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그 예술
야나기 무네요시 지음, 이길진 옮김 / 신구문화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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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宗悅, 일본사람이다. 야나기 무네요시.
한국 미술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
한국의 미를 '비애의 미'라고 비하했다고 식민 사관에 사로잡혔다고 욕듣던 인물.
과연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한국인들은 안 읽으면서 욕한다고 홍세화 선생이 말했다. 한겨레 안 보는 사람들이 한겨레 욕한다고. 이 책도 읽지 않고 욕하는 이들도 많으리라.)

식민 본국 일본인으로서 조선을 몇 번 방문해 보고, 조선의 민예품에 반해서 민예박물관을 만들려고 전국을 뛰어다닌 사람.

내 생각으론 그가 미술사학자도 아니고, '조선과 그 예술'을 내던 때가 1922년 34세의 젊은 청년이었기 때문에, 조선을 몇 번 방문한 경험만으로 한국의 미에는 이런 특성이 있다고 내세운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 쉬운 일이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 보면, 야나기 무네요시는 우선 1920년대 일본 지식인들에게 유행한 '사해 동포주의'와 '실용적 학문'에 관심을 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시라카바(白樺)의 동인의 특징이다.
그의 글에 드러난 논지는 '일본인들이 심하다. 몰지각하다.'는 정도의 느슨한 시각이 들어있지만,
그의 성급한 일반화가 식민 사관에 사로잡힌 편견이 아님은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구체성을 획득하는 장면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조선을 알기 위해서는 장날을 보는 것이 지름길임을 알고, 조선의 민예품을 보면서 감탄, 또 감탄하는 식민 사관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는 반야심경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면서 '거리낌이 없어 공포가 없다.'는 말로 조선 민화의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러운 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상당한 관심과 애정이 담겨있다고 보인다.

그의 애정은 민예와 그 작자를 통하여 단일한 전통을 가진 민족으로서의 조선을 <발견>해 내게 된다.
그래서 그는 한국인들에게도 일본의 횡포를 전하려 한다.

어느 민족이 다른 민족을 동화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20세기의 오늘을 사는 사람에게는 의문에 속하는 문제의 하나입니다. 병탄이란 위압적인 수단은 말할 나위도 없고 평화적 정책으로 동화가 가능하리라는 것도 세계의 역사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또 오늘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긍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일본과 같이 내부적 모순을 가지고 불완전한 극한 상태에 있는 자가 남을 개화시키겠다고 한다면 이를 누가 믿을 것입니까? 우리가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한국은 위대한 아름다움을 낳은 나라이고 위대한 아름다움을 가진 민중이 살고 있는 나라라는 사실...

일본의 동포여, 칼로 일어난 자는 칼로써 망하는 법, 군국주의를 어서 파기하라. 인륜을 짓밟는다면 세계는 일본의 적이 되고, 멸망하는 것은 조선이 아니라 바로 일본...

이런 말들을 읽으면 마치 강직한 독립 투사의 변호같지 않은가?

세계 예술에 있어서 훌륭한 위치를 차지하는 조선의 명예를 보존하는 것이 일본의 인도라고는 하지만, 그는 인간으로서의 일본인에게 큰 희망을 품고 있다. 이런 부분은 정치의 맹목에 대한 착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조선의 공예가들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으나 놀라운 미적 직관의 소유자로서 독특한 조선만의 고유미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하는 안목이나,
조용하고 쓸쓸한 마음을 흐르듯 길고 길게 내리는 곡선이 연연하고 끝없이 호소하는 듯한 아름다움을 나타낸다는 부분은 상당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혹자는 그가 조선의 반도적 특성에서 나온 비애미로서의 아름다움을 조선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지만, 꽃병이 없고 어린이의 장난감이 없고 음악이 슬프다는 그의 논지를 보면 재치가 돋보이는 것이라고도 할 만하다.

석굴암에 대한 연구, 광화문을 파괴하는 데 따른 아픔, 생활 속의 교졸함과 담담함이 담긴 조선의 도자기 등은 뛰어난 기록이다.
정치는 예술에 대해서까지 무례해서는 안 된다. 예술을 침해하는 따위의 힘을 삼가라. 나는 죄짓는 자 모두를 대신하여 사과하고 싶다는 태도는 그의 진지한 태도를 보여준다.

알지 못하고 욕하는 것, 그것이 편견이다.
읽지 않고 비판하는 것, 그것이 무지다.
과거, 오만과 편견에 휩싸인 일본에 당한 우리가, 지금 오만과 편견에 휩싸여 올바른 <생활의 발견>에 실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요즘 EEZ를 둘러싼 긴장감 도는 뉴스를 보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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