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락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조이스 박 옮김 / 녹색광선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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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일상, 너무나 평온해서 그 평온함이 행복인지 미처 깨닫지 못하는 평범한 일상. 그런 일상에 미세한 균열이 가거나, 조금 흔들리거나, 깨어질 때 사람들은 그 평온함을, 행복인지 깨닫지조차 못한 그 나날을 안타까이 여기며 그런 순간으로 돌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잃어버리거나, 잃게 될 위험에 처했을 때에야 비로소 그 아무렇지 않은 나날들의 소중하게 깨닫는다. 요즘 내 평화롭던 일상, 그래서 미처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나날들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마음이 심란해서 책도 잘 읽히지 않는데, 그럼에도, 그럴수록 책으로 피신하고자 책을 들고 읽으려 애쓰곤 한다. 피츠제럴드의 《행복의 나락》은 제목 때문이었을까 요즘의 내 눈길을 더 사로잡는다.

《행복의 나락》에는 한때 너무나 찬란하게 빛나던 아름다운 순간들, 미처 행복인지 깨닫지 못했으나 잃어버린 후에야, 놓치고 나서야 그것이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을 알게 되는 이들. 그래서 그 행복했던 순간을, 빛나던 한때를 되찾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 그러나 다시 올 수 없음을 알기에 그런 순간을 가슴 깊이 묻고 살아가는 이들이 등장한다. <행복의 나락>의 ‘록산’과 ‘제프리’ 두 사람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커플이다. 그들은 젊고, 아름다우며, 건강하고, 풍족한 데다가 서로 진심으로 사랑한다. 둘만 지내도 지루할 틈이 없다. 아니 오히려 둘만 있을 때 더 즐거운 완벽한 한 쌍이다. 이 행복하기 짝이 없는 커플에게 일상의 행복, 평화가 깨지는 순간이 느닷없이 찾아온다. 시작은 아주 미세하기 짝이 없다. 포커 게임에 몰두한 제프리의 어깨에 얹으려고 록산은 손을 뻗는다. 그런데 제프리는 손이 닿자마자 벌컥 화를 내며 거칠게 팔을 휘둘러 그 손을 뿌리친다. 록산에게는 생애 최대의 충격이다. 그 상냥하고 배려심 많은 제프리가 이렇게 본능적으로 거친 동작을 보이다니. 제프리 또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떻게 자신이 록산에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지? 그러나 이 일은 시작, 전조에 불과하다. 두 사람의 삶은 그때부터 전혀 예상치 못한 일로 말미암아 행복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록산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그와 록산이 대체 무엇을 했기에 삶은 이들에게 치명타를 날리는 걸까?’(99쪽). 록산에게 삶은 너무 빨리 왔다가 가버린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쓰라림이 아니라 연민’이며 ‘환멸이 아니라 오직 고통’이다’(115쪽). <행복의 나락>은 삶이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음을, 인생의 발아래에는 언제든, 누구의 인생이든 ‘거센 물결이 철썩거리고 있음’을 ‘지도에도 없는 갈라진 틈이 번뜩이는 깊은 아가리를 드러낼 수 있음’(88쪽)을 보여준다.

만일 록산의 삶에 제프리가 들어옴으로써 그녀의 저 행복한 나날들이 언젠가 나락으로 기울 수 있다고 누군가 경고했다면, 그렇다면 록산은 자기 인생에서 제프리를 지워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록산은 그런 경고를 가벼이 넘기면서 제프리의 환한 웃음 속으로 기꺼이 들어갔을 것이다. 록산만이 아니다. 《행복의 나락》에 등장하는 대다수 남녀들은 자신에게는 버거운 존재임을 알면서도 그런 상대를 사랑하기를, 선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겨울 꿈>의 ‘덱스터’는 ‘주디’라는 이름의 화려하고 제멋대로인 소녀를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 깊이 사랑하고 그녀로 말미암아 삶이 휘둘리더라도 주디에게 자기를 던지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덱스터는 어릴 때부터 반짝이는 것 자체를 원한다. 종종 그는 자신이 왜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가장 좋은 것을 잡으려 손을 뻗었고 그로 인해 때로는 알 수 없는 거절과 금지를 맛보기도 한다. 주디는 완벽하게 반짝이는 것이다. 덱스터를 사랑하는 것처럼 연기할 수는 있지만 결코 사랑하지는 않는 주디. 덱스터는 그럼에도 주디를 갈망하고 또 갈망한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삶이 어긋나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주디는 덱스터가 늘 꿈꿔온 반짝이는 그것 자체이기 때문이며, 그가 ‘잠시 장악하고 소유하는 들뜨고 열광적인 설렘’(191쪽)이기 때문이다.

<오, 붉은 머리의 마녀>의 ‘멀린’에게도 ‘주디’ 같은 존재가 있다. 어느 날 서점에 불쑥 들어와 그에게 잠깐 동안의 일탈을 선사하고 사라진 여자 ‘캐롤라인’이 그렇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서점 일에 잠시 일탈과 소란, 즐거움과 반짝이는 한때를 선사한 그녀 캐롤라인. 너무나 자유분방하고 아름다워서 멀린 같은 평범하고 소박한 남자에게는 결코 꿈을 꿀 수도, 가질 수도 없는 저 먼 별 같은 존재인 캐롤라인. 그럼에도 멀린은 그 한때를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평생 간직하며 살아간다. 잊을만하면 캐롤라인은 그의 앞에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 그 반짝이던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환상은 너무나 멀리, 저 멀리에 있고, 현실은 그의 발아래 자리하고 있기에 멀린은 환상의 여인 대신 현실 속 여인인 ‘올리브’와 결혼해 그럭저럭 살아간다. 덱스터가 주디 대신 ‘아일린’이라는 평범한 여자와 결혼을 약속하듯이……. 덱스터는 아일린이 ‘자신 뒤에 드리워진 커튼, 빛나는 찻잔을 젓는 손, 아이들을 부르는 목소리 정도’의 존재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아일린과의 평범한 삶을 선택함으로써 ‘이제 불꽃과 사랑스러움은 가버렸고, 밤의 마법과 시시각각 달라지는 시간과 계절에 대한 경이감, 가냘픈 입술이 아래로 드리워지며 그의 입술에 다가와 그를 눈동자의 천국까지 인도해 주는 일, 그런 것들은 마음속 깊이’ 묻혀버린다. 많은 이들의 삶이 그렇듯이…….

덱스터와 멀린 같은 남자들만이 반짝이는 것, 환상에 자기 자신을 기꺼이 던지는 것은 아니다. <새로 돋은 잎>의 ‘줄리아’ 역시 너무나 잘생긴, 그래서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는 남자 ‘딕’을 마음속에서 내치지 못한다. 그토록 주변에서 말리는 상대임에도 그와 함께 하기를 기꺼이 선택한다. 심지어 딕은 줄리아가 생각한 사람과 아주 거리가  먼데도 그녀는 끝까지 딕이 그렇지 않으리라 믿고, 그 믿음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줄리아의 이 환상을 깨지 않으려고 애쓰는 ‘필’은 어쩌면 환상이 깨진 뒤의 환멸을, 그 환멸이 주는 고통의 씁쓸함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은 아닐까. 그래서 나 또한 멀린이 캐롤라인의 진실을 알게 되지 않기를, 어쩌면 나조차도 알게 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때로 ‘진실이란 아주 진부’하기에. 그래서 진실을 알게 된 후에는 찬란하게 빛나던 한순간 대신 ‘쑥대밭이 된 서점’ ‘엉망이된 책들, 한때 아름다웠으나 찢어진 진홍빛 램프의 잔해들. 반짝이는 부서진 유리 입자들’(28쪽)이 더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서른다섯 살에서 예순다섯 살까지의 세월은 설명할 필요 없는 혼란스러운 회전목마처럼 수동적으로 사는 멀린 앞을 스쳐 돌아갔다. (...) 대부분의 남녀들에게 이 30년의 세월은 점차 인생에서 물러나는 일로 채워진다. 처음에는 젊음의 무수한 즐길 거리와 호기심으로 가득 찬 수많은 피난저가 있는 앞자리에서 물러나서는, 피난처가 훨씬 줄어든 줄로 후퇴하는 것이다. 여러 야망이 사라지며 한 가지 야망만이 남게 되고, 여러 오락거리가 한 가지 오락거리로 줄고, 많은 친구들이 소수의 친구로 줄어들다가 그들에게도 무감각해진다. 그러다가 마침내 강하지 않은데 강한 자가 되어 고독하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곳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는 포탄들이 지긋지긋한 휘파람 소리를 내지만 그 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고, 두려움과 피로를 반복하면서 우리는 주저앉아 죽음을 기다린다. (<오, 붉은 머리의 마녀>, 53~54쪽)


생의 초반은 반짝이는 것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반짝이는 것들을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때로는 그 반짝이는 것 자체가 결코 반짝이는 것이 아니었음을 드러내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삶은 잿빛 우울함만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환멸의 고통을 겪지 않으려면 반짝이는 것, 덱스터의 ‘겨울 꿈’과도 같은 것들은 그래서 저 멀리, 결코 닿지 않을 곳에 둔 채 살아가야 할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갖지 못했기에 환상이 깨지는 일도 없을 테니까. 덱스터는 주디와 결혼해서 그녀가 자신의 눈앞에서 시들어가는 것을 지켜봤더라면 더 많은 것을 잃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덱스터에게 주디는 언제나 늘 영원히 반짝이는 존재로 있어야 했다. 그 실체가 환멸을 불러일으켜 삶의 쓸쓸함과 비애를 더욱 배가해줄 뿐이라면 반짝이는 것 자체로 있어야 하리라. ‘삶의 후반전이란 삶에서 이것저것을 잃어가는 기나긴 과정’(131쪽)이므로 이 지상에서의 삶을 버티기 위해서는 그 짧고 깊은 행복을 영원히 간직하며 살아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반짝이는 것 자체에 감춰진 진실과 그 진실이 보여주는 환멸도 삶은 아닐까. 그 환멸의 고통조차 삶은 아닐까. 만일 그런 환멸과 그것이 주는 고통을 알지 못했다면 덱스터도, 멀린도, 줄리아도, 또 록산도 자신들의 ‘겨울 꿈’이 언젠가는 사라지기에 그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그래서 더 찬란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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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3-02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랑 리뷰 보니 읽고싶어지네요~!
민음사에서 나온 피츠제럴드 단편선이랑 중복된게 몇개 있는거 같아서 고민됩니다 ㅋ

잠자냥 2021-03-02 12:14   좋아요 2 | URL
피츠제럴드 단편선은 곳곳에서 많이 나와 있어요. 양으로 따지자면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시리즈의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1 , 2>가 아마 가장 많은 양을 수록하고 있을 것 같고요(같은 출판사에서 최근 나온 <당신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요>는 미출간 단편모음집입니다). 펭귄클래식 문고의 <아가씨와 철학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도 피츠제럴드 단편모음집입니다. 저는 예전에 펭귄클래식하고, 현대문학 단편선으로 읽었는데요, 최근 이 책으로 다시 읽으면서 느낀 이 책만의 장점이라면 일단 장정이 무척 예쁘고 ㅎㅎ ‘잃어버린 것들‘에 초점을 맞춰 다섯 편 엄선해 실었다는 점일 것 같아요. 그래서 여운이 남달랐습니다.

새파랑 2021-03-02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ㅋ 댓글보니 확 가지고 싶어지네요. 설명 너무 감사합니다^^

잠자냥 2021-03-02 12:38   좋아요 3 | URL
녹색광선 이 시리즈 한 번 잘 눈여겨보세요. 장정이 일단 참 아름답고요(소장각), 현재까지 나온 다섯 권 모두 추천합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다 리뷰를 쓴 적 있는 책들이라 관심 있는 작품부터 리뷰 보시고 선택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잠자냥 2021-03-02 12:43   좋아요 2 | URL
피츠제럴드 단편 읽고 마음에 드신다면 이 시리즈의 푸시킨 단편선 <눈보라> 추천하는데요. 푸시킨 단편선은 민음사판 <벨킨이야기/스페이드 여왕>으로도 있는데, 이건 정말 비추입니다. 번역 문장이 정말 엉망이거든요. 암튼 푸시킨 단편선 읽으신다면 <눈보라>로...

Falstaff 2021-03-02 13:57   좋아요 1 | URL
앗, 제가 그래서 푸시킨 단편하고 척이 졌나요? 민음사.... 전 여태 왜들 푸시킨, 푸시킨 하는지 좀 이해가 덜 갔었거든요.
그리고.... 이 페이퍼는 잠자냥님 낚시가 분명한데, 읽은 단편도 포함되어 있는데 또 읽어, 말어... 괴민, 괴멸입니닷!

잠자냥 2021-03-02 14:29   좋아요 2 | URL
푸시킨 민음사판은 정말 정말 그 민음 세계문학 시리즈 중 비추입니다.
아, 그리고 폴스타프 님은 워낙 많이 읽으신 분인 데다가, 꽉찬 책을 좋아하시니까 이 낚시밥은 물지 않으시는 게 좋을 듯하옵니다.

새파랑 2021-03-02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달에 녹색광선에서 나온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샀는데 ㅋ (가지고만 다니고 아직 읽진 못했습니다ㅜㅜ)
진짜 장정이 예쁘더라고요 ^^ 다섯권 밖에 안된다니 수집욕구가생기네요 ㅎ

잠자냥 2021-03-02 14:27   좋아요 1 | URL
아하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사셨군요. 그 시리즈 중에 재미로는 <감정의 혼란>, 피츠제럴드 같은 단편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시고 싶다면 <눈보라> 추천드려요.

coolcat329 2021-03-02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시리즈...저도 3권 갖고 있는데, 참 이쁘죠. 작품도 다 좋았어요. 올해는 책 그만 사고 갖고 있는 책 읽자고 다짐했는데...😭

잠자냥 2021-03-02 14:28   좋아요 1 | URL
그럼 이 책은 내년에 사세요. 쿨럭; ㅋㅋㅋ

그레이스 2021-03-02 1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천이 찢어질까봐 비닐로 싸놓았는데...원래 장정 의도를 못살리고 있어요 ㅎㅎ

Falstaff 2021-03-02 13:54   좋아요 2 | URL
책을 비닐로 싸시면, 2~30년 지나면 책 망가집니다. 경험자예요. 오정희 <불의 강> 초판본, 흑흑....

그레이스 2021-03-02 13:57   좋아요 1 | URL
그런가요?
새책을 그냥 못봐요.
버릇이 되서... ㅠ

잠자냥 2021-03-02 14:28   좋아요 2 | URL
ㅎㅎㅎ 저는 이 책 장정 재질이 천이라 그런지 고양이 털이 잘 붙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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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한 극장에서 어떤 연극이 시작한다. 이 연극을 위해 모인 사람들은 다양할 것이다. 먼저 무대 위에 오르는 배우도 있고, 이 연극을 기획하고 만드는 데 애를 쓴 연출가 및 극단 관련자도 있을 테고, 무엇보다 이 연극을 보고자 모인 수많은 관객들이 있을 것이다. 한 공간에 모인 이들 대다수는 아무런 관련이 없겠지만, 그들 중 몇몇은 서로 크든 작든 인연이 있을 수 있다.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은 이런 배경 아래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는 열두 명의 서로 다른 여성들의 삶을 그려 나간다.

 

이 작품은 앰마도미니크두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다호메이의 여전사들> 이 연극 초연을 앞두고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는 여성이 앰마이기 때문이다. 도미니크는 앰마와 죽이 잘 맞는 친구로 한때 앰마와 함께 여성들만의 극단을 운영하기도 했다. 지금은 저 먼 미국으로 떠나 생활하고 있으나, 오늘만큼은 절친인 앰마의 연극을 위해 그 먼 곳에서 날아왔다. 두 사람은 1980년대에 여자 교도소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 오디션장에서 만났다. 그 무렵 그들은 노예, 하녀, 매춘부, 유모, 범죄자 같은 배역을 받거나 그마저 없으면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데 넌더리가 났고 마침내 서로 의기투합해 여성들을 위한 극단을 직접 세웠다. 앰마도 도미니크도 둘 다 레즈비언이지만 서로 반하지는 않은 단짝 친구로 그들 모두 페미니스트이며 흑인 역사, 문학, 정치 등을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유롭고 똑똑한 중년여성이다.

 

앰마에게는 야즈라는 이름의 딸이 하나 있는데, 자신처럼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게이의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했고, 그녀는 아이가 생김으로써 비로소 완전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어쩐지 반 페미니즘적인 것 같아서 그런 느낌을 아무에게나 잘 털어놓지는 못한다. 어느덧 대학생이 된 야즈는 딸 앞에서도 늘 새로운 파트너를 데리고 오는 일을 멈추지 않는 천하의 바람둥이 엄마와 똑똑하지만 나르시시스트인 게이 교수 아빠 두 집을 번갈아 오가면서 자랐고, 부모가 저마다 자기 활동에 힘 쏟는 동안에는 여러 대모와 대부(주로 레즈비언과 게이들인)에게 맡겨져 자랐다.

 

앰마는 야즈가 자유로운 환경에서 페미니스트가 되길 바랐는데 야즈는 최근 들어 자기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심지어 앰마에게 페미나치라는 소리까지 한다. 야즈가 말하기를 페미니즘은 너무 떼 지어 몰려다니는 짓같고 솔직히 여자라는 것도 요즘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같단다. 야즈는 말한다. “모건 말렌가라고 내 눈을 뜨게 해 준 논바이너리 활동가가 있어 미래엔 우리 모두 논바이너리가 될 거라고 생각해 여자도 아니고 나자도 아닌 어쨌든 이런 건 젠더 기반의 성가신 일이잖아 그러니까 내 말은 엄마가 말하는 여성의 정치 자체가 필요 없어질 거라는 얘기야 그건 그렇고 나는 인도주의자야 페미니즘보다 훨씬 더 높은 단계지 그게 뭔지 엄마는 알기나 해?”(62) , 녀석 기막히게 말 한 번 잘한다.

 

이런 야즈에게는 백인 친구도 있고 무슬림 친구도 있다. 백인 친구는 흑인인 야즈를 사귀면서 특권을 조금 포기해야 하며, 아랍인이 아닌데도 히잡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아랍인이라고 오해받는 와리스는 특권이라는 것 자체를 누려본 적이 없다. 와리스는 흑인, 무슬림, 여성, 가난한 자, 히잡을 쓴 사람, 다섯 가지 모두에 해당하기에 누구보다 억압받는다. ‘무슬림 한 명이 총기 난사를 하거나 폭탄을 터뜨려 사람을 죽이면 테러리스트라고 불리지만 백인 한 명이 똑같은 짓을 하면 그저 미친 사람이라고 불리는’(88) 세상에서 흑인이면서 히잡을 쓴 와리스의 억압과 고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한편 앰마에게는 도미니크와는 정반대인 친구 셜리가 있다. 셜리는 답답할 정도로 모범생이다. 그러나 앰마가 백인들만 있는 학교를 다니며 왕따를 당하던 시절, 셜리 그 자신 또한 흑인의 한 사람으로 앰마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때부터 둘은 단짝이 된다. 정체성의 혼란을 잠시 겪은 뒤 앰마가 레즈비언으로서 당당히 선언하자, 단짝 친구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왠지 꺼려지면서도 앰마를 온전히 받아들인다. 하나뿐인 딸이면서도 오빠들과 차별받으며 자란 셜리는 공부로써 자신을 증명한다. 그녀가 대학에 들어가 역사를 공부하고 교사 자격증까지 따자 그제야 부모들은 자랑스러워한다. 오빠들은 해내지 못했지만 그녀는 해낸 것이다. 그녀는 집안의 성공 스토리가 된다. 교사로서 첫 발을 내디딘 셜리는 꿈에 부푼다. 흑인 아이들에게 자기처럼 성공의 기회를 주고, 시궁창 같은 삶을 벗어날 기회를 주겠노라 뜨겁게 마음먹는다. 실제로 셜리는 타고난 교사라고 칭찬받는다. 학생들과 잘 공감하고 교사의 의무를 넘어 모범적인 교육 방법으로 월등한 시험 결과를 얻으며 같은 민족에게 귀감이 된다고 교장에게 칭찬받는다. 셜리는 지금까지도 압박감을 느낀다. 훌륭한 교사이자 대표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 전 세계 모든 흑인을 대표하는 그런 대표. 그렇지만 오랜 교사 생활 후 남은 것은 시들어버린 꿈과 남루한 인생뿐이다. 이제는 남편과 함께 해마다 엄마인 윈섬의 집을 찾아 대가족이 여름휴가를 즐기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 되었다. 오늘 앰마의 초대로 연극을 보러 온 셜리는 그곳에서 우연히 뜻밖의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이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열두 명의 여자들 중 앰마, 야즈, 도미니크, 셜리 등 네 사람의 이야기만 했다. 그런데도 그 안에서는 인종, (), 젠더, 계급 문제까지 드러난다. 나머지 여성들, ‘캐럴’. ‘버미’, ‘라티샤’, ‘윈섬’, ‘퍼넬러피’, ‘메건/모건’, ‘해티’, ‘그레이스는 앰마, 야즈, 도미니크, 셜리와 어떤 관계이며 저마다 또 어떤 이야기를 펼쳐 보여줄지 궁금하지 않은가. 이 작품은 첫 장부터 매우 역동적으로 흡인력 넘치는 이야기 풀어가며 독자를 끌어들인다. 인용 구절을 보고 눈치챈 이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 작품에는 마침표가 없다. 609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끝나는, 그조차도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로 맺어지는, 어찌 보면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열 두 여성의 삶의 기록이자 연대기이다. 그런데 그 흐름이 물 흐르듯 막힘이 없다. 그러면서도 앞서 이야기했듯이 오늘날 현대 사회가 지닌 거의 모든 문제, 인종 차별, 성 차별, 계급 차별,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영국 사회의 문제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읽다 보면 정말 대단한 작품이구나, 마거릿 애트우드와 부커상을 공동으로 수상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구나, 수긍하게 된다. 그리고 2019년에 부커상이 이 흑백 두 여성에게, 그것도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증언들>과 같은 페미니즘 작품에 상을 준 것도 시대 흐름상 마땅한 결과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은 페미니스트가 되는 게 유행이야  블로그, 시위, 크라우드 펀딩, 정말 못 봐주겠어

페미니즘이 다시 살아나 활기를 띠는 게 왜 좋지 않은 일인지 날 이해시켜 볼래?

사실 내가 거슬리는 건 페미니즘의 상업화야 엠마, 예전에는 미디어에서 페미니스트를 심하게 비난하다 보니 아무도 페미니스트라는 비난을 듣고 싶지 않아서 몇 세대의 여자들이 자신의 해방을 외면해왔지 이제는 미디어와 야합하고 있어 눈부시게 아름다운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파격적인 옷차림을 한 채 거창한 몸놀림을 보이는 화려한 사진 본 적 있지? 이제는 유행도 아니야

페미니즘의 토대 전체가 바뀌어야 해 그저 유행을 따르는 변모 정도가 아니고

수백만의 여자가 깨어나 완전한 권리를 지난 인간으로서 우리 세계의 주인 자리를 찾는 가능성에 눈을 뜬다는 건 축하할 일이야

우리가 어떻게 이걸 반박할 수 있겠어? (608~609)

 

앰마와 도미니크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페미니즘이 유행처럼 번지고 상업화되는 것이 못마땅할 수도 있다. 이 작품 속 퍼넬러피처럼 페미니스트가 됨으로써 가정이 깨지고, 그래서 홀로 늙어가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자유를 즐기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페미니즘이 내 삶을 망치는 데 일조했다고 불만을 품은 여자도 있을 수 있고, 뒤늦게 페미니즘을 알아가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뜨며 잃어버린 자아를 찾고, 자기 욕망에도 눈뜨는 윈섬같은 여성도 있을 수 있으며, 야즈나 모건처럼 페미니즘은 이제 한물간 느낌이라고 생각하고 젠더 프리를 외치며 더 앞선 세상을 꿈꾸는 젊은이들도 있을 수 있다. 여성해방보다도 살기 위해, 시궁창 같은 삶을 벗어나기 위해 백인과도 같은 삶을 받아들이는 일이 먼저인 캐럴같은 여성도 있을 것이며, 19세기, 20세기 초에 태어나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알기도 전에 가부장제의 폭력에 시달린 그레이스같은 여성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열두 명의 삶은 우리 여자들/아무도 칭송하며 노래해주지 않고/아무도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356) 그 여성들의 삶을 전면에 내세우며 모두가 귀 기울이게 하는 데 성공한다. 그저 젊고 활기찬 세대뿐만이 아니라 처음에는 딸이었고 다음에는 아내이자 어머니였고 이제는 할머니면서 증조할머니, 또는 고조할머니가 된 여성들의 이야기도 한 개인으로 보여준다는 데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이들의 삶을 지켜보노라면 어느 지점에선가 아, 이건 내 이야기구나 하게 된다. 특히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마지막 그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이 이야기가 결국은 인간 전체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되며 이 영리하고 에너지 넘치는 작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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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2-22 15: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을 안 사려고 꾹꾹 버티고 있는데 안 살 수가 없네요.

잠자냥 2021-02-22 16:06   좋아요 2 | URL
ㅎㅎㅎ 다른 책은 몰라도 이 책은 꼭~! 읽으세요.

레삭매냐 2021-02-22 16: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작년에 나오자 마자 사두기는
했는데 여적 뭉개고 있네요...

다음달에는 꼭 읽어야지 싶습니다.

잠자냥 2021-02-22 17:34   좋아요 2 | URL
저도 작년에 사두고 이제야 읽었는데, 작년에 읽었다면 아마도 작년 올해의 책. ㅎㅎ

유부만두 2021-03-14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야즈 이야기 부터는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재미있게 정신없이 읽었어요. 어째 억지 해피엔딩? 같아서 좀 아쉽기도 했지만 (백인 냄새;;;) 왜 그러지 말아야하나 싶기도 했고요. 미국 흑인 작가와 비슷한듯 다른 색이라 더 흥미로웠어요. 잠자냥님 말씀대로 읽길 정말정말 잘 했어요. 감사합니다!

잠자냥 2021-03-14 17:40   좋아요 0 | URL
만두 님 말씀처럼 진짜 생생한 연극 한 편 보고 나온 기분입니다. 정신없이 재미나게 읽으셨다니 저도 기쁘네요. ㅎㅎ
 
베르가모의 페스트 외 - 옌스 페테르 야콥센 중단편 전집 열린책들 세계문학 249
옌스 페테르 야콥센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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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일 야콥센의 《베르가모의 페스트 외》 표지 디자인을 했다면, 해골 이미지와 함께 이 작품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보다는 <푄스 부인>이나 <모겐스>를 표제작으로 내세우고, 그에 따라서 표지도 서정적 아름다움이 느껴지게 만들었을 듯하다. 물론 이 책은 코로나 시국으로 카뮈의 <페스트>가 잘 팔리는 때 출간되었으므로, 시기상 페스트를 전면에 내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야콥센을 단지 페스트와 관련한 작품을 쓴 작가로 알리고 말기에는 왠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야콥센을 반드시 읽으라 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책은 두 권입니다. 하나는 성경이고, 또 하나는 야콥센의 작품집입니다. 그를 읽으면 하나의 세계가, 세계가 지닌 행복과 부와 파악할 수 없는 위대함이 그대 머리 위로 떨어질 것입니다. 한동안 그 세계에 머물며 배우도록 하십시오. 무엇보다 그 책들을 사랑하십시오. 당신이 그에게 준 사랑이 어떠한 것이든, 그 사랑은 수천 배의 보답을 받을 것입니다.’ 릴케가 이렇게 말하게 된 배경에 <베르가모의 페스트>가 크게 영향을 끼쳤을 것 같지는 않다. <모겐스>처럼 서정적인 작품 때문이 아닐까.

<베르가모의 페스트>는 페스트가 창궐하는 어느 마을을 배경으로 독자들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상황이 그려진다. 페스트가 처음 발발하자 자신들에게 페스트를 옮겼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낯선 인간을 보면 바로 돌을 던져 마을에서 쫓아내거나 미친개처럼 인정사정없이 몽둥이를 휘두른다. 이 모든 게 어쩔 수 없는 정당방위라고 굳게 믿으면서.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고 마을에 갇히게 된 사람들은 그래도 처음에는 하나로 뭉치고 화합한다. 죽은 사람이 나오면 예를 갖춰 묻고, 건강한 연기가 골목 곳곳으로 퍼질 수 있도록 날마다 장터와 광장에 장작을 높이 쌓아 놓고 태운다. 페스트를 막는 데 효과가 있다는 솔잎과 식초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그러나 병이 나날이 기세를 드높이며 도시를 장악해 가자, 공포는 광기로 변하고 예전의 평화로운 질서와 정의로운 통치는 사라진다. 그런 와중에도 그들은 날마다 교회를 찾아가 신께 기도드린다. 그러나 응답이 없는 신. 인간들은 이제 자포자기 속에 오늘을 즐기고 방탕한 생활에 빠진다. 신을 향한 모독이 판치고, 주술과 미신에 기대 병을 물리치고자 한다. 이제 사람들은 누군가를 동정하지도, 연민을 느끼지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참회자의 행렬이 도시에 찾아온다. 이 참회자의 행렬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베르가모의 페스트>는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그 결말은 조금 뜻밖이다. 이 결말 때문에 나는 야콥센을 달리 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작품인 <안개 속의 총성>은 사랑의 응답을 받지 못한 한 남자의 증오와 복수심이 부른 비극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을 읽은 뒤부터 아니, 이 작가 괜찮은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헤닝’은 마을 아가씨 ‘아가테’를 짝사랑한다. 그러나 아가테에게는 사랑하는 다른 남자가 있다. 그 사실을 알고도 아가테를 포기할 수 없는 헤닝은 교묘한 말로 아가테와 연인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아가테는 꿈쩍도 않고, 오히려 그런 헤닝을 비열한 남자 취급한다. 그럼에도 아가테를 향한 집착을 끊을 수 없던 이 남자는 급기야 사랑에 눈이 멀어 해서는 안될 짓을 저지르고 만다. 그리고 이 행동은 아가테를 불행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헤닝 자신을 망가뜨린다. 이 작품은 사랑에 눈먼, 이기적인 인간의 집착과 광기, 욕망을 강렬하게 표현한다.



아, 그는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던가! 정말 미친 듯이 뜨겁게 사랑했다. 하지만 남자가 아니라 개처럼 사랑했다. 성화(聖畵)앞에 무릎을 꿇듯 그녀의 발밑에 개처럼 엎드려 사랑했다. 둘이 언젠가 정원에 함께 있을 때였다. 그녀는 나무에 자기 이름을 새기고 있었다. 그때 바람이 불어 그녀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그는 몰래 다가가 그녀의 나풀거리는 머리에다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며칠 동안 행복해했다. 그의 사랑에는 남성적인 용기와 기쁜 희망이 한 번도 없었다. 그는 모든 점에서, 그러니까 사랑이든, 희망이든, 증오든 모든 점에서 노예였다. (<안개 속의 총성>, 34쪽)


‘남자가 아니라 개처럼 사랑’했다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실제로 헤닝의 짝사랑은 인간다운 면이 없다. 자기 혼자 욕망하고 그 욕망이 어그러지면 사랑한다는 상대의 행복을 무참히 망가뜨린다. 그런 관점으로 보자면 오늘날에도 헤닝처럼 일그러진 모습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이들 모두가 남자, 또는 여자, 그러니까 한 인간으로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개처럼’, 즉 동물적으로만 상대를 욕망하는 것이리라. 헤닝의 그 ‘개처럼’ 사랑하는 모습은 그 다음 문장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몰래’ 다가가 나풀거리는 머리에 입을 맞추고 혼자 며칠 동안 좋아하지만 자기의 행복이 깨지는 순간, 그 행복을 깨뜨린 상대,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까지 무참히 깨버린다. 모든 점에서 노예와 같은 사랑이다. 그렇게 파국을 불러오고도, 그는 아가테 때문에 자기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증오한다. ‘그의 영혼이 밑바닥까지 추락한 것도 그녀에 대한 사랑 때문’이며 ‘삶의 행복도 사랑 때문에 망가졌고, 마음의 평화도 사랑 때문에 파괴’되었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녀를 더 증오하게 만든 이유는 따로 있다. 그들 두 사람이 만들어 낸 이 고통과 불행에 대해 정작 아가테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얼마나 인간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다가 <푄스 부인>을 읽고는 깜짝 놀랐다. 이 작품 줄거리는 간단하다. 푄스 부인은 첫사랑이 있지만 가난한 그와 맺어지지 못하고 부모가 원하는 남자와 결혼해 아들, 딸 낳고 그럭저럭 살아간다. 그런데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을 키우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녀는 우연히 여행길에서 예전의 첫사랑을 다시 만나게 된다. 놀랍게도 두 사람의 마음은 그 옛날처럼 굳건하다. 이런 애정을 확인한 푄스 부인은 그와의 새로운 삶을 꿈꾸고, 고민 끝에 자식들에게 자기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다 큰 자식들은 맹렬히 반대한다. 심지어 아들 ‘타게’는 결혼을 앞두고 있고, 딸 ‘엘리노르’ 또한 한 남자를 사랑했다가 실연의 아픔을 겪은 뒤이다. 그러나 딸도 곧 또다시 자기만의 사랑을 찾아 가리라. 그런데도 이 이기적인 자식들은 마치 사랑은 자기들, 청춘에게만 허용된 것이라는 듯, 제 어머니에게는 사랑을 하는,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존재라는 듯, 한 여인으로서가 아니라 ‘어머니’로서 있어주기만을 요구한다. 푄스 부인은 어머니로서만 존재하기를 강요하는 자식들의 말을 ‘청춘의 오만한 요구이자 뻔뻔한 폭정’이라고 느낀다. ‘사랑은 오직 우리의 일이고, 삶은 우리의 것이고, 당신네들의 삶은 오로지 우리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그런 청춘의 오만한 요구’(79쪽)라고. 고백한 뒤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바뀌었음을 깨닫는 푄스 부인. 이런 이기적인 자식들과 자기 삶에 대한 그녀의 인식은 놀라우리만큼 날카롭다.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 마치 죽은 아버지만의 자식인 양 굴었다. 게다가 자신의 가슴속 감정이 오로지 아이들에게 향해 있지 않음을 깨닫자마자 얼마나 쉽게 자신을 떠날 준비를 하던지! 그러나 자신은 타게와 엘리노르의 어머니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한 인간이었다. 아이들과 상관없이 자기만의 삶이 있었고, 자기만의 희망이 있었다.(<푄스 부인>, 78~79쪽)


푄스 부인이 사랑하는 사람과 살겠노라 고백한 뒤로 어색해진 가족 관계는 되돌리기 어렵다. ‘그들은 마치 서로 함께 있는 동안만 잠시 즐기다가 곧 헤어질 사람들처럼 대화’해 나간다. ‘떠나려는 사람은 이미 다음 여행 목적지만 생각하고 있었고, 남으려는 사람은 예전의 일상으로 어떻게 다시 돌아갈까만 생각’한다(80쪽). 이런 상황이 그려졌을 때, 솔직히 나는 아, 그래서 이 부인은 이기적인 자식들의 요구를 들어줘서 사랑하는 사람을 또다시 떠나보내고, 다 큰 자식들의 어머니로서, 남편을 잃고 아직 따라죽지 못한 여인, 말 그대로 ‘미망인’으로서 거의 절반은 죽은 상태로 남은 생을 살아가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야콥센은 푄스 부인에게 자유를 준다. 부인은 절연을 각오하고 자식들의 요구를 단호하게 뿌리친다. 자기의 행복을 찾아 나선다. 와우! 이 전개에 정말 깜짝 놀랐다. 야콥센은 1847년 덴마크에서 태어나 38세에 요절한 작가로, 19세기를 살다간 남성 작가이다. 그런데 푄스 부인에게 가정에 머물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찾아 떠나는 자유를 준 게 아닌가. 나는 이 작품을 잃고 작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이 책 마지막에 실린 <모겐스>(1872)는 야콥센의 첫 작품으로 한 청년의 첫사랑과 상실, 그에 따른 슬픔과 절망, 자포자기적인 방탕의 삶, 그리고 다른 사랑을 만나 치유되는 과정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필치로 그려진다. 내가 홀딱 반한 <푄스 부인>(1882)은 야콥센의 마지막 작품이다. 작가로서 활동한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그가 남긴 작품은 장편 두 편과 이 책에 실린 중단편 여섯 편을 비롯해 시 몇 편이 전부라고 한다. 고작 여섯 편이지만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 인간 심리에 대한 섬세하고 내밀한 묘사, 그리고 신(神)도, 운명도, 인습도 아닌 인간 그 자신의 주체적인 선택을 강조한 시대를 앞선 정신 등이 ‘옌스 페테르 야콥센’ 그의 이름을 깊이 되새기게 한다. 그를 더 알리고자 릴케의 말을 한 번 더 인용한다.  “그를 읽으면 하나의 세계가, 세계가 지닌 행복과 부와 파악할 수 없는 위대함이 그대 머리 위로 떨어질 것입니다. 한동안 그 세계에 머물며 배우도록 하십시오. 무엇보다 그 책들을 사랑하십시오. 당신의 사랑은 수천 배의 보답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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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1-02-10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흥미로울 것 같아요. 읽어볼게요.

잠자냥 2021-02-10 14:14   좋아요 0 | URL
네, 이 책은 6편만 실렸는데도 ‘중단편 전집‘ 이랍니다. 왠지 소장각입니다.ㅎㅎ

syo 2021-02-10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조차 처음 들어봐요! 잠자냥 님의 서재에서 만나는 많은 책들이 그렇듯이.....🙄

잠자냥 2021-02-10 23:18   좋아요 0 | URL
국내 초역이라 그럴 거에요. ㅎㅎ 한 번 만나보세요~~

camiue76 2021-02-1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읽어보고 싶을 뿐만 아니라, 만들어보고 싶기까지 하네요! 잠자냥님 서평은 정말 마력이 대단함

잠자냥 2021-02-16 15:46   좋아요 0 | URL
ㅎㅎ 좀 더 널리 알려져도 좋을 작가 같습니다. <푄스 부인>은 웬만한 페미니즘 소설 못지 않고요. <모겐스>에서 그려지는 사랑은 누구나 공감할 한때를 그리고 있어요.
 
로스트 레이디
윌라 캐더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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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잊기 어려운 시절이 있다. 순수하고 밝은, 찬란하게 빛나서 좀처럼 잊기 어려운 그런 시절. 그러나 대개 그런 시절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어떻게든 빛이 바래고 어두운 색으로 물들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주 잠깐일지라도 자기에게 주어졌던 그 찬란한 시절을, 순간을 기억 속에 담고 살아간다. 다시 돌아오지 못해 더 안타까운 그 아름다운 순간을……. 열두 살 소년 에게도 그런 시절이 분명 있었다. ‘포레스터 부인을 처음 본 그 순간이었을까? 아니면 포레스터 부인과 함께 아무런 걱정 없이 환하게 웃고 떠들던 날들이었을까? 아니면 포레스터 부인으로 말미암아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던 그 모든 날들까지일까? <로스트 레이디>는 한 소년의 첫사랑이었던 어느 여성의 삶을 따라가면서 잃어버린 시절의 아름다움과 그 쓸쓸함을 그려나간다.

 

서부 개척시대가 끝날 무렵 네브래스카의 작은 마을 스위트워터’-이곳에는 지나가는 이들을 융숭하게 대접하며 환대하는 것으로 유명한 특별한 집이 있다. 모두가 포레스터 플레이스라고 부른 그 집은 사실 전혀 특출 나지 않다. 오히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이 집을 실제보다 웅장하고 아름다워 보이게 만들었다. 철도 건설업자로 부를 쌓은 대니얼 포레스터 대령과 그의 아내 포레스터 부인이 그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이들이다. 일 년 중 몇 달밖에 이곳에서 지내지 않는데도, 그들 부부는 이곳에 머무는 손님들을 환대하며 특별한 인상을 심어주었고, 특히 포레스터 부인은 자신들의 사유지에 무단으로 들어와 노는 동네 소년들에게도 너그럽기 짝이 없다. 그런 소년들 중 하나였던 닐은 포레스터 부인을 흠모하고 특별한 사건을 계기로 이 대령 부부와 좀 더 가깝게 지내게 된다.

 

엄마 나이뻘 여성을 흠모하는 것일까 싶은데, 사실 포레스터 부인은 대령보다 스물다섯 살이나 어리다. 대령이 재혼한 두 번째 아내로, 오히려 이 십대 소년들과 가까운 나이이다. 그렇기에 포레스터 부인, 메리언은 이 소년들과 허물없이 지내며 그녀가 가진 우아함, 화사함, 젊음, 따스함, 발랄함 등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발산하고, 닐과 같은 소년들은 귀부인답지 않게 자기들을 허물없이 대하는 그녀를 남다른 존재로 받아들이고, 얼마쯤은 우상처럼 받든다.

 

부유하면서도 강직한 마음을 지닌 포레스터 대령은 사람들로부터 환영받는 인물이다. 자신의 두 번째 아내를 아가씨라 부르며 귀여워하고, 나름 존중하며 사랑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아무래도 쉽게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스물다섯 나이 차이가 그렇다. 서부 개척시대, 스위트워터가 유망한 타운이던 시절에는 이 저택에서 파티가 곧잘 열렸고, 그런 파티에서 메리언은 주위의 찬사를 받으며 파티의 주인공으로 눈부신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이런 생활은 오래 가지 못한다. 세상은 변하고 나이든 대령도 그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면서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이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닐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그려진다.

 

닐에게 메리언은 첫사랑이자 자기 인생의 아름다운 시절 그 전부였다. 그러나 닐이 메리언을 처음 본 것은 열두 살 때로, 이 어린 소년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가 분명 존재한다. 닐뿐만이 아니라 대령과 대령의 집을 찾아오는 중년 남성들에게 아름다운 꽃과 같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여겨진 포레스터 부인은, 그들의 생각, 아니 기대처럼 불멸하는 예술작품이 아니다. 살아 숨 쉬고 욕망하고 꿈꾸고, 때로는 그 욕망 때문에 부서지는 인간이다. 때문에 당연히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메리언이 지닌 결함은 그녀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녀의 욕망은 어쩔 수 없이 소년 닐을 비롯해, 남편인 포레스터 대령을 상처 줄 수밖에 없다. 사실 닐이 좋아하는 메리언의 모습은 포레스터 대령의 아내일 때가 많다. 닐은 대령의 아내로서 그녀에게 가장 큰 흥미를 느꼈으며 남편과의 관계에 비추어 본 그녀의 모습을 가장 흠모한다(93). 그러나 메리언은 스물다섯이나 많은 남편과 사는 젊고 발랄한 여성으로, 네브래스카에서의 삶을 좌초된 삶이라고 부른다. 포레스터 대령이 경제적으로 쪼들리면서 여행을 떠나지 못하게 되고, 스위트워터에 내내 머무는 신세가 되었을 때 메리언은 절망한다. “내년 겨울에도 내후년 겨울에도 계속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해 봐! 내가 어떻게 되겠니, ?”하고 묻는 메리언의 목소리에는 공포가, 두려움이 배어 있다. 이곳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할 게 없다. 캘리포니아 출신인 그녀는 스케이트를 타지 않는다. 콜로라도스프링스에서 끊임없이 열리는 댄스파티에서 겨울에도 늘 춤을 췄다. “난 여든 살이 될 때까지 춤출 거야. 왈츠를 추는 할머니가 될 거라고!”(92) 외치는 메리언에게 대령과 그와 함께 보내는 네브라스카에서의 삶은 좌초가 아닌 절망 그 자체일 것이다.

 

닐은 성장하고, 메리언은 나이 들어간다. 서부 개척시대 끝자락, 닐이 본 것은 이미 찬란한 빛을 소진한 황혼의 여운’(193)이다. 대령의 몰락과 함께 메리언은 스스로 살아남고자 안간힘을 쓴다. 닐이 사랑했으나 좀처럼 이해할 수는 없었던 여인 메리언은 자기 안에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직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기에 그걸 되찾고자, 그것 때문에 이 구덩이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그런데 그 방법은 닐이 사랑했던 그녀의 모습과 많이, 너무도 많이 어긋나 있기에 닐은 상처받고 당혹해한다. 그런 메리언의 모습을 보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하나를 잃었다고, 이슬이 미처 마르기도 전에 아침이 망가졌다고, 그리고 앞으로 맞이할 모든 아침도 망가졌다고 그는 씁쓸하게 되뇐다. “썩은 백합은 잡초보다 악취가 역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메리언이 썩은 백합인지, 잘못 이식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고자 온갖 방법으로 애를 쓴 강인한 잡초였는지 판단하는 것은 이 책을 읽는 이의 몫이리라.

 

<로스트 레이디>에서는 닐과 포레스터 부인의 이야기 외에 뜻밖으로 묘한 감동을 주는 인물들이 있다. 닐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 메리언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존재로 여겨진 포레스터 대령의 인간다운 면모(특히 마지막 후반부에 밝혀지는), 소년들 가운데 제 나름으로 포레스터 부인에게 존경심과 충성심을 표현한 그 인물이 그렇다. 특히 끝부분에 장례식에 참석하지는 못해도 풍성한 노랑 장미를 갖고 온 그 소년. 온종일 창백한 얼굴로 침착함을 유지하던 포레스터 부인이 그 꽃다발을 보고는 와르르 무너졌듯이 나 또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는 그 옛날 메리언의 비밀을 목격하고도 침묵을 지켰던 소년이 아니었던가. 아마도 그 소년에게도 포레스터 부인과 포레스터 대령은 삶에서 꽃처럼 피어난 존경심과 충성심을 바칠 드문 사람들이었을 테고, 그는 그것을 제 나름대로 지켜간 것이었으리라. 언젠가 꽃은 시들고, 그 아름다운 모습도 향기도 다시는 되찾을 수 없을지라도, 아침에만 느낄 수 있는 꽃의 신선함처럼 영영 사라질 지라도 마음속으로는 그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박제해 두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닐이 눈부신 나날을 함께 했던 사람들은 전부 사라졌다고 회한에 찬 말을 하더라도, 한때 그가 사랑했던, 매혹 당했던 우아함, 다채로움, 사랑스러운 목소리, 검은 눈동자 속에서 빛나던 즐거움과 환상. 이 모든 것들은 영원히 잊히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다. 그 마음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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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2-02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달에 살까말까 망설였는데...

도서관에 신착도서로 누군가 신청해
두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순서를 기
다리고 있는 중이랍니다.

빨랑 만나 보고 싶습니다.

잠자냥 2021-02-02 14:08   좋아요 0 | URL
윌라 캐더 <우리 중 하나>를 사 읽어보려던 참에, 폴스타프 님의 리뷰(번역 관련) 읽고 그 책은 안 읽기로 했거든요. 그러던 중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레샥매냐 님께 빨리 순서가 오길~ ㅎㅎ

단발머리 2021-02-02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근사한대요. 잠자냥님 리뷰 읽고 나니까 마음이 막 조급해지네요.
사실, <티끝 같은 나> 대기하고 있거든요. 잠자냥님과 공쟝쟝님의 그러니까, 잠자쟝님들의 2020 최고의 책이요.
이거 읽어야 다음책 읽는데, 우아! 포레스터 부인, 저도 만나고 싶어요 @@

잠자냥 2021-02-02 14:11   좋아요 1 | URL
하지만 그러나 저는 <티끌 같은 나>부터 읽으시라고 하고 싶습니닷!! 잠자쟝들의 최고의 책!

다락방 2021-02-02 14:20   좋아요 0 | URL
단발님 일단 티끌 같은 나 먼저 읽으세요. 왜냐하면 저 아직 이 책 안샀으니까, 이건 제가 책을 산 다음에...(왜?)

잠자냥 2021-02-02 14:23   좋아요 0 | URL
그럼 단발머리 님은 3월 이후에 이 책을 사셔야 하네요. 또르르.. T.T

다락방 2021-02-02 14:25   좋아요 0 | URL
그건...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흠흠..

잠자냥 2021-02-02 14:26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 망설이는 동안에 <그녀들의 이야기> 절판 됐어요!!!! 아니, 작년에 나온 책이 이게 무슨 일이지?? 판권 때문인가....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0539628

단발머리 2021-02-02 14:37   좋아요 0 | URL
어머나 이를 어째 ㅠㅠㅠ
일단 저는 티끌부터 시작해야할텐데요🥺

유부만두 2021-02-02 18:2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맘이 막 급해져요. 아, 내가 정말 서재 끊든지 해야지, ...

Falstaff 2021-02-02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달 말이나 담 달 초에 예정 잡혀 있는 책이라, 내용은 걍 휘리릭 날려 읽고 마지막 문단은 잘 읽었습니다.
캐더 책들에서 볼 수 있는 선량하고 곧은 사람들 이야기인 것 같아 안심이 되는군요.
아, 난 울면 안 되는데.... ㅋㅋㅋㅋ

잠자냥 2021-02-02 15:19   좋아요 0 | URL
그럼요, 읽을 책은 줄거리 휘리릭~ 넘어가는 게 현명하지요.
네, 딱히 악한 인물은 없다고 봅니다. ㅎㅎ

blanca 2021-02-02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너무너무 좋죠! 잠자냥님, 헉 저는 대충 읽었나 봐요. 그 비밀 지켜줬던 소년이랑 마지막에 부인 죽음 전달해 준 사람이 동일인이군요!! 세상에나...

아, 윌라 캐더 너무 좋아요. 지금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 대기중이랍니다. 잘 읽고 갑니다.

2021-02-02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1-02-02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 리뷰 읽으니 핏츠제럴드 생각이 너무 나네요. 그의 단편 중에 <겨울 꿈> 이요. 그 단편이 너무 겹쳐져요!!

잠자냥 2021-02-02 23:07   좋아요 1 | URL
오, 놀라우신 분! 안 그래도 이 작품을 읽고 피츠제럴드가 윌라 캐더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아무래도 자기 작품이 당신의 작품 몇몇 구절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거 같다, 표절처럼 보일 거 같아서 설명하려고 한다 뭐 그런 편지요. 윌라 캐더는 너그러운 답장을 보냈는데 이 책 말미에 그 둘이 주고받은 편지도 실려 있습니다. ㅎㅎ

다락방 2021-02-03 05:47   좋아요 0 | URL
그 단편에 그런 문장 나오거든요. ‘꿈이 사라진 것이었다’ 이 문장이 완전 겹쳐요!!

2021-02-10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0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6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6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한나 렌 지음, 이영미 옮김 / 엘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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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내 생각대로 다스릴 수 있다면 그리하여, 고통도 상처도 받지 않는다면, 이 세계에 모든 불화와 다툼, 전쟁이 사라진다면 그런 ‘매끄러운 세계’는 정말 행복하기만 할까? 한나 렌의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첫 문장부터 아리송하다. “찌는 듯한 더위에 잠이 깨, 커튼을 열고 창밖으로 눈 풍경을 바라보았다”라는 이상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고생 ‘하즈키’는 등교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아버지와 함께 아침을 먹는다. 그런데 집을 나서는 하즈키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 아버지 기일이니까 일찍 들어와.” 그제야 하즈키는 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지 벌써 4년 지났지 한다. 대체 무슨 소리야? 이 아이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정신이 이상해졌나? 현실과 꿈이 뒤섞인 세계인가? 알쏭달쏭하기만 한데, 하즈키가 학교로 가는 길은 더 가관이다. 30도 가까운 열기에 달궈진 아스팔트인데 벚꽃이 흐드러지고, 중간부터는 길가의 철 이른 낙엽이 바스락거리고, 얼어붙은 수면이 공존하는 세계. 수업 중 창 밖을 보니 더운데 눈이 내리고 있다. 기상이변인가?

아, 이곳은 무한한 평행 세계를 의식만으로 자유롭게 넘나드는 ‘승각’이라는 독자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무한대 현실’에서 마음에 드는 현실을 선택해 넘나들 수 있다. “할아버지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묻고 싶은 얘기가 아직 남았어. 할아버지가 살아 계신 현실로 가자.” 라는 대화가 당연하다는 듯이 오가며, 회피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즉시 다른 시공간의 자신에게로 옮겨갈 수 있다. 팔다리를 다치든. 시각이나 청각, 혹여 가족을 잃어도, 이곳에선 사는 세계를 슬쩍 바꾸면 그만이다. 괴로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고, 돌아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하즈키가 죽은 아버지와 아침상을 즐겁게 함께할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지 않은 세계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이 ‘매끄러운 세계’ 사람들은 모두 절대적인 이상향에서 살고 있다. 고통이나 슬픔을 느껴도 그것들이 없애버릴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실제로도 언제든 그 가능성을 이룰 수 있다. 사랑받지 못하면 사랑받는 현실로 가면 되고, 영원한 생명을 원하면 그것을 이룬 현실로 옮겨가면 된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매끄러운 세계’에도 ‘적’은 있다. 하즈키의 학교로 전학 온 ‘마코토’는 매끄러운 세계에 사는 여느 사람들과 달리 반항적이면서도 부정적인 기운을 내뿜는다. 분명히 하즈키와 어린 시절 친구였는데 마코토는 싸늘하게 모르는 척, 냉정하기만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알고 보니 마코토는 사고를 당해 다른 ‘일반인’들과는 달리, 오직 하나의 현실만을 평생 살아가야만 하는 ‘승각장애’를 갖게 되었다. 이 장애가 있으면 모든 도망이 불가능하다. 승각장애자의 세계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확률이 낮은 어떤 가능성이 실현된 현실을 인식할 수 없기에 한 여름에 눈을 보기 어렵고 벽을 통과하는 일은 말도 안 된다. 지금까지 그런 능력이 있었던 인간에게는 괴로운 일일 것이다. 하즈키는 그제야 처음으로 깨닫게 된다. 이 평화로운 세계가 누군가에게는 잔인하기 짝이 없을 수 있음을.

‘인생에 옆길도 샛길도 없다’는 승각장애를 지닌 마코토에게는 또 하나의 엄청난 공포가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내가 있는 쪽으로 가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 전에는 평범한 이 세계의 일원이었던 마코토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유한한 생명도 유한한 가능성도 아니다. 자신들을 계속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없다는, 아마도 이 세계의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 현실이다. “달리기도 인생도 이젠 나 혼자 해쳐나갈 생각이야. 나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니까.”(52쪽)이라는 마코토의 말은 그래서 애잔하다. 이 절대고독에 놓인 마코토를 위해 손을 내민 하즈키는 과연 마코토를 구원할 수 있을까?

<미아하에게 건네는 권총>과 <홀리 아이언 메이든>은 인간의 감정을 조작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세계를 그린다. <미아하에게 건네는 권총>의 세계에서는 뇌 조작을 통해 인간에게 불멸의 사랑을 선사한다. 이곳에서는 언젠가 서로 사랑이 식어갈 것을 두려워하는 커플이 영원한 사랑을 위해 임플랜트로 자신들의 감정을 조정할 수 있다. 특정 인간을 영원히 사랑하기 위한 장치인 총 ‘웨딩나이프’의 발명으로, 과학은 흔들림 없는 사랑, 불멸의 사랑을 인간에게 선사한다. 배우자에 대한 사랑, 자식, 이웃에 대한 사랑 등등 반응 회로는 다양하다. 이 기술의 응용으로 인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사랑이 깃든 가슴으로 마주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결혼을 앞둔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 웨딩나이프로 서로에게 총을 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영원한 사랑을 거부하는 이는 동반자로 선택할 수 없다’는 사상이 이 시대 사람들에게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다. 만일 이런 총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떨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이 총을 쏠까? 나도 총에 맞기를 주저하지 않을까? 그렇게 뇌 조작을 통해 박제화한 사랑, 감정은 진짜 감정일까?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사랑의 화살을 쏘는 큐피드가 떠오르기도 한다. 큐피드의 화살을 맞으면 누구나 눈앞의 상대에게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 사랑은 진짜 감정일까? 조작된 감정은 아닐까?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질투나 의심, 권태 등등의 부정적인 감정도 따르기 마련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컨트롤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랑이 계속 유지되든지, 아니면 끝나든지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웨딩나이프’는 애정의 방향을 영원히 식지 않는 한 방향으로만 고정시킴으로써 다른 감정이 생겨날 가능성, 그런 인격들을 사전에 모두 차단한다. 이 사랑을 과연 진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홀리 아이언 메이든>의 세계에서는 한 번 포옹만으로 증오와 미움을 가진 사람들도 모두 올바른 심성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 포옹을 받고 올바른 심성을 가진 인간이 된다하더라도 그 올바름이 과연 나 자신의 것일까? 게다가 자기가 가진 힘으로 다른 이의 마음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면, 그래서 세계의 대부분을 나에게 찬동하는 올바른 마음을 지닌 사람들로 만들 수 있다면 과연 나는 그런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까?

마지막 작품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는 우리나라 독자라면 쉽게 읽어 넘기기 어려울 작품인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즐겁게 읽어나가다가 마지막 작품에서는 예상치 못한 타격을 받았다. 한 고등학교 졸업식 장면이 그려진다. 그런데 그해 졸업생은 이상하게도 단 두 사람뿐이다. 기노카미 사립 고등학교 제47기 학생들은 3년 전 4학급 117명으로 입학했는데, 오늘 1학급 2명으로 졸업식을 치르는 것이다. 이때부터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러다가 “47기 졸업생 여러분을 엄습한 것은 역사상 초유의 재해였습니다. 거기에 휘말리지 않은 두 학생도, 학부모 여러분도 아직 받아들이기 힘드시리라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세월은 흐르고 있지만 여러분의 마음은 여전히 그날에 갇힌 채 시간이 멈춰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부디 우리 어른들이 결코 잊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라는 졸업식 축사에서는 그만 울컥해진다.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졸업생석에 앉을 예정이었던 친구들 2학년 D반, 115명은 끝내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체 이 고등학교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역사상 초유의 재해’란 무엇일까?

모든 학생들은 현재, 인솔 교사와 함께 수학여행을 갔던 도쿄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최근 600 여 일 동안’이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그들은 아직도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신칸센이 갑자기 멈춰버렸다. 열차만 멈춘 것이 아니라 그 열차 안에 있는 사람들도, 열차가 멈춘 순간 하던 동작 그대로 모두가 멈췄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다가 멈춘 아이, 게임을 하다가 멈춘 아이, 웃다가 그대로 멈춘 아이 등등. 이 기묘한 사건을 조사하다가 사람들은 신칸센이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열차 안에서도 시간은 흐른다. 열차가 움직이기는 한다. 다만 열차 안의 시간이 1초 경과하는데, 밖의 시간으로 약 2600만초가 필요하다. 그 안의 시간은 밖의 시간의 약 2600만 분의 1로 열차 안의 인간은 그 속도로 생각하고, 숨 쉬고, 땀 흘리며 평상시처럼 살아간다. 열차의 현재 위치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결론적으로 이 열차는 다음 정차역인 나고야 역에 반드시 도착한다. 서기 4700년 무렵에.

그러니까 그날, 수학여행을 떠나지 못한 다른 두 명의 학생이 사건이 발생한지 600여 일이 지나, 졸업식을 하기에 이르렀을 때도 그 열차 속 아이들은 아주아주 느리게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나라에서는 신칸센을 움직여 보려고 온갖 수를 다 써보지만 열차는 꿈쩍도 하지 않고, 열차 유리창을 깨고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그런 와중에도 시간은, 세월은 흘러 졸업식을 치른 두 학생은 어른으로 자라, 사회인이 되어간다. 언론과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 사건에 충격을 받았다가, 제 나름대로 ‘소비’하고 그러다가 점점 잊어간다. 이제는 국가 공무원들이 이 열차가 그간 얼마나 움직였는지 그 너무도 미진한 속도를 형식적으로 기록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 열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가족들, 나라에서 ‘유족’이라고 부르는 그들은 아이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아이들은 과연 돌아올 수 있을까. 돌아오더라도 가족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일 텐데. 이 기다림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는 저속화된 신칸센을 가정하고 이를 둘러싼 두 가지 의문, 왜 두 학생은 저속화된 신칸센에 탑승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저속화된 신칸센에 갇힌 사람들을 어떻게 구해낼 것인지를 풀어나간다.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은 감정도, 현실도 마음대로 통제해서 평화롭고 행복하게만 살아갈 수 있는 너무나 매끄러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러나 그곳에는 당연하게도 그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또는 스스로 거부하는 인간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싸우고, 자기가 처한 조건을 제 자신이 지배하려고 애쓴다. 설령 그로 인해 더 나쁜 소멸의 길을 거치게 된다 하더라도 그 또한 인간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행동에 뛰어든다. 그리고 그 행동의 동기는 ‘나의 행복’이 아닌 ‘너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물론 그건 결국 나의 진정한 행복을 찾는 길이 된다. 사실《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은 여러 의미에서 내게는 가까이 하기 먼 당신이었다. 나는 SF라는 장르를 그리 즐기지도 않고, 이 책은 표지가 전하는 느낌도, 현대 일본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도, 심지어 정세랑이나 천선란의 극찬에 가까운 추천사도 내게는 전혀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한번 읽어보고 싶었고, 읽기를 마친 지금은, 그 모든 ‘편견’에 가까운 꺼려지는 이유들을 제쳐두고 읽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SF는 현실 세계를 빗대어 인간이 살기 좋은 세상은 어떤 세계인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하곤 하는데, 이 책 또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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