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3세 - 전예원세계문학선 316 셰익스피어 전집 16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199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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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습작기 동안 이런저런 어려움에 부닥치기 마련이다. 단지 열심히 쓴다는 것으로는 만족할만한 좋을 글을 얻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글쓰기에도 정교한 이론과 구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때가 아마도 그 즈음이 아닐까 싶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는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큰 비중을 두어야할 캐릭터 설정에 있어서 좋은 전범이 되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캐릭터들은 찾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지만 "리처드 3세"는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만드는 캐릭터의 진정한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시대를 뛰어넘어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바로 인간성에 대한 탁월한 통찰에 있다. 이 책에서 만나는 인물들은 오래전 영국 궁정의 왕과 귀족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의 다양한 속성이 투영된 매우 실제적인 인물들인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인 리처드 3세는 인간에게 내재된 허영과 욕망, 그로 인해 빚어지는 음모와 배신의 그물망을 촘촘히 짜나가며 읽는 이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어떻게 매력적인 악역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이 책은 놀랄만큼 명료한 답을 제시한다.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또 지금 습작기에 있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리처드 3세"는 매우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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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소무”에는 주인공 소무가 주점의 아가씨와 거리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시퀀스가 있다. 짓다 말았거나, 마치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건물 안으로 소무는 잠깐동안 들어갔다가 나온다. 내게는 그것이 마치 급격한 개발이 진행 중인 중국의 모습에 대한 은유처럼 생각되었다. “소무”에는 그런 식의 공간적 기호가 곳곳에 포진해있다. 영화는 소도시와 그 외곽의 시골 풍경을 마치 다큐를 찍듯 건조한 화면에 담아낸다. “소무”에 나오는 모든 공간은 전근대성의 의미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친구가 경영하는 잡화점이나, 약국, 미용실, 주점, 소무의 부모님 집을 보라. 이것은 마치 70년대 개발 독재가 횡행하던 한국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이에 반해 "몰완몰료"가 보여주는 도시 공간의 이미지는 서구적이며 세련된 것이다. 물론 북경이라는 공간은 자금성으로 대표되는 역사적 의미가 강한 곳이지만 이러한 옛 건축물들이 몰완몰료에서는 하나의 삽화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초반부의 관광객이 등장하는 장면이라던가, 갈우가 사장을 협박해서 돈을 갖고 나오게 하는 장소 정도인 것이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강조되고 있는 공간은 마치 멋진 모델하우스를 연상하게 하는 오천련의 집을 비롯해, 병원, 경찰서 등과 같은 도시 기능의 핵심을 담당하는 곳이다. 그러한 장소들은 "소무"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낡고 구질구질한 소도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근대화된, 또는 근대화를 지향하고 있는 중국의 모습을 대변하는 기표들로 작동한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에 나오는 음악들 또한 그 기표들을 풍부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몰완몰료”에서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나오는 음악은 빠르고 비트가 강한 랩 음악이고, "소무"에서는 비교적 느린 템포의 중국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영화는 마치 작심을 하고 북경 시내를 보여주기로 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돈을 갖고 나오기로 한 사장과의 약속은 계속 틀어지고, 갈우와 오천련은 하릴없이 차를 타고 북경의 이곳저곳을 쏘다닌다. 카메라는 그들의 차를 따라가면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마치 북경 시내 곳곳을 보여주는 관광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장면들은 영화가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북경의 도시적 이미지, 또는 중국 근대화의 상징적 의미로서의 북경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두 영화가 보여주는 중국의 모습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현실에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각각의 영화가 제작된 시기가 “소무” 97년, “몰완몰료”는 99년이라는 점은 두 영화가 각각 담아내고 있는 공간적 의미를 단순히 중국의 과거와 현재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다. 두 영화는 근대와 전근대, 개발과 비개발, 도시와 농촌, 새것과 옛것, 실리와 명분이 혼재하는 현대 중국의 초상과 맞닿아 있다.

 

  공간은 단지 배경으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방식을 규제하고 변화시킨다. 같은 경찰서라 하더라도 “소무”에 나오는 경찰과 “몰완몰료”에 나오는 경찰의 일처리 방식은 다르다. 전자는 공포와 위압감을 주는 모습으로, 후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이것은 파기하고 도태시켜야할 전근대성에는 낡고 오래된 건물뿐 만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무”의 마지막 장면을 보자. 제거해야할 공공의 적이며 사회악으로 지목된 소무는 경찰에 연행된다. 경찰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동안 소무는 수갑이 채워진 채로 방치되고, 곧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된다. 나는 소무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서 증오보다는 깊게 드리워진 수치심을 보았다. 그것은 비단 소매치기 잡범인 소무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소무로 대변되는 그들 자신의 빈곤과 무기력, 부정부패와 미신, 물신적 욕망으로 채워진 자본주의적 심성이 온존하는 전근대적 공간과 생활방식에 대한 자조적 시선으로 읽힌다.  

 

  그에 반해 “몰완몰료”가 보여주는 결말은 급격한 근대화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도입이 가져다준 어두운 일면, 즉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가치의 상실에 대한 중국인들의 열렬한 희구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누나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지켜주려는 갈우, 그의 곁에는 아름답고 마음씨 착한 오천련이 자리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결말은 지금의 중국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것이기에 영화 속에서나 재현된 것일지도 모른다. “소무”에서 소무가 잠시나마 마음을 주었던 주점의 아가씨가 돈 많은 남자를 만나 떠나버리는 것이 현실이라면, “몰완몰료”의 결말은 매우 이상적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작위적인 것이다.

 

  현재와 같은 속도라면 조만간 중국에서 “소무”에서 보았던 정체되고 낙후된 소도시들의 모습은 빠르게 변할 것이다. 중국인들이 열렬히 지지해마지 않는 자본주의는 그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여줄 것인가? 그래서 그들은 “몰완몰료”가 보여주는 세련된 도시적 공간에서 도덕적인 가치를 지키며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중국인들의 바람과는 달리 그들이 잃어버려야할 것들이 너무 많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영화는 그들의 상상 속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지금보다 더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찾아 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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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종말에 관한 짧은 에세이
닐 우드 지음, 홍기빈 옮김 / 개마고원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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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까운 사람들과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 다양한 삶의 문제들이 결국 한가지로 귀결된다는 아주 평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돈" 이다. 물론 그 가운데에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도 있지만 "돈"이 있으면 문제 자체가 해결되버리거나,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되는 일이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떴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에는 세계의 구원과 희망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절절이 묻어나는 듯 하다. 그가 말하는 것은 매우 명료하다. 우리 자신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타락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적 심성의 오랜 습관에서 벗어나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선행되어야할 작업은 자본주의의 횡포와 폐해를 직시하고 고발하며 연구하는 일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책에 실린 내용은 단순히 "미국"이라는 한 나라에 대한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고, 그것으로 대표되는 전지구적 자본주의, 세계화라는 미명으로 불리우는 미국화의 추악한 일면을 낱낱이 해부하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미국화"란 세계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의 글은 통렬하지만 한편으로는 무거운 책임감을 우리에게 남기고 있다. 결국 사람의 심성까지 철저히 파괴시켜버리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전 신문에 실린 젊은 작가가 쓴 글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제 스물을  좀 넘긴 그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 세대의 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을 팔지"말라고.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을 파는"일은 없길 바란다고.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팔 궁리를 한다. 우리가 가진 지식, 노동, 시간, 그 밖의 모든 것은 돈으로 환산되고 시장에 팔 물건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이 끔찍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의외로 출발은 어렵지 않다. 깨어있으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잠자고 있는 다른 이들을, 그들의 생각을 흔들어 깨워서 함께 나아갈 길을 찾아보는 것이다. 평생 학자적 양심으로 올곧은 길을 걸어온 저자의 목소리에는 분명히 힘이 실려있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은 그 힘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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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야쿠쇼 코지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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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구로사와 기요시의 작품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것은 "밝은 미래"를 통해서였다. 원래 공포물은 좋아하지 않는지라 기요시 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어도 번번히 외면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된 그 영화는 독특한 영화보기의 체험을 제공해주었다. 딱히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모호한 감성과 독자적인 세계관이 그 작품 안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기요시 감독의 작품을 하나 둘씩 보기 시작하다가 DVD로  "강령"을 만났다.

 

  "강령"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은 준코의 눈에 보이는 귀신들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즉 인간 내면에 도사린 그릇된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영화는 매우 극명하게 드러낸다.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향해 치닫게 만드는 동인은 평온한 일상 속에서 아무런 사심이 없어 보이는 준코 내면의 명예와 부를 탐내는 근원적 욕망이었던 것이다. 

 

  사실 영화 자체에 대한 평점으로 치자면 별 다섯을 다 주어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 영화가 갖는 완성도는 뛰어나다. 그러나 DVD 자체의 상품성만을 두고 본다면 별 세개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는데, 무엇보다 서플먼트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별 한개를 선선히 더 주게 만드는 것은 기요시 감독이 내한했을 때, 관객과의 대화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강연에 있다. 서플먼트에 실린 것은 편집된 것이기는 해도 기요시 감독의 영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호러라는 장르를 통해 인간과 세계를 향해 말을 걸고 소통을 시도하는 기요시 감독의 모습은 구도자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호러물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의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더 깊은 성찰을 하고 싶은 사람, 그들 모두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결코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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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씩 취향이라는 것은 얼마나 변덕스러운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사부의 영화 “포스트맨 블루스”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나에게 이 감독의 세계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잘려진 손가락이 영화에서 수시로 나온다거나, 킬러와 야쿠자, 살인 장면의 반복적인 노출이 그렇게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 세계를 조금씩이나마 탐험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배우 “츠츠미 신이치” 덕분이다.

  츠츠미 신이치는 사부의 영화 “하드 럭 히어로(2003)”와 “행복의 종(2002)”을 제외한 전 작품에서 주연을 맡아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감독과 배우가 지속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있다면 무엇일까? 아마도 그건 서로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이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츠츠미 신이치는 사부의 영화세계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자이자 후원자로 자신의 연기 영역 뿐만 아니라 사부 감독의 영화적 역량을 극대화시키는 면모를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그를 사부의 페르소나라고 부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된 “탄환 러너(1996)”는 사부의 이름을 전세계 영화계에 알리는 신호탄 같은 작품이었다.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세 명의 인물들은 쫓고 쫓기면서 달리는 과정 속에 각자의 욕망을 응시하고 스스로를 성찰하게 된다. 제목 그대로 이 영화의 대부분은 달리는 신이 차지하고 있다. 속도감 넘치는 영화적 전개로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두는 사부 영화의 특징은 1997년작 “포스트맨 블루스”에서도 빛난다. 

 

  인간의 육체가 지닌 능력을 극단으로 밀어붙여서 시험이라도 하듯 이 영화에서 츠츠미 신이치는 자전거와 하나가 되어 달리고 또 달린다. 평범한 우편 배달부가 예기치 못한 우연한 사건으로 희대의 살인범으로 몰려서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된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거기에 사부만의 이야기 작법과 유머 감각이 들어가면서 영화는 독창성과 힘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렇듯 사소한 사건이 오해를 낳고, 그 오해가 예측할 수 없는 결말을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동인이 되는 이야기 구조는 “포스트맨 블루스” 뿐만 아니라 사부의 또 다른 영화 “먼데이(1999)”와 “드라이브(2001)”에서도 볼 수 있다. 

 

 

  “먼데이”와 “드라이브”의 주인공들은 별다른 희망이나 기대도 없이 매일매일의 익숙해진 일상에 지쳐있는 소시민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런 그들에게 어느날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일어나고 사건에 휘말리는 과정에서 인물들은 이전과는 다른 극적인 정체성의 변화를 겪는다. “먼데이”의 주인공은 평범한 회사원에서 나중에는 인류의 진정한 평화를 역설하며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려는 인물로 변화하는가 하면, “드라이브”의 제약회사 영업사원은 은행 강도들에게 인질로 잡히는 시련을 겪는 동안 자신의 나약함과 직면하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그의 또 다른 영화인 “언럭키 몽키(1998)”는 사부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단지 인간성에 관한 탐구뿐만이 아니라 좀 더 보편적인 사회 문제까지 포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꾼에서 더 나아가 설득력을 갖는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아내는 영화작가로서의 사부의 면모는 그의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예를 들면 “언럭키 몽키”에서 츠츠미 신이치가 분한 은행 강도는 공청회장에서 자본주의의 추악한 일면과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 일장의 연설을 하고, “드라이브”에서 테라지마 스스무가 비판적 가사의 랩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장면이 그것이다. 

 

  "행복의 종(2002)”은 전형적인 사부 영화의 틀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다. 츠츠미 신이치 대신 역시 사부 영화에서 자주 얼굴을 보이는 배우 테라지마 스스무를 주연으로 한 이 영화는 공장폐쇄로 실직한 노동자가 삶의 참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그러나 이전의 사부 영화들을 보아온 이들이라면 이 영화가 과연 사부가 만든 것인지 의문을 품게 만들 정도로 “행복의 종”은 평탄한 이야기 전개와 다소 밋밋한 결말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 작품은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지칠 줄 모르고 달려온 사부가 자신을 돌아보는 중간 휴식 지점의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2003년에 인기 절정의 아이돌 그룹 V6의 뮤직비디오 의뢰를 받고서 만든 영화 “하드 럭 히어로”는 이제 사부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그가 앞으로 들고 나올 영화가 어떤 모습일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사부만의 독창성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사부의 영화에 열광하는 이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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