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지긋지긋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탈출하고 싶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 그러면 현실을 잊을 수 있겠지? 그럼 기분 전환이 될 지도 몰라.'
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린 가끔 탈출, 일탈, 혹은 가출을 꿈꾼다.
엄마의 재혼식에 심난해져 있는 준호는 형을 밀항시키기 위한 규환의 여행에 동참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단호하게 거절당한다. 운동권인 형을 만나는 일은 위험한 일이기에 친구 준호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 허나, 피치못할 사고로 규환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그 임무 아닌 임무를 준호가 맡게 된다.
겉으로 보기엔 간단한 일. 양조장 용달차에 몸을 싣고 목적지까지 가서 형을 만나 서류와 돈을 전달해 주고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일. 하지만, 인생은 원래 수많은 돌발사고 때문에 뒤틀리지 않던가. 준호 역시 순탄하게 여행을 떠날 수 없었다.
이름 모를 할아버지와 양조장 주인 아들 승주, 아빠에게 쫓기는 게 일인 정아, 정아 아빠의 미친개 루스벨트까지 여행에 동참하게 되면서 좌충우돌 여행기가 펼쳐진다. 마음만 급한 준호는 이 많은 혹들이 자신과 함께라는 게 갑갑해져만 오고, 엎친 데 덮쳤다고 용달차에서 쫓겨나다시피 하고, 루스벨트 때문에 버스조차 탈수 없다. 승주에게 가방을 빼앗기고 여행 경비마저 어쩔 수 없이 동행하는 이들의 밥값을 대느라 술술 빠져나간다.
울화통이 터져버릴 것 같은 이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몇 날 며칠을 동행하는 그들은 위험한 상황에 빠졌을 때는 서로를 감싸안고 마음으로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알고보면 모두들 쫓기는 몸이다. 마음을 둘 데가 없는 외로운 사람들이다.
지긋지긋한 아버지의 폭력에 지쳐 도망간 언니와 반편이가 된 엄마가 있는 정아. 자신의 꿈과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저 멀리 도망가고 싶다. 아버지가 죽일만큼 밉고 무기력한 엄마 또한 화가 난다.
엄마의 치맛바람에 어릴 때부터 외톨이였던 승주. 스님말만 믿고 자신을 절에 넣어버린 엄마가 원망스럽다. 장가도 못가고 바보가 되는 건 아닌가에 대한 공포가 탈출을 시도할 용기를 줬다.
아버지를 기다리지 못하고 사진작가에게 시집가버린 엄마가 원망스러운 준호. 준호는 아빠를 기다린다.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아빠의 뒷모습을 잊지 못한다.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 할아버지. 주워다 키운 자식까지 죽고 난 후,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긴 생활을 살다가 탈출한 할아버지.
주인에게 죽도록 맞고 살았던 개 루스벨트. 시끄럽긴 하나 외로움에 지쳐 그렇게 된 것.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사랑이 필요했던 루스벨트는 준호를 주인삼아 여행에 동참한다.
서로 외로운 이들이 만나 같은 여행을 한다. 외로움에 지쳐 혼자 되기가 무서운 사람들. 하지만 현실을 벗어나고파 가출을, 탈출을 감행한 사람들은 미워하고 이겨내고 웃고 떠들면서 각자의 괴로움을 이겨낸다. 경찰들의 눈을 피해 목적지까지 다다르게 되었을 때는 한마음 한 뜻이 되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규환이의 형을 만나기 위해 태풍이 휘몰아치는 섬에 들어가면서도 두려움이 없었던 건,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일을 겪었던 서로를 믿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서로의 아픔을 감싸안을 수 있는 마음이 깊어졌기 때문이리라.
승주, 준호, 정아는 할아버지가 봤다는 고래를 목격한다. 할아버지가 말한 고래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가슴속에 품은 희망이었을까? 미래였을까? 그들이 본 고래는 그들 가슴속에 영원히 남으리라.
목적지에 다다르고 서로의 길로 뿔뿔히 흩어진 후 준호는 회상한다. 열다섯, 자신들만의 비밀 여행은 살아갈 힘과 용기를 주었다고.
그 날들의 기억은 또 다른 삶을 사는 밑바탕이 되었고,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고.
우리는 일탈을 원한다. 탈출을 원한다. 가출도 원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유에 관해 잘 털어놓지 않는다. 그건, 내가 외롭기 때문일진데 나의 외로움을 알리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건 나만의 비밀. 그 비밀속에 서로를 묶을 수 있었으니 그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1980년대 모든게 답답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사춘기의 분위기는 서로 닮아있었다. 각자 풀고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는 이야기이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는 여행 한 번으로 어렴풋하게 해결점을 찾았던 여행자들의 이야기이다. 읽는 내내 유쾌했고, 내가 준호가 된 듯, 내가 정아가 된 듯, 내가 승주가 된 듯, 내가 할아버지가 된 듯 감정이입이 잘 되었던 것 같다.
책 속에 인물들과 신나게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된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