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을 보면 한동안 그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나 또한 그랬다. 이 영화는 혼자 보면 더 좋지 않을까, 가장 좋지 않을까, 깊은 밤 술 한 잔 걸치고 본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영화를 애인과 함께 보았다. 둘 다 사전 정보 없이 박찬욱이 만들었고, 탕웨이와 박해일이 등장하고, 그리고 어쩐지 탕웨이와 박해일이 사랑하는 사이가 될 거라는 그런 정도의 정보만 안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영화가 조금씩 진행될 때마다 문득, 그리고 탕웨이와 박해일이 서로에게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그리고 조금씩 마음을 열 때마다 이런저런 장면에서 사랑이, 누군가를 사랑하던 순간의 나 또는 상대의 모습들이 떠오르고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히 지금 내 옆에서 영화를 보는 그 사람의 이미지만은 아니었다. 그 사람하고만 엮은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러나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의 머릿속도 나와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의 지나간 연인들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은 안다. 어떤 사랑을 했는지, 그 지나간 사랑 때문에 어떤 점이 괴롭고 고통스러웠는지도, 그래서 결국 헤어질 결심을 하고, 그렇게 헤어지고 말았는지도 다 안다. 그렇기에 스크린에 투영된 저 사랑의 이야기가 그저 남의 일이 아니라 어떤 순간순간들은 나의 기억이기도 하고, 또 너의 지나간 기억이기도 할 것이라는 걸, 그때 그런 감정을 느꼈으리라는 걸 짐작한다. 그리고 짐작했었겠지만 서로 말은 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그 먹먹한 마음을 각자 느끼며 둘이서는 어떤 말도 나눌 수 없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영화의 어떤 장면들을 복기하면서 대화할 수 있었지만 서로 마음속에 있는 깊은 감정들을 꺼내지는 않은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리고 그 사람의 얼굴 표정을 보면 그 사람도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붕괴- 무너지고 깨어짐’-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요.”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요. 내 마음을 가장 뒤흔든 장면이다. 탕웨이의 입에서 이 말이 나왔을 때 울고 말았다. 영화 속 그 어떤 말보다 ‘사랑’, 그 절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누군가로 인해 무너지고 깨어질 만큼 신념이 흔들린 사람. 그리고 그럼에도 그 사람을 외면할 수 없었던 사람. 나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가장 중요한 면, 그 면을 알기에, 그게 나로 인해 파괴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아, 날 이렇게 사랑하는구나! 기뻐할 게 아니라, 나 때문에 그가 이토록 힘들구나, 가슴 아파하면서 그 이전으로 돌아가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 그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요.”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어요?”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요.....”
해준과 서래에 비할 수는 없지만, 나 또한 지금의 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내 신념이 붕괴한 적이 있었다. 나는 누군가를 속이는 것을, 배신하는 것을, 기만하는 것을, 기만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의 부모는 20여 년 전에 이혼했는데 아버지의 잦은 외도가 이유였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그걸 알았고, 그게 내내 상처여서 그 어린 나이에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절대 배신하지도 속이지도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랑을 했다고, 해왔노라 자부했다. 지금 이 사람을 알기 전까지는…. 그 시절 나는 6년을 함께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관계를 이 사람 때문에 깨버린 것이다. 나는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기만하면서 이 사람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낮에도, 저녁에도, 새벽에도…. 그때 내가 상처 준 사람은 6년을 함께했던 전 애인뿐만이 아니다. 공통으로 우리가 알고 지냈던 친구들, 그런 불안정한 상태에서도 이 사람을 만나겠노라 이기적으로 굴면서 했던 철없는 행동으로 지금의 이 사람도 수없이 상처받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를 울리던 아빠가 떠올라 그런 아빠와 비슷한 짓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무너지고 또 무너졌었다. 엄마를 술 취하게 하고, 엄마를 울리던 아빠와 다른 게 뭐지? 네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 폭풍 같던 시절도 지나고 나는 어느덧 지금의 그 사람과 10년 째이다. 둘 다 서로를 사랑하면서 다른 사람을 마음에 담는 일 따위는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걸 알기에 그런 점에서는 104% 믿는다. 그러니까 너는 나를 바람이란 걸 피우게 만든 유일한 사람이라는. 그래서 그런 문제로 싸우지는 않는다. 그저 요즘 우리를 다투게 하는 것은 나의 책 사랑과 너의 고양이 사랑이라는 것 정도? 이제는 그 오래전 나로 인해 상처받았던 친구들도 나의 지금의 연인을 받아들여서 우리들은 또 새로운 관계를 형성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얼마 전에는 한 친구의 집들이에 초대를 받아서 함께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우리 집에 임보한 고양이를 아마도 계속 데리고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임종 때까지 보호인 거지.” 친구들은 하하, 웃었지만 그 이후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애인이 어두운 얼굴로 묻는다. “친구들이 내가 또 고양이 들였다고, 너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지?” 애인은 내 친구들과 친구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내 친구들은 나와 더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는 아직은, 어쩌면 영원히 이방인일 것이라고. 그러니 팔은 안으로 굽을 것이라고. 나는 아니라고, 생명 하나 들인다는 게 얼마나 책임감 있는 일인지 아니까, 잘했다, 아니다 이런 말을 차마 덧붙일 수 없는 것일 거라고 그렇게 다독였다.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둘째, 셋째를 구조해서 집에 들일 때마다 친구들은 대단하다, 너희 냥이들 로또 맞았다, 이런 말을 했었지만 어느 순간(셋째 때부터로 기억한다)부터 그런 말들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둘째가 크게 아프고 그럴 때마다 우리 마음이 무너지던 걸 곁에서 봤기에 이제는 가볍게 차마 그 어떤 말도 덧붙이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런 나의 다독임에도 여전히 애인은 주변 사람들이 고양이 하나 더 들였다는 걸 탐탁지 않아 하리라 생각하며 마음이 무거운가보다. 그러면서도 아직 바깥에 있는 두 녀석이 몹시 마음에 걸린다는 걸 나는 안다. 우리 집 넷째가 된 녀석의 어미와 형제 고양이인데 사실 이 냥이 가족은 어미가 새끼이던 시절부터 이 사람이 매일같이 밖에서 돌보아왔다. 지금도 매일 요 녀석들 때문에 나간다..... “그런데 너, 그 두 마리 다 데리고 들어오면 밖에서 그 고생 안 할 거지?” 어느 날 내가 물었더니, 이 사람, 동공이 흔들린다. 진짜 인간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 응!” “그럼 데리고 들어와.... 알아서 가방 싸서 빨리 오라고 해.” “정말?!” 사실 그중 한 녀석은 내가 정말 예뻐하는 녀석이기도 하다.....(사심 가득). 그래서 그런 거야.
그리하여 우리는 그 두 녀석도 마저 데리고 들어오기로 했다. 시기는 커밍 쑨.... 그런 결정을 내린 후 한없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종종 얼굴이 어두워지는 그 사람. 나는 안다. 네가 주변 사람들 신경 쓰는구나. 우리 가족, 너희 가족, 그리고 친구들… 또 냥줍했다고, 힘들게 왜 자꾸 주워오느냐고, 책임질 일만 만드느냐고 그런 비난의 눈길을 들을까봐 걱정하는구나. “이번에 누가 물어보면 그 두 마리는 내가 데려오자고 했다고 하자.” 어느 일요일 오후 아아를 마시며 함께 길을 걷던 중 내가 말했다. 순간 그 사람은 우뚝 그 자리에 서서 외쳤다. “붕괴! 나 지금 소름 돋았어.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요. 느꼈잖아!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어요?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아, 저기 여보세요, 좀 뜨거워요. 저리 좀 가세요.
그러니까 고양이 여섯 마리 될 거니까 나도 책장 하나만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