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알라딘 적립금 플렉서 잠자냥입니다. 오늘은 제가 리뷰를 한번 독특한(?) 아니, 독특하다기보다는 이제까지의 방식과 살짝 다르게 써보겠는데요. 지금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눈치챘겠지만, 저도 공쟝쟝님의 유튜브 방송에 힘입어 한번 유튜브 방송 삘(feel)나게 음성 지원되는 듯한 느낌으로 최근 읽은 책 중 한 권을 소개해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읽는 유튜브’라고 할까요? ‘그럴 거면 유튜브를 해!’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저는 MZ세대인 쟝쟝님에 비해서 기술적으로 뒤쳐진 세대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제 초상권은 소중해서 유튜브는 좀 무리인 것 같고요. 게다가 우리 알라딘 서재 이웃들은 유튜브 볼 시간에도 책 보는 그런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유튜브와 글로 쓴 리뷰를 적절히 혼합한 방식으로 여러분에게 이 책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오늘 말씀드릴 책은 이탈리아 작가인 ‘밀레나 아구스(Milena Agus)’의 <달나라에 사는 여인>입니다. 작가는 1959년 이탈리아 제노바 출생으로 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중 한 사람이라 볼 수 있습니다. 2006년에 발표한 <달나라에 사는 여인>으로 스트레가(Strega), 캄피엘로(Campiello), 스트레사(Stresa) 등등 여러 문학상을 받았고, 이 작품이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고 합니다. 2016년에는 무려 그 아름다운 여인, 마리옹 코티야르가 주연으로 동명 영화로 제작되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기도 했다는군요.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제가 그랬듯이 다들 이 영화를 보고 싶어질 텐데요, 마리옹이 그 관능적인 여인 역할을 하다니, 아, 아니 정말 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 것입니다.
이 작품에 대해서 “신비와 열정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르몽드는 말했고, “놀랍고 놀랍다. 이 작품은 일종의 계시다.”라고 L’익스프레스가 말했다는데 일종의 계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지오반니 파치아노라는 사람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떠올리게 하는 색과 따뜻함이 있는 작품이다!”라는 평에는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보시다시피 책이 참 얇습니다. 읽기에 부담이 없어요. 그리고 재미가 있다 보니 책장이 휘리릭 넘어갑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쾅! 놀라운 반전이 있는데, 그 반전을 알고 나면 이 작품은 또 다르게 읽힐 수 있어서 반전을 알고 처음으로 되돌아가 읽으면 더욱 풍부한 감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의 화자는 젊은 여성입니다. 이 젊은 여성이 자신의 할머니의 일생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므로 작품의 주인공, 즉, ‘달나라에 사는 여인’은 바로 화자의 할머니인 셈입니다. 영화에서 마리옹 코디야르가 맡은 역할도 바로 이 할머니입니다. 여기서 잠깐 이 작품의 원제를 살펴봐야 할 것 같은데요. 국내 번역 제목은 ‘달나라에 사는 여인’입니다만 원제는 <Mal Di Pietre>라고 해서 이탈리아어로 신장 결석을 뜻합니다. ‘Pietre’에는 ‘돌, 결석, 돌과 같은’ 이런 의미가 있더군요. 그렇다면 여기서 영특한 어떤 독자는 우리나라 말로 ‘석녀石女’ 같은 의미인가 하는 생각을 하는 분도 있을 텐데 그것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 할머니는 신장 결석을 앓고 있어서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임신을 해도 번번이 유산이 되지요. 그래서 신장 결석을 치료하려 온천을 권유받고 여행을 떠나는데, 그곳에서 자신과 똑같이 신장 결석을 앓고 있는 재향군인을 만나면서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아마도 영화에서 결혼한 마리옹 코티야르가 바람이 나는 재향군인 역할은 ‘루이 가렐’이 맡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달나라에 사는 여인>의 마리옹 언냐. 이 언냐가 소설 속 '할머니'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결국 신장 결석 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행한 유부녀가 온천 여행을 떠나서 자신과 같은 질병을 앓는 남자와 바람나는 이야기인가! 그게 무엇이 새로운 것인가! 불륜 이야기는 넘치고 넘치지 않는가! 식상하다! 할 수 있을 텐데요. 같은 이야기를 해도 어떻게,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작품이 된다는 것, 거기에 또 문학의 힘과 재미가 있지 않습니까? 이 작품이 바로 그렇습니다. 앞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이 있다고 했는데요. 그렇듯이 이 작품은 손녀인 화자가 할머니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을 취해 마치 옛날이야기, 동화를 읽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아, 그런데 이 동화는 19금입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이 작품의 장점 중 하나가 굉장히 에로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을 위한 환상동화 같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 역할을 관능적인 마리옹 언니가 맡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불륜 이야기입니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릅니다. 화자의 할머니는 젊은 시절부터 뭇 남성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돋보이는 미모를 지닌 여인이었고, 집까지 찾아오거나 청혼하는 남자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 남자들 발길이 드물어지더니, 아예 하나같이 발길이 끊는 겁니다. 이 이유도 나중에 밝혀집니다만, 아무튼 그랬더니 이 할머니의 엄마, 그러니까 화자의 ‘증조할머니’는 이게 다 당신 딸이 천박해서 그런 거라며 나무라고, 딸이 음란한 시를 쓴 탓이라면서 딸을 사탄 또는 미친년 취급을 하면서 폭력까지 휘두릅니다. 이게 다 글을 가르쳤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한탄하지요. 부지런히 일도 잘하고 아름다워서 결혼을 쉽게 할 것이라 생각했던 할머니는 결국 시집도 못가고, 정신이 조금 이상한, 정신병을 앓는 여인 취급을 받으면서 집안의 수치가 됩니다. 여기서 잠깐 <여성과 광기> 같은 책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아무튼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와중에 폭격으로 가족을 잃은 중년의 남자(화자에게는 할아버지가 되는)가 나타나고 이 두 사람은 할머니 가족들의 강요로 결혼을 합니다.
할머니는 애초에 사랑 없는 결혼이니까, 남편이 될 이 남자에게 제발 자기와 결혼하지 말아달라고 빌기까지 하는데요, 이 남자는 묵묵히 결혼하고 할머니와 기묘한 결혼 생활을 이어갑니다. 책을 읽다 보면 이 할아버지라는 인물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신혼 초부터 할머니가 원하지 않으면 절대 손도 대지 않겠다더니 정말로 그러는 겁니다. 두 사람은 한 침대에서 잠을 자지만 어떤 접촉도 없이 떨어져서 자는 생활을 죽 이어가요. 물론 이 할아버지는 성적 욕망은 대단해서 사창가를 찾아가서 욕구를 해소하고 오는데요, 어느 날 할머니가 그 사실을 알고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줄 테니, 그 돈을 나에게 달라, 라는 조건을 달고 그때부터 두 사람의 화려한 육체 퍼포먼스가 시작됩니다. 이 지점이 바로 19금스러운 부분인데요. ‘게이샤 놀이’ 등등 온갖 사창가 놀이 목록을 만들어서 그날그날 그 놀이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장면 묘사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에로틱한 작품들의 묘사가 그렇듯이 노골적이면서도 환상적이고 그러면서도 불쾌하지 않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참 신기하게도 놀이가 끝나면 언제 그렇게 뜨겁게 놀았냐는 듯이 서로 침대 끝에 떨어져서 잠들고는 합니다. 할머니는 이 놀이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면서 할아버지를 만족스럽게 해주는데요, 그럼에도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마리옹 언냐 뒤에 나오는 남자가 화자의 '할아버지'로 이 두 사람은 사랑 없는 결혼을 하고....

신장 결석을 치료하러 찾아간 온천에서 만난 재향군인..... '루이 가렐'이 그 재향군인 역할을 맡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할아버지는 어떨까요? 할아버지는 단 한 번도 할머니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도 않고 그런 낌새를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굉장히 무뚝뚝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는 ‘할머니’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이해가 됩니다만, 이 할아버지도 결국 할머니를 자기 나름대로 사랑한 게 아닐까 싶어지더라고요. 작품을 잘 읽다 보면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원치 않는 것을 한 적이 없습니다. 육체관계를 맺게 되는 지점도 결국 할머니의 제안 때문이고요, 오랫동안 온천 여행을 보내 줄 때도 할머니의 외도를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의심하고도 남을 만한 부분이 여럿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이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이 책에서도 말하듯 “사랑은 스스로 원하지 않으면 잠자리를 함께 하거나 친절하게 대하고 착한 행동을 해도” 찾아오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열정적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길 바라던 할머니인데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랑이 다가오게 만들 도리가 없다는 것”도 참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다가도 사랑은 또 느닷없이 찾아와서 할머니는 신장 결석 때문에 찾아간 온천에서 거의 한눈에 반하다시피 재향군인에게 빠져듭니다. 그 재향군인도 마찬가지인데요. “사랑은 나이를 따지지 않고 사랑이 아니면 그 어떤 것도 바라보지 않는다.”(61쪽) 이런 구절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무것도 감추거나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심지어 결석을 배출하느라 함께 소변을 보는 일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구절입니다. 할머니는 그 당시 기준으로는 너무나 남다른 여성이라 “평생 달나라에 사는 여자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드디어 같은 “달나라 남자”를 만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에게는 돌아가야 할 집이 있고, 남편이 있습니다. 할머니의 이 사랑이 어찌될지 궁금하지요? 할머니에게 화자인 ‘손녀’가 있다는 사실은 할머니가 신장 결석 때문에 임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곧 치유되었음을 뜻하기도 하는데요. 이 임신에 관해서도 여러 놀라운 비밀 아닌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이 작품을 좋게 읽은 것 중 하나는 할머니 외에 또 다른 할머니, 즉 화자의 외할머니도 등장하는데요. 이 외할머니는 여러 지점에서 할머니와 대척점을 이룹니다. 손녀에게 자신의 지나간 인생을 모두 털어놓을 만큼 다정다감했던 할머니와 달리 외할머니는 자신의 딸 그러니까 화자의 엄마에게도 차가웠고, 손녀에게도 그리 살갑지 않습니다. 굉장히 금욕적이고 차가운 캐릭터인데, 알고 보면 이 외할머니에게도 말 못할 비밀이 있습니다. 공통점이라면 할머니와 외할머니 둘 다 그 옛날 자신의 욕망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욕망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기에 세상과 가족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여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달나라에 사는 여인>은 이 두 할머니들의 삶을 통해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낼 수 없었던, 그 옛 시절의 부당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짧지만 아름답고 강렬하며 에로틱한 데다가 재미있으며 놀라운 반전까지 갖춘 작품. 그리고 마리옹 코디야르의 동명의 영화까지도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작품. 바로 <달나라에 사는 여인>입니다.

마리옹 언냐 책을 이렇게 관능적으로 읽으시면 어떡해요- <달나라에 여인>은 이토록 에로틱하면서도 재미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