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2
정유정 지음 / 비룡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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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지긋지긋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탈출하고 싶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 그러면 현실을 잊을 수 있겠지? 그럼 기분 전환이 될 지도 몰라.'

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린 가끔 탈출, 일탈, 혹은 가출을 꿈꾼다.

엄마의 재혼식에 심난해져 있는 준호는 형을 밀항시키기 위한 규환의 여행에 동참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단호하게 거절당한다. 운동권인 형을 만나는 일은 위험한 일이기에 친구 준호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 허나, 피치못할 사고로 규환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그 임무 아닌 임무를 준호가 맡게 된다.

겉으로 보기엔 간단한 일. 양조장 용달차에 몸을 싣고 목적지까지 가서 형을 만나 서류와 돈을 전달해 주고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일. 하지만, 인생은 원래 수많은 돌발사고 때문에 뒤틀리지 않던가. 준호 역시 순탄하게 여행을 떠날 수 없었다.

이름 모를 할아버지와 양조장 주인 아들 승주, 아빠에게 쫓기는 게 일인 정아, 정아 아빠의 미친개 루스벨트까지 여행에 동참하게 되면서 좌충우돌 여행기가 펼쳐진다. 마음만 급한 준호는 이 많은 혹들이 자신과 함께라는 게 갑갑해져만 오고, 엎친 데 덮쳤다고 용달차에서 쫓겨나다시피 하고, 루스벨트 때문에 버스조차 탈수 없다. 승주에게 가방을 빼앗기고 여행 경비마저 어쩔 수 없이 동행하는 이들의 밥값을 대느라 술술 빠져나간다.

울화통이 터져버릴 것 같은 이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몇 날 며칠을 동행하는 그들은 위험한 상황에 빠졌을 때는 서로를 감싸안고 마음으로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알고보면 모두들 쫓기는 몸이다. 마음을 둘 데가 없는 외로운 사람들이다.

지긋지긋한 아버지의 폭력에 지쳐 도망간 언니와 반편이가 된 엄마가 있는 정아. 자신의 꿈과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저 멀리 도망가고 싶다. 아버지가 죽일만큼 밉고 무기력한 엄마 또한 화가 난다.

엄마의 치맛바람에 어릴 때부터 외톨이였던 승주. 스님말만 믿고 자신을 절에 넣어버린 엄마가 원망스럽다. 장가도 못가고 바보가 되는 건 아닌가에 대한 공포가 탈출을 시도할 용기를 줬다.

아버지를 기다리지 못하고 사진작가에게 시집가버린 엄마가 원망스러운 준호. 준호는 아빠를 기다린다.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아빠의 뒷모습을 잊지 못한다.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 할아버지. 주워다 키운 자식까지 죽고 난 후,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긴 생활을 살다가 탈출한 할아버지.

주인에게 죽도록 맞고 살았던 개 루스벨트. 시끄럽긴 하나 외로움에 지쳐 그렇게 된 것.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사랑이 필요했던 루스벨트는 준호를 주인삼아 여행에 동참한다.

서로 외로운 이들이 만나 같은 여행을 한다. 외로움에 지쳐 혼자 되기가 무서운 사람들. 하지만 현실을 벗어나고파 가출을, 탈출을 감행한 사람들은 미워하고 이겨내고 웃고 떠들면서 각자의 괴로움을 이겨낸다. 경찰들의 눈을 피해 목적지까지 다다르게 되었을 때는 한마음 한 뜻이 되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규환이의 형을 만나기 위해 태풍이 휘몰아치는 섬에 들어가면서도 두려움이 없었던 건,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일을 겪었던 서로를 믿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서로의 아픔을 감싸안을 수 있는 마음이 깊어졌기 때문이리라.

승주, 준호, 정아는 할아버지가 봤다는 고래를 목격한다. 할아버지가 말한 고래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가슴속에 품은 희망이었을까? 미래였을까? 그들이 본 고래는 그들 가슴속에 영원히 남으리라.

목적지에 다다르고 서로의 길로 뿔뿔히 흩어진 후 준호는 회상한다. 열다섯, 자신들만의 비밀 여행은 살아갈 힘과 용기를 주었다고.
그 날들의 기억은 또 다른 삶을 사는 밑바탕이 되었고,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고.

우리는 일탈을 원한다. 탈출을 원한다. 가출도 원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유에 관해 잘 털어놓지 않는다. 그건, 내가 외롭기 때문일진데 나의 외로움을 알리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건 나만의 비밀. 그 비밀속에 서로를 묶을 수 있었으니 그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1980년대 모든게 답답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사춘기의 분위기는 서로 닮아있었다. 각자 풀고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는 이야기이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는 여행 한 번으로 어렴풋하게 해결점을 찾았던 여행자들의 이야기이다. 읽는 내내 유쾌했고, 내가 준호가 된 듯, 내가 정아가 된 듯, 내가 승주가 된 듯, 내가 할아버지가 된 듯 감정이입이 잘 되었던 것 같다.

책 속에 인물들과 신나게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된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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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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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고 그런 시작이었다. 아들이 귀한 집에서 막내 딸로 태어나 엄마가 산 속에 내다 버렸다는 바리.
집에서 키우는 개 덕에 살아나 할머니에게 이름과 이상한 능력까지 부여 받은 바리.
바리는 특별한 주인공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이다. 바리가 세상의 고난과 고통과 괴로움을 차례로 따라가면서 독자에게 말하고 있다.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해서, 인간의 삶에 대해서, 이기심에 대해서

어릴 때 부터 탈많고 사연 많은 바리의 삶을 안타까워하고 바라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삶은 세계를 통틀어 말하고 있었다. 북한의 기근과 그로 인해 벌어졌던 일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도망쳐 나오는 사람들의 또 다른 고난의 삶, 불법체류자의 삶과 그 삶을 버텨 나가는 힘과 고통, 테러, 전쟁, 이기심과 그로 인한 죽음, 증오와 용서, 화해와 사랑 등...

바리의 삶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이 나타나고 있다. 바리는 슬기롭게 대처할 때도 있고 인간의 나약한 본성을 끌어내어 보여 줄 때도 있다. 자신만 열심히 산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서글픈 현실도 보여주고 있다. 행복은 개인의 행복으로 머물지 말아야 한다는 뼈아픈 교훈까지 주면서 말이다.

행복한 가정이 깨진 건 북한의 기근이 심해지고, 외삼촌이 남쪽으로 내려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부터이다. 가족은 제각각 흩어지고 할머니와 강아지 칠성이를 의지한채 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절망을 이겨낼 희망도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를 찾으러 나간 바리는 많은 영혼들을 본다. 그야말로 괴로움에 갇혀 죽어버린 영혼들. 바리는 그 영혼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바리는 마음이 아프다. 칠성이 마저 죽고 혼자 된 바리는 그야말로 혼자만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중국에서 안정된 생활을 할 즈음, 다시 위기를 맞고 영국으로 밀항을 하게 된다.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었던 바리는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된다. 영국으로 같이 넘어갔던 샹언니와 헤어지고 혼자남게 된 바리에게 절망끝에서 또 희망이 찾아온다. 열심히 산 덕분이던가. 다시 안마사로 취직이 되고 수입도 안정적이 된다. 에밀리 부인을 만나 그녀의 아픈 마음을 보듬어 주기도 한다.

불법 체류자로 살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게 되지만, 9.11테러로 인해 남편과 헤어지는 고통을 맞게 된 바리는 아이마저 잃게 된다. 행복은 뜬금없이 찾아왔다가 절망을 주고 간다. 바리는 육신과 넋이 분리된 채 전쟁의 고통에서 허우적 거리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생명수를 찾아야 한다는 할머니 말에 생명수를 찾는 여행을 하게 된다. 그 여행속에서 바리는 미움과 고통 때문에 괴로움을 안고 죽은 영혼들에게 질문을 받게 되고 생명수를 찾고 돌아올 무렵 그 해답을 알게 된다.

바리가 가진 말 속에는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유쾌하고 당연한 답들이였다. 바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은 사람의 욕망과 욕심, 이기심, 절망 이 모든 것들에 있었다. 그로 인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그로 인해 전쟁이 일어난다. 서로를 죽이고 미워하고 자신들만 잘 살려한다. 서로 상처 받는 일을 하게 되고 상처 받으며 증오심을 품는다. 그게 다시 전쟁과 싸움이 되며 사람들은 이유없이 죽어가며 피를 흘린다. 누가 이기는지도 모르는 싸움, 이기고 지는 게 의미없는 싸움들은 계속 되풀이 되는 것이다.

바리의 여행은 말하고 있다. 바리의 여행을 올바르게 인도 해 준 할머니, 칠성이 그리고 마지막 홀리야, 자유라는 이름을 가졌던 자신의 아이까지. 아무도 가져올 수 없는 생명수를 먹었던 바리에게 이 고된 여행은 끝난 게 아니었다. 남편과 재회를 하고 다시 아이를 갖고 새로운 생활과 행복에 젖어 갈 무렵, 바리에게 나타난 또 다른 절망의 공포. 영국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 한가운데에 바리가 서 있다. 또 다른 생명과 함께...

변하지 않는 한 멈추지 않는다. 조금만 변하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이 세계는 변할 마음이 없다. 이기심이 고통을 만드는 줄도 모르고 우리는 한없이 욕망을 따라 가고 있다. 생명수는 우리 개개인의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닐까. 마음 속에서 생명수를 발견하는 깨달음을 얻는 다면 이기심이 만들어낸 세계에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일들은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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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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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별 관심이 없다. 아니, 고쳐 말하면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은 죽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수년간 수많은 뉴스가 폭포처럼 넘친다. 그 뉴스 중에는 정말 듣고 싶지도 않고, 보고 싶지도 않은 잔인하고 악독하고 추악스러운 일들도 많다. 그런 일이 자행되고 있다고 우리에게 기어이 알리려고 하는 매체들을 이길 수는 없다. 산 속에서 들어가 살지 않는 한 말이다.

  어제는 백명도 넘는 여자들을 성폭행 한 발바리가 잡혔다. 백명도 넘는 여자라, 발바리는 미친 개이며 변태 중에 변태라 할 수있다. 물론, 여자의 입장에서 그런 놈은 죽어도 마땅하다. 아니 백명도 넘는 남자에게 성폭행 당하게 하고 싶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사형 집행일을 기다리는 한 남자와 사는 것 자체가 매일 사형 당하는 기분이라는 한 여자.

  강간, 살인으로 잡혀들어와 사형을 선고 받은 한 남자와 유부남이였던 사촌오빠에게 강간을 당하고 치유 될 수 없는 상처를 갖게 된 한 여자

  두 사람이 친구가 되어 가는 과정이라니 도대체 성립되지 않는 이야기다. 어떻게 이해를 할 수 있겠는가. 나를 강간하고도 버젓이 자기 가정 속에서 승승장구 날개 단 듯 살아가는 사촌을 경멸하다 못해 자신을 놓아 버릴 정도로 끔찍히 외로워 자살 시도를 세번이나 했건만. 심지어 사형 집행일을 기다리는 인간은 어린 소녀를 강간하고 칼로 몇번이나 찔러 죽였다는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마음을 보듬는단 말인가.

  말이 될 수 없다. 성립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말이 되지 않는 일도 말이 되곤하고, 성립 되지 않는 일도 성립 되곤 한다.

  사형수가 남기고 간 블루노트를 읽게 될 때쯤 이미 그녀는 그를 마음으로 보듬고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었으니.

  사실 사람들은 어두운 곳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음지를 알게 되면 내가 음지가 될까봐 피하는 것이고, 어두운 곳에서 오래 서 있다보면 내가 더 어두워 질까봐 도망가게 되는 것이다.

  사형수가 독방에 갇히면 두손을 뒤로 묶고 입만 대고 개처럼 밥을 먹는 다는 것도 몰랐고, 똥 오줌을 바지에 싼 채로 몇 날 며칠을 견뎌야 하는 것도 몰랐다. 인간적인 삶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지 비인간적인 사람이 비인간적으로 사는 것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이미 내 생각밖 속에 있는 사람들, 존재하지만 존재하든지 말든지 상관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보듬어주고 회개하게 하는 것, 그런 무의미한 일들을 왜 하냐고 물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옳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사람이 태어난 것은 이유가 있듯이, 그들이 그렇게 되는데 이유가 있었을 텐데도 우린 그 이유 따위는 관심이 없고 결과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매일 매일 죽도록 맞는 건만 보고 자란 아이가 길을 가는 아이가 참 행복해 보인다고 찔러 죽였다는데 아이가 아무 이유없이 사람을 죽였다는 것만 이슈화되고 떠드는 게 우리다. 그런 우리에게는 아무 잘못 없다는 듯 뻔뻔하게 잘도 조잘대는 게 바로 우리이다.

  과정없는 결과는 없다면서, 노력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하는게 당연하다면서도 누군가 무엇을 잘못했을 때 잘못만 가지고 따지는 게 우리이다. 이렇게 모순된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도 씩씩하고 즐거운 우리이다.

  공지영이 말하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란 것은 무엇일까? 과연 우리들에게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를 용서하게 된 그녀는 정녕 행복하기만 할 수 있었을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비교우위이다. 내가 만드는 비교적 우위에 있는 행복감. 그는 돈이 많고 괜찮은 지위일 것이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믿는 것이 상대방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것도 모른채 그렇게 믿는 것.

  정녕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존재하는 것일까? 얼토당토 않는 일이 자행되어지는 이 세상에서 행복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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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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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문학상 최연소 수상자'라는 문구가 대단하다는 듯 강조되어 있었고 의심반, 호기심반 미리보기를 클릭해 짧게 읽은 소설에선 이상야릇한 문체의 냄새를 풍기며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구입하고 나서 제일 먼저 읽게 되었는데 단편 하나하나 마다 끌리는 매력이 있었다.
그녀는 일상을 꽤 현실적이면서도 섬세히 담아내고 있었고 가끔은 소설속 에피소드가 내가 겪었던 일처럼 아주 친근했다. 낯선 듯 친근한.

그게 바로 그녀의 소설들이 입고있는 옷이었던 것 같다. 복잡한 스토리도 아니다. 등장인물이 여럿 등장에 등장인물의 성격을 파악하느라 골머리를 썩지 않아도 된다. 그저 주인공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 그때 나는, 사랑이란 어쩌면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우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달려라, 아비>

-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 '괜찮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정말로 물어오는 것은 자신의 안부라는 것을. <영원한 화자>
 
- 이것은 당신과 아무 상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수만가지 일들이 우리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사랑의 인사>

 
유명한 철학자나 학자들이 하는 명언처럼 그녀는 일상적이면서 잠시 눈을 떼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한다.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도 염두해두지 않는 것들에 대해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그것들은 우리 삶속에 당연히 포진해 있으니 알고 있으라는 듯이.

이것은 소설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이다. 그 일상을 우리는 끊임없이 상상해야 한다. 그녀의 소설들의 특징 중 또 하나는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만 보는 것이 아닌 그 상황속에 숨어있을 지도 모르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일들을 상상하는 것이다. 어쩌면 김애란 그녀는 끊임없이 상상하며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밥을 먹으면서 밥과 반찬이 식탁에 올라오기 까지 만난 사람들을 상상하고 물건을 사면서 그 물건이 만난 것들을 상상하고 스쳐가는 사람들에 대해 상상하고 그 상상력들이 결국 소설로 나타난게 아닐까 하는 생각.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나 착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또 하나, 아버지.
단편들 속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아버지가 있다. 그녀가 그리는 아버지는 포근하고 따뜻하고 듬직한 아버지가 아니다. 자식을 버리고 무능력한 아버지. 그녀의 소설들에 들어앉은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상처를 준다. 가정에서 가장으로 당당하게 듬직하고 현명한 아버지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거역한다. 그녀가 알고있는 아버지는 이것뿐이라는 것처럼 처자식을 버리고 자식을 어딘가에 버리고 도망가고 무능력하게 자식집에 며칠 얹혀있다가 떠나는 그런 아버지를 그린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들이 어쩐지 더 불쌍하고 안되고 짠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괜히 아버지가 그럴수밖에 없었다고 정당한 행동이었다고 느껴질만큼. 그녀가 그리는 아버지는 반아버지적이면서도 그 행동조차 용서되는 아버지의 색깔을 담고 있었다.

그녀의 소설들은 일상적이면서도 낯설고 신중하면서도 사려깊은 이야기인 듯 싶다. 소설속에서 내가 했던 행동들의 흔적들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이야기로 탄생한다. 참 재미난 글 읽기였다. 어쩌면 유치한 신파적이며 구질구질한 사랑이야기 보다는 신선한 일상이야기가 더 낫다 싶다. 통속적인 스토리에 신물이 난 사람에게 추천한다.

김애란의 소설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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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17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애란이란 작가의 이름은 이 글을 통해서 처음 접해봅니다. 꼴통님의 좋은 글을 보게 되니 왠지 궁금해 지는 군요. 서점에가서 꼭 한번 찾아 읽어봐야 겠습니다.^^
 
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뷰티풀 몬스터
김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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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 담백하게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은, 단순하면서도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나는 솔직할지언정 그 모습을 받아들이는 타인은 전혀 솔직한 존재가 아닐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솔직함에 도가 넘치는 자들에게 손가락 질 하고 비난을 마구마구 퍼부어대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리곤, 자기 자신의 비솔직함에 안솔직함에 흐뭇함을 느끼곤 한다. 그런 것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진정한 솔직함을 갖게 되기란,얼마나 어려운 것일까.

서점에서 방황하며 돈키호테를 살 것인가, 포우의 단편집을 싹다그리 묶어놓은 우울과 몽상을 살 것인가에 관해 고민하며 먹고 싶은 사탕을 절제력없이 주머니에 집어넣는 아이처럼 책을 팔안에 쑤셔넣고 있는 나를 불쌍해 하며 쓰윽 둘러보던 중, 이상한 책 제목을 발견했다.

'뷰티풀 몬스터'

탁정언 선생님은 말씀하셨지. 컨셉이 없는 제목과 컨셉이 없는 글과 컨셉이 없는 제품과 컨셉이 없는 장사와 컨셉이 없는 광고는 끔찍할 뿐이라고... 말도 못할 정도로

이 눈에 확 들어오는 컨셉이 있는 제목에 신기함을 느끼며 무심코 폈을 때, 마침 대중들 사이에서 극과 극의 평을 듣고 있는 낸시 랭을 만나 인터뷰한 글이 있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나한테 호감 있는 사람들만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구요. 시간은 부족하고 인생은 흘러가고 있잖아요. 자기한테 피해를 안 줬는데도 나를 욕하는 건 그들이 다 못나서 그런거예요. 게다가 내 앞에서 욕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뒤에서 욕하는 사람들은 다 'Fuck you!" 라구요"

아이러니 하게도 이 구절을 읽고 너무 감동하여 이 책을 그 많은 책들 사이에 덥썩 끼워버리고 말았다.

솔직함으로,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

그것은 대책없이 자유분방하고 대책없이 말도 안돼 보일지는 모르나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다. 그것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은, 참 잘난 재주를 가졌음에 분명하다. 김경은 그런 재주가 뛰어난 여인네가 아닌가 싶다.

대책없이 솔직함이 뚝뚝 묻어나는 그의 글발에 반하고, 잡학다식함에 반하고 문학과 패션과 철학을 넘나들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함에 반했다. 마음의 경건한 평화를 주는 어여쁜 글도 필요하지만, 나의 사고와 나의 생각을 톡톡 두드려주면서 나의 고집스러움을 밀어낼 만한 글도 필요하다. 그것도 과격하게 말이다.

자기가 좋으면 남들이 싫어도 좋은 것.
남들이 좋아해도 자기가 별로면 절대 좋아하지 않는 것.
그러면서 그렇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와인 테스팅을 천천히 하고 있는 웨이터에게 "제발 그런 짓 좀 하지마. 그냥 놓고 가라고"를 외치는 남자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것.
신문3사가 밀어줬던 이회창이 대선에서 낙방한 것은 하얀 머리를 염색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그녀만의 솔직한 생각에 난 실소를 터트리지 않을 수 있었다.

수많은 관습과 관념,
지키지 않아도 상관 없는 것들에 대한 것들에 시종일관 이야기 하면서도 패션에서 만큼은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어필하는 그녀.
하지만 그녀만의 원칙일 뿐, 명품을 치장하는 멍청한 짓과 유행을 좇는 어리석은 짓은 참아달라는 그녀.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원하는 것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야 말로 매력적인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직도 완벽하게 솔직하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나를 볼 때 김경의 글들을 한번씩 들춰보며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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