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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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풀리지 않는 문제들

우리들은 누구나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안고 살아간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산더미같이 쌓아놓고서 고민하고 토론하고 싸우고 위안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분명 답이 없음을 알면서도 답을 찾아보고자 노력하고, 유사한 답인데도 정답인 양 기뻐하고, 잘못된 답인데도 정답이라고 우기며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어느 순간 철학자가 등장하고, 지식인이 등장하고, 정치가도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무엇일까? 아마 여기에 대한 대답은 사람들 숫자만큼 다양할 것이다. 그들 개개인이 처한 상황이 다를 테니 말이다. 문제가 어렵다는 것은 답이 없다는 것, 답을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공식에 넣으면 딱 떨어지는 수학이나 실험으로 증명이 되는 과학보다는 사고하고 풀어나가야 하는 애매한 국어나 사회가 어렵기 마련이고, 입시나 취직을 위해 해야 하는 공부보다는 세상을 살아가는 문제가 어렵기 마련이다. 왜냐고? 그거야 물론 정답이 없기 때문이지. 어느 누구도 이것이 모범 답안이라고 내세울 수 없기 때문에 저마다의 위치에서 답안을 만들고자 끙끙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아직도 사랑에 대해 노래하고, 삶에 대해 노래하고, 인간에 대해 노래한다. 지겨울 법도 한데 여전히 그 모든 것이 우리들의 주요 화제가 될 수 있는 까닭은 아직도 그 문제에 대한 답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인간'에 대한 물음과 '삶'에 대한 물음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어렵게만 느껴진다. 인간을 정의하는 요소들은 너무나도 많은데-만물의 영장, 하느님의 피조물, 직립보행, 도구의 사용, 언어 사용 등등- 어느 것도 인간의 진정한 요소를 설명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고, 나는 다시 한 번 인간에 대한 또 다른 의문을 품기에 이르렀다.

2. 이것은 인간이 아니다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제목은 나에게 많은 상념을 가지게 했다. 작가는 우리에게 '이것이 인간이다'라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인간인가'라고 되려 묻고 있는데 그 물음조차 다분히 힐난조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인간에 대해 절망하게 했는지 궁금했고, 우리에게 무엇을 역설하고 싶은지 궁금했으며, 내가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 해 줘야 할 것만 같은 사명감을 느꼈다고 하면 과장일까?

작가는 1945년 아우슈비츠에 이송되어 제3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 중의 한 사람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미물로 취급받으며 살아온 처참한 날들의 기록이 바로 이 책의 줄거리인 셈이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실험도구로 전락했고, 사육되었으며, 가스실에서 죽어갔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그런데 작가는 마치 관찰자인 양 그러한 사실을 담담하게, 너무나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희생자의 한탄 섞인 어조나 복수심을 품은 사람의 날선 언어가 아닌, 침착하고 절제된 증언의 언어들을 사용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적중한 셈이다. 그렇기에 그 당시의 처참한 광경이 눈물에 젖어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일듯이 더욱 선명하게 재현되는 것이리라. 하긴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증오해야 할 대상을 단순히 히틀러 개인이나, 독일이라는 하나의 국가, 나치 등으로 한정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도 종종 우리는 개인에게 화살을 돌리거나 저주를 퍼붓는 것으로 사건을 무마하곤 한다.그것은 또다른 우를 범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원망만 한다면 이러한 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왜냐 하면 변장에 능한 비극은 늘 다른 모습을 하고서 소리도 없이 우리들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비극을 늘 경계하고, 이것에 대항해야 한다. 이제껏 우리가 범해 왔고 범하고 있는 잘못들, 아무 의미없는 기준을 정해 놓고 사람을 차별하는 일, 다른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려는 생각, 나와 너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믿음, 나는 특별하다고 여기는 오만 이 모든 것들은 인간으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3. 인간이기 위해 해야 할 것들

잠깐이나마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같은 이들이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로 추앙받았던 이유는 그들을 신봉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 슬픈 사실은 그들의 비인간적인 명령을 부지런히 수행한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작가 역시 이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얼마나 섬뜩한 일인가. 우리가 바로 비인간적 명령을 부지런히 수행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처음에는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저항했을지라도 어느 순간, 무슨 일에든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괜찮다는 생각마저 갖게 되곤 한다. 괴로움이 겹칠 때 그것이 하나의 해결방안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인간은 그래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작가의 기록을 보며 증오하기보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늘 각성해야 한다. 또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기에 더더욱 이 일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행복한 사건 못지 않게 불행한 사건들 또한 많았다. 현재만 살아갈 것 같은 우리는 사실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고, 우리가 걸어온 길은 과거가 되어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늘 좋은 일만 기억하고 살 수 있다면 좋겠으나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는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과오를 기억해야 한다. 세상을 역행하려는 이들에 대항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오를 망각하지 않는 것이다. 과오를 기억하고 경계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부끄럽지 않는 오늘을 살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해야만 하는 가장 쉬운 일이자 가장 어려운 일이다. 이 작가의 증언을 바탕으로 나 역시 또 다른 증인이 되고자 노력해야겠다. 두 눈 부릅뜨는 것만으로도 어설픈 불행은 우리에게 다가서지 못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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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08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날을 기억하고 과오를 경계하는 것,
우리는 얼마나 사소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역사의 중심에 과연 우리가 있을까요?
명료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님의 리뷰, 참 좋습니다.

sokdagi 2007-02-15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해요.
그래도 님의 글에는 근접도 못할 듯 해요. 역시 읽기와 쓰기란 힘든 일인 듯..^^
열심히 분발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