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있는 부엌
저녁 7시 45분
어제 내린 빗물의 때
흐린 부엌 창문으로
흐르는 누추한 노을을
바라본다
노을이 붉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내가 모르는 많은 것들이
흐트러지는 노을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있다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네온사인 간판이
끔뻑거리며 생소한
눈인사를 건넨다
멀고 먼 저 간판의 가게는
무얼 하는 곳일까
나이트클럽일 리는 없다
쇠퇴하는 구도심의 한 켠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관광호텔은 이제
폭파를 앞두고 있다
경양식집 같은 게
남아 있을 리가 없지
넙데데한 노란 돈까스와
곱게 채 썰어진 양배추
그런 식당이 아니라면
병원일지도 모른다
24시간 문을 여는
정형외과는 장사가
잘된다고 들었다
밤의 혓바닥으로
삼켜지는 노을을
지켜보며 오도독
호두를 씹다가
탈각이 덜 된 껍질이
쿡, 찌르며 표독스럽게 말했다
이제 그만
창문을 닫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