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 발톱이 자라지 않은 것이 벌써 2달이 지났다. 걱정이 되어서 피부과에 갔더니 의사는 그냥 두고 지켜보아도 괜찮다고 했다. 약간씩 기분나쁘게 욱신거리는 통증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겼다. 대체 왜 발톱이 자라지 않는가? 인터넷으로 열심히 검색을 해보았다. 찾아보니 조갑탈락증(爪甲脫落症)이라는 병명이 나온다. 조갑탈락증(onychomadesis)은 갑자기 손발톱의 성장이 멈추어서 결국에는 손발톱이 빠지는 것을 말한다. 조갑탈락증은 무좀균이나 기타 다른 감염균에 의해 손발톱의 일부분이 떨어지는 조갑박리증(onycholysis)과는 다른 질환이다.
그런데 이 조갑탈락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불분명하다. 어린아이들의 경우 수족구병(手足口病)을 앓고 바이러스 감염으로 조갑탈락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성인의 경우에는 별 다른 원인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조갑 부위에 가해지는 충격에 의한 외상도 원인으로 꼽기는 한다. 그리고 거기에 스트레스도 포함된다. 스트레스는 손발톱의 성장도 멈추게 만든다. 문제는 조갑탈락증에 대한 명확한 치료법이 없다는 데에 있다. 나를 진찰했던 피부과 의사의 말대로 그냥 내버려 두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러다 발톱이 빠지던지, 아니면 조금씩 이전의 발톱을 밀어내면서 새로 자라던지 그렇게 되는 모양이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대표적 질환으로는 가려움증(pruritus)가 있다. 오래전에 인터넷으로 UC 버클리 의대 교수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본 적이 있다. 바로 '가려움증'에 대한 강의였다. 그 교수는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의 감각에 대한 이론에서부터 시작해서 데카르트의 지각, 그리고 현대 의학에 이르기까지 가려움증에 대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었다. 그는 스트레스가 가려움증을 일으키는 절대적 요인이라고 말했다. 당뇨병과 같은 만성 질환에 의한 가려움증이 차지하는 비중은 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스트레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또 다른 무시무시한 병이 있다. 바로 대상포진(Shingles)이다. 나에게 3월은 대상포진을 호되게 앓았던 기억과 결부되어 있다. 피부에 수포와 발진이 나타나기 전에 나는 일주일 동안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그 통증은 일찌기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엄청난 통증이었다. 결국에는 종합 병원에 일주일 동안 입원을 해야만 했다. 퇴원을 하는 것으로 병이 끝나지는 않았다. 나는 한동안 대상포진후 신경통(Postherpetic neuralgia)으로 꽤나 고생했다.
대상포진을 호되게 앓고 난 뒤에 이 질병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대상포진에 대한 해외 논문들을 죽 찾아서 읽어보았다. 대상포진의 발병 기전은 대략 이러하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는 인체에 질병을 일으킨 이후 면역 시스템에 의해 사멸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이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 VZV)는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 인체 내부에서 살아남은 VZV는 신경절(神經節, ganglia)에 숨어든다. 일종의 동면 과정에 들어가는 셈이다. 인류가 우주를 탐사하는 지금의 시대에도 어떻게 이 바이러스가 면역 시스템을 교묘하게 회피하는지 그 기전을 알지 못한다. 참으로 놀라운 바이러스이다.
그렇게 잠들어 있던 바이러스가 어느 순간이 되면 깨어난다. 체력이 저하되고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상황이 그때이다. VZV는 자신이 활동할 때가 왔음을 직감한다. 기지개를 켜고 슬슬 활동을 개시하려는 이 바이러스는 일단 자신이 숨어있던 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대상포진의 극심한 통증은 바로 바이러스가 신경절을 뚫고 나오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렇다. VZV는 신경을 조각 조각 절단내면서 자신의 화려한 부활(!)을 통증으로 알린다.
대상포진은 신경에 비가역적인 손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되는 질병이다. 통증의 정도가 심하고 특히 발병 부위가 안면과 머리에 해당한다면 대학 병원의 응급실을 찾는 편이 낫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48시간은 대상포진 치료의 골든 타임이다. 오직 빠른 치료만이 대상포진으로 인한 신경손상과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표준적인 치료법은 피부에 발진이 생긴 후 48시간 이내에 항바이러스제와 스테로이드제를 투여받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질병에 대한 나의 글은 이렇게 대상포진에 대한 몸서리처지는 기억으로 끝이 난다. 최근에 내가 석 달 넘게 신경을 쓰는 일이 있었다. 애면글면 속을 끓이는 동안 내 발톱은 성장을 멈추어 버렸다. 내가 바라는 결과는 아니었지만 결국 그 일도 마무리되어가는 참이다. 그러고 보면 병에 걸리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의 마음을 잘 살펴보고 다독이는 데에 있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