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명의 사람이 있으면 천 개의 이야기가 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사연을 품고 있다. 겉으로만 보아서는 알 수 없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사연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 도시에는 수천 명의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 수천 개의 이야기가 밤마다 그들과 함께 잠들고 아침이면 깨어나 또 다른 이야기가 거기에 덧붙여질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또 어떤 이의 이야기와 뒤섞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므로. 그러나 이곳은 너무나 큰 도시이기에 이 사람과 저 사람의 이야기가 섞이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일이 드물기에 인연이라는 말로 그 관계의 특별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큰 도시가 아니라, 2~30명 정도의 소규모 사람들이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라면, 그리고 그곳이 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궁벽한 마을이라면, 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얼마나 서로 관련 없이 동떨어져, 독립될 수 있을까? 한집 건너 한집 모두가 서로 아는 사이라면? 아마 이런 마을에서 나 홀로 무리와 어떤 관련도 맺지 않고 살아가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이들이 종종 그러듯이, 나도 가끔은 한적한 바다마을이나 산골마을의 생활을 꿈꾸기도 하는데, 그러다 어느 지점에서 주저하게 된다.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생활 때문이다. 실제로 이른바 ‘귀농생활’을 하던 도시 사람들이 몇 개월 또는 몇 년 만에 그 생활을 접고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이유 중 하나가, 사생활이나 익명성을 보장받기 어려운 생활환경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여기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 어딘가에 위치한 ‘레 카세(Le case)’라는 마을이 있다. 이곳은 이제 젊은이들도 거의 떠나갔고 나이 든 사람들만이 남아서 살아가는, 고요하기 짝이 없는, 몰락의 냄새가 폴폴 나는 그런 마을이다. 2차 대전 때는 독일군과 파르티잔들의 대치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현재는 궁벽한 탄광 마을로 사람들은 이런 험난한 삶 때문에 대부분 심성이 메말랐고 외지인을 배척하는 것은 당연할 뿐만 아니라, 이웃끼리도 서로 믿지 못한다. 게다가 마을 주민도 몇 없는데, 마치 저주처럼 죽음이 끊임없이 일어나, 장례식에 참석하는 인원이 점차 줄어들고 있을 지경이다. 마을 어귀로 들어서는 급커브 길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탄광에서는 매몰 사고가 터지며, 또 때로는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기도 한다. 이런 마을을 사람들은 떠나고 싶어 하지만,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발이 묶인 듯이 이곳에서 불평과 불만 아래, 마을을 떠나 성공한 이웃 소식이라도 들려오면 그를 증오하며 묵묵히 살아간다. 그리고 이 가련한 사람들은 아침이 밝아오면 모두 근심 가득한 표정과 촉촉한 눈빛으로 힘겹게 장을 보러 간다. 의사의 물약과 카페의 술잔을 찾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이곳에서 나고 자랐지만, 오래 전에 도망치듯 마을을 떠났던 젊은이 ‘사무엘레 라디’가 갑자기 마을로 돌아오고 그의 등장으로 마을은 온통 술렁이기 시작한다. 에세드라의 손자였던 사무엘레, 그에게는 수치스러운 과거가 있고, 그런 그의 귀환이 이 마을 사람들에게 반가울 리가 없다. 집집마다 사람들은 문을 닫아걸고 창밖으로 사무엘레의 모습이 보일 때면 혀를 차며 그를 욕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사무엘레를 향한 그들의 적의 어린 시선과 함께, 마을 사람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들의 사연을 듣고 있노라니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사무엘레가 저지른 그 ‘수치스러운 일’에 견주어 보아도 그에 못지않게 수치스러울 일들이 마을 사람들 저마다에게 하나씩은 다 있는 게 아닌가!
가장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이 마을은 그 오랜 세월 동안 간음과 배신이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다. 바람난 남편과 바람난 아내들. 그들 끼리 얽히고설킨 관계를 따져보다 보면 어쩌면 이 마을은 모두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어질 정도이다. 바람을 피우지는 못하지만 병든 아내를 두고 젊고 아름다운 점원을 흠모하는 상점 주인, 빼어난 외모를 지닌 딸을 이용해 팔자를 고치기를 바라는 탐욕스러운 어머니, 소설에 빠져 운명의 사랑을 꿈꾸는 소녀도 있다. 그런데 이쯤은 이 마을(사람들)이 지닌 다른 비밀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납치와 감금, 실종, 살인 등 끔찍하고 추악한 비밀들이 더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 속고 속이고, 죽이고, 훔치고 사기 치고, 원한을 품고 복수하며 살아온 것이 이 마을 주민들의 삶이다. 꼭 그렇게 악하지는 않더라도 이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불행을 즐거워한다. 레 카세 주민들은 이렇게 서로 얽혀, 이 작고 음울한 마을의 음산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 권태에 시달리는 마을에서 사람들은 욕망과 배신, 탐욕과 살인, 원한과 복수를 양식으로 삼아 쾌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서서히 모두가 어느 정도는 괴물이 되어간다. “레 카세가 일종의 괴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레 카세가 마을 사람들을 잡아먹는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그곳을 서서히 갉아먹는 걸까?"(474쪽)
<불만의 집>은 처음에는 읽기 수월하지 않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각 장의 화자로 등장해 자기 처지와 관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다 보니, 다음 장에서는 한 사건에 대해서도 다른 이야기가 쏟아져 나와 독자를 당혹하게 만든다. 등장인물도 많아서 이름이 헷갈려 다시 앞 장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해야 한다. A와 B, C 중에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또 누군가의 이야기가 진실일지 알 수 없어 아리송해지는 순간도 여러 번 있다. 그러나 몇 개의 커다란 이야기와 마을 사람들 저마다의 자잘한 이야기들이 얽히고설켜 이야기의 정점을 향해 치달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퍼즐을 맞춰가는 일은 아주 흥미롭다. 외따로 떨어진 협소한 마을에서 수 십, 수백 년, 몇 세대를 걸쳐 함께 살아온 이 사람들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얽혀 배신과 원한 망상과 탐욕, 원한과 복수로 점철된 사연들을 풀어놓는 것을 지켜보노라면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의 축소판이 어쩌면 이 ‘레 카세’가 아닐까 싶어져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물론 그 와중에는 드물기는 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연도 있다. 그조차도 이 세계와 비슷하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묘미는 그 수많은 사연들 속에서 ‘반전’을 찾아내는 재미인데, 나는 이 작품에서 중간쯤에 한 번 깜짝 놀랐고, 뒷부분에서 여러 번 놀랐다. 맨 끝장을 읽고 나서는 내가 뭘 잘못 읽은 것은 아닌가 싶어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리고 이 모든 흥미진진한, 너무나 추악하고 기분 나쁜 사연들 때문에 불쾌하고 음울한 기분이 드는 이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간발의 차이로 그토록 원하던 삶을 놓쳐’버리고 유령처럼 힘겹게 살아가는 인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삶의 신기루를 찾다 길 잃은 사람처럼 몸을 질질 끌고’(271쪽) 다니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가련한 모습이 그저 저 먼 나라의 상상 속 마을 ‘레 카세’에서만 일어나는 일처럼 여겨지지만은 않는다. 이 책 속에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불결함, 포기, 신성모독, 배신, 거짓, 어리석음’도 있다(278쪽). ‘레 카세는 나무’이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실상은 ‘썩은 과일’이라는(184쪽)말, 왠지 소설 속의 말로만 느껴지지 않는다면 지나치게 비관적인 세계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