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와 그 비극적 삶에 대해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영화 "힐러리와 재키(1998)"는 바로 그 재클린과 언니 힐러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죠. 영화가 만들어지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아마 재클린의 언니 힐러리와 동생 피어스가 함께 쓴 자서전일 겁니다. 그런 이유로 영화는 가족의 시점, 특히 힐러리의 시점이 주가 됩니다.

  영화에서는 어린 시절의 힐러리(플룻 연주자였어요)가 재클린 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것으로 묘사되고 있어요.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재클린의 재능은 힐러리를 앞질러 나가게 되죠. 그래서 힐러리가 재클린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느정도 질투가 섞여있는 것처럼 보여요. 힐러리가 동생에게 보여주는 그 모든 호의에도 불구하고요. 천재적 재능을 가진 동생 재클린은 17살때부터 유수의 교향악단과 협연을 하고, 전세계에 연주여행을 다니며 자신의 경력을 쌓아갑니다.

  22살이 된 재클린은 촉망받는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결혼합니다. 재클린의 연주 레코딩 가운데에 대부분은 바렌보임과의 협연에서 나온 것이었죠. 바렌보임은 자신의 경력을 쌓는 데에 재클린을 혹사시켰다는 비난을 듣기도 하는데, 재클린의 연주 스케줄이 지나치게 꽉 짜여져 있었고, 그것이 재클린의 발병에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 때문이었어요. 

  영화는 재클린이 살았던 실제의 드라마틱한 삶에 비한다면 아주 평범해요. 그녀가 살아내야했던 삶의 엄청난 고통때문에 그럴지도 모르지요. 영화가 그것을 다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니까요. 28살에 다발성 경화증으로 진단받은 재클린은 첼로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버림받고 이후 14년을 투병하다 세상을 떠요. 재클린은 투병기간동안 많이 외로웠을 겁니다. 남편 바렌보임은 러시아 피아니스트와 동거하면서 두 아들을 낳았고, 재클린을 버려두다시피 했죠. 그런가하면 가족들은 재클린이 결혼과 함께 남편이 믿는 유대교로 개종한 이후 멀어져있었구요. 물론 영화는 언니 힐러리와 가족의 관점이 더 투영되었으니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영화가 재클린과 그 삶에 대해 얼마나 사실적으로 그려내었을까요? 재클린의 지인들은 영화 개봉후 자신들이 알고 있는 재클린의 모습과 다르다면서 영화사에 공식적으로 항의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해요. 바렌보임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이 죽을 때까지 기다려줄 수 없는 거냐며 투덜거렸고요.

  재클린의 연주 음반을 들어보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재클린이 들려주는 첼로는 매우 순수하고 놀라울 정도로 활기가 넘치죠. 영화에서 묘사된 제멋대로이고 예측할 수 없는 성격의 재클린도 어느 부분은 진실일 수도 있어요. 에밀리 왓슨의 뛰어난 연기가 그 믿음을 더하게 만들거든요. 

  이 영화에서 한가지 흥미있는 것은 재클린과 첼로의 관계에요. 영화에서 재클린과 첼로의 관계는 사도마도히즘적이에요. 자신에게 끊임없이 연주를 강요하는 첼로를 재클린은 일부러 택시에 두고 내리거나 추운 겨울날 밖에 내놓기까지 하죠. 그럼에도 재클린 앞에 다시 놓여져 그녀로 하여금 연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첼로를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에요. 그 첼로가 다비도프였어요. 다비도프가 재클린 사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알아보니 지금은 요요마의 손에 있더군요(영문 위키피디아에 그 자세한 이야기가 나오니 관심있으신 분은 참조하고요). 



  재클린의 삶을 보면 어쩌면 재능이란 저주받은 이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너무나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삶이었어요. "힐러리와 재키"는 그렇게 천재 첼리스트의 가려진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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