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도코노 이야기 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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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한 일요일 오후에 '빛의 제국'의 마지막 장을 덮고서 편안한 마음에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눈을 뜨자 약속이라도 한 듯 따스하고 안온한 햇살이 창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추워보이던 창문으로 따스한 햇살이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아마 '빛의 제국'을 읽은 덕분이 아닌가 한다.

열 편의 단편들이 묘하게 겹칠 듯 겹칠 듯 겹쳐지지 않고 이어지는 모습이 사람을 바짝 긴장하게 만든다. 유독 사람의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나로서는 각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름들과 이전 작품 속 주인공을 비교하며 읽느라 읽는 내내 앞장과 뒷장을 뒤적이는 데 바빴다. 단편임을 알면서도 묘하게 이어지는 등장인물들의 이름 속에 들어있을 의미를 하나라도 놓칠새라 그짓을 계속하곤 했다. 그렇기에 자칫 감흥이 끊어질까 다시 읽기를 반복했는데도 전혀 질리지가 않는다. 읽을 때마다 새로움이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스릴 있는 장면이 아닌 듯 하면서도 '도코노' 일가에 대한 궁금함과 아릿함이 나를 열뜨게 만들곤 한다. 커다란 서랍장에 사람들의 마음과 많은 풍경들을 담고 담아, 그것을 울릴 경지에 오른 가족들. 나지막한 산 속에서 사라진 여대생과, 상상만으로도 마음씨 좋고 푸근할 것만 같은, 언젠가 꼭 만나고 싶은 두루미 선생님. 뒤집히지 않고 뒤집어야만 살 수 있는 가족들.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비극적인 모습들. 양치류 식물의 모습을 하고 우리 마음과 이 세계를 잠식해 가는 잡초를 묵묵히 제거하는 사람들. 인정하기 싫은 모습을 계속 부인하다가 결국 자신의 역할에 전력으로 뛰어드는 사람들.

튀거나 두드러지지 않으면서 세상을 위해 뛰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언제나 조명을 받으며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우리네 세상을 돌아보게 된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단 몇 명이 아니라 우리 모두인 것인데 말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특별한 도코노 일가가 될 수 있는데 우린 어느 새 검은 그림자를 가진, 도코노 일가를 위협하는 인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먼 곳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빠른 발을 가진 놀라운 능력은 없지만 우린 누구도 하늘을 날 수 있게, 먼 곳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서로 웃어주고, 보듬어주는 것이 바로 우리의 끝없는 능력인데도 우린 왜 자꾸 험해져만 가는 것인지. 우리 몸 속에는 얼마나 많은 잡초가 자라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서로 남의 몸 속에 자라나는 잡초를 보느라 나에게 자라난 잡초를 못 보는 것이 아닌지. 그런 험한 세상 속에서 홀로 악전고투하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빛의 제국'이 험난하고 상처 투성이의 이야기라 여겨지지 않는 것은 사람들끼리 보듬어 주는 마음과 마지막 부분의 연주회 장면 덕분이 아닌가 한다. 10년 후 만나야 할 이들이 모인 자리의 흥성스러움이 가슴을 후끈히 데워주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이제 세상의 아픔을 줄이기 위해 그들이 뭔가를 시작해 줄 것만 같은 기대가 읽는 나로 하여금 이것이 소설임을 잊게 만들어준다.

작가가 이토록 많은 인물을 창조하느라 얼마나 고생했을지 그녀가 토로하지 않아도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작가의 말처럼 하나의 단편만으로도 충분한 장편이 구성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연작 소설이기에 또 다른 작품을 기대하련다. '온다 리쿠' 그녀를 믿기 때문이다.

커다란 서랍장을 지닌 일가만큼은 아니라도 나역시 그러한 서랍장을 하나 가지고 싶다. 그것이 울림통으로써의 역할을 할 때가 온다면 세상이 조금은 따뜻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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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1-30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다 리쿠, 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네요. 님은 온다 리쿠의 소설을 무척
좋아하시나 봅니다. 기회 되면 읽어보고 싶어지는 리뷰입니다. 반가워요^^

sokdagi 2007-01-30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지 반갑습니다. 메아리를 들은 듯 해서요. ^^ 온다 리쿠의 작품은 우연한 기회로 접한 소설인데 요즘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습니다. 님 서재에서 좋은 동화책 많이 퍼왔답니다. 저도 읽어보고 싶어서요. 참고 많이 해도 되죠?

산도 2007-03-05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저하고 있던 마음에 확신을 주네요.
좋은 리뷰 작성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길.

sokdagi 2007-03-09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칭찬이 필요한 하루였는데 ^^ 칭찬해 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부디 실망하시지 않았으면 하네요. 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우석훈 지음 / 녹색평론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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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개인 간에 부탁을 할 때에도 먼저 제의한 사람이 아쉬운 것이 있는 것이고, 그 아쉬운 만큼 상대에게 무엇인가 양보를 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미국측에 먼제 FTA를 제안한 우리 정부도 분명 무엇인가 아쉬운 것이 있었을 것이고 그러한 제의에 대한 값을 지불해야 할 테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적 약속이었을 때에는 별 문제가 안 될지 몰라도 국가 대 국가의 협약일 경우의 파급효과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 어마어마함도 긍정적인 효과라면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지만 이것은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제의를 한 값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모를까 결과가 분명학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도통 한미 협약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고 싶어도 어렵기만 해서 다가가기 힘들었는데 이 책을 통해 한미 FTA를 조금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깊은 내용에 대한 이해를 관두고라도 저자가 한 말이 계속 머릿 속을 맴돈다. 한국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철학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모두 충분한 논의를 통해 합의를 하지 않는 한 협상의 결과는 낙관적일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외쳐야 할 듯 하다.

" 여기는 등대. 여기는 등대. 미국이 좌측으로 우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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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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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가 힘이 든다. 곶감 빼먹듯이 야금야금 먹으리라 다짐하고 다짐했음에도 스르르 손이 가는 책. 온다 리쿠의 책들이다. 손에 잡으면 도통 놓기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연거푸 내리 읽어버려야 할 책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전작의 놀라운 글솜씨에 대한 기대 때문에 책장을 들추며 느끼는 두근거림이란... 잠도 들지 못한 밤에 자려고 애를 쓰다가 불면증을 원망하며 집어든 책. '네버랜드'  다음에는 ' 빛의 제국'부터 먼저 읽으리라 작정했었는데 어둠 탓이었는지, 아니면 아직 인연이 아니었는지 '네버랜드'를 읽게 되었다. 그래서 또 한 번 밤을 새게 된 것이다.

'네버랜드'. 어디에도 없는 곳이란 제목을 지닌 이 책은 작가의 다른 작품인 '밤의 피크닉'과 마찬가지로 학교라는 장소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학교'라...

우리에게 학교란 어떤 곳일까? 뉴스에서는 늘 학교를 치열한 공부를 해야하는 전투장으로, 교사의 폭력이 난무하는 곳으로, 탈선을 일삼는 아이들이 들끓는 곳으로 묘사하곤 한다. 그러나 학교가 그런 일들만 있는 곳은 아니다.  무시무시한 일보다 소소한 즐거움도 무시못할 정도로 많다. 늦은 밤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살벌한 곳이지만 간간히 매점을 들러 수다를 떠는 곳이기도 하고, 잘생긴 남선생님에 대한 연모의 정을 키우기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슬픈 현실 속에 즐거운 일도 분명 있기에 우리에게 '학교'라는 단어는 무수한 이미지를 품게끔 한다.

이러한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누구나 고교 시절을 좋을 때였다고 말한다.  늘 변화무쌍하고 치열하다는 변함없는 제도를 간직하고 있는 학교 생활인데 우린 그 속에서 참으로 많은 추억을 만들었던 것이다.  콧물 줄줄 흘리던(요즘은 아가들이 너무 깔끔하다시피 해서 그럴 일이 없겠지만 우리 때만 해도 콧물 닦는 손수건 한 장씩 가슴에 매달고 다녔더랬다,) 초딩 시절은 논외이고, 약간은 유치하다고 여겨지던 중학생(중딩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말이다)을 제친 고등학교 시절. 이제 사회로 가기 위한 막바지 관문이라서인지 어른이 된 몸 속에 아이도 어른도 아닌 존재를 품고 있던 시절. 그렇기에 혼란도 배가 되고, 스릴도 배가 되었던 것일 게다. 10대 부터 60대(?)까지, 학생을 비롯한 교사들까지 다양한 성향과 연령이 가득한 곳. 그래서 그곳에서는 어이없는 일도 신기한 일도 많았다. 어느 조직을 보더라도 학교라는 조직처럼 역동적인 조직이 있을까 싶다. 입시라는 엄청난 제도에 억눌려 있음에도 십대들의 통통 튀는 매력과 역동적인 모습은 감출 수가 없는 곳. 그렇기에 그렇게 엄청난 숙제와 시험에 시달렸음에도 우린 모의고사 성적을 기억하기보다 그곳에 담긴 추억을 기억한다. 가끔 동창을 만나 그곳 이야기를 되씹다 보면 웃음부터 나오는 이유도 추억 때문이다. 사회라는 조직에서는 맛볼 수 없는 웃음이 있는 곳, 그곳이 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너 다시 고교 시절로 가라면 갈래?"라고 묻는다면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 너무나 많은 것을 알아버렸기에 그곳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는 듯도 싶고, 돌아가기 싫은 것 같기도 하다.

이런 학교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도 말했다시피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배경이긴 하지만 저런 곳이 학교의 진정한 모습이라 말해버리고 싶은 곳, 바로 네버랜드에 등장하는 남학생 기숙사 '쇼라이칸'이다. 그곳에서 네 명의 친구들이 방학을 보내게 된다.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늘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미쓰히로, 가장 평범하게 묘사된 이 이야기의 서술자 요시쿠니', 천역덕스러우면서도 분위기 메이커인 '간지', 엉뚱한 천재소년 '오사무'. 이들 네 명이 적당한 균형을 이루면서 기숙사 생활을 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헤집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무엇가 목적을 가지고 상대를 괴롭히고자 하는 것이 아닌지라 드러난 생채기는 어느 새 아물어간다. 아마 등장인물들이 서로의 상처를 헤집어 주지 않았다면 그 상처는 곪아 터져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상처 헤집기는 일종의 신성한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더 큰 세계로 나아가는 통과의례라고나 할까? 

늘 그렇듯이 각자의 비밀을 간직한 채, 자신들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가다 어떤 계기를 통해 스스로의 짐을 나눠 담는 그들. 사랑은 둘이 속삭일 수 있어도 우정을 나누기에는 둘보다 셋이, 셋보다 넷이 좋은 모양이다. 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주는 능란한 인물이 없는 한 셋의 우정이 유지되기란 좀처럼 힘이 들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 속의 '넷'이란 숫자는 등장 인물들 사이에 묘한 균형을 이뤄주고 있다. 마치 '흑과 다의 환상'에 등장한 '리에코, 마키오, 아키히코, 세쓰코'처럼 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각자가 진 짐의 무게가 엄청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감내하고 묵묵히 짊어지고 나간다. 도피하거나 벗어내려는 듯 보이는 것이 아니라 대면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철이 안 든 나의 입장에서는 그런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늘 나이에 맞게 행동하리라 다짐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행동하라고 말하면서도 진정 그들의 입장이 되어본 적은 없었던 나에게 반성을 하게 한 책이다. 작품속에서 서술자인 요시쿠니가 말한다.

"불공평하다. 간지가 화내는 건 그 점인 것이다. 그들은 일견 어른의 논리로 간지를 대등하게 대하는 척하면서, 실은 부모의 논리를 간지의 목에 들이대고 그에게 자식으로서의 논리로 어른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간지는 처음부터 심한 열세에 놓여 있다. 그는 그 점을 화내는 것이다."

 나도 누군가를 판단할 때 그랬던 것 같다. 일견 '너의 의견을 인정하마.' 말하면서도 '너는 어리니까, 너는 속물이니까' 라는 생각을 하며 내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상대방에겐 그들 나름의 절박한 이유가 있을 텐데 말이다. 누군가 말했다. 꾀병도 병이라고. 이제부터라도 누군가 나에게 꾀병으로 다가온다면 나 역시 따뜻한 손을 내밀어줘야겠다. 그럴 수 없다면 적어도 대등하게 상대를 대해야겠다. 그러기 위해선 이 작품 속 주인공들처럼 강해져야겠지.

'온다 리쿠'는 어쩜 이리도 섬세하게 인물들의 특징을 잡아내고 배려하고 있는 것인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한다. 왠지 '네버랜드'의 아이들이 성인이 된다면 '흑과 다의 환상'의 주인공들처럼 될 것만 같다. 늘 이 작가에게선 많은것을 배우고 있는 나는 또 다른 책으로 시선을 돌리련다. 나 이외에도 많은 이들이 이 작품 속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리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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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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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소설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군다나 환타지 소설이나 무협지, 또는 추리 소설을 본다고 치면 '오타쿠'나 보는 듯한 시선을 보냅니다. 게다가 이렇게 정신없는 세상 속에서 책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신선놀음이나 하는 듯이 지켜보기도 합니다. 자기들이 주식투자 하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경우는 괜찮고 제가 책을 읽으면 '몹시 한가하시군요' 내지 '여유로우시네요.' 등등의 말을 합니다. 꼭 혼자서 놀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어 기분 참 거시기합니다. 거기다가 소설을 읽으면 거시기하게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경제학' 서적이라도 손에 들고 있을라치면 '관심 분야가 참 넓으시네요.' 이런단 말입니다. 참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소설이, 도대체 추리 소설이 어디가 부족하단 말씀입니다. 물론 당장의 이익이 남는 눈에 보이는 장사가 아닐지 몰라도 소설책은 참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굳건히 책을 들고 가렵니다.

그 중 제가 요즘 빠져 있는 '온다 리쿠'의 소설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전 이 작가의 작품을 통해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란 작품 속에 잠깐 언급된 적이 있고, '흑과 다의 환상'이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인 '유리'가 연기한 연극 속의 소재가 심층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어찌 이 작가는 이리도 교묘하게 사건과 사건을 책과 책을 연결시키면서도 뻔한 느낌이 들지 않게 글을 써 나가는 것인지 참 감탄, 또 감탄입니다.

이번에는 3월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나라는 늘 3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는데 일본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3월에 학기가 시작되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더군요. ) 이 학교는 넓은 습원 속에 위치하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3월에 학기가 시작됩니다.  학교가 위치한 습원이란 환경도 너무나 광대하고 무엇인가를 품고 있을 듯한 근사한 배경입니다. 그런데 새학기를 하루 앞둔 2월에 입학한 아이가 등장합니다. 그녀가 이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이 학교에는 2월에 들어온 아이가 학교를 파멸시킬 것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학생들이 이 아이를 주시하기 시작하게 되죠. 이 아이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들과 현실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와 시설들, 학교 내부 사정들이 이야기의 실마리로 풀려나오게 됩니다. 더 깊이 들어가다가는 '스포일러'가 되고 말 것 같아 관둡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사실을 배웠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밖에 모르던 제가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붉은 여왕과 손잡고 뛰는 앨리스의 속도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애드가 앨런 포우의 엄청난 두께의 소설집 속에서 '온다 리쿠'가 말한 작품들을 간혹 연관시켜 읽기도 해 봅니다. ('도둑맞은 편지'와 같은 작품들)두꺼운 애드가 앨런 포의 단편집 속에서 그녀가 말한 작품들을 골라 읽는 재미는 배스킨 라빈스의 선택의 즐거움 몇 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이 작품을 권합니다. 아직 온다 리쿠의 작품 전부를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처음 읽으시는 분이라면 온다리쿠의 소설을 저와 같은 순서로 읽어보심이 좋을 듯 합니다.

우선 '삼월은 붉은 구렁을', 그리고 '흑과 다의 환상'을 그리고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를.... 다른 작품을 읽고 나서는 새로운 순서를 정하게 될른지도 모르긴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순서에 상관없이 읽어도 아무 무리가 없는 작품이긴 합니다. 여러분들이 마음에 드는 대로 보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네요.

그럼 '온다 리쿠'의 세계에 여러분들도 푹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이건 책과 관련없는 내용인데요. 앞에서 말한 작품 외에 다른 작품의 책 디자인이 바뀌어 조금 아쉽습니다. 개인적으로 출판사에서 왜 '하드커버'를 원하는지 의문입니다. 이전의 작품들은 디자인이 꽤 끌렸는데 이제 읽을 '빛의 제국'이라던지 '네버랜드' 등은 출판사가 바뀌면서 책 디자인이랑 표지가 아예 바뀌었더라구요. 그래서 개인적인 섭섭함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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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경제학
유병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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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갈수록 고등학교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정해진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망설이며 살아야 하는 지금으로서는 해야 할 일을 딱 정해주던 그때가 그립기까지 합니다. 숙제만 하면 되고, 대학만 가면되는 분명한 목표말입니다. 얼마나 간단명료합니까? 물론 자유가 없었을지 모르는 때이기는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돈 내고 다니던 학교랑 돈 받고 다니는 직장이랑은 천양지판이니 말입니다. 돈 벌고 살아가면서도 늘 손에 남는 것은 없고 세상은 단순명료하기보다 복잡다단하기만 해서 이 미로를 헤쳐보고자 저도 이 책을 구입했습니다. 나도 무엇인가를 해야겠구나 싶어서요. 증권사에 가서 펀드에 대해 질문도 해 보고, 정기적금도 알아보았지만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저도 나름대로 경제에 관심을 가져 보고자 선택한 책입니다.

책이 참 쉽게 쓰여져 있더군요. 경제에 문외한인 독자를 고려한 흔적이 가득합디다. 그 중에서 가슴에 와 닿았던 구절 중 하나가 바로 여자를 오리에 빗대어 분류한 부분입니다. 전문직으로 의사 변호사와 같이 혼자 벌어 충분히 살 수 있는 황금오리, 공무원으로 노후 대비가 마련되는 청둥오리, 재태크에 눈이 밝은 유황오리, 그런대로 맞벌이를 하는 집오리, 전업주보이면서 경제에 밝은 것도 아닌 탐관오리(ㅜㅜ),  무남독녀에 재산 많고 명줄도 ?아싸 가오리. 남자의 여자 선택기준이란 우스개 소리입니다. 기억의 개찬이 있었을 것이기에 정확한 내용에서 조금 벗어난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이해해 주시길... 하여튼 이 구절을 읽고 한참 생각했습니다. 난 무슨 오리에 속하는 것일까?

이미 결정난 사항으로 황금오리에는 절대 속할 수 없으니 무엇인가 노력하고 싶은데 도통 책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 더 열심히 공부해서 황금오리에 속하지 못한 것이 원통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미 때늦은 후회인 걸요. 후회의 눈물을 삼키며 제가 한 일이란 것은 책장을 넘기는 것이었습니다. 책의 3분의 2까지 읽을 동안 저자는 계속 말합니다. "여자들 이래서는 안 됩니다. 해외 여행 때만 환율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화장품값에만 관심을 가져선 안 됩니다. 경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물론 옳은 말입니다. 그래서 계속 관심을 가져보려고 책을 읽어봤는데 허걱. "공부엔 왕도가 없다"이런 선문답 뿐인 것입니다. 그의 결론은 경제엔 왕도가 없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고 관심을 가지랍니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래도 방향은 알려주셔야 하지 않겠습니다. "학교 수업 잘 듣고 열심히 국영수 중심으로 공부했더니 서울대 갔습니다."라는 인터뷰와는 그래도 조금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쪼곰 실망입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단서라도 주고 책을 끝맺으시지 이건 입문서라고 하기에도 민망합니다.  저는 계속 책에다 대고 "그래서?"라고 외치는데 책은 "어쨌든"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동무서답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저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증권사에 갔더니 얼마 되지도 않는 돈 투자하면서 말귀도 못 알아 듣느냐는 듯한 눈치를 주지 않겠습니다. 상담원이 웃으며 한숨까지 쉬시더이다. 그래서 펀드란 말 듣고 장기로 하나 가입하고 나서, 부랴부랴  집에 왔더니 펀드가 아니라 보험이더라구요. 이러다가는 저도 탐관오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차라리 얼마 되지 않는 이자라도 바라보면서, 손해보는 적금이나 들면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다른 책 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소심한 성격이라 아무나 붙잡고 물어볼 엄두도 안 나거든요.

저도 이전에 리뷰 쓰신 분 생각에 동의합니다. 경제에 관심조차 없으셨던 분은 이 책을 읽으시는 게 도움이 될 듯 하나, 관심을 가지려고 조금 발버둥치려는 분들께는 별 소득이 없을 듯 합니다. 그래서 별 표 몇 개 뺍니다. 그런데 참 쉽게 글을 쓰시는 능력으로 보아 좀더 심도 있는 글도 가능할 듯 합니다. 이 분이 여자 경제학 말고 구체적인 경제학을 써 주신다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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