 둘씩이나 있으면 아주 피곤할 것 같은데...-.-
시댁도 둘이 되고...)
나에게 해방감을 안겨주려면, 뭔가 다른 꿈이 필요하다.
그게 뭔진 아직 모르겠지만.
소설 중간중간 끼어드는 축구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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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8-03-10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제목으로 인해 흥미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남자주인공을 통해 반전을 기대하며 끝까지 읽었지만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고 흐리멍텅하게 맺음된 것이 못내 아쉬웠던 책입니다.
남자입장에서 열 받게 하는 현상도 있었고, 사랑은 분명한 간섭이 필요한 데 간섭하지 말자는 논리로 사랑을 이어가자는 것은 논리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자위주의 지나친 에고이즘이라고나 할까...., 오히려 개인주의 였다면 이해가 더 쉬웠을 텐데......

조선인 2008-03-11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쪽 흘겨본다는 표현에 감탄 한 번 하고,
시댁도 둘이 되고 라는 명언에 웃고 갑니다.
잘 지내시죠?

가랑비 2008-03-11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호인님, 오랜만이어요. ^^ 저는 작년부터 애착과 집착의 차이는 무엇인지, 애정 어린 간섭과 자기결정권 침해는 어디서 갈라지는지 헤매고 있답니다...
조선인님, 그럭저럭 잘 지내요. 아, 조선인님도 보고 싶은데...
 

허삼관 매혈기 | 원제 許三觀賣血記 (1995) 
위화 余華 yú huá (지은이), 최용만 (옮긴이) | 푸른숲
출간일 : 2007-06-28 | ISBN(13) : 9788971847244  
반양장본 | 350쪽 | 211*141mm | 정가 : 10,000원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헌책방에서 동료에게 선물받았다. 348쪽짜리, 1999년 2월 3일 첫판 1쇄, 2002년 3월 15일 2판 9쇄를 펴냈다고 나와 있다. 이때는 책값이 8000원이었다. 2007년 마지막으로, 12월 30일부터 31일에 걸쳐 읽은 책이다.

가장 좋았던 건, 허삼관이 일락이가 입원한 상해의 병원을 가려고 피를 팔아 가며 여행하는 동안 만났던 사람들. 임포 사람들은 그가 한겨울에 찬 강물을 떠먹자 그를 염려하며 그가 청한 대로 소금을 주고, 그가 청하지 않았는데도 따뜻한 차를 세 주전자나 가져다주었다. 백리의 여관에서 만난 노인은 한기에 덜덜 떠는 허삼관의 이불에 조심스레 돼지를 넣어 온기를 보태 주었다. 송림에서 허삼관을 배에 태워 준 래희 래순 형제는 허삼관에게 피를 주면서 “아저씨한테 팔 건데(병원에서 피를 뽑아 허삼관이 수혈하도록 할 건데) 어떻게 물을 마셔(서 피를 묽게 해)요?”라고 말했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건, 허삼관이 일락이를 업고 국수를 사 주러 가는 장면. 감동스럽다. 하지만 허삼관이 그 전에 했던 심한 말들이 이 한 가지 행동으로 덮여 버린다. 물론 이 소설은 ‘허삼관 매혈기’인 만큼, 허삼관이라는 사내의 인생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이 사내의 모순, 이기심과 온정, 양심과 의지가 참으로 뜨끈하게, 사람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게, 간결하고도 재미있게 펼쳐진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고통은? 특히 허삼관의 아내 허옥란의 감정과 느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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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4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11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년 5월 31일 헌책방 ‘숨어 있는 책’에서 [우묵배미의 사랑]을 발견하고, 샀답니다.
지난 10월 말 늦게 떠나는 휴갓길에 읽으려고 챙기면서 생각해 보니, 이 책은 왕룽일가 연작 2권이잖아요. 그래서 1권인 [왕룽일가]를 사려고 눈에 띄는 서점마다 들어가 보았는데, 오래된 책이라 찾기 어렵겠다 싶긴 했지만, 정말 한 군데도 없더군요. 결국 휴가에서 돌아와 도서관에서 빌려 있던 중에 인터넷으로 고래서점이란 헌책방에서 [왕룽일가]를 살 수 있었어요.

[왕룽일가]에는 <왕룽一家> <오란의 딸> <지옥에서 보낸 한철>로 이루어진 왕룽일가 연작과 <지상의 방 한 칸>이란 중편이 실려 있습니다.

[우묵배미의 사랑]에는 <우묵배미의 사랑> <후투티 목장의 여름> <은실네 바람났네>가 실렸고, 끝에 “2부를 끝내면서”란 제목으로  왕룽일가-우묵배미 연작을 마무리하는 작가의 글이 달렸어요.

사람이 사람과 보대끼고 복닥거리며 사는 이야기... 매일매일의 삶이 구불거리는 가락에 장단 맞추다가 때로는 피식 웃기도 하고 박장대소하기도 하고 눈시울이 시큰해지기도 하고 짠한 마음에 주먹을 꼭 쥐어 보게도 되는... 그런 것이 ‘이야기’를 읽는 맛이겠지요. 하지만 역시 ‘남자’의 이야기에는 벽이 느껴져요. 한 사람 한 사람 이야기 듣다 보면 안 불쌍한 인간이 없잖아요? 남자들의 푸념은 자, 이 나쁜 놈도 가련한 인간이야, 하며 면죄부를 청하려는 것 같아요. 아, 나쁜 년 이야기도 마찬가지인가?

하지만 필용 씨(왕룽)의 아내, 그리고 왕룽의 며느리인 불광동 새댁, 오란의 딸 미애, 주막집 은실네, 그리고 <우묵배미의 사랑>에 나오는 공례의 꿈은, 사랑은, 욕망은, 작가인 ‘나’나 배일도의 눈과 귀를 거쳐 투영되거나, 남자들이 찧어 대는 입방아를 통해 암시되지요. 아무리 발랄하고 거침없는 미애라도, 자기 입으로 자기 존재를 주장하지 못해요. <우묵배미의 사랑>에선 '나'와 남주인공인 배일도, 그의 처도 자기 목소리로 이야기하지만, 공례는 배일도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일 뿐이에요. 아마 그런 것은 작가의 깜냥 밖에 있을 테고, 그래서 어쩔 수 없다 여기면서도 이 재미있는 소설을 기꺼이 온전히 좋아하지는 못하네요.

<우묵배미의 사랑>은 2년 전쯤의 나라면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바람둥이 유부남과 순진한 유부녀의 사랑 이야기에 코웃음을 치며, 공례를 어리석다 여기고 안타까워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사람 일이란 알 수가 없다 생각되고, “아무 소용 없어요. 마음이란...... 식으면 그뿐이데요?”라는 말에 담긴 애증과 원망에 가슴 저릿합니다. 누군가의 사랑이 다른 이에게 상처가 된다면, 이를 어찌해야 할까요. 누군가를 지키는 일이 다른 사람을 버리는 일이라면, 어찌해야 할까요.



[왕룽일가] 뒤표지의 작가 박영한 사진. 멋있어요. ^^
[우묵배미의 사랑] 뒤표지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왕룽일가]  본문 맨 뒤편의 판권 면. 인지 붙어 있었을 자리가 찢겨져 나갔네요. [우묵배미의 사랑]에는 인지가 제대로 붙어 있습니다. 요즘 책에는 인지를 보기 어렵지요.



왕룽一家 | 박영한 지음 | 1988년 2월 15일 초판 인쇄, 1988년 9월 15일 중판 발행 | 민음사 | 3500원

우묵배미의 사랑-왕룽一家 2 | 박영한 지음 | 1989년 7월 10일 초판 펴냄, 1989년 7월 20일 3쇄 펴냄 | 민음사 | 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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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1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