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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그렇고 그런 시작이었다. 아들이 귀한 집에서 막내 딸로 태어나 엄마가 산 속에 내다 버렸다는 바리.
집에서 키우는 개 덕에 살아나 할머니에게 이름과 이상한 능력까지 부여 받은 바리.
바리는 특별한 주인공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이다. 바리가 세상의 고난과 고통과 괴로움을 차례로 따라가면서 독자에게 말하고 있다.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해서, 인간의 삶에 대해서, 이기심에 대해서
어릴 때 부터 탈많고 사연 많은 바리의 삶을 안타까워하고 바라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삶은 세계를 통틀어 말하고 있었다. 북한의 기근과 그로 인해 벌어졌던 일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도망쳐 나오는 사람들의 또 다른 고난의 삶, 불법체류자의 삶과 그 삶을 버텨 나가는 힘과 고통, 테러, 전쟁, 이기심과 그로 인한 죽음, 증오와 용서, 화해와 사랑 등...
바리의 삶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이 나타나고 있다. 바리는 슬기롭게 대처할 때도 있고 인간의 나약한 본성을 끌어내어 보여 줄 때도 있다. 자신만 열심히 산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서글픈 현실도 보여주고 있다. 행복은 개인의 행복으로 머물지 말아야 한다는 뼈아픈 교훈까지 주면서 말이다.
행복한 가정이 깨진 건 북한의 기근이 심해지고, 외삼촌이 남쪽으로 내려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부터이다. 가족은 제각각 흩어지고 할머니와 강아지 칠성이를 의지한채 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절망을 이겨낼 희망도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를 찾으러 나간 바리는 많은 영혼들을 본다. 그야말로 괴로움에 갇혀 죽어버린 영혼들. 바리는 그 영혼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바리는 마음이 아프다. 칠성이 마저 죽고 혼자 된 바리는 그야말로 혼자만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중국에서 안정된 생활을 할 즈음, 다시 위기를 맞고 영국으로 밀항을 하게 된다.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었던 바리는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된다. 영국으로 같이 넘어갔던 샹언니와 헤어지고 혼자남게 된 바리에게 절망끝에서 또 희망이 찾아온다. 열심히 산 덕분이던가. 다시 안마사로 취직이 되고 수입도 안정적이 된다. 에밀리 부인을 만나 그녀의 아픈 마음을 보듬어 주기도 한다.
불법 체류자로 살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게 되지만, 9.11테러로 인해 남편과 헤어지는 고통을 맞게 된 바리는 아이마저 잃게 된다. 행복은 뜬금없이 찾아왔다가 절망을 주고 간다. 바리는 육신과 넋이 분리된 채 전쟁의 고통에서 허우적 거리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생명수를 찾아야 한다는 할머니 말에 생명수를 찾는 여행을 하게 된다. 그 여행속에서 바리는 미움과 고통 때문에 괴로움을 안고 죽은 영혼들에게 질문을 받게 되고 생명수를 찾고 돌아올 무렵 그 해답을 알게 된다.
바리가 가진 말 속에는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유쾌하고 당연한 답들이였다. 바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은 사람의 욕망과 욕심, 이기심, 절망 이 모든 것들에 있었다. 그로 인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그로 인해 전쟁이 일어난다. 서로를 죽이고 미워하고 자신들만 잘 살려한다. 서로 상처 받는 일을 하게 되고 상처 받으며 증오심을 품는다. 그게 다시 전쟁과 싸움이 되며 사람들은 이유없이 죽어가며 피를 흘린다. 누가 이기는지도 모르는 싸움, 이기고 지는 게 의미없는 싸움들은 계속 되풀이 되는 것이다.
바리의 여행은 말하고 있다. 바리의 여행을 올바르게 인도 해 준 할머니, 칠성이 그리고 마지막 홀리야, 자유라는 이름을 가졌던 자신의 아이까지. 아무도 가져올 수 없는 생명수를 먹었던 바리에게 이 고된 여행은 끝난 게 아니었다. 남편과 재회를 하고 다시 아이를 갖고 새로운 생활과 행복에 젖어 갈 무렵, 바리에게 나타난 또 다른 절망의 공포. 영국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 한가운데에 바리가 서 있다. 또 다른 생명과 함께...
변하지 않는 한 멈추지 않는다. 조금만 변하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이 세계는 변할 마음이 없다. 이기심이 고통을 만드는 줄도 모르고 우리는 한없이 욕망을 따라 가고 있다. 생명수는 우리 개개인의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닐까. 마음 속에서 생명수를 발견하는 깨달음을 얻는 다면 이기심이 만들어낸 세계에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일들은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