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가 된 사람들 - 경쟁에서 이기는 10가지 법칙
진 랜드럼 지음, 양영철 옮김 / 말글빛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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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우리 생활에 '신화'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신화는 없다, 신화가 된 사람들, 신화의 힘, 신화가 된 남성성과 같은 책 제목을 보더라도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신화가 넘쳐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평범함에서 탈피하여 인류의 역사에 족적을 남기고픈 범인들의 열망의 소산일테지? 그런데 이러한 책을 읽어보면 결론은 하나이다. 바로 '신화는 없다'는 사실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은 독자들을 '혹'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신화가 된 것인지 궁금증을 유발할 뿐 아니라, 존경심이 생기기도 하고, 스스로를 평범하다 못해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뭔가 방법을 알려줄 듯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제목이 "경쟁에서 이기는 10가지 법칙"이 아니던가! 무시무시하기도 하지만 험난한(?) 세태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저 정도는 갖춰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제목이다. 처세술이나 성공전략, 성공술과 같은 책은 웬만해서 손을 대지 않는 내가 이 책의 서평단에 응모를 한 이유도 이런 배경이 있었음이다.

책 내용은 소개한 바대로 열정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룬 스포츠 스타들의 성공기이다. 꽤 지루할 것이라 여겼는데 의외로 술술 읽히는 내용이다. 소제목에서 제시한 바대로, 성공을 위해서는 실패를 다짐해야 하며 절망에 빠져도 당당하게 헤치고 나와야 한다는 내용. 자신의 본능에 충실히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충고, 자신만의 즐거움 속에서 성공하는 자신을 상상해야 하며 작은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전체적인 틀 속에서 자신을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또한 승부욕에 불타면서 난관을 기회로 보고 집중력을 키워 이겨내라는 내용. 각 선수들이 중점을 둔 사항을 제목으로 하고 있지만 기실 살펴보자면 모든 스포츠 선수가 아니 모든 성공한 사람들이 갖추고 있는 항목이 아닌가 싶다.

책 중간중간마다 자신의 현재 모습을 알 수 있게 하려는 의도에서인지 테스트 항목이 나오기도 했지만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일 뿐 아니라, 심리테스트와 같은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몇 번 해보다 지치기 시작했다. 흔히 얘기하는 물이 끓는 온도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의 요약본이 아닐까 싶다.  

99도와 100도.물이 끓지 않는 99도와 물이 끓는 100도 차이는 1이라는 아라비아숫자에 불과하다. 한 걸음만 더 걸으면 100이라는 의미있는 숫자에 도달할 수 있는데 그것이 두려워서 99에서 멈춰있지는 않는가.

평이하고 쉽게 넘어가는 책장을 보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결국 실천의 여부였다.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참고 인내하며 앞으로 부단히 나아가야 한다. 주위 사람들의 조롱어린 시선에 상관하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믿는 신념을 위해, 자기가 도달하고 싶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바로 성공하는 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성공의 방법을 알고 있는 셈이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느냐, 아니면 영원히 알고만 있느냐라는 차이일 뿐이다. 99도에서 멈춰서서 조금만 더 자극을 받길 원한다면 이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계몽적인 내용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깐이라도 가슴을 설레며 새로운 인생을 위해 두 주먹을 불끈하게 만들던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에서 느꼈던 감흥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아~. 그렇구나. 무하마드 알리는 저렇게 살았구나, 윌마는 저렇게 대단하구나. 타이거 우즈는 저랬구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성공을 하고 싶다면 자기가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단, 실천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만 기억하자.

**오타**

235쪽 첫째줄 : 그은->그는

349쪽 열다섯째 줄 : 활용할 있게->활용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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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시간 노리코 3부작
다나베 세이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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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이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란 영화를 보고 나서부터이다. 장애우들의 삶을 그린 영화였는데 내가 사는 곳에서는 좀처럼 상영하지 않아 종로까지 나가 보고 왔었다. 이창동의 '오아시스'와 달리 너무나 적나라하지 않고 따뜻한 영상에 빠져 한참을 헤어나오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아주 사적인 시간>...

작가는 후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얀 천에 한 방울 물이 떨어져 소리없이 자국이 번져가는 것처럼, 또 석양빛이 희미해져 가듯이 변해가듯이 변해가는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신기한 것인가! 평범한 일상 속일수록 드라마가 있고, 마음의 변화 즉, 변심만큼 나에게 파란만장의 이미지를 가르쳐주는 것도 없다..."라고.

그래서 그런지 어느 부분이 너무 좋았다고 꼽을 수 없을 만큼 이야기 전체에 스며들고 말았다. 황지우 시인의 시 '편지'에 나오는 '사소함으로 내 그대를 불러보리라'라는 말처럼 그 사소함 때문에, 그 사소한 내용들이 내 속에 가득 차서 번져가고 있는 중이다.

평범한 남녀라고도, 특별한 남녀라고도 할 수 없는 '노리코'와 '고'의 일상. 적당한 긴장과 적당한 로맨스 속에 무채석 처럼, 간혹 원색적인 색을 떨구는 한 편의 그림같은 일상들. 부부란 말을 극도로 싫어하는 노리코의 생경한 사치스러움.

 급조된 사치스러움에 길들여진 '노리코'에게 '고'는 어느 새 이제껏 누린 '사치'에 대한 대가를 내어놓으란다. 생각해 보니 하나도 잘못이랄 것 없는 '고'의 요구는 무엇인가를 자비롭고 은혜롭게 베풀던 모든 사람들이 품고 있는 당연한 생각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일상 속으로 걸어들어간 '노리코'는 어느새 완벽한 부잣집 마나님 연기에 젖어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그녀가 아닌 그녀의 연기일 따름이었다.

 가면을 쓰고 생활하는 것에 탈진한 '노리코'는 분명 무난하게 생활함에도 어딘가 빈 듯한 허청거림으로 살아가게 된다. 트집잡을 수 없는 그녀의 소리없는 허청거림이 맘에 들진 않지만, 무엇을 바로잡아야 할 지 알지 못하는 '고'. 그게 부부의 편안함이라 위안해 보지만 자신조차도 무엇인가 빠진 것이 있다는 사실을, 빠진 그것이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것이다. 간이 베어들지 않은 김치같이 밍밍한 삶의 맛.

소설 초반에 나온 '대충대충 살아가는 삶'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갈 즈음 <인형의 집>에 등장하는 주인공 '노라'처럼 '노리코'도 집을 박차고 나온다. 그러나 자신이 퇴장하며 내뱉게 될 대사가 상대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른지를 알기에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무대 뒤로 사라진다. 아마 그녀는 차츰 자신을 찾아가려나? 물론 그녀의 선택이 무엇이든, 그녀가 택한 방법이 무엇이든 '고'에겐 잔인한 것일 테지만 말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결혼'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다. 모든 드라마에서 결혼행진곡에 맞춰 남녀가 퇴장하면 '하하호호'라는 웃음 소리가 가득 자막을 채우고 귓가를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뒷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하다고 아니 더욱 비참하고 현실적이고 감동적이라고 속삭이고 있는 듯 하다.

7년을 사귀다가 결혼을 해 2년째에 접어드는 나. 하나의 사과를 베어물고 좋아하는 '노리코'와 '고'처럼 서로를 공처럼 굴리며 상처주고 화내고 화해하는 남편과 나에게 아직 '부부'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신혼을 즐기려 하지만 솔직히 결혼한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늙어가고 있는 중이다. 서로에게 익숙해진 것이 10년이 다가오는데 설렘보다는 편안함이 많은 것이 사실이긴 하다. 5년 즈음엔 설렘이 사라진 것에 불안하다 못해 '새로운 섬광같은 사랑이 다가오면 어쩌지?'하는 불안함에 몸서리를 치기도 했다. 그때 어디서인가 들려온 말...

"사랑이 느슨해졌을 때, 내가 사랑에서 눈을 돌리려 할 때, 새로운 사랑이 끼어드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나자 사랑의 시작은 섬광일지 몰라도 사랑의 온기를 간직하는 것은 노력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로부터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일 테지. 그런데 '노리코'와 '고'를 보면서 우리의 미래가 저렇게 끝날까봐 두려워졌다. 아니 '노리코'처럼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을까 싶어 무서워졌다. 분명 비극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일상처럼 스민 물자욱들이 허무하게 지워질까봐 무섭다. 나에 대한 애착인지 우리가 보낸 세월에 대한 애착인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모든 연인들이 하는 착각 '우리만은 다를 거야'라는 생각을 착각인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큰 싸움을 피하고자 상대에게 비위를 맞추는 것도, 서로를 참아내는 것도, 화를 내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면 행복이라고 부를 수 없지 않을까? 내 인생에서 내가 주인공이 아닌 관객이 되는 순간, 내가 저지르고 있는 모든 일들이 허무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난 아직 채찍에 소리내지 않고, 애련에 물들지 않는 바위처럼 단단하고 무표정해지고 싶지는 않다. 생채기에 아파하고, 호수를 바라 보며 울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짠 눈물에서 바다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하나의 유치한 인간이고 싶다. '노리코' 처럼. 그녀가 말한다.

나는 싸워도, 그러고 나서 나중에 기분을 원상회복시키는 것이 어려워 애를 먹었어도, 서로 하고 싶은 말을 할 때가 더 좋았다. 아마 고도 본심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면, 현재 우리들 사이의 '어딘지 모르게 다르다'는 위화감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고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역시 싸움은 안 돼.'라고 말하는지 모른다. 고는 기분이 좋은 척,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깊어진 게 아닐까? 부부의 인연이란 건가봐."

글쎄 그것이 부부의 편안함으로 이름지어질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너무 마음에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살아가는 일상이 연극이란 것을 알려 준 잔인한 소설인데 이것을 읽고 난 내 마음은 왜 이리 찰랑찰랑 물소리를 내는 것인지...

그래서 이 소설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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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za 2007-08-14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첨 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요~
참 색다른 책들을 많이 읽으시네요~ 저도 이런 책들을 통해 좀더 너른 세상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제 여러분야의 책들에 도전해봐야겠어요~

sokdagi 2007-08-25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생각하기엔 제 독서록이 좀 편중된 듯 한데^^...제가 보기엔 님이 훨씬 더 너른 세상을 보고 있으신 듯 한데요. 종종 들러 참고할게요.ㅎㅎ
 
농부의 밥상 - 유기농 대표농부 10집의 밥상을 찾아서
안혜령 지음, 김성철 사진 / 소나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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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참살이가 대세다. 대세이다 못해 하나의 폭풍처럼 밀려와 너도나도 난리다. 유기농 식품이란 이름 아래 여기저기 가게가 들어서고, 상품이 넘쳐난다. 근데 도대체 유기농 식품을 누가 보장해 줄 것인가. 무농약 식품이 좋은 것은 알지만 그런 농법을 실천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몇몇 곳에만 유기농이 행해지는데도 불구하고 시중에 떠도는 유기농 식품은 너무나도 많다. 어찌된 조화일까? 유기농이란 말을 믿자니 찝찝하고, 안 믿자니 서운하고. 그것이 현재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오늘도 유기농 식품점에 들러 유기농 쌀로 만들었다는 누룽지 한 봉지 사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유기농이라 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누룽지에 손을 대고 있자니 요전에 읽은 '농부의 밥상'이란 책이 내 눈에 오롯이 들어온다. '아차' 싶은 생각. 오늘이 서평 마감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농부의 밥상'이란 책은 그야 말로 참살이의 대표 사례가 아닌가 한다. 그네들이 별것 아니라고 칭하는 밥상을 우린 그리움에 젖어 바라본다. 그네들의 밥상 차림을 보고 있자면 단순히 입안에 침이 고인다고 하기보다는 눈가에 설핏 이슬이 맺힌다. 그것은 단순한 식탐이 아닌 그리움인 것이다. 내 어릴 적, 나는 분명 어머님이 해 주시는 봄나물을 먹었고, 쑥향기 물씬 퍼지는 쑥국에다 쑥에 쌀가루를 입혀 살짝 쪄내는 이름 모를 쑥버무리(?)를 먹으면서 자랐다. 간혹 고기국이 올라오긴 했으나 그것은 정말 가끔이었다. 그랬기에 더욱 간절한 맛을 느끼며 반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고기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다양한 소스에 적셔지고, 다양한 이름이 부쳐진 부위의 고기들. 예전보다 더욱 다양하게 조리된 음식임에 뭐가 다른 것이 느껴져야 할 텐데 어찌 된 일인지  어릴 적 생일날 먹던 고기맛이 전연 느껴지지 않는다. 내 입맛이 변한 것일까?

  굳이 서민들의 음식이니 부유층의 음식이니 이름 붙여 나누지 않더라도 봄나물을 된장에 살짝 무쳐 먹고, 간장에 참기름을 넣어 무쳐 먹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그것이 기본 반찬이었고 늘 만날 수 있는 물리지 않는  반찬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그런 기억은 서서히 사라진다. 조미료를 싫어하지만 그것을 거부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식구들과 마주 앉아 밥상을 대하기란 주말 하루도 감지덕지다. 그렇기에 손으로 버무리고, 간을 보고, 채소를 다듬기보다는 각종 음식점에 주문을 한다. 다양한 메뉴를 간편하게 접할 수 있는데도 입맛은 어째 텁텁하기만 하다. 이제 진정 봄나물은 부유층의 식단이 되어버린 것이란 말인가? 가족들을 위해 환하게 웃으면 청국장을 풀어내는 저녁 상차림은 이제 여간해서 쉽지는 않다. 조금 나은 삶이란 미명 아래 온 가족이 생활 전선에 나가 있는데도 우리의 삶은 더욱 각박해져만 간다. 그래서 책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나물이름조차 이제 생소하게 느껴진다. 고작 아는 나물이라고 해 봤자 마트에 널려 있던 고춧이파리, 취나물, 돗나물 정도가 다이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고 투덜거리고 있는 내게 농사를 지는 책 속의 주인공들은 대단하게만 보인다. 농사를 짓기 위한 그들의 부지런함이, 땅에 대한 사랑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욕심이 올곧게만 보인다. 그들에게 밥이란 단순히 호사스러운 미각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들에게 밥은 평화이고, 보약이고, 하늘이고 신명이다. 함께 나누는 것이고, 올곧게 지켜야 할 고집스러운 것이며, 서둘지 않는 느린 것이며, 똥이고 시이고 기도인 것이다.

귀농이랍시고 무턱대고 농촌으로 달려가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없어서기도 하겠지만, 자연을 대하는 그들의 마음을 아직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밥상은 습관적으로 때가 되면 먹어대는 음식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생각하게끔 하는 음식이다. 땡볕에서 일손을 놀리면서도 환하게 웃던 그들의 모습이, 몇 십년 된 밥상에 턱 하니 놓여있던 별것 아닌 나물이 나에겐 어느 것보다 귀하게만 보인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어대고 다시 약을 주워먹기보다 필요한 것만 적당히 먹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나에게는 투박하고 조촐한 그네들의 밥상이 그 어느 기름진 밥상보다 더욱 성찬처럼 보인다. 당장 그네들의 밥상을 흉내내진 못하겠지만 내일 아침에는 청국장에 봄나물 하나 무쳐 먹어봐야 할까보다. 그래야 우리들의 아이들도 그네들의 밥상을 보며 눈가를 적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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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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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풀리지 않는 문제들

우리들은 누구나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안고 살아간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산더미같이 쌓아놓고서 고민하고 토론하고 싸우고 위안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분명 답이 없음을 알면서도 답을 찾아보고자 노력하고, 유사한 답인데도 정답인 양 기뻐하고, 잘못된 답인데도 정답이라고 우기며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어느 순간 철학자가 등장하고, 지식인이 등장하고, 정치가도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무엇일까? 아마 여기에 대한 대답은 사람들 숫자만큼 다양할 것이다. 그들 개개인이 처한 상황이 다를 테니 말이다. 문제가 어렵다는 것은 답이 없다는 것, 답을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공식에 넣으면 딱 떨어지는 수학이나 실험으로 증명이 되는 과학보다는 사고하고 풀어나가야 하는 애매한 국어나 사회가 어렵기 마련이고, 입시나 취직을 위해 해야 하는 공부보다는 세상을 살아가는 문제가 어렵기 마련이다. 왜냐고? 그거야 물론 정답이 없기 때문이지. 어느 누구도 이것이 모범 답안이라고 내세울 수 없기 때문에 저마다의 위치에서 답안을 만들고자 끙끙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아직도 사랑에 대해 노래하고, 삶에 대해 노래하고, 인간에 대해 노래한다. 지겨울 법도 한데 여전히 그 모든 것이 우리들의 주요 화제가 될 수 있는 까닭은 아직도 그 문제에 대한 답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인간'에 대한 물음과 '삶'에 대한 물음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어렵게만 느껴진다. 인간을 정의하는 요소들은 너무나도 많은데-만물의 영장, 하느님의 피조물, 직립보행, 도구의 사용, 언어 사용 등등- 어느 것도 인간의 진정한 요소를 설명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고, 나는 다시 한 번 인간에 대한 또 다른 의문을 품기에 이르렀다.

2. 이것은 인간이 아니다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제목은 나에게 많은 상념을 가지게 했다. 작가는 우리에게 '이것이 인간이다'라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인간인가'라고 되려 묻고 있는데 그 물음조차 다분히 힐난조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인간에 대해 절망하게 했는지 궁금했고, 우리에게 무엇을 역설하고 싶은지 궁금했으며, 내가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 해 줘야 할 것만 같은 사명감을 느꼈다고 하면 과장일까?

작가는 1945년 아우슈비츠에 이송되어 제3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 중의 한 사람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미물로 취급받으며 살아온 처참한 날들의 기록이 바로 이 책의 줄거리인 셈이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실험도구로 전락했고, 사육되었으며, 가스실에서 죽어갔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그런데 작가는 마치 관찰자인 양 그러한 사실을 담담하게, 너무나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희생자의 한탄 섞인 어조나 복수심을 품은 사람의 날선 언어가 아닌, 침착하고 절제된 증언의 언어들을 사용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적중한 셈이다. 그렇기에 그 당시의 처참한 광경이 눈물에 젖어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일듯이 더욱 선명하게 재현되는 것이리라. 하긴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증오해야 할 대상을 단순히 히틀러 개인이나, 독일이라는 하나의 국가, 나치 등으로 한정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도 종종 우리는 개인에게 화살을 돌리거나 저주를 퍼붓는 것으로 사건을 무마하곤 한다.그것은 또다른 우를 범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원망만 한다면 이러한 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왜냐 하면 변장에 능한 비극은 늘 다른 모습을 하고서 소리도 없이 우리들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비극을 늘 경계하고, 이것에 대항해야 한다. 이제껏 우리가 범해 왔고 범하고 있는 잘못들, 아무 의미없는 기준을 정해 놓고 사람을 차별하는 일, 다른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려는 생각, 나와 너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믿음, 나는 특별하다고 여기는 오만 이 모든 것들은 인간으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3. 인간이기 위해 해야 할 것들

잠깐이나마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같은 이들이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로 추앙받았던 이유는 그들을 신봉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 슬픈 사실은 그들의 비인간적인 명령을 부지런히 수행한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작가 역시 이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얼마나 섬뜩한 일인가. 우리가 바로 비인간적 명령을 부지런히 수행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처음에는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저항했을지라도 어느 순간, 무슨 일에든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괜찮다는 생각마저 갖게 되곤 한다. 괴로움이 겹칠 때 그것이 하나의 해결방안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인간은 그래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작가의 기록을 보며 증오하기보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늘 각성해야 한다. 또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기에 더더욱 이 일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행복한 사건 못지 않게 불행한 사건들 또한 많았다. 현재만 살아갈 것 같은 우리는 사실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고, 우리가 걸어온 길은 과거가 되어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늘 좋은 일만 기억하고 살 수 있다면 좋겠으나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는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과오를 기억해야 한다. 세상을 역행하려는 이들에 대항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오를 망각하지 않는 것이다. 과오를 기억하고 경계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부끄럽지 않는 오늘을 살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해야만 하는 가장 쉬운 일이자 가장 어려운 일이다. 이 작가의 증언을 바탕으로 나 역시 또 다른 증인이 되고자 노력해야겠다. 두 눈 부릅뜨는 것만으로도 어설픈 불행은 우리에게 다가서지 못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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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08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날을 기억하고 과오를 경계하는 것,
우리는 얼마나 사소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역사의 중심에 과연 우리가 있을까요?
명료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님의 리뷰, 참 좋습니다.

sokdagi 2007-02-15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해요.
그래도 님의 글에는 근접도 못할 듯 해요. 역시 읽기와 쓰기란 힘든 일인 듯..^^
열심히 분발해야겠어요.
 
[무료배송]누워서 책 읽기, 독서대 겸용 프리노트 1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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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와 같이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구나 느끼는 상품이었다,가 아니라 나처럼 게으른 사람들이 많구나라고 느끼는 상품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지 반가웠습니다. 이런 상품이...침대에서 등을 대고 무릎을 세워 책을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누워서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천장에 책을 끼워두고 누군가가 넘겨줄 수 있다면, 목욕탕에서 눅눅해지지 않고 책을 볼 수 있다면 하는 생각들...그래서 이 상품을 선택했습니다.

 근데 사고보니 허섭 그 자체입니다.

우선 장점은 하나입니다. 아쉬운따나 각도를 조절하면 침대에서 보기에는 아주 편하답니다.

하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별표를 몇 개 뺍니다.

1. 조립은 간단하나 휘청휘청하는 것이 언제 부서질까 염려가 된다는 사실

2. 책을 받쳐두기에 밑받침의 너비가 너무 좁음. 일반 책들의 두께를 버티지 못해 결국 손으로 꼭 잡아줘야 하는 불편함

3. 일반 책받침대처럼 고정하는 대가 없기에 좁은 너비의 받침대 위에 책을 올려놓고 손으로 책장을 넘기고 눌러야 함

4. 각도를 조절할 때마다 나사를 풀고 조절을 해야 한다는 번거로움

역시 made in china구나라고 슬프고 안타깝게 느낍니다. 조금만 정성들여 장인의 솜씨를 발휘한다면 값이 더 나가더라도 살 용의가 있는데 말씀입니다.사시기 전에 충분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누구 근사한 책받침대 만들어주실 분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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