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밥상 - 유기농 대표농부 10집의 밥상을 찾아서
안혜령 지음, 김성철 사진 / 소나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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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참살이가 대세다. 대세이다 못해 하나의 폭풍처럼 밀려와 너도나도 난리다. 유기농 식품이란 이름 아래 여기저기 가게가 들어서고, 상품이 넘쳐난다. 근데 도대체 유기농 식품을 누가 보장해 줄 것인가. 무농약 식품이 좋은 것은 알지만 그런 농법을 실천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몇몇 곳에만 유기농이 행해지는데도 불구하고 시중에 떠도는 유기농 식품은 너무나도 많다. 어찌된 조화일까? 유기농이란 말을 믿자니 찝찝하고, 안 믿자니 서운하고. 그것이 현재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오늘도 유기농 식품점에 들러 유기농 쌀로 만들었다는 누룽지 한 봉지 사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유기농이라 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누룽지에 손을 대고 있자니 요전에 읽은 '농부의 밥상'이란 책이 내 눈에 오롯이 들어온다. '아차' 싶은 생각. 오늘이 서평 마감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농부의 밥상'이란 책은 그야 말로 참살이의 대표 사례가 아닌가 한다. 그네들이 별것 아니라고 칭하는 밥상을 우린 그리움에 젖어 바라본다. 그네들의 밥상 차림을 보고 있자면 단순히 입안에 침이 고인다고 하기보다는 눈가에 설핏 이슬이 맺힌다. 그것은 단순한 식탐이 아닌 그리움인 것이다. 내 어릴 적, 나는 분명 어머님이 해 주시는 봄나물을 먹었고, 쑥향기 물씬 퍼지는 쑥국에다 쑥에 쌀가루를 입혀 살짝 쪄내는 이름 모를 쑥버무리(?)를 먹으면서 자랐다. 간혹 고기국이 올라오긴 했으나 그것은 정말 가끔이었다. 그랬기에 더욱 간절한 맛을 느끼며 반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고기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다양한 소스에 적셔지고, 다양한 이름이 부쳐진 부위의 고기들. 예전보다 더욱 다양하게 조리된 음식임에 뭐가 다른 것이 느껴져야 할 텐데 어찌 된 일인지  어릴 적 생일날 먹던 고기맛이 전연 느껴지지 않는다. 내 입맛이 변한 것일까?

  굳이 서민들의 음식이니 부유층의 음식이니 이름 붙여 나누지 않더라도 봄나물을 된장에 살짝 무쳐 먹고, 간장에 참기름을 넣어 무쳐 먹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그것이 기본 반찬이었고 늘 만날 수 있는 물리지 않는  반찬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그런 기억은 서서히 사라진다. 조미료를 싫어하지만 그것을 거부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식구들과 마주 앉아 밥상을 대하기란 주말 하루도 감지덕지다. 그렇기에 손으로 버무리고, 간을 보고, 채소를 다듬기보다는 각종 음식점에 주문을 한다. 다양한 메뉴를 간편하게 접할 수 있는데도 입맛은 어째 텁텁하기만 하다. 이제 진정 봄나물은 부유층의 식단이 되어버린 것이란 말인가? 가족들을 위해 환하게 웃으면 청국장을 풀어내는 저녁 상차림은 이제 여간해서 쉽지는 않다. 조금 나은 삶이란 미명 아래 온 가족이 생활 전선에 나가 있는데도 우리의 삶은 더욱 각박해져만 간다. 그래서 책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나물이름조차 이제 생소하게 느껴진다. 고작 아는 나물이라고 해 봤자 마트에 널려 있던 고춧이파리, 취나물, 돗나물 정도가 다이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고 투덜거리고 있는 내게 농사를 지는 책 속의 주인공들은 대단하게만 보인다. 농사를 짓기 위한 그들의 부지런함이, 땅에 대한 사랑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욕심이 올곧게만 보인다. 그들에게 밥이란 단순히 호사스러운 미각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들에게 밥은 평화이고, 보약이고, 하늘이고 신명이다. 함께 나누는 것이고, 올곧게 지켜야 할 고집스러운 것이며, 서둘지 않는 느린 것이며, 똥이고 시이고 기도인 것이다.

귀농이랍시고 무턱대고 농촌으로 달려가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없어서기도 하겠지만, 자연을 대하는 그들의 마음을 아직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밥상은 습관적으로 때가 되면 먹어대는 음식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생각하게끔 하는 음식이다. 땡볕에서 일손을 놀리면서도 환하게 웃던 그들의 모습이, 몇 십년 된 밥상에 턱 하니 놓여있던 별것 아닌 나물이 나에겐 어느 것보다 귀하게만 보인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어대고 다시 약을 주워먹기보다 필요한 것만 적당히 먹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나에게는 투박하고 조촐한 그네들의 밥상이 그 어느 기름진 밥상보다 더욱 성찬처럼 보인다. 당장 그네들의 밥상을 흉내내진 못하겠지만 내일 아침에는 청국장에 봄나물 하나 무쳐 먹어봐야 할까보다. 그래야 우리들의 아이들도 그네들의 밥상을 보며 눈가를 적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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