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시간 노리코 3부작
다나베 세이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이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란 영화를 보고 나서부터이다. 장애우들의 삶을 그린 영화였는데 내가 사는 곳에서는 좀처럼 상영하지 않아 종로까지 나가 보고 왔었다. 이창동의 '오아시스'와 달리 너무나 적나라하지 않고 따뜻한 영상에 빠져 한참을 헤어나오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아주 사적인 시간>...

작가는 후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얀 천에 한 방울 물이 떨어져 소리없이 자국이 번져가는 것처럼, 또 석양빛이 희미해져 가듯이 변해가듯이 변해가는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신기한 것인가! 평범한 일상 속일수록 드라마가 있고, 마음의 변화 즉, 변심만큼 나에게 파란만장의 이미지를 가르쳐주는 것도 없다..."라고.

그래서 그런지 어느 부분이 너무 좋았다고 꼽을 수 없을 만큼 이야기 전체에 스며들고 말았다. 황지우 시인의 시 '편지'에 나오는 '사소함으로 내 그대를 불러보리라'라는 말처럼 그 사소함 때문에, 그 사소한 내용들이 내 속에 가득 차서 번져가고 있는 중이다.

평범한 남녀라고도, 특별한 남녀라고도 할 수 없는 '노리코'와 '고'의 일상. 적당한 긴장과 적당한 로맨스 속에 무채석 처럼, 간혹 원색적인 색을 떨구는 한 편의 그림같은 일상들. 부부란 말을 극도로 싫어하는 노리코의 생경한 사치스러움.

 급조된 사치스러움에 길들여진 '노리코'에게 '고'는 어느 새 이제껏 누린 '사치'에 대한 대가를 내어놓으란다. 생각해 보니 하나도 잘못이랄 것 없는 '고'의 요구는 무엇인가를 자비롭고 은혜롭게 베풀던 모든 사람들이 품고 있는 당연한 생각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일상 속으로 걸어들어간 '노리코'는 어느새 완벽한 부잣집 마나님 연기에 젖어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그녀가 아닌 그녀의 연기일 따름이었다.

 가면을 쓰고 생활하는 것에 탈진한 '노리코'는 분명 무난하게 생활함에도 어딘가 빈 듯한 허청거림으로 살아가게 된다. 트집잡을 수 없는 그녀의 소리없는 허청거림이 맘에 들진 않지만, 무엇을 바로잡아야 할 지 알지 못하는 '고'. 그게 부부의 편안함이라 위안해 보지만 자신조차도 무엇인가 빠진 것이 있다는 사실을, 빠진 그것이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것이다. 간이 베어들지 않은 김치같이 밍밍한 삶의 맛.

소설 초반에 나온 '대충대충 살아가는 삶'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갈 즈음 <인형의 집>에 등장하는 주인공 '노라'처럼 '노리코'도 집을 박차고 나온다. 그러나 자신이 퇴장하며 내뱉게 될 대사가 상대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른지를 알기에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무대 뒤로 사라진다. 아마 그녀는 차츰 자신을 찾아가려나? 물론 그녀의 선택이 무엇이든, 그녀가 택한 방법이 무엇이든 '고'에겐 잔인한 것일 테지만 말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결혼'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다. 모든 드라마에서 결혼행진곡에 맞춰 남녀가 퇴장하면 '하하호호'라는 웃음 소리가 가득 자막을 채우고 귓가를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뒷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하다고 아니 더욱 비참하고 현실적이고 감동적이라고 속삭이고 있는 듯 하다.

7년을 사귀다가 결혼을 해 2년째에 접어드는 나. 하나의 사과를 베어물고 좋아하는 '노리코'와 '고'처럼 서로를 공처럼 굴리며 상처주고 화내고 화해하는 남편과 나에게 아직 '부부'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신혼을 즐기려 하지만 솔직히 결혼한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늙어가고 있는 중이다. 서로에게 익숙해진 것이 10년이 다가오는데 설렘보다는 편안함이 많은 것이 사실이긴 하다. 5년 즈음엔 설렘이 사라진 것에 불안하다 못해 '새로운 섬광같은 사랑이 다가오면 어쩌지?'하는 불안함에 몸서리를 치기도 했다. 그때 어디서인가 들려온 말...

"사랑이 느슨해졌을 때, 내가 사랑에서 눈을 돌리려 할 때, 새로운 사랑이 끼어드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나자 사랑의 시작은 섬광일지 몰라도 사랑의 온기를 간직하는 것은 노력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로부터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일 테지. 그런데 '노리코'와 '고'를 보면서 우리의 미래가 저렇게 끝날까봐 두려워졌다. 아니 '노리코'처럼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을까 싶어 무서워졌다. 분명 비극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일상처럼 스민 물자욱들이 허무하게 지워질까봐 무섭다. 나에 대한 애착인지 우리가 보낸 세월에 대한 애착인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모든 연인들이 하는 착각 '우리만은 다를 거야'라는 생각을 착각인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큰 싸움을 피하고자 상대에게 비위를 맞추는 것도, 서로를 참아내는 것도, 화를 내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면 행복이라고 부를 수 없지 않을까? 내 인생에서 내가 주인공이 아닌 관객이 되는 순간, 내가 저지르고 있는 모든 일들이 허무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난 아직 채찍에 소리내지 않고, 애련에 물들지 않는 바위처럼 단단하고 무표정해지고 싶지는 않다. 생채기에 아파하고, 호수를 바라 보며 울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짠 눈물에서 바다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하나의 유치한 인간이고 싶다. '노리코' 처럼. 그녀가 말한다.

나는 싸워도, 그러고 나서 나중에 기분을 원상회복시키는 것이 어려워 애를 먹었어도, 서로 하고 싶은 말을 할 때가 더 좋았다. 아마 고도 본심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면, 현재 우리들 사이의 '어딘지 모르게 다르다'는 위화감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고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역시 싸움은 안 돼.'라고 말하는지 모른다. 고는 기분이 좋은 척,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깊어진 게 아닐까? 부부의 인연이란 건가봐."

글쎄 그것이 부부의 편안함으로 이름지어질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너무 마음에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살아가는 일상이 연극이란 것을 알려 준 잔인한 소설인데 이것을 읽고 난 내 마음은 왜 이리 찰랑찰랑 물소리를 내는 것인지...

그래서 이 소설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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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za 2007-08-14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첨 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요~
참 색다른 책들을 많이 읽으시네요~ 저도 이런 책들을 통해 좀더 너른 세상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제 여러분야의 책들에 도전해봐야겠어요~

sokdagi 2007-08-25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생각하기엔 제 독서록이 좀 편중된 듯 한데^^...제가 보기엔 님이 훨씬 더 너른 세상을 보고 있으신 듯 한데요. 종종 들러 참고할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